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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삶

관리자 2013-01-18 (금) 22:11 13년전 2137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삶
-늦봄 문익환 학교 신입생을 위한-
 
일 시 : 2013년 1월 18일(금) 오후 7시
장 소 : 한빛교회
 
 
□ 인사 : 이 시간 서로 인사부터 나눕시다! 안녕하세요!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안녕과 히브리어로 샬롬은 약간 다릅니다. 안녕은 밤새 별고 없었느냐 식사는 제대로 챙겨 드렸느냐는 뜻이고 히브리어로 샬롬은 하늘이 내려준 평화인데 여기에는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와 관계의 잘됨과 영혼의 평안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유대인들이 독일군들에게 잡혀 가면서 줄줄이 줄에 묶여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밝은 빛을 향하여 앞 만 향해 나가자! 주와 함께 걸으면 걱정할 게 무어냐 갈 길 멀고 험하여도 노래하며 나가자!” 이제 잡혀 죽으러 가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참으로 그들의 얼굴 속에는 평화로웠습니다. 또 한 번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들어갔는데 죽음의 독가스가 새어 나오는데 거기 있는 한 랍비가 무엇을 외우고 있는데 그 외우는 것이 시편 23 편이었습니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검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유대인들은 잡혀가면서도 죽어가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시편을 외우는 것이 제 가슴 속에 깊이 남았고 그들의 얼굴 속에는 평안이 스며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녕과는 다른 죽음과 위협도 빼앗아가지 않는 “샬롬”인데 이 시간 옆 사람과 서로 인사를 하면서 “샬롬” 하고 인사를 나누십니다. 늦봄 문익환 학교 학생들과 부모님들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박현 목사님과 모든 분들에게 샬롬의 평화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말해 달라는 박현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속으로 “내가 적합한 강사가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현 목사님은 강진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늘의 늦봄 문익환 학교를 일구신 분으로 뭔가 저는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 목사님께 빚을 지고 있어 갚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저는 무척 바쁘게 사는 사람입니다. 비중이 있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지만 일 속에 파묻혀 삽니다. 최근에 제 수첩을 보니 제가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삶>에 대하여 말씀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이구 괜히 약속을 했구나 이제 준비한다면 이제 하루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부실하게 그지없이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하였으니 준비를 하자하고 준비를 하였지만 여러분들은 문익환 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잘 알 것이고 제 가 하는 이야기 속에 많은 부족함을 발견할 것입니다만 그런 책 제목이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했다!” 제 부족함을 인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부족함 속에서도 그래도 챙길 것은 하나 정도 아니면 반 개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 여러분의 마음 속의 장바구니에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늦봄 문익환 학교 졸업식과 입학식>이 겸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졸업하는 학생들이 한 학생 한 학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 늦봄 문익환 학교가 이름만 문익환 학교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졸업하는 학생들이 지난 6 년 동안의 경험과 앞으로의 비전을 말하는 당당함 속에 뭔가 다름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학교가 자본주의의 짜여진 체제 안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법만을 가르치는 그래서 인간성과는 상관없는 성적위주의 붕어빵들을 제조해 내는데 비해 아니 그러기 보다는 이기주의적인 좀비들을 양산해 내는데 그런 범주에 들지 않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결혼을 하는 리브가 집안에서 리브가를 떠나보내면서 축복을 하면서 보내는데 그것이 창세기 24 장 60 절에 있습니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당시에 고대 근동에 살았던 이들의 총 인구가 천만인이 훨씬 안될 때인데 리브가의 가족들이 축복할 때 “천만인의 지도자가 될지어다!”도 아니고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축복한 것은 참으로 예사스런 축복이 아닙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 사는 사람을 다 합해도 천만인이 되지 않을 것인데 저들은 그런 축복을 하였습니다. 천만인의 많은 이들에게 어머니와 같이 사랑을 베푸는 이가 되기를 바라는 좀 스케일이 큰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밀가루 누룩 서말에다가 한 주먹도 안되는 누룩을 넣으면 밀가루반죽이 부풀기 시작하여 반죽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맛있게 먹고 배고픔을 면합니다. 누룩은 퍼지기 시작하면서 밀가루반죽을 화학적으로 소망스럽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늦봄 문익환 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이 마치 밀가루 서말 속에 들어간 누룩과 같이 되어 어디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소망스런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효모와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천만인의 어미가 되고 천만인의 애비가 되는 그런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 늦봄 문익환 목사님이 바로 천만인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문익환 목사님을 이곳 한빛교회에서 만나 뵈었습니다. 제가 한빛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전도사와 그리고 부목사가 되어 일하였을 때 당시 문익환 목사님은 감옥을 출입하시면서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당시 문익환 목사님은 재야운동의 代父라 불리우셨고 그 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 원래 목사님은 한국신학대학 구약학 교수이셨는데 왜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시면서 그렇게 독재와 투쟁을 하시는 일에 뛰어드셨을까? 그 투쟁은 그저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내놓고 하는 십자가를 지는 일인데 그 촉발요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군사독재가 너무 심하고 민중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져 그것을 보다 못하시어 뛰어드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만 저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 문익환 목사님께서는 개신교와 카톨릭이 공동으로 성경번역을 시작하였는데 그 일의 책임을 맡으셨습니다. 1971 년부터 1977 년 약 8 년 동안 히브리어 성경을 현대인을 위한 성경으로 번역하는 일에 집중하셨고 그 열매가 맺어 공동번역이 탄생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의 뜻을 깊이 파헤치시면서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알지 못하는 순간 도무지 수백차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가슴 속 깊이 하나님의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신 것입니다.
 
 
□ 2017 년이 되면 종교개혁 500 주년이 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게 된 것은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루터 역시도 라틴어로 밖에 되어있지 않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물론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성경의 독일어 번역 이전이지만 루터는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연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갔고 거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중세를 근세로 바꾸는 일대 전환기를 이루었고 개신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결국 성경에 기초하여 당시 카톨릭 교회의 부패상을 뒤집어엎는 개혁을 하였습니다.
 
 
□ 문익환 목사님은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가다 보니 하나님의 가슴을 만났고 성경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보였는데 그 세상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는 철저히 반대로 가고 있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특별히 문익환 목사님이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의 아래 부분은 하나님의 뜻과는 no!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번역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속에 역사하고 있는 성령이 문익환 목사님에게 충만히 임하게 된 것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성경을 번역하는 동안에 박정희 군사독재는 더욱 악하여졌습니다. 계속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선거부정을 하였고 유신을 선포하여 영구히 대통령을 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을 잡아 가두거나 고문하여 죽이거나 탄압을 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유신선포와 함께 실로 너무도 많은 이들이 잡혀가고 수배당하고 의문사를 당하였습니다. 최근에서야 법원에서 판정을 받아 재조사를 명한 장준하 선생님도 당시 의문사를 당하였습니다. 실제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들을 시켜 죽였다는 것을 다 알지요!
 
 
□ 그때가 70 년대 초중반이었지요!! 박정희 독재가 점점 더 극심해 질 무렵 바로 장준하 선생님이 문익환 목사님에게 말하였습니다. “박정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요! 이러다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뿌리채 뽑히고 말거요!” 그러나 문익환 목사님은 장준하 선생과 독재를 반대하는 투쟁에 뛰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신학대학 교수일까지 그만두고 공동번역 성경을 번역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장준하 선생님은 1973 년 12 월 24 일 우리나라 지도급 인사 30 여명이 모인 가운데 유신헌법을 개정하는 백만인 청원을 하자는 서명을 하였고 이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을 하는 것이었기에 박정희는 불순분자들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긴급조치를 발동하였고 장준하를 긴급조치 1 호로 구속하였고 1974 년 12 월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는데 나중에 박정희는 부하들을 시켜 장준하를 죽여버리고 등산하다가 추락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 장준하 선생님이 의문사를 당한 지 이듬해 3 월 1 일이었습니다. 사계절이 발간한 책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에는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문익환은 책상 위에 있는 장준하의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장준하 형! 형이 보고 싶소! 형이 만일 살아 있었다면 천하가 이렇게 쥐죽은 듯 조용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자 어디선가 장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 문 형은 왜 못해!“ 문익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쇠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맞아 나는 왜 못해?” 문익환은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더. ‘나는 신학자야. 하지만 신학이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책만 보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야. 오늘 이 땅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를 외면해선 안돼. 신학은 바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지. 게다가 성서 번역 일도 이제 얼추 끝나지 않았어!“
 
 
□ 그때부터 문 목사님은 성경번역의 일을 접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정부의 긴급조치를 거두어들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3.1 민주구국선언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선언을 같이 한 이들과 함께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문익환 목사님은 민주운동과 인권운동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에 뛰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 문익환 목사님께서 성경을 번역하는 가운데 성경 속으로 깊이 들어가셨을 때 만난 하나님은 문익환 목사님을 그저 성경을 번역하는 자리에만 놓아두지 아니하였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을 택하여 시대의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언자는 앞 날을 예측하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잘 못된 것을 잘 못되었다고 지적하고 고치고 회개할 것을 명하는 사람입니다. 장준하의 죽음을 계기로 역사의 하나님은 문익환 목사님에게 가슴을 풀어 헤쳐 만나셨고 목사님을 일어서게 하였고 목사님으로 하여금 “아닌 것을 아니다!” 말하게 하셨습니다.
 
 
□ 성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당시 독재정권을 향해 ”아닌 것을 아니라!“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당시 기장교회를 제외한 교회들은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을 위해 호텔에서 모여 조찬기도회를 열고 만수무강하시라고 기도해 줄 때였습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정희 정권의 서슬퍼런 독재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었을 때 문익환 목사님은 성경에서 만난 역사의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아닌 것을 아니다“ ”박정희 독재는 아니다!!“ 하신 것입니다.
 
 
□ 그 이후 목사님은 독재와 투쟁을 하는 민주운동을 하셨고 통일운동을 함께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독재와 투쟁을 하시면서 깨달음이 있으셨습니다. 그 깨달음은 뭣이냐 하면 왜 이 땅에서 독재라는 악이 성행하는가! 이 모든 악의 근원은 분단에서 나온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분단을 이 민족의 원죄와 같다 하시고 그 원죄에서 모든 독재와 탄압과 반민주의 악들이 흘러 나온다 하셨습니다. 분단되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악이 거기서 근원이 되어 흘러 나온다 하였습니다. 분단이 되었기에 안보라는 미명하에 독재가 자연스럽게 성행한다고 보고 민주운동은 통일운동과 병행해야 한다고 보셨고 마침내 목사님은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과 북의 평화통일방안을 협의하시고 돌아오셨습니다. 24 년 전 문익환 목사님은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습니다. 그 길은 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꿈꾸는 자에게 힘이 있습니다. 꿈꾸는 자가 없다면 역사는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걸었던 그 길을 따라 현대 정주영 회장은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고, 끊어졌던 철로가 연결되었습니다. 개성공단을 향하는 차량의 행렬은 날마다 휴전선을 넘었습니다. 북한의 조림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했었고, 빵공장과 병원을 세워주는 일도 활발했습니다. 바야흐로 길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북과 만난 연후에 남과 북은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의 결과들을 수용하여 마침내 꽃피고 열매맺어 615 선언과 10.4 선언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분단을 이용하여 득을 보던 세력들이 재집권하여 지금 통일의 길은 멀어만 가고 있습니다.
 
 
□ 목사님이 하신 일들은 참으로 한량없이 많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삶을 한마디로 “불”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을 번역하는 가운데 성령의 불을 받으셨습니다. 성경 안에서 역사하는 뜨거운 성령을 받으셨고 예언자들의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도 받으셨습니다. 특별히 예레미야 예언자는 눈물의 예언자였는데 성경을 번역하시면서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받으셨습니다.
 
 
□ 목사님께서 불의 성령을 받으시어 불과 같이 토해 내 놓으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입니다. 목사님은 시인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뜨거운 영은 그의 글을 통하여 그의 입을 통하여 노래가 되고 시가 되어 그의 뜨거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목사님의 시를 보시게 되면 그저 단순히 문학적이다 시적이다 하는 것만을 발견하지 않고 목사님이 쓴 시는 그저 얌전한 것이 아니라 토해내는 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불이 단지 불만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하나님의 말씀하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 불의 뜨거움을 느끼신다면 여러분들은 목사님의 가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가슴 속에서 목사님이 만나신 성령님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목사님은 또 한편으로 뜨거운 불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을 향하여는 불의를 향하여는 타오르는 무서운 불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은 문익환 목사님을 무서워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수차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십수년간을 감옥에서 지내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목사님은 다시금 불이 되어 활활 타올랐습니다. 목사님은 박정희 정권을 전두환 정권을 노태우 정권을 무섭게 질타하셨습니다.
 
 
□ 목사님은 민족을 사랑하는 데는 뜨거운 불이셨습니다. 성경 아가서를 보자면 그런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병이 났음이라” 상사병 사랑의 뜨거움입니다. 목사님은 칠천만 겨레를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온갖 고난을 당한 겨레를 뜨거운 불로서 사랑하셨습니다. 누구처럼 이 땅 남쪽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저기 저 북쪽도 한 겨레요 한 식구로 사랑하였습니다.
 
 
□ 목사님은 다른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이 따뜻한 불이 되셨습니다. 민중들에게는 권력자들에게 가진 자들에게 소외된 자들에게 박해받고 핍박받은 자들에게 의로운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위로하시고 저들을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갈릴리교회를 담임하셨는데 한빛교회 오후에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여시어 거기에는 인혁당 남민전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죽은 이들의 가족, 감옥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장기수들의 가족들, 데모하다가 들어간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 아버지, 악에 맞서서 자신의 몸을 불태운 이들의 가족, 최루탄을 맞아 숨진 아들의 부모 등등 온갖 고통을 당하였거나 당하고 있는 이들,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말씀으로 위로하고 목사님은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감싸주시고 때론 아픈 이들을 민중욧법 파스욧법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독재정권을 질타하는 불과는 다른 마치 온돌방과 같은 훈훈함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고통당하는 이들이 흐르는 눈물을 함께 우시면서 닦아 주셨습니다. 지난 연말에 상영되었던 영화 ‘남영동 1985’를 보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영화는 민주화 인사였던 고 김근태 선생님이 고문 받았던 실상을 재연하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던 80년대 초반,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목요 기도회가 늘 열렸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재작년에 돌아가신 전 국회의원인 김근태 씨, 그분의 아내인 인재근 씨가 그 목요기도회에 참석해서 자기 남편이 당한 고문의 실상을 증언했습니다. 고문에 의해 황폐해진 남편을 보고 온 이야기를 하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눈물을 닦고는 이제 울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남편이 못 다한 일을 이루기 위해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숙연해졌습니다. 문익환 목사님께서 축도를 하셨는데, 그 기도가 우리 모두를 울렸습니다. "하나님, 당신도 우리처럼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느끼십니까? 하나님, 듣고 계십니까?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의 울음소리를. 당신도 울고 계시지요? 하나님, 부족하지만 우리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드리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의 용기를 주십시오."
 
 
□ 목사님은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사셨습니다. 목사님은 독재정권으로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민중들이 고통당함 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준 이들을 공격하고 내가 받은 상처보다도 더 큰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상처입은 공격자가 되는거지요! 그런데 목사님은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자신의 상처를 붕대로 하여 상처입은 자들을 위로하시고 감싸 주시고 치유하여 주시는 상처입은 치유자이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문익환 목사님께서도 불을 지르셨습니다. 그 불은 어느 곳에서는 분노의 불이 되어 타올랐고 어느 곳에서는 사랑의 불이 되었고 어느 곳에서는 독재의 어둠을 환히 비추이는 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시는 곳마다 하시는 일마다 하나님의 빛을 비추이셨습니다. 오늘이 그래 어제 그제보다도 나았다면 오늘은 그저 오늘이 아닙니다. 어제의 투쟁과 썩어지는 밀알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만만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어제 문익환 목사님이 촛불이 되셔서 자신의 몸을 태우셨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촛불이 그렇습니다. 초가 타지요! 그러면 촛농이 주르룩 흘러 내립니다. 그러면서 심지가 타면서 점점 키가 줄어들고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주변을 환히 밝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키가 적어질 수 없을만큼 작아졌을 때 그것을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내 버립니다. 초가 타면서 결코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초가 불을 밝히면서 일을 하면서 키가 더 커진다든지 심지가 더 굵어진다든지 초 자체가 더 아름다워진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 아닌 존재에 환함을 주다가 결국 자신의 존재는 퇴물이 되고 난 다음에 버려집니다. 그렇게 버려진다고 초는 단 한마디도 불평을 하거나 일인시위를 하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늦봄 문익환 학교> 학생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여러분들이 문익환 목사님의 정신과 혼을 이어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고재식 박사님으로부터 기독교윤리를 들었는데 그 분은 가르치면서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타자를 위한 삶>이라 정리하였습니다. 필립스아카데미는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입니다. 220년 동안 각계 지도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 설립자의 건학이념이 바로 ‘not for self’입니다. 라틴어로는 Non Sivi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 저는 문익환 학교의 학생들이 타자를 위한 존재로 더욱 배워지고 훈련되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문익환 목사님께서 불이 되었듯이 여러분 역시 역사의 하나님으로부터 불을 받고 불이 되어 살기를 바랍니다. 어두운데서는 빛이 되고 추운데서는 군불이 되고 불의가 있는 곳에서는 정의의 노여움이 되고 서러운 사람, 상처입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햇볕 한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재하고 있어 더불어 존재하는 사람에게 뭔가 착함과 선함을 주는 존재, 존재하고 있어 주변의 존재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주는 존재, 존재하고 있어서 함께 존재하는 이들과 더불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작은 문익환이 되어 작은 박용길이 되어 작은 촛불이 되어 주변을 환히 밝히시는 그런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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