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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경위의 등불 남신도회 대전연합회

관리자 2013-01-22 (화) 23:32 13년전 1794  
2013년 1월 20일(주일) 오후 3시 한신교회 / 남신도회 대전연합회 대전시지구회
 
성경본문 : 마태복음 5 장 14 절 - 16 절
제 목 : 등경위의 등불 남신도회 대전연합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한신교회 한사랑 찬양대 위에와, 오늘 남신도회 대전연합회 대전시지구회 위에와 존경하는 남신도회 대전연합회 회장 김규환 장로님과 이제 새롭게 선출될 회장님과 총무님 위에, 모든 남신도회 회원님들 위에 특별히 남신도연합회를 위해서 성전을 장소로 내놓으신 한신교회와 김석인 담임목사님 위에도 대전노회장이신 노준래 목사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족한 사람을 초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권종범 장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한신교회 김석인 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교단의 여러 행사들을 위해 귀하게 헌신해 주시고 총회 때도 귀한 말씀을 전해 주신 김석인 목사님께 이 시간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뵈오니 백일균 원로목사님이 계신데 백 목사님께서는 제가 총회에서 간사로 일할 때 총회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귀하게 봉사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교단의 평화통일운동은 활성화되었고 남북교회와의 관계도 더 밀접해 졌던 것을 생각할 때 백목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남신도회는 문익환 목사님의 부친이셨던 문재린 목사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목사님께서 남신도회를 조직하셨을까 하는 점이 있습니다. 당시 배웠던 신학 중에는 평신도 신학이 있었습니다. 평신도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무슨 성직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신도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신도요 여자는 여신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 역시도 하나님 앞에서는 믿는 신도인 것입니다. 아마도 문재린 목사님은 그런 소신을 가지고 남신도회를 창립하셨을 것입니다. 문재린 목사님이 지으신 남신도회가에 보면 “우리는 주의 자녀 반갑고 미더워라”가 나옵니다만 24 개 지회 중에서 대전연합회가 주님 보시기에 가장 반갑고 미더운 주님의 지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을 때 그 속에 무슨 뜻이 담겨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일 처음에 하신 말씀이 “빛이 있으라!” 하셨으니 빛이 존재하기 전 하나님의 마음 속에 이미 “빛”이 있었을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그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으니 빛은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신 그 무엇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셨을 때 천지를 만드신 후에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니 빛이란 천지에 세상에 가장 필요한 그 어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빛이라 하셨을 때 빛과 세상은 어떤 관계입니까? 세상이 빛의 혜택을 받는 관계입니다. 빛이 존재하여 세상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보여지게 되고 빛이 있음으로 인해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푸른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빛이 없어도 어둠 속에서도 보실 수 있는 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빛을 만들고 난 다음에 이것저것을 보시기 시작합니다.
 
 
과학자들은 빛을 입자라고 하기도 하고 파동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파동이든 입자이든지 빛은 세상에게 유익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을 때 물론 그 안에 무척 신비한 어떤 복합적인 뜻이 담겨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저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존재들에게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세상에 있어, 세상에 존재하여 유익한,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라!는 멧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이 그렇습니다. 초가 타지요! 그러면 촛농이 주르룩 흘러 내립니다. 그러면서 심지가 타면서 점점 키가 줄어들고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주변을 환히 밝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키가 적어질 수 없을만큼 작아졌을 때 그것을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내 버립니다. 초가 타면서 결코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초가 불을 밝히면서 일을 하면서 키가 더 커진다든지 심지가 더 굵어진다든지 초 자체가 더 아름다워진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 아닌 존재에 환함을 주다가 결국 자신의 존재는 퇴물이 되고 난 다음에 버려집니다. 그렇게 버려진다고 초는 단 한마디도 불평을 하거나 일인시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주변에는 촛불과 그 존재성이 비슷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연필이 있습니다. 연필은 제 몸이 깍여지면서 제 몸의 중심이 연필심인데 심이 쓰여지면서 닳아지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면서 제 살은 떨어져 나가고 제 키는 줄어들면서 자신이 아닌 이를 위해 봉사하다가 몽당연필이 되고 마침내 버려집니다. 특별한 향나무 연필은 자신이 깍여져 나가면서 짙은 향을 뿜어냅니다.
 
 
지우개가 있습니다. 지우개는 누군가 잘못한 것을 온 몸으로 온 몸으로 뒹굴면서 비비면서 자신의 살점이 뚝뚝 떼어져 나가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없애줍니다. 지우개가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적어졌을 때 역시 버려지게 됩니다. 비누가 있습니다. 비누는 제 몸무게와 체중을 줄여나가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깨끗케 해 주고 때를 씻어주고 얼룩을 지워주고 없애줍니다. 그 일들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감은 점점 적어지고 마침내 분해되고 해체되어집니다.
연탄도 그렇습니다. 연탄에 불이 붙여졌을 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고 마침내 하얗게 재가 되었을 때는 눈비탈에 던져지고 밟혀지고 부숴져서 산산히 조각이 나서 눈길을 걷는 이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합니다.
 
 
연필이나 지우개나 비누나 연탄이나 자신이 그렇게 유익한 일을 하면서 결코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어!!”, “내가 이렇게 희생하면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있어!”, “내가 말이야 사람들의 잘못을 닦아주고 있고 깨끗하게 해 주고 있어!” 자기 공치사를 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 놓고 자기 공적을 주장하거나 자기 존재성을 광고홍보하거나 프로파간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쓰여지다가 버려졌을 때 “왜 날 쓰고 버리는거야! 왜 날 희생양으로 삼는거야” 하고 단 한마디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없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걸레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이 더러워지고 찢겨지고 부숴지고 멍들어가서 자신의 몸이 닿는 곳마다 깨끗함이 남는데 마침내 더 더러질 수 없을 때 아궁이로 들어가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사야 53 장 7 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촛불이라 하시고 너희는 걸레라 하시고 너희는 비누라 하시고 너희는 연탄이라 하시고 너희는 지우개라 하셔도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전혀 빛과 상관없는 삶을 사신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이 빛이 되셔서 십자가로 자신을 소멸하시고 자신 아닌 이들을 위해 빛을 밝히셨습니다. 자신을 따른 제자들과 자신을 따라온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톱만큼도 눈꼽만큼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온전히 타자를 위한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향나무연필이 되시고 걸레가 되시고 연탄이 되시고 지우개가 되시고 비누가 되셔서 세상의 죄를 없이하셨고 세상에 온기를 더하여 주셨고 세상에 향기를 내게 하셨고 세상을 환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닦아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만일 자신을 배불리 하고 자신을 살찌우고 자신을 더 키우고 성장시키고 부흥시켜 나가는 것이 목적일 때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자신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유익을 주는 필요한 존재이고 세상에 소용이 되는 존재여야 합니다. 교회가 만일 자신만을 위해 존재할 때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남신도회도 그렇습니다. 남신도회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지체인 남신도회가 만일 서로 쎄쎄쎄 친교만 하고 감투를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은 주님께 소용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것은 존립할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비판이라기 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비난과 욕입니다. 저들은 기독교를 엄청나게 두둘겨 팹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고 목사를 먹사라 부르거나 교인들 피빨아먹고 산다면서 뱀파이어라고 부르고 집사를 잡사로 부르고 평신도를 병신도라 부르고 성경을 똥경이라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너무 한다 싶기도 하지만 바로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욕하고 폄하하는 저들을 향해서 무시하거나 같이 욕하거나 변증하거나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에 예언자 씨리즈란 책을 샀는데 “칼 막스”가 예언자 씨리즈에 들어 있었습니다. 왜 저 유물론자가 그리고 무신론자가 특별히 기독교를 비판하는데 앞장 섰던 그가 예언자 씨리즈에 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씨리즈를 펴낸 책의 의도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칼 막스가 살았던 때는 참으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양극화가 심각할 때 였습니다. 당시 참으로 민중들이 고통당하던 때인데 기독교와 교회는 그것을 외면하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오히려 종교의 교의를 이용하여 피폐한 민중들의 고혈을 짜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티기독교가 되셔서 칼 막스를 예언자로 삼으셔서 당시 현상의 기독교를 질타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제자교회 총회에 갔을 때 신학자 하비콕스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해서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을 때까지는 기독교는 예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황제 이후로 기독교는 아주 망쳐버렸다! 제일 처음에는 그렇게도 박해받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어 로마제국을 먹어버린 것과 같았는데 실제로는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삼켜 버린 꼴이 되었다! 나중에 기독교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로마제국과 같이 기독교에도 계급을 도입하여 부제 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의 제도를 만들었고 훗날에는 십자군이라는 미명아래 헤아릴 수 없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죽이고 그러지 않았느냐? 교리가 다르다고 화형에 처해 죽이고!! 이는 예수의 사랑과 정신은 간데없고 무력으로 모든 것은 제압하는 실질적인 제국주의가 되지 않았나? 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의 탈을 뒤집어 쓴 이리라 하였는데 역사적 기독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가 되고 말았다! 하였습니다. 그의 통찰은 옳습니다.
 
 
기독교가 130 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기독교는 성경의 초대교회와도 같았습니다. 순수했고 영적이었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목숨이 단 한 개뿐인 것을 아쉬어 하면서 기쁨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조선 땅의 기독교는 불일듯 일어났고 당시 민줄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엄청나게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있다해도 예수님성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계셔야 할 예수님이 없고 대신 성공주의 제국주의 물질주의 바리새주의 세속주의 권력지상주의 등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개독교라 비판하는 세력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쳐주는 예언자라 생각하고 찌르는 가시와 같은 은혜로 감사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이 없거나 예수님성이 희박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우리가 저들을 공격한다면 더욱 안티기독교로 갈 것이고 저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거나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립니다. 우리가 걸레가 되고 지우개가 되고 연탄이 되어 진정 타자를 위해 존재하다가 사라질 때 저들은 비로소 욕을 멈추고 욕을 한 자신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지금 맛을 잃은 소금인데 사람들이 밟는다고 그 밟는 저들을 비판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소금성을 잃은 우리를 탓하고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남신도회 대전연합회가 존재하고 있어서 대전에 있는 기독교와 기장교회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전지역의 기장교회들과 기독교가 기도하고 사역하고 활동하고 존재하고 있어서 대전이 이름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큰 밭이 되고 예수 그리스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가 되고 예수님의 정신이 춤추고 노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신도회 대전엽합회가 존재하고 있어서 대전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향나무연필성도님, 비누집사님, 촛불안수집사님, 지우개 권사님, 걸레장로님, 연탄목사님들로 가득하게 되어 덩달아 대전지역의 시민들이 대전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5 장 15 절과 16 절의 말씀이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진실로 남신도회 대전연합회는 예수님 말씀하신 그대고 등경위의 등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재하고 있어 선한 영향력을 30 배 60 배 100 배 끼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는 밀가루 서말 속에 심겨진 누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바라보실 때에 참으로 반갑고 미더운 존재가 되시기를 그래서 하나님께 통째로 영광을 돌리는 연합회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따른 저희가 잘못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 먹고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도 저희의 잘못 때문입니다. 저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희 안에 있는 온갖 죄를 씻어내고 저희 안에 주님을 중심으로 모셔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신도회 대전연합회를 복내려 주옵시고 이 연합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등경 위의 등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를 통하여 밀가루 서말 속에 심겨진 누룩이 되게 하셔서 이 지역 대전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부풀어 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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