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년 4 월 7 일(주일) 오후 4 시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 주관
4.3평화주일 / 제주 CBS 방송
성경본문 : 창세기 4장 8절 - 10절, 히브리서 9장 11절 - 12절
제 목 : 가인이 흘리게 한 피, 예수님이 흘리신 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총이 1948년에 벌어진 제주4.3의 무참한 비극으로 인해 피 흘리고 죽어간 모든 영령들과 그 유가족들, 65 년이 지났지만 역사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아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없었기에 가슴 아파해온 제주사람들, 이 땅에 죽고 죽이는 살육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래서 정의 평화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오늘 이 4,3 예배에 참예하신 기장 제주노회 석건 노회장님을 비롯한 노회 임원님들과 노회원님들, 이 행사를 주관하신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와 송영섭 위원장님, 제주노회에 속한 지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님들 위에 특별히 이 예배를 위해 귀한 성소를 제공하신 서귀포중앙교회와 당회, 그리고 유성암 담임목사님 위에 오늘 이 예배를 방송하는 복음방송 제주 CBS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창세기 4 장에는 가인과 아벨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아담의 아내 하와가 가인을 낳았고 바로 뒤 이어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친 형제입니다. 인류가 생긴 지 처음으로 가인에게 자기 친동생이 생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형제나 자매가 없었는데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가인은 동생 아벨이 드린 제물은 받으시고 자신이 드린 제물을 받으시지 않자 가인이 어떤 마음을 품었느냐? 창세기 4 장 5 절에 이에 대한 가인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이번에 드린 제물을 여호와께서 받지 않으셨지만 다음에는 받으시도록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동생이 어떤 준비를 해서 제물을 드렸기에 동생이 바친 제물은 받으셨을까? 동생이 제물을 드릴 때 드리는 방법을 면밀히 연구하여 다음에 자신이 제물을 드릴 기회가 생겼을 때 참조하여 준비했다면 여호와께서는 가인이 연구개발하여 드리는 제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아벨과 가인을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 속에서는 분노와 미움이 솟구쳤습니다. 이 미움이 문제입니다. 이 미움이 마음 속에 불타오르게 되면 가인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 미움이 영향력이 크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들어가면 수백만명 수천만명을 죽일수도 있습니다. 히틀러 속에 이 미움이 들어가자 유대인만 해도 600 만명을 죽였고 2 차 세계 대전 전체로 볼 때는 일억 수천만명을 죽였습니다. 공산주의자 스탈린 속에 미움이 들어가자 스탈린은 자신의 나라 소련에서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소련 내무 인민위원회 위원 에조프가 스탈린에게 바친 사형자 명단은 책으로 383권으로, 책에 기록된 사형자 수는 모두 4,500만 명이 넘어 볼가강을 피로 넘쳐 흐르게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 아내와 딸과 함께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슬’은 지난 2월, 세계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여 한국 영화사에 놀라운 금자탑을 세운 영화입니다. 지금 독립영화로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제주에서만 이미 3만여명에 육박하는 관객이 관람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러분들이 누구보다 잘 아시다시피 제주4.3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날 영화를 관람한 우리 가족은, 영화가 다 끝난 후에도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영화에서 호소하느니라!“ 그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 장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토벌군 대장인 듯한 사내가 동굴을 내려다 보면서 “빨갱이 새끼들은 남김없이 다 쥑이뿌려야 해!” 그 한마디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동굴 안에 들어간 이들은 자신들이 우선 피하긴 피했는데 무엇 때문에 도망왔는지 대화를 들어보면 지극히 평범한 주민들이었는데 단지 소개령에 의해 도망온 것 뿐인데 그런데 거기서 빨갱이로 몰려 거지반 다 죽었습니다. 진압하러 온 군인들도 폭도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명령을 받아 죽고 죽이고 하였습니다.
저는 또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다른 경험을 전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인공 때”라고 하셨는데 6.25 전쟁을 말합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위 좌익들은 무참하게 지주들을 “부르조아 간나새끼”라고 하며 대창으로 무참하게 찔러 죽였습니다. 할아버지도 기독교인이라고 잡았는데 농삿일로 거칠어진 손을 보더니 이 사람은 프로레타리아라고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당시 좌익과 우익이 서로 죽고 죽였던 그래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그 누구도 무서워서 건들지 못할 때 그들을 좌익과 우익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로 인함인지 할아버지는 당시 췌장염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미움이 들어갔을 때 그들은 가인이 되었습니다.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여 그 미움과 증오로 같은 친동생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 돌로 때려서 죽이고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강간하여 죽이고 총으로 쏴서 죽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시 제주 성인 남자의 3 분의 1 이 무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지슬”이라는 영화에 보면 그저 해안선 5 KM 밖에 있으면 무조건 소개해라! 그러지 않으면 죽인다니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자식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동굴로 피하였을 뿐입니다. 무슨 좌익이념을 가지고 있었거나 활동을 하여서도 아닙니다.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니 그저 생존본능으로 피하였을 뿐입니다. 동굴에서 나오면 살려준다 하였는데 나가자마자 쏘아서 죽였습니다. 그 증언이 한겨레 신문에 나와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영화를 보는데 어느 섬이 있었는데 인민군이 들어오면 섬주민들은 나와서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고 국군이 들어오면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당시 섬 주민들에게는 무슨 이념이나 그런 것보다는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근현대사는 참으로 지푸라기보다도 못한 이념 때문에 그것도 우리가 만든 이념도 아니고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만들어 놓은 이념 때문에 그 꼭두각시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그렇게 해서 수백만명이 죽고 죽이고 수천만명이 이산가족이 되는 참으로 통곡할 수밖에 없는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인의 시대에 형제가 죽는 것을 보고 자식중 하나가 죽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은 이후에 철저한 반성을 하고 다시는 형제를 피흘리게 하는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어떤 각성의 깨우침이 있어 이담에는 그것을 교훈삼아 형제자매의 우애가 더 두터워졌습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4 장 23 절과 24 절에 보겠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 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로다!” 이 말씀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라멕은 자신을 해치려 한 소년과 사람을 죽였고 만일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칠십 칠배의 보복을 가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가인도 피를 흘렸는데 가인의 후예인 라멕은 한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다수를 죽였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77 배로 복수를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가인과 아벨이 아니라 말하자면 일방적으로 죽고 죽임을 당하는 관계가 아니라 가인의 후예들은 가인과 또 다른 가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고 더 크게 보복을 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가인의 피 이후에 일곱 배로도 복수하고 그러면 다시금 77 배로도 복수를 하는 살해와 보복의 악순환이 나타납니다. 가인과 아벨의 역사가 아니라 악한 가인과 더 악한 가인과의 싸움과 죽음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보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제주4.3은 1948년에 일어났습니다. 제주도민 3 만명이 거의 대부분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제주도민들을 죽였을 때 서북청년단이 그 중심에 있었고 그들 중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우리 우리 기독교인들의 지난 모습이 정말 그러하다면 참으로 참회해야 할 것입니다. 제주학살의 소식은 당시 북쪽의 통치자인 김일성에게도 전달되어졌고 그는 1950년 전쟁을 일으켜 라멕과 같이 되어 수십 배의 보복을 하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남침을 하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6.25 때 죽은 인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유엔군과 국군도 당시 북한에 돌 하나 위에 돌 하나가 놓이지 못할 만큼 폭격을 하고 수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거의 민간인과 군인의 희생자수가 약 250 만명이 넘었는데 이는 제주도에서 죽은 3 만명의 라멕이 죽이겠다고 꼭 77 배가 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이념이란 본시 사람을 잘 살게 하는데 그 본 뜻이 있는데 이 땅에 두 이념이 들어와 사람들 속에 미움과 솟구치는 증오를 심어 이 땅의 사람들이 가인의 후예가 되고 라멕의 후예들이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벌였는데 정확하게 서로 형이 동생을 죽이고 동생이 형을 죽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 땅 한반도는 가인의 후예들이 흘리게 한 죄악의 피로 강산과 바다를 뒤덮었습니다.
오늘 신약성경에 나오는 ‘피’는 가인이 흘리게 하는 피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 장 12 절을 보겠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오직 자기의 피로” 자기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관념이 있습니다. 죄는 오직 피로 속한다는 사상입니다. 누군가 죄를 저질렀을 때는 죄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인간은 피로서 속죄를 해야 합니다. 만일 피로 속죄하게 되면 인간은 죽음 밖에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하여 양을 대신 바치게 하시고 양이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피흘려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속하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악을 대신 뒤집어 쓰시고 어린양이 되시어 피흘려 죽으심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속하여 주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가심으로서 자신이 아닌 죄악의 인간을 대신 살리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이 흘리게 한 피와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가인은 미움과 증오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고 죽였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 살리셨습니다.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은 점점 죄악을 더하여 남의 피를 강물과 같이 바다와 같이 흘렸지만 예수님은 모든 죄악을 덮어주는 자신의 사랑의 피로 온 인류의 죄악을 씻으면서 흘렀습니다. 가인은 점점 더 피를 흘리게 하였지만 예수님은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그 사랑으로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이 흘리게 하는 피는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오게 하여 일곱 배 77 배 천배 만배 보복을 하게 하였지만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그 피를 바라보게 한 이들에게 은혜와 속죄의 눈물이 흐르게 합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죄사함이 있게 하고 사랑과 평강이 넘쳐 흐르게 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가인의 후예들이 저질러 놓은 피와 죽음과 증오와 보복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이제 제주4.3 65 돌이 되는 기념일을 보내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시면서 흘리신 피가 주는 영적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금 이 땅에 제주도에 4.3 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2 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과 독일을 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얻습니다. 일본은 2 차 세계대전 중에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이고 피를 흘리게 하였지만 아직도 그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다시금 재무장을 하려고 하고 평화헌법 9 조를 없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반면에 전후 서독은 히틀러와 나찌 통치로 인해 피해입은 주변국가에 철저히 배상을 하고 회개를 하고 속죄하는 행동을 행실로서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히틀러의 망령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적 문화적인 온갖 장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어린아이들부터 평화교육을 철저히 시켜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였으며 초등학교에서부터 모든 철학 가치관 헌법 법률 속에 “폭력”과 “살인”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을 없앴고 제 2 의 히틀러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가인과 가인의 후예들이 설치지 못하도록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후 독일은 유럽의 지도자적인 지위로 올라갔고 많은 나라들이 독일을 모델로 하여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나온 역사로부터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4.3을 겪은 우리들은 다시금 역사 속에 그와 같은 악이 나타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우리들이 전후서독과 같이 철저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4.3 을 국가추념일로 만드는 일, 4.3 의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는 일, 그 어느 쪽에서 피해를 입었건 4.3의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국가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과 이를 위한 국가배상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하는 일, 제주가 평화의 역사적 교훈을 가르치고 평화의 문화를 형성시키며 평화의 섬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 등등입니다.
둘째,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예수님 처럼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는 일입니다. 사실상 우리 안에는 아벨도 있고 가인도 있습니다. 상처만 입은 아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상처를 준 가인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아벨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의 역사도 동시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죄인으로서 가인으로서 가해자도 되고 우리가 아벨로서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이고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우리는 상처입은 공격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입으셨으면서도 당신은 그 상처로 인해 상처입은 공격자가 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의 상처를 붕대로 하여 우리의 상처를 감싸 주신 예수님은 상처입은 치유자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이 땅 제주에서 “내가 입은 상처를 더 큰 상처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처를 입었으므로 너 역시 그 만큼의 상처를 입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눈물이면 네 눈에는 피눈물이다”는 보복과 악순환의 가치관을 가질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자신의 십자가에서 당한 상처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셨듯이 우리의 상처를 저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일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은총의 하나님께 빌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나를 희생시켜 남을 살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역사가 뒤덮어 가도록 참으로 눈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 땅에 남의 피를 흘리게 하고 남을 고통스럽게 하고 남을 죽게 하는 그런 야만의 역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피를 흘리고 자기를 희생하고 자신을 주어 남을 살리게 하는 예수님의 보혈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굳게 자리 잡도록 바로 그런 복음의 역사가 세속적인 야만의 역사를 뒤덮어 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미션이라는 영화를 볼 때 참으로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선교지를 점령하여 자기네 땅으로 삼으려는 포르투칼 군인들이 총포를 쏘고 오는데 신부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집니다. 로드리고 신부는 과거에 노예상이었는데 무력에는 무력으로 하면서 과라니족을 조직하여 저들과 싸우다가 죽습니다. 반면에 가브리엘 신부는 “신앙의 힘은 사랑”이라며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하다가는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많은 원주민들이 가브리엘 신부의 십자가 행진을 뒤따르다 죽습니다. 마지막에는 추기경이 그런 말을 남깁니다. “그리하여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는 사람, 나를 죽여 남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 둘 사이에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하든지 나를 희생시키고 나를 죽여 이웃을 남을 살리는 사람에 속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요 십자가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 때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차츰 더 많아 질 때 더 이상 이 땅 제주에 학살과 보복의 악순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흘리신 피의 정신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이 땅은 거룩한 땅이 될 것이고 평화의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한 많은 제주의 땅에 예수님의 고결하신 보혈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더욱 몸으로 기도하고 행동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제주 4.3 때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과 유족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주 성령께서 이 땅을 위로하여 주옵시고 다시는 이념을 빙자하여 폭력과 살상이 없게 하옵시고 이 땅이 다시는 피가 흘려지지 않도록 다시는 죽고 죽이고 가해하고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이 땅이 참으로 정의의 땅 평화의 땅 생명의 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 제주도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 입은 상처를 붕대로 삼아 이웃의 상처를 감싸주는 상처입은 치유자의 거룩한 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