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 예수원교회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 예수원교회

관리자 2013-04-14 (일) 16:51 13년전 2849  
2013 년 4 월 14 일(주일) 오전 11 시 예수원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6 장 33 절
제 목 :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값주고 피로 사신 예수원교회 위에와 주를 위해 찬양과 영광을 돌린 성가대 위에 모든 성도님들 위에 주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시는 김성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번 예수원교회가 창립을 할 때 와서 축하해 드리지 못한 것을 널리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오면서 김성 목사님께서 무슨 뜻으로 예수원교회라 하였을까? 예수님이 넘버원이라는 뜻일까? 예수님께 모든 우선권이 있으시고 예수님께서 제일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맨 앞에서 앞장 서 가시고 우리 예수원교회는 그 뒤를 따라간다는 의미를 담으셨을까? 물론 그런 뜻을 담기도 하셨겠지만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는 뜻을 예수원으로 담으신 것으로 압니다. 제가 나름대로 생각한 뜻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떤 뜻으로 한다 해도 같은 의미일 것 같습니다. 예수원교회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으니 유명무실하지 않게 그 이름에 담긴 정체성 그대로 예수님이 제일로 으뜸으로 모시는 교회,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 마태복음 6 장 33 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하신 설교 중 일부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 말씀의 뜻을 다 파악하려면 너무 크니까 저는 33 절 중에 “그의 의를 구하라”는 이 중반절을 선택하고 여기에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는 원래 헬라어 원어로는 “디카이오순네”입니다. 이는 무슨 우리가 말하는 “정의”, “하나님의 정의”가 아닙니다. <디카이오순네>는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하라는 뜻입니다. 옳게 여기시는 것이란 그것을 나와 관련시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는 것, 하나님께서 내가 행하는 것을 보시고 웃으시고 좋아하시고 흡족하게 여기시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 아멘하시는 것 혹은 박수를 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를 구하라!”는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라!” 그렇게 바꾸어도 되고 달리 말하자면 “그가 원하시는 것을 구하라!” “그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구하라!” 이렇게 바꾸어도 됩니다. 그가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도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가 고백하듯이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0 장 28 절 하반절입니다. “..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셨는데 하나님께서 다른 무엇을 주고 산 것이 아닌 자기 피로 사셨다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이 땅 에 역사적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피로”라 하였을 때 언제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신 일이 있습니까? 물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자기 피를 흘리신 것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도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만드셨는데 교회만은 자신의 피로 사셨습니다. 하나님 편으로 본다면 말씀 한마디로 만드신 온 우주 만물이 중요하겠습니까? 아니면 자기 피를 주고 자기 생명을 주고 사신 교회가 중요하겠습니까? 값주고 피로 사신 교회는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내려다 보실 때 무엇을 가장 유심히 집중하여 보시겠습니까? 값주고 피로 사신 교회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값주고 피로 사신 교회를 가장 눈여겨 보시는데 교회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예수원교회는 교회가 지녀야할 핵심을 이름에다 바로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6 장 33 절의 말씀은 예수원교회가 핵심모또로 간직하면 참 좋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원교회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거나 가정생활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우리 예수원교회에 다니시는 나에게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신앙과 생활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면서 부단히 그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시편 37 편은 다윗의 시라 되어 있습니다. 4 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 장 33 절의 내용과 구조가 정확하게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 37 편 4 절 전반절의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마태복음 6 장 33 절의 ”그의 의를 구하라!“와 같고 마태복음 6 장 33 절 후반절의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시편 37 편 4 절의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와 같습니다. 말씀의 표현은 달라도 그 뜻하는 바는 정확하게 같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는 언제나 하늘을 의식하며 살았고 그의 관심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내 인생을 이 땅에서 잘살게 하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여호와 하나님께 달렸다! 내 인생 팔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고 믿었고 그 믿은 바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한번만이 아니라 또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 자꾸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할수록 여호와께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고 자신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기쁘게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심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윗이 왜 시편을 지어 바쳤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150 편이나 되는 시편을 바친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참 아름다운 노래시편을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즐거우셨겠습니까? 시편만 바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성전도 하나님께 지어 바치려 했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자 자신의 전 재산을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내 놓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계속해서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추구하였더니 무엇을 체험했느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싸움에 나갈 때마다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약 목동의 비천한 지위에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는 범사에 개입하셔서 잘되게 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고 또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쓰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은 자신의 영적인 체험을 나누었는데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여기서 “또”란 영어로는 again 인데 “자꾸 자꾸”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만이 아닌 자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라!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이 내 소원을 다 들어 주시더라! 할렐루야! 그 말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가 내 소원을 들어주시고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인가? 이것을 사람과 사람의 관계 특별히 하나님 아버지이니까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한 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아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널리 혜량하시기를 바랍니다. 제 아들이 지금 학교에 다니는데, 공부는 별로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끓입니다. 언젠가 라면을 끓인 후에 “아빠 아빠, 라면 한 숟갈 하세요. 맛이 장난이 아니에요!!” 아이가 라면 끓여놓고, 저도 먼저 먹고 싶었을 텐데 그래도 아빠라고 먼저 드시라고 숟가락을 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 때 맛본 라면은 제가 먹어본 음식 중에서 최고의 그 무엇도 필적할 만 것이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었습니다. 만일 아이가 라면을 끓여서 아빠인 저에게 한 젓가락 해보시라는 말도 없이 저 혼자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돼지 같은 자식, 혼자 잘도 먹는 구나, 어른한테 드셔 보라는 말도 없이!!” 하면서 무척 섭섭했을 것입니다. 만일 아이가 한참 먹는 중간에 그제야 생각나서 “아빠, 먹어보니까 라면이 참 맛있는데요 이제라도 한 숟갈 하실래요?”하면 “새끼가 지가 먼저 먹다가 이제 와서 먹으라고 하는구나!! 그래도 애비 생각은 나는 모양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래, 너나 많이 먹어라!!” 말 할 것입니다. 그런데 라면을 끓이자마자 아빠 방으로 달려와서 숟가락 한 개 아빠 손에 쥐어 주면서 아빠, 라면이 기가 막혀요! 하면서 아빠를 제1순위로 하면 아빠는 애비란 것을 느끼며 기분이 말도 못하게 좋은 것입니다. 라면 맛의 그 구수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아이는 게임기를 사달라고 했고 10만원이 넘는 게임기를 기쁨으로 사주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는데 그까짓 게임기가 뭐 대수이겠습니까? 삼양라면 1개 값이 1,000원. 게임기가 100,000원, 정확히 100배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면 경제적 손익계산은 그 즉시 무력화됩니다. 아들이 아빠를 즐겁게 해 주면 100 배 1000 배 되는 것도 아들에게 기꺼이 주게 됩니다. 라면을 잘 끓이는 그 아이가 지금 신학대학원에 다닙니다. 대학원 신입생으로 들어갔을 때 저에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빠가 옛날 자기가 고등학교 3 학년 때 자기에게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가지 않을래? 사흘의 시간을 줄 터이니 결정을 해라! 그때 아빠 제가 하루 만에 아빠 말씀대로 한신대 신학과를 가겠다고 했잖아요! 그때 아빠가 대학에 들어가면 차를 한 대 사 준다고 했는데요!” 기억을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때 그 기억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저는 그 당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중고차 한 대를 사 주었습니다. 당시 아이는 한동대를 가기를 원했고 거기를 갈 실력이 충분히 되었지만 아빠의 원대로 간 것입니다. 차를 사 주자 아이는 그 차를 끌고 와서 아빠! 제가 멋있는 곳을 알고 있어요 하면서 북악 스카이웨이로 가서 어느 기가 막힌 한식 레스토랑에서 차를 사 주었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아서 그때 얘야! 내가 앞으로 세 번 기름을 넣어주마! 했는데 생각해 보니 기름을 열 번도 그냥 넣어준 것 같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제가 집에 가면 집에 있을 때는 “아빠 사랑해요!” 하면서 저를 꼭 안아줍니다. 그러면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그 아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집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책 다락방을 보면 어떤 아빠가 쓴 이야기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들이 자전거를 사달라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자전거를 파는 전문점에 갔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자전거는 너무 전문자전거이고 아빠는 보통 아이들이 타는 것을 사주려 하였습니다. 아들은 막무가내로 그 자전거만 고집하면서 웁니다. 자식하고 자전거 문제로 다툼을 하였고 그 이후에 며칠 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침묵이 오고갔습니다. 아들이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아빠! 아빠가 사주려고 하는 자전거를 살께요! 아버지는 엄청나게 기뻤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자전거를 다 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경험을 소재로 하여 하늘 아버지와 우리들의 관계도 보다 정확하게는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접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따를 때 하늘 아버지도 아버지인 자신의 맘과 같이 세상 모든 자전거를 사 주시고 싶으실 것이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백세에 난 아들을 바치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아들이지만 세상에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하나님의 명령 앞에 눈물이 앞을 가리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생각을 하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살만큼 살았고 이삭은 이제 앞길이 창창하니 제 생명을 대신 데려가면 안되겠습니까? 하나님! 이삭 대신에 살진 황소 백 마리를 번제로 대신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이삭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이든지 제 생명을 포함해서라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삭만은 안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정확하게 나에게 명령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내가 나보다도 더 소중히 여긴 이삭을 바치라는 것 아닌가?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삭 대신 바칠 제물을 여호와 이레 내려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리려 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창세기 22 장 15 절에서 18 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순종하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리시는데 허벌나게 많은 복을 주시는데 아브라함 자신에게 복이요 아브라함의 가문의 복이요 아브라함의 가문 때문에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실로 엄청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창세기의 이 말씀은 정확하게 마태복음 6 장 33 절의 말씀(마육삼삼)이나 시편 37 편 4 절 말씀(시삼칠사)의 말씀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마육삼삼의 원리나 시삼칠사의 원리는 영적인 원리로서 그 의미는 정확하게 동일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기 때문에 마태복음과 같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기 때문에 시편의 다윗과 같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때문에 우리 먼저 의를 구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면 하나님께서 복을 허벌나게 내려 주시기 때문에 바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상히 여기시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가만있지 못하시고 상상할 수 없는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 세상에도 뭔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담아 놓으셨고 영적인 면에서도 어떤 분명하게 생생하게 존재하는 어떤 원리가 있습니다. 저는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하면 차를 타고 가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있는 야구장에서 운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천원을 넣으면 야구공이 열 네 개가 나옵니다. 제일 처음에는 헛스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배팅을 하면서 요령이 생겼습니다. 욕심을 가지고 홈런을 치려고 하지 말고 공이 내게 올 때 정확하게 수평으로 공을 맞추려 하면서 치면 열 네 개의 볼 중에 열 세 개는 칠 수 있습니다. 우연에 의해서 공이 맞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와 법칙이 있고 그것에 맞추어 나가면 공이 딱 소리가 나면서 멀리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뭔가 감추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질서와 법칙이 있어서 그것에 맞추어 나가면 무슨 효과도 있고 성과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적인 원리이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인데 그 원리애 맞추어 나가면 뭔가 향상되어가고 발전되어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기독교방송을 들으려면 주파수를 98.1 로 맞추어야 합니다. 정확하게 다이얼을 맞추지 않으면 찌찌직 찌찌직 소리만 납니다. 제대로 다이얼을 맞출 때 맑은소리로 찬양이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육삼삼의 원리>나 <시삼칠사의 원리>는 성경에서도 수많은 믿음의 인물들이 체험했고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도 체험하고 계시고 저와 제 아버지도 익히 체험하고 계시고 오늘날 교회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믿음의 식구들도 그런 고백과 간증과 체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예수원교회 성도님들도 저보다도 더 많이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도 어떤 믿음의 원리, 영적인 원리가 분명 존재합니다. 특별히 예수원교회는 마육삼삼이나 시삼칠사의 영적인 원리를 굳게 붙잡고 그 어느 순간에서도 그 원리를 부여잡고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원교회이니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시고 예수원교회가 되기 위하여 땀을 흘리시고 거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여 에너지를 소비하시고 예수님이 바라시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눈물로 씨앗을 뿌리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시고 예수님이 으뜸이 되는 교회를 위하여 오직 영적인 원리를 굳게 붙잡고 결코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영국에서 1 년 동안 유학을 하였습니다. 영국 에딘버러에 가보니 엄청나게 큰 교회가 있어서 주일날 그 교회에 가보아야 하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워낙 교회가 컸기 때문에 지도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 교회당만을 바라보고 갔습니다. 나중에 가서 보니 그곳은 교회당이 아니었고 술집이었습니다. 원래는 교회당이었는데 교인수가 줄어들고 유지비를 감당할 길 없어 술집에 팔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당이 많았습니다. 부동산에 팔리고 술집에 팔리고 결국 두 교회가 합병하여 한 교회가 되고 세 교회가 합병하여 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유학을 할 때 세인트 안드류스 앤 세인트 죠지스의 쳐치였는데 다시 말하면 세인트 안드류스 교회와 세인트 죠지스 교회가 합병하여 하나의 교회가 되었고 얼마 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총회에 다녀 왔는데 이제는 두 교회가 합병한 것이 아니라 세 교회가 합병하여 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어느 집사님에게서 그렇게 된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어느 제직회에서 한 사람이 한 달에 다섯 번 주일이 있을 때는 마지막 주는 예배를 드리지 말자고 건의를 해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고 그것에 재미를 들어 한 달에 네 주가 있는 주와 한 달에 다섯 주가 있는 주가 있는데 격 주로 한 번만 예배를 드리자고 건의를 해서 그것이 통과되다 보니까 성도들이 예배에 나오지 않게 되고 결국 헌금도 줄어들고 교회당에 더 이상이 성도들이 나오지 않아 유지비를 감당할 길 없고 빚만 늘어가자 두 교회가 한 교회로 세 교회가 한 교회로 합병이 되어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히브리서 10 장 25 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이는 것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무리들이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하였고 말씀이 더하여지자 무리들이 더욱 흥왕하여 졌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며 더욱 기도에 전무하였고 더욱 열심히 모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 주었고 유무상통하였으며 결국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흥왕하고 번성하여 나중에는 유럽으로 아시아로 뻗어나가 세계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안타까운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데마인데 디모데후서 4 장 10 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사도 바울을 따랐더라면 그는 성경에 그 행적이 기록이 되는 믿음의 자취를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사도 바울을 버리는 길을 택하여 그 즉시 그 행적이 없어지게 됩니다. 구약에 보면 시어미 나오미를 따랐던 룻은 성경에 기록이 되고 나중에는 예수님의 계보에도 포함되지만 오르바는 어느 경계선에서 상식선의 설득에 넘어가 결국 거기서 그의 행적은 끝나게 됩니다. 저는 예수원교회가 구약성경의 오르바나 신약성경의 데마와 같이 세상을 사랑하여 뒤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수원교회가 얕은 개울가와 같은 세상의 원리에 따라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과 같이 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모이고 모이면 열심히 기도하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며 성도들은 모이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현장에서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주신 보배와 같은 말씀으로 살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그들이 예수께 나아오게 되고 결국 모이는 수가 점점 흥왕하고 번성하여 나중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원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빅뱅이 일어나는 부흥하는 길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모이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에 전무하고 어떻게 하면 더욱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까 부단히 찾고 기도하면서 모든 일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세상적인 방법을 찾거나 세상이 바라는 가치관과 상식수준의 얕은 물가에서 헤매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예수원교회를 사랑하시어 아브라함과 같이 시험을 하시고 연단을 받게 하시고 결국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고 금그릇과 같이 귀하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강이 주께서 단련하신 후에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 교회의 미래는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 같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원교회를 사랑하시어 이미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이레의 은총을 다 차지하시고 맛보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셔서 섭리 가운데 예수원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듯 이 교회를 시험하시고 진정 예수원교회를 이루려는지를 보시고 연단하신 후에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고 금그릇과 같이 귀하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원교회가 그 이름 그대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원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더욱 기도하게 하시고 더욱 모이기를 힘쓰게 하시고 더욱 서로 사랑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한량없는 은혜를 나리시어 이 예수원교회를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