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년 4 월 24 일(수) 오후 7 시 광주노회 수요연합예배 광주가나안교회
성경본문 : 누가복음 19 장 41 절 - 44 절
제 목 :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하여 알았더라면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광주노회 제 115 회 정기회에 나아오신 존경하는 윤홍성 노회장님과 모든 노회 임원님들과 노회원님들 위에, 오늘 귀한 찬양을 올린 가나안교회 성가대 위에, 성 노회를 위해 귀한 성소를 제공하신 광주 가나안교회와 설영현 담임목사님 위에 가나안교회를 개척하신 배야섭 증경총회장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부족한 사람을 교단 총회로 보내 총무로서 사역하도록 밀어주시고 두 번 째로 재임하여 일하도록 힘을 실어 주신 노회원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직전 노회장 박광현 목사님께서 설교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총회 주제인 정의 평화 생명과 관련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누가복음 19 장 41 절에서 42 절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와 유대 선교를 마치시고 예루살렘 가까이 오시어 성을 바라보고 우셨습니다. 왜 우셨을까요? 예수님의 눈물은 매우 복합적인 설움이 합해져서 쏟아지는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심정으로 들어가서 왜 우셨을까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실 때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예루살렘의 군중들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외칠 것을 생각하니 결국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못박혀 피흘려 죽을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셨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호산나! 라고 찬양하던 무리였는데!
우시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는데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파를 나누어 싸움을 하고 서로 죽이려 하고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왜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눈물이 앞을 가리웠을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참된 길을 가지 않고 성전에서 장사나 하며 자신의 배나 불리려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여리고 언덕에서 강도당하여 쓰러져 있는 민중들의 고통은 외면하고 지나가는 개독교같은 유대교의 모습을 보시고 통곡의 성을 터트리셨을 것입니다.
주님을 우시게 하셨던 직접적인 것은 오늘 본문 43절에서 44절에 있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예수님께서 그날로부터 40년 후에 되어질 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은 주후 70년 로마제국에 의해 그야말로 돌 하나위에 돌 하나가 놓여지지 못한 채 멸망하게 됩니다. 로마 티투스 장군은 제14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격심한 공격을 퍼붓습니다. 성전도 산산조각이 나고 성벽도 다 깨지고 도시는 다 불타버렸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은 포위공격되어 전사한 수가 110 만명이었는데 이들이 흐르는 피로 강물을 이루었다고 요세푸스 역사가는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셨던 것은 단지 예루살렘 멸망만이 아니었습니다. 42 절을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이 말씀은 당시의 세계가 평화를 모르고 탐욕과 증오로 눈이 닫혀져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우신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다스리는 세계도 그러했습니다. 로마제국의 모토가 무엇입니까? 힘이 바로 세상의 정의요 힘 있는 자만이 다스리는 철학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주변의 모든 나라를 힘으로 정복하였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젊은 남자들은 다 죽이거나 검투사로 삼아 유흥하는 도구로 삼고 여자들은 성적 놀이개로 삼고 아이들은 노예로 삼아 몸종으로 삼았습니다.
로마제국의 이 힘의 질서에 반기를 들거나 저항을 하면 죽이되 어떻게 죽였느냐? 십자가에 달아 못을 박아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주는 악랄한 방법으로 죽게 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을 포함한 고대의 세계는 칼과 창으로 전차로 작은 나라들을 점령하여 거기서 얻은 것들을 로마황제와 귀족들만이 부와 쾌락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바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의 백성들도 가난과 치욕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자기네 나라 안에서 자기들끼리 그 증오와 미움의 폭력을 휘둘러 댔습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미움과 증오로 합해져서 저들도 로마제국을 닮아서 힘의 논리를 숭상하고 서로 죽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던 인간세상은 그야말로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닌 온갖 악과 죄가 판을 치고 있고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없고 미움과 증오와 폭력과 살인과 어둠만이 있었고 늑대와 야수들의 세계였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밀림의 정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너희의 눈이 닫혀 있도다!” 하셨습니다. 탐욕으로 닫혀 있어서 평화를 알지 못하고 증오로 눈이 닫혀 있어서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싸우면 결국 다 멸망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 한반도를 바라보신다면 어떠실까요? 그저 담담하시고 그저 팔장을 끼시고 초연하게 무감정하시고 무감동하게 이 땅 한반도를 바라보실까요? 저는 우리 예수님 한반도를 바라보시면서 예전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우시는 그 이상으로 통곡하실 것입니다. 저는 네 가지로 한반도를 보시며 우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그려 보았습니다.
한가지, 예수님은 한반도 남쪽 부분을 바라보시면서 우실 것입니다. 남쪽을 보아하니 잘 사는 사람은 너무도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너무 못 살고 사회의 양극화가 너무 심하게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실 것입니다. 기독교사회운동을 하는 사회경제학자들은 남미에서 해방운동이 일어났을 때 남미의 양극화지수보다도 현재 대한민국의 양극화지수가 훨씬 더 큰데 대한민국에서 왜 해방운동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노숙자들은 너무도 많고 빈곤을 탓하며 자살을 하는 비율이 우리나라가 단연코 세계 1위입니다. 용산에서 불참사가 일어나고 재능교육 교사들은 길거리에 내쫓기고 쌍용자동차 수천명의 해고노동자들은 태반이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너무도 고통스러워 수십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 가는데도 아직도 해결의 길은 요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한반도의 남단 제주를 바라보시면서도 우실 것입니다. 참으로 공력을 들여 아름답게 제주를 만들어 놓았는데 구럼비 바위는 창조주 하나님의 걸작품이기도 한데 그래서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거기를 다이나마이트로 발파시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거기에다가 해군기지를 세우고 거기에다가 미핵항공모함이 들어서게 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갈등과 대립의 터전이 될 것을 생각하시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을 것입니다.
두가지, 예수님께서 또 한반도 북쪽으로 눈을 돌리신다면 남쪽에서보다도 더 큰 통곡을 터트리실 것입니다. 북쪽의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허벌나게 많은 북쪽의 어린이를 비롯하여 굶주림으로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음을 보시고 통탄하여 우실 것입니다. 평양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수다한 이들이 거의 92%가 급성 영양실조로 결핵 등의 각종 질병으로 그 중에 무수한 어린이들이 대량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덴마크 구호단체인 <미션 이스트>가 밝혔습니다.
성경의 부자와 나사로를 보면 부자는 엄청나게 먹을 것을 쌓아놓고 배불리 먹고 향락을 즐기고 있었지만 나사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었습니다. 마치 남은 부자요 북은 나사로와 같은 형편인데 남이 주지 않아서 북이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면 되지 않느냐?” 책망하시면서 우실 것입니다. 남쪽은 영양이 넘쳐서 각종 성인병에 걸려 입원하거나 죽고 북은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로 죽어나가고 있는데 남쪽이 그 형편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약만 올리고 북은 자존심을 세우면서 핵실험을 하고 연평도를 때리고 불바다를 만들어버리겠다고 위협을 하고 서로 나눔이 없고 갈등과 다툼만 있는 것을 보시고 “왜 이러느냐 너희들은 형제와 자매이고 서로 같은 동족 같은 민족 아니냐?” 하시면서 우실 것입니다.
세가지,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한반도의 남과 북이 서로 평화를 모르고 서로 갈등과 대립으로 전쟁 직전으로 가려는 모습을 보시고 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울아 서울아 평양아 평양아 네가 평화를 알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시던 때보다도 더 큰 통곡을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역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그래도 남북간의 평화는 지속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남북간의 대치와 긴장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여졌고 금방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말하여 이명박 때보다 더 나아질까 했는데 오히려 긴장과 대결은 최고 수위로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남과 북에다 무장해 놓은 엄청난 대량살상무기들의 배치상황을 알고 계시면서 어떤 조그마한 껀수라도 있으면 전쟁이 일어나 모두가 잿더미로 변하게 되는 가능한 현실을 앞에 두고 “너희가 평화를 알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고 우실 것입니다.
네가지,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수없이 많이 세워져 있는 교회를 바라보고 우실 것입니다. 남과 북 사이의 대결을 십자가의 화해의 정신으로 중재를 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반공이데올로기에 더 물들어 있고 더 대결을 조장하거나 마치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종교처럼 서로 성전에서 장사나 하고 서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눈물을 지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자신을 소위 따른다는 제자들이 천 만 명 이상이 되는데도 같이 한반도에 사는 무리들이 저들을 <개독교 혹은 개독의 무리>라 하는 것을 보시고 우실 것입니다. 개독교는 개같은 종교 독을 품어내는 종교 그 뜻 아닙니까? 빛과 소금이 되고 누룩과 향기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개들이라 지탄받고 목사는 먹사이든지 교인들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면서 뱀파이어, 집사는 잡사, 평신도는 병신도, 성경을 똥경이라 부르니 예수님이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한국기독교와 교회가 <물량주의 세속주의 제국주의 바리새주의 교리주의 교파주의 성공주의> 등 칠거지악에 물들어 있으면서 교회 속에 자신 예수는 없고 온갖 현란한 반예수적인 것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어찌 그리 되었을꼬!” 착잡한 심정으로 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반도를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한반도의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 가운데 있는데 한국교회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배우지 못하면서 기독교 안에서 교단들끼리 이리저리 나뉘어 분열 분쟁을 하고 서로 헐뜯고 평화를 알지 못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전혀 화해를 사역을 하지 않는 한국교회와 기독교의 눈은 닫혀져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더욱 눈물을 크게 흘리실 것입니다. 오늘날 현상의 한국기독교와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눈물과 고통을 더 크게 더해 드리는 집단이라고 보면 결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한반도를 바라보시면서 복합적인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가운데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보다 정확하게 우리 기장 광주노회가 해야 할 바를 저는 딱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한반도의 평화를 힘써 아는 일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모르고 눈이 닫혀져 서로 헐뜯을 때 우리 예수님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는 먼저 한반도의 평화를 알아야 하고 이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국 남과 북 7500만 모두의 죽음이요 공멸입니다. 언젠가 군사평론가 지만원 교수가 총회 평화통일위원회가 주최한 협의회에 와서 강연하였는데 이 사람이 무척 보수적인 우파입니다. 그는 한반도 전쟁이 나면 남북 양쪽이 누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양쪽이 다 진다! 하였습니다. 남과 북이 전쟁이 나면 북쪽의 화력은 개전 한 시간이 안되어 남쪽에 다 쏟아 붇게 될 것이고 남쪽의 화력도 북쪽에다 다 쏟아 붇게 되는데 단지 서로 보유한 수만 발의 미사일과 대포만 쏘는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무기를 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북의 미사일이나 전투기들은 남에 있는 23기의 원자력발전소에다 폭격을 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전쟁하는데 주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도 한 판 붙게 될 터인데 한반도에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무기와 핵무기들을 쏘게 될 터인데 그야말로 한반도는 수소폭탄 플러스 핵폭탄 플러스 생화학폭탄 플러스 재래식 폭탄 등등으로 불바다가 되고 초토화되어 돌 하나 위에 돌 하나가 놓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말하였습니다.
그때 지만원 씨는 말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들이 국방부가 추측하는 바에 따르면 약 12개 내지는 15개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울산 등 대도시에 떨어뜨린다면 그것 하나하나는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도 약 200 배 혹은 300 배 더 위력이 있는 것이니 대한민국은 완전 풍지박산이 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반도의 상공에 나타났던 미국이 출격시킨 B52 한대는 핵무기 스무발을 적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수소폭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데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노정선 박사에 의하면 한 발이 떨어지면 천만명이 죽을 수 있는 위력이라고 합니다. 스무 발 다 떨어지면 이억 명을 죽일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무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핵무기 20 발을 적재한 B52 한 대만 출격을 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수십대 수백대가 한꺼번에 출격하여 원폭 수폭을 한다면 한반도 꼭대기인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살아남은 것은 개미새끼 한 마리, 피라미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남쪽 인구가 5 천만명 북쪽 인구가 2400 만명 합해서 7400 만명이 함께 모두 싸그리 죽게 될 것입니다.
설령 결국 그렇게 해서 인구가 2-30만 정도만 살아남아서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거의 다 죽고 난 다음의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누가 승자가 되고 누가 패자가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금 남과 북은 성냥불 하나라도 접촉 사고가 생긴다면 이미 서로 공언한 바가 있기 때문에 바로 점화하여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과 북의 전쟁이 낳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예상하면서 우리 기장과 우리 광주노회가 먼저 한반도의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 오는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 평화의 가치를 우리가 먼저 힘써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힘써 일하는 일입니다. 교회나 기독교나 교단이나 그게 무엇이든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 아닙니까? 우리 예수님이 지금 울고 계신다면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이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사랑하는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를 바로보시며 우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우리가 어떻게 닦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수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언젠가 수난절에 성경을 묵상하는 중에 한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7 장 48 절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중의 한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너무도 큰 고통을 당하고 계셨을 때 그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아픔과 고통으로 느껴 그저 서서히 간 것이 아니라 달려가서 고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켜 준다는 신포도주를 스펀지 해면에 묻혀 긴 막가지에 묶어 예수님께 마시우고자 했던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환장할 이상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주변에는 재미있게 구경한 사람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으라고 외치던 사람들, 엘리야가 와서 구해주나 보자! 보고자 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더하게 하는 이들로 둘러쌓여 있었을 때 <단 한 사람>, <그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실제적으로 줄여드리려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예수님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와 달려가서 마취제와 같은 신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우게 해서 조금이라도 아픔을 줄여드리려 하였지만 예수님이 신포도주임을 아시고 마시우지 않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나는 심정으로 막가지를 예수님의 입에다 밀어 넣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중의 한 사람이 한 사람이 하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슴 속 깊이 뼈 속 깊이 새기셨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한국기독교가 개독교라 욕얻어먹고 있는 이때 저는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우리 기장교회가 특별히 우리 광주노회와 속한 지 교회들이 우리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고 우리 예수님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는 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는 60 년 전 새역사 출범 이후 줄곧 한반도의 근현대사 속에서 “그 중의 한 사람”과 같은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평화를 위해 힘써 일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기장은 시대와 역사 속에서 온갖 박해와 핍박을 받으면서 인권과 민주화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기도의 행진을 하여왔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오히려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일에 앞장을 서는 가운데서 기장의 평화통일운동은 한편으로는 이단이라고 매도하고 빨갱이집단이라고 비난하였지만 개의치 않고 평화통일운동을 계속해서 해왔습니다. 조선기독교도연맹과 평양과 해외에서 지속적인 기도회를 개최해 왔고 북한 어린이와 국수나누기를 위해 매월 한 콘테이너씩 밀가루를 그동안 상당량을 보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운동을 전개하여 금번 WCC 10차 부산총회에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안을 제출해 놓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본 교단과 협약을 맺은 세계 에큐메니칼 각 교단들에게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에게 전쟁을 준비하기 보다는 서로 사이좋게 지낼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달라고 하였고 많은 협력 교단들이 여기에 동참해 주었습니다. 조선그리스도련맹에서는 기장을 자신들의 선교 제1파트너라고 여기고 기장에 대해서 늘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토록 기장은 평화와 통일을 향하여 기도의 행진을 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기장과 광주노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이 땅 한반도를 예수님의 평화로 채워 나가는 일을 보다 더 창조적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 할 줄로 압니다. 앞으로 기장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일꾼을 육성하고 길러내는 일을 하기 위하여 <평화 아카데미>를 시작하려 합니다. 예전에 강원용 박사님이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대화의 일꾼을 길러낸 것처럼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일꾼들을 길러내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광주노회에서도 이 땅 한반도를 평화로 채우는 일이 무엇일 것인가를 늘 생각하시며 광주노회가 기장 24 개 노회 중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장 진보적인 일을 가장 많이 하시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에 선봉에 서 주시기를 발합니다. 그래서 그 일들이 기장 24 개 노회의 모범적 전례가 될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따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힘써 기도하는 일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저는 바로 역사의 하나님께 한반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를 올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나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장 6절) 스가랴 선지자의 말대로 평화는 거룩한 영이 한반도 위에 임재하시고 운행하셔야 이루어집니다.
1981년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월요기도모임이 시작되었고 1989년 9월부터 그 기도모임은 촛불기도회로 점점 더 강화되어 나중에는 수만명이 모이더니 급기야는 수십만명이 동참하여 동과 서의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동참하여 결국 동서독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게 되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독 라이프치히 촛불기도회를 벤치마킹하여 우리 기장교회도 평화와 퉁일을 염원하는 매주 월요일 밤 촛불기도회를 하나의 교회로 만들어 통일의 그 날까지 계속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마치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역사의 정의를 위해 1000 번째를 넘어가는 수요기도회를 가진 것처럼 통일이 오는 그날 까지 월요촛불기도회를 시작하려 하는데 광주노회에서도 이 촛불기도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노회 차원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촛불기도회를 시작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단 회의때 저는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NCCK가 함께 모여 기도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에 따라 금주 월요일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대한민국 내에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통일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평화의 가치를 모르는 이들의 층이 시간이 갈수록 더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럴 때일수록 기장은 시대의 예언자로서 민족의 화해의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당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를 위해 기장과 우리 광주노회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안에다 하늘이 주시는 평화로 채우기 위하여 더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힘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피곤치 아니하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카이로스의 때를 만들어 주시고 평화를 거두고 통일을 거두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기장과 기장의 소중한 지체인 광주노회가 평화를 힘써 알고 평화를 위해 힘써 일하고 평화를 위해 힘써 기도할 때 한반도를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께서 눈물을 그치시고 환한 미소로 바꾸어 지시며 은총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느 시점에 카이로스를 만드셔서 우리 기장과 광주노회가 기도하고 힘써온 눈물의 씨앗들을 열매맺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 늦은 오후에 서울 우이천을 따라 걷는데 천변에 두 여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딸은 무엇이 그렇게 슬픈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고 그 옆에 어미인 듯한 이가 한 손으로는 딸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으로 딸의 눈물을 닦고 있었는데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미도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손수건으로 눈물울 닦아주고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의 눈물로 사랑하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려 하였습니다. 그 상황을 떠올리며 거꾸러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딸이 예수님이고 딸의 눈물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자신의 눈물로 딸의 눈물을 닦아준 어미가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이고 우리 광주노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평화에 대해 알기 전에 평화를 위하여 일하기 전에, 평화를 주십사고 기도하기 전에 주님의 심정으로 가슴 깊숙이 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 시드니 카터가 작사작곡한 노래가사를 읽으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창문 두드리며 비가 오네 / 눈물의 빗줄기 / 자녀를 위하여 오래 흐느껴온 / 이 세상 이 세상 / 우릴 위하여 죽으신 아기 예수께 / 우리는 무얼 배웠나 / 왜 아직 서로 헐뜯고 / 평화 모를까 / 왜 우리 눈은 이리 어둘까?>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신 것처럼 오늘 이 땅 한반도를 보시고 울고 계시는 줄 압니다. 저희로 하여금 주님이 우실 때 저희도 함께 아파하고 주님 짊어지신 십자가를 함께 걸머지게 하옵소서! 저희로 평화를 힘써 알게 하시고 평화를 위해 힘써 일하게 하시고 평화를 위해 힘써 기도하게 하시어 주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한국기독교장로회와 광주노회가 주님의 눈물을 그치게 해 드리는 한반도의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화를 위해 나귀를 타고 오시는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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