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년 5 월 12 일 (주일) 오전 11 시 나눔의교회 (정윤재 담임목사 시무)
성경본문 : 요한복음 13 장 34 절 - 35 절
제 목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주님 값주고 피로 사신 나눔의 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성가대원 위에,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몸된 교회를 섬기시는 정윤재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나눔의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정윤재 담임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총회 기관목사로서 말씀을 잘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도 목사님께서 총무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불러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통한 은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눔의 교회는 지금으로부터 21 년 전 1992 년 4월 19 일 대전시 동구 삼성2동 389-1번지 현암상가 지하에서 정윤재 목사님이 몇몇 성도들과 함께 개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나눔의 교회”라고 이름한 것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누자고 한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의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도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 즉 말씀을 서로 나누며 서로 떡과 음식을 나누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아마도 정윤재 목사님은 나눔을 초대교회를 생각하면서 초대교회가 나누는 교회였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게 하자는 깊은 뜻이 거기에 담겨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또한 오늘 교회의 비전 속에 출석교회 300 명이 되어 교회분립개척을 준비하는 그 나눔정신도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새신자를 환영할 때 부른 노래가사가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제가 오늘 성경을 통해서 하려는 말씀은 이 가사를 뒤집어서 바꾸면 됩니다.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하고 있지요!”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 장 34 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의 중심은 바로 하늘나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신다 하였을 때 그것은 단순히 이전과는 다른 한 인간윤리가 아니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행해지는 윤리를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를 사는 핵심의 계명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이는 그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박아 죽이는 이들을 향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 올리시는 예수님의 심장의 온도는 도대체 몇 도나 되겠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사랑은 누구에게나 서로 사랑하라 하셨는데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까지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은혜를 베푸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해꼬지하고 나를 박해하고 나를 저주하고 나의 오른뺨을 때리고 나에게 거짓으로 욕하고 거스리는 이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까? 1995 년 한국교회 희년행사때 가수 조용남 씨가 종로 5 가 기독교회관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는 그때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그가 부른 노래가 그야말로 감명이었습니다. 유명한 가수 조용남이 불러서 감명이 아니라 그의 노래가사가 감명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 /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 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시고, 예수님도 사랑이시고, 그러기에 인생도 사랑이라 노래 불렀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용서, 구원, 속죄 그리고 화해라 말합니다만 왜 용서하시고 왜 속죄하시고 왜 구원하시고 왜 화해하신 것입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 아닙니까? 성령님도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데 왜 하나되게 하십니까? 그것 역시 사랑 때문 아닙니까? 예수님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을 하실 때 성경의 핵심을 두 가지로 말씀하시었는데 큰 계명과 새 계명을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아닙니까? 사랑이 이웃에만 머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네 이웃도 사랑하라 하시지만 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이에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질문하십니다. 원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라 하십니다. 어쨌든 그래요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이요 예수님도 사랑이시고 성령님도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니 사랑 아닙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인생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테제공동체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비 까리따스 데싸무어 우비 까리타스 데우스 이비 에스트”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계실 때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 거기 현존하십니다. 인생이 뭡니까? 오지게 사랑하고 오지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다가 이 세상 이별할 때 우리 하나님 사랑의 품에 싹 안기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는 일들을 분석해 보면 수천 수만가지 일을 합니다. 자고 먹고 말하고 땀흘리고 걸어가고 생각하고 미워하고 무관심하고 이것저것을 헤아려 보자면 수십만가지도 넘습니다. 그 수많은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서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테레사 수녀님은 언젠가 그런 강론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 사랑을 전파하세요 / 먼저 당신 자신의 집에서 / 그 일을 실천하세요 /당신의 얼굴에 /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속에 /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속에/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세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할 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것도, 기쁠 때나 슬플 때도 옆에 있어주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좋은 표현은 무엇입니까? 안아주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일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 한 유럽언론의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수녀님은 왜 일을 하실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이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품에 안기는 그런 경험을 하고 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나라를 경험합니까? 하늘나라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알지 못합니다만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미리 예비적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안아줄 때 그 따뜻함과 훈훈함 속에 그 신비한 하늘나라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포옹을 받을 때 그 안에서 3 차원이 아닌 4 차원도 아닌 수백차원을 옮겨 가는 신비한 하늘나라를 그 안에서 느끼게 됩니다. 많이 안아주고 포옹해주는 가운데 포옹을 받는 그 가운데 하늘나라 가까이를 체험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멀리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서 총리대신을 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식량이 떨어져서 애굽으로 와서 식량을 사고자 하였을 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자신을 밝히고 나중에 형들과 동생을 끌어안고 웁니다. 창세기 45 장 14 절에서 15 절입니다.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이 꼭 안아준 형들이 누구입니까? 자기를 구덩이에 쳐 넣어 맹수의 밥이 되어 죽이려 했던 원수같은 형들 아닙니까? 그런 형들을 그저 꼬옥 안고 울었습니다. 안아줄 때 이미 다 용서한 것입니다.
오늘이 어버이 주일입니다. 저는 명절이 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부모님께 갑니다. 차가 막혀 어떤 때는 20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13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부모님께 가는데 부모님은 “아이구 그렇게 길이 막히면 오지 말지 그랬냐!!” 그러면서도 좋아하십니다. 아버지께 선물도 드리고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언젠가 한 번은 사시는 아파트를 나오기 직전에 “아부지!” 하면서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음! 잘가라!!” 했는데 “음!” 하실 때 약간 떨리는 듯한 음성이었고 무척 감격하신 것 같았습니다. 문을 나오면서 “야! 아버지를 안아드렸더니 의외로 그렇게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하면서 나오는데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문 앞까지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안아드렸더니 어머니도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 어머니를 볼 때마다 더 많이 꼬옥 안아드려야 하겠구나! 그저 한번 안아드리는 것인데 그렇게 좋아하시는구나! 그 뒤부터는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도 부모님 집을 떠날 때에도 꼭 하는 일이 꼭 안아드리는 일인데 제가 무슨 선물을 드릴 때보다도 용돈을 드릴 때보다도 안아드릴 때 제일 감격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광수생각>이라는 만화에 보면 “아부지 전상서!”라는 제목의 만화에 그런 글이 있습니다. “아부지 생각나시는지요? 전에는 당신과 돗자리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함께 누워 별를 보곤 했지요. 최근에도 당신과 함께 보던 별들이 잘 있나 궁금합니다. 저도 기회가 닿는다면 아부지의 손자와 함께 그때 보던 별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당신이 제게 보여준 사랑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돈을 벌어 돗자리 하나를 사야겠지요. 아부지 징그럽다 하겠지만 요즘의 저는 당신을 한번 꼭 안아보고 싶습니다.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습니다.” 성남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볼 때마다 한 번 씩 안아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 아이가 둘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 하나가 아이를 꼭 안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갈 때나 올 때에도 “오매 내 새끼!” 하면서 많이 안아주었습니다. 학교를 간다고 할 때 안아주면서 기도하였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내 새끼가 왔능가!” 하면서 안아주었습니다. 집 안에서 하는 자식들에 대한 교육이 뭐 별 겁니까? 자식들 볼 때마다 한 번 씩 안아주는 것 이상 더 좋은 교육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는 뭐 별로 잘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비틀어져 나가지 않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애비애미 말 대체로 잘 듣고 이웃을 그래도 쪼끔은 배려하면서 살 줄 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된 연유 중에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꼭 안아준 것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부모님도 꼭 안아드리고 자식들도 꼭 안아주시고 목사님도 많이 안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살 때 버클리 대학 바로 옆에 있는 “Holy Spirit Chapel" 이라는 성당에 가끔 나가 미사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거기 성도들은 성당 앞에 있는 신부님에게 그냥 나가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 개신교 같으면 목사가 성도들의 손을 잡아주고 인사를 먼저 건네지만 그 성당은 왜 그런지 "거꾸러"였습니다. 어떤 성도는 신부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격려를 해주고 나가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신부님을 꼭 안아주고 나갑니다. 말없이 그저 신부님 가까이 와서 신부님을 꼭 안아주고 갑니다. 신부님 얼굴은 안기면서 무척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부님을 안아드리는 성도들도 무척 행복한 것 같았습니다. 성령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 가운데 안아준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신부님을 한번 꼭 안아주지 못하였습니다. 동양적 정서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저 손만 한번 잡아주고 나갔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버클리에 가면 다시금 그 홀리시피리트 채플에 가서 예배드리고 나올 때 그 신부님 한번 안아주고 올 것입니다. 나눔의 교회 성도님들이 예배를 마치고 성전을 떠나기 전에 성도들에게 인사하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에게 힘내시라고 꼭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그로부터 힘을 얻고 또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더욱 더 잘 감당하게 되실 것입니다.
나눔의 교회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목사님만 안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 여러분들을 서로 많이 안아주시기를 바라니다. 제가 시골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성도들의 분위기가 참으로 써늘하였습니다. 직전 담임목사님이 물러나시고 얼마되지 않아 소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분위기가 냉냉하였는데 그것을 경험하고 난 뒤 예배 중에 한 순서를 넣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를 하는 동안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말하게 하고 서로 앞뒤에 있고 좌우에 있는 성도들을 껴안아 주도록 하였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약간 꺼려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주의 사랑으로 잘 안아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나이 드신 권사님들과 장로님들, 장애교우들, 병상에 있는 교우들, 암병동에서 투병하는 교우들, 선거에서 떨어진 성도들을 안아드리면서 목회를 했는데 제가 별로 목회를 잘 하지 못하고 실수가 많았지만 성도들은 그런 흠 많은 저를 감싸 안아주어서 큰 어려움 없이 목회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눔의 교회 성도님들은 이 나눔의 교회가 있는 지역 십리 안에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을 찾아가 이 교회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들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눔의 교회가 있는데도 콤파스로 나눔의 교회를 정점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오리를 동그라미를 그려서 그 안에 나눔이 없어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나눔의 교회가 있는 있어야할 존재이유를 다시 한 번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으로 안아주고 사랑으로 포옹을 당하면 왜 사람들은 행복해 할까? 건강학자들은 “사랑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상관관계를 규명하고 규명하는 가운데 “도파민”이란 화학물질의 실체를 발견하였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뇌의 특수시스템이 활발하게 작용하는데 특별히 사랑하는 강도가 쎄지면 뇌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기 시작하는데 “도파민”과 “옥시토신” “페닐에틸아민” “세르토닌” 네가지가 분비됩니다. 이것들은 온 몸에 마치 스프링쿨러와 같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뿌려 주어서 자연치유력을 향상시키고 면역기능을 강화시켜주고 온전치 못한 세포들을 깨어나게 하여 정상세포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하고 이 네 화학물질은 우리 뇌 속에서 이곳저곳에서 품어져 나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우리 몸에다가도 활력소를 불어 넣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다가도 황홀감 행복감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신비로운 일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실 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로 만드시고 사랑할 때나 사랑을 받을 때 도파민, 옥시토신, 페닐에틸아민, 세르토닌이 분비토록 하여 온 몸에 뿌려줌으로써 건강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며 행복감을 극대화시켜주도록 그렇게 우리 몸을 설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껴안기거나 껴안아주면 우리 속에 이미 신비스럽게 감추어진 그 네 화학물질이 바로 분비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창조질서의 하나로서 우리 몸을 기가 막히게 서로 잘 껴안도록 만드셨습니다. 만일 우리 팔이나 손에 마디가 없고 손가락에 마디마디가 없다면 잘 껴안을 수 없게 되지만 우리가 껴안으려고 하면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게 그렇게 남지도 않게 기가 막히게 서로가 서로를 잘 껴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을 수 있도록 맞닿을 수 있는 아늑한 가슴과 껴안기에 적당한 길이의 팔과 손을 주셨습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서로를 껴안고 서로 껴안기는 존재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장 잘 해야 할 일이 사랑하는 일이요 그 일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본질적인 일인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일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일과 같이 하나님께 중요한 일이 없고 우리들에게도 사랑하는 일과 같이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 중에 수 만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가장 좋은 방법은 주의 사랑으로 안아주는 일입니다. 이 세상 사시면서 결코 그 누구도 미워하지 마시고 등을 돌리시지 마시고 많이 안아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등을 돌리면 그야말로 지구 한 바퀴만큼 멉니다. 40008 km로 십만리나 멀지만 그 등을 돌리면 바로 앞에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안아주고 용서해 주고 포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안아주면서 살 때 우리는 인생을 핵심으로 살고 본질로 사는 것이며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우리 사이에 침투해 들어 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특별히 안아주시고 감싸주시되 사랑받을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는 도무지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성숙한 지경으로까지 성도 여러분의 사랑이 확장되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미워하고 악하게 구는 사람을 오히려 선대해 주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해주면서 감싸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핍박하고 거짓으로 모해하는 사람을 오히려 선대해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총회총무로서 먹을 것이 없이 굶주리는 북한을 많이 감싸 안아주도록 기장교회 교인들을 격려하고 독려합니다. 비록 북한이 연평도를 일으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러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대하여 악을 악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푹 감싸 안아 버려야 합니다. 우리 몸에 병균들이 침투해 왔을 때 어떻게 몸이 대응합니까? 백혈구들은 결코 병균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백혈구는 자신의 따뜻한 몸으로 병균을 부드럽게 포옹하고 감싸서 사랑으로 녹여 버립니다. 병균들은 포옹을 당할 때 백혈구와 싸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옹당하여 그 사랑 속에서 스스로 녹아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인 것입니다. 북한에 대하여도 햇빛정책보다도 더 30 배 60 배 100 배 더 강한 뜨거운 사랑의 지진쓰나미로 덮쳐야 합니다. 그 사랑의 쓰나미를 경험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은 통일을 향한 강한 소망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원자폭탄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나눔의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랑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더 많이 팔을 벌려서 껴안아주고 더 많이 너른 가슴 벌려서 더 많이 안아주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 가운데 부모님도 더 자주 안아 드리고 자녀손들도 더 축복하면서 안아주고 목사님과 사모님도 안아드리고 성도들 사이에서도 서로 안아주고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도 안아주는 사랑 나눔의 교회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나눔의 교회가 교호 안에서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눌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특별히 소외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과 흑암 가운데 있는 이들을 주의 사랑으로 안아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 전쟁과 분쟁, 갈등, 아픔, 고통, 인간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요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안아줄 때 다 해결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이 안아주고 이해하고 용서해 주고 덮어주고 포옹해 주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 이별하여 천국에 갔을 때 사랑의 예수님께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아이구 내 새끼 오능가!” 하면서 특별히 그런 우리를 그 너른 가슴으로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상을 줄 때도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실천하고 가장 자주 실천하고 사랑의 가슴으로 많이 안아 준 사람에게 천국에서 가장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나눔의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다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전후좌우에 있는 성도들에게 다가가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고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 장 35 절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 아멘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예수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나눔의 교회 성도님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시고 많이 안아주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긴 팔과 너른 가슴으로 예수님의 뜨거운 심장으로 많이 안아주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북한을 사랑하고 나를 욕하고 저주하고 모해하고 미워하는 이들까지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 각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많으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하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를 통해서 사랑의 삶을 살 것을 명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오늘도 거룩한 영으로 우리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온 성도들이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 예수의 사랑을 힘써 나누고 힘써 예수의 사랑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의 결단을 하는 나눔의 교회 성도들 위에 그리고 정윤재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지금부터 언제까지나 임마누엘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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