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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세광교회 주일오후예배 설교

관리자 2013-07-02 (화) 16:33 12년전 2061  
2013 년 6 월 30 일(주일) 오후 2 시 군산세광교회 주일오후예배
 
성경본문 : 에베소서 6 장 5 절 ~ 7 절
제 목 : 기쁜 마음으로 섬기시기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군산세광교회 성도 여러분들 위에와 오늘 간절히 기도해 주신 김미숙 집사님, 귀한 오카리나 찬양을 해 주신 조한영 집사님,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담임목사로 취임하시게 될 손창완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안상용 공로장로님과 모든 당회 장로님들 그리고 세광교회의 현재와 미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것은 물론 교회 당회와 청빙위원회가 역할을 하고 공동의회에서 결정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과 결정을 뛰어넘어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인 결정을 하십니다. 은총의 주님께서 세광교회를 참 사랑하셔서 아끼시고 훈련시키시고 연단시켜 온 당신의 종을 사랑하는 이 교회에 보내 주신 줄 믿습니다. 담임목사를 잘 모시는 것은 하늘의 복이니 늘 세광교회는 은총의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담임목사이신 손창완 목사님의 취임예배를 앞두고 있는 목사님과 세광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에 근거하여 하고 싶은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 오늘 성경본문 에베소서 6 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감옥에 있으면서 소아시아 에베소에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5 절을 보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자유의 복음은 에베소에 사는 종의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고 에베소 역시도 지배계급인 로마의 통치자들과 토착지배층들의 지배계급이 있었고 로마시민들과 같은 자유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예계급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한 편으로는 지배계급에게도 전하여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노예계급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특별히 복음은 강한 자유의 누룩을 지니고 있었음으로 인해 종들 계층에 환호성과 함께 받아드려졌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가 차별이 없고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다고 전하였습니다. 종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맛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데 그런 믿음이 들어가자 기존에 자신들이 모시던 상전을 무시하거나 상전을 모시는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에베소의 상전들은 저것들 종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더니 시건방을 떨고 마치 자기가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무슨 나쁜 사상에 전염이 될까봐 아예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못나가도록 금지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필을 들어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기쁜 마음으로 상전을 섬기되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그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진행되는 일을 로마의 감옥에서 가만히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상전들과 종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점점 더 증폭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전들 계급에서는 종들이 하는 것을 보고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려는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은 종자로 여길 것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화해의 복음이 저들에게 통하여 전해지기 보다는 방해 받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의 발에 끼인 때를 닦아주신 것처럼 사랑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영적으로 유익인가를 깊이 통찰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더 성실하게 신실하게 주어진 종의 역할을 잘할 때 저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저들 종을 통해 복음이 더 잘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종전의 주장인 그리스도 안에는 종과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조화할 것이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종이 되셔서 종으로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가 세상에서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데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이 되어 섬기라 그리고 섬기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섬기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라 한 것입니다.
 
 
■ 보통 목회자들을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의 직분을 소개하는데 근거합니다. 그러고 보면 김승식 목사님도 “주의 종”입니다. 주의 종은 주님만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위로는 주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주님께서 위탁하신 양떼들을 섬기는 종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으니 그 위임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동시에 양떼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이중적 종의 사역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양떼만이 아닙니다. 양떼들이 있는 초장이라 할 수 있는 지역사회도 섬기는 종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만 섬기고 주님 이외에 다른 성도들에게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서는 그 어느 편으로도 종으로서 사역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본문에 근거하여 우리 손창완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첫째 상전을 섬기듯이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총회본부의 간사와 부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여직원들은 평신도였습니다. 밥을 먹는데 한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의 종이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거든요!” “맞아요 틀려요!” 해서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 종의 높아요? 딸이 높아요?” 해서 “당연히 딸이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목사님!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오세요!” 해서 말없이 커피를 대령해다 바쳤습니다. 주의 종은 높임을 받는 직책이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서도 종은 섬기는 직책이요 땅을 향해서도 종은 사람을 섬기는 직책입니다. 그들을 섬겨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직책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듯이 양떼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섬기는 직책과 직분이 주의 종인 것입니다. 종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바로 섬길 때 나오는 것이며 죽기까지 섬길 때 거기에서 진정한 영적 리더쉽이 나오게 됩니다.
 
 
저는 우리 손창완 목사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둘째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란 주로 섬기는 일인데 그 일을 억지로 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 지듯 하면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5 장 2 절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자원함이란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라는 뜻입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할 때 보람과 의미가 차오르고 일을 하면 할수록 하늘나라가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목회가 그러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기고 누가 이 일을 할 꼬? 하였을 때 사역자가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 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일은 상전이 되어 존귀함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순전히 종의 일들로만 채워져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종으로서 사역을 할 때 주님께서 그 허벌나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불러 주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그 종의 일들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나에게 일을 시키셨으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도 가득히 주실 것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일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할 때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장 3 절에 뒤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자원함으로 하고 기쁨으로 하되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목에다 힘을 주어 할 때는 종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가 임직하고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축사를 하러 자주 갑니다. 한 번은 담임목사 취임 축사를 하는데 목포시장인 분과 함께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자기가 목포시장이 되어 목포에 있는 교회들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는데 부흥하는 교회와 쇠퇴하는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머리를 굴려 가만히 따져보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데는 오로지 두 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가 목사한테 맞먹으려 하지 않고 목사가 목에다 힘을 주지 않으면 즉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자기가 보니까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강진에 있는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제가 강진읍교회에 부임하여 아직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 사택에 와서 청소도 해 주고 화장지나 필요물품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한 나이 든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아파트에 사시면서 쓰레기도 주으시고 계단 청소도 하고 그러세요!” 정색을 하여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강진읍교회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야 집사부터가 강하고 쎄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오지 말아야 할 교회에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집사가 자기 담임목사한테 농담도 아니고 진담으로 쓰레기 줍기를 하고 청소도 하고 그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무슨 노래가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강진읍교회에서 3,4 년을 목회하는 가운데 그 집사님은 참으로 착하고 온순하신 분으로 결코 그렇게 말하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엔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아하! 하나님께서 망아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내가 자고할까봐 그 집사님을 통해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목회를 하면서 폼을 잡지 않고 목에다 힘주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마음으로 하였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목회초기에 지침을 주신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여 강진읍교회의 목회를 큰 실수 없이 마치게 되었습니다.
 
 
■ 저는 손창완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마지막으로 주께 하듯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에 다녔습니다. 나중에 한신대가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과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4 년 동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2 년 반 동안 다녔습니다. 당시 수유리 캠퍼스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6 년 반 동안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식판을 받는 정면에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밥을 타려면 반드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6 년 반 동안 그 그림을 보아왔다면 괄호 열고 (365 곱하기 세끼 곱하기 6년 괄호 닫고 더하기 괄호열고 (183 일 곱하기 세끼 괄호닫고 ) 하면 이론상으로는 7110 번 그 그림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시는 그 그림이 채플실 들어가는 입구에 걸려 있지 않고 왜 식당에 그것도 밥을 타먹는 정면에 걸려 있어 밥을 먹을 때마다 그 그림을 보아야 하는가?” 그러다가 뭔가 가슴에 걸려 오는 것이 어떤 음성과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너도 발을 씻어주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학교 6 년 반을 다니면서 제가 봉사하는 교회에서 발을 씻어주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을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일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종이 되어 일하신 것은 하늘 아버지에게 대한 것만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섬기는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종으로서 일을 할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듯이 성도들의 발을 씻어줄 때가 내가 주님의 발을 씻어드린다는 자세로 봉사하는 것이 바로 주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세광교회가 참으로 목회자를 잘 선택했다고 믿습니다. 아니 은총의 하나님께서 세광교회를 사랑하셔서 참으로 좋은 목자를 선택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손창완 목사님은 오늘 성경본문 에베소서 6 장 7 절에서 말씀하는 종이 지녀야 할 세 가지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해당되시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지 성도들의 종이 아니다고 강변합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군림합니다. 그것은 틀린 행동입니다. 목자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만 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죄인들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섬기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음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셨습니다. 저는 진실로 우리 손창완 목사님이 우리 예수님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제가 권면하기 전에 손창완 목사님은 주님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아울러 그 심정으로 세광교회 성도님들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실 것이며 기쁜 마음으로 섬기실 것이고 양떼들을 섬기실 때 상전을 섬기듯이 섬겨 양무리의 본이 되실 것입니다. 제가 광주 가나안교회에서 목회할 때 사택이 아파트 20 층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떤 나이지긋하신 은발의 할머니가 타셔서 같이 올라가는데 뭔가 스쳐지는 것이 있어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교회 권사님이 아니신가요?” 그랬더니 “아니 제가 권사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반갑게 응답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듬직하신 분이 엘리베이터에 타셔서 그때도 어떤 느낌이 와서 “혹시 장로님 아니신가요?” 물어보았다니 무척 반갑게 “아니 제가 장로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로님 얼굴에 장로님이라고 쓰여 있네요!” 했더니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쉬웠고 안타까웠던 점은 제가 그 집 20 층에서 한 2_3 년을 살았는데 엘리베이터를 올라 다니면서 어떤 사람도 “혹시 목사님 아니세요?” 물어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야 뭐 그렇고 그렇지만 여러분의 담임 목사님이신 손창완 목사님은 이 군산지역에서 심방을 다닐 때에나 그 어느 곳에서 만날 때에도 목사님의 주님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으로 인해 목사님의 그 섬김과 봉사로 인해 목사님의 모습과 얼굴에 투영이 되어 그 누구라도 목사님을 만나게 되면 그 거룩한 빛으로 인해 “혹시 목사님 아니세요? 목사님이시죠?” 그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손창완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잘 섬기는 목회를 잘하실 줄로 믿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섬김으로 인해 그리고 기쁨으로 섬김으로 인해 세광교회 성도님들이 많은 은혜를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 여러분의 교회의 이름이 세광입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세상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 년 전 저는 전남 강진 칠량에 살았고 방에는 등불이 있었는데 나무로 된 등경이 있었고 가장 위에는 사기로 된 등잔이 있었습니다. 등잔에 석유를 붓고 창호지로 심지를 심어 넣어 등불이 타오르면서 높은 등경 위에서 빛을 비추어 집을 밝히는 구조였습니다. 한참 타오르면 석유도 다시 부어 넣어야 하고 심지도 더 안쪽으로 돋우어야 합니다. 등불은 남에게 빛을 밝히라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자기의 피인 석유를 소모시키면서 자기의 살인 심지를 태우면서 자기를 결국 희생하면서 남을 위해 그렇게 거룩하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등불은 그렇게 봉사를 하면서 자기를 주장하거나 등경위의 등불이 빛을 밝히면서는 “나는 이렇게 훌륭한 일을 위해 쓰여지고 있어!” 하면서 자신을 광고하거나 선전하거나 프로파간다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섬기명서 이웃을 위해 일합니다. 세광교회가 언제부터 세광교회라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거룩한 뜻을 담고 작명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세광교회가 담임목사님도 그리스도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헌신의 불을 밝히시고 성도 여러분들도 그리스도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이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과 사랑의 빛 섬김과 봉사의 빛을 밝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지역사회의 빛이 되는 가운데 주님의 나라는 이 땅에 점점 더 환하게 동터 오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 솔티가 부르는 노래 중 그런 가사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섬기면 주님나라 이뤄지리! 주님나라 이뤄지리라!”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 세광교회와 모든 성도님들 그리고 섬기시는 종 손창완 목사님께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주님 값주고 피로 사신 이 교회를 섬기시는 손창완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려 하는 등대교회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한량없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이제 담임목사 취임을 앞두고 있는 손창완 목사님과 사모님께 은혜 내려 주시어 이 세광교회와 양떼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기쁘게 섬기게 하옵시고 이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환한 빛, 세상의 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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