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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맑은 물로 흐르는 기장농목

관리자 2013-08-20 (화) 12:53 12년전 2004  
2013 년 8 월 19 일(월) 오후 7 시 기장 농어촌선교목회자연합회(농목) 하계수련회
개회예배
 
 
성경본문 : 에스겔 47 장 1 절 ~ 12 절
제 목 :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맑은 물로 흐르는 기장농목
 
 
■ “축복의 통로가 되세요!”라는 뜻의 히브리어 원어는 “헤예 베레카”입니다. 이 시간 잠시 일어서셔서 서로가 서로에게 “헤예베레카”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기장 농목과 오늘 이 하계수련회에 참여하신 가족 여러분들 위에 존경하는 농목회장이신 오용균 목사님과 김성주 총무님 위에 기장농목의 모든 회원님들과 섬기시는 교회 위에 오늘 왕림해 주신 이종준 부총회장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장농목은 참 착하다고 생각됩니다. 저를 하계수련회 때마다 개회예배때 설교를 시켜주시거나 축사를 하게 해 주시는 등 매번 환대해 주시니 그렇습니다. 오용균 회장님이 농목 총무였을 때 저를 설교하는 강사로 불러 주시더니 회장님으로 계실 때도 설교자로 불러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최측으로부터 20 분만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전해듣기에 1 시간 강연하라고 해서 그렇게 준비해왔는데 그래서 3 분의 2 를 가위로 잘라냈습니다. 문맥이 잘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잘라낸 부분은 파란색으로 표기하였음)
 
 
■ 저는 특별히 <기장 농목>과 <기장 생선연>은 기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성전 앞에 있는 <보아스>와 <야긴>이라는 성전기둥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든든히 서 있어 기장의 기장성과 기장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해 주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 얼마 전 저는 한반도 통일에 관한 미국 아틀랜타 회의에 다녀왔는데 그곳 아틀랜타에는 코카콜라 본사가 있어서 그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개발한 코카콜라가 전 세계로 수출되는데 자기들 말로는 UN 회원국 보다도 많고 코카콜라를 수입하여 마시는 나라의 개수가 더 많다 하였습니다. 각 나라와 민족의 입맛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매운 맛, 알싸한 맛, 신맛, 단맛 등을 조합하여 저들에게 맞는 코카콜라를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세계 구석구석까지 안흘러 들어가는데가 없는 것입니다. 코카본사는 2008 년에는 950 억 달러어치를 판매했고 2020 년에는 2000 억 달러로 목표치를 상향조정하였습니다. 지난 해 2012 년 세계최대 브랜드컨설팅 그룹인 <InterBrand>가 브랜드가치를 평가했는데 778 억 달러로 평가되어 3 년째 부동의 1 위를 했습니다. 코카콜라의 수석부사장이고 수석 마케팅 책임자인 조셉 트리포디는 “우리가 브랜드가치 세계 1 위가 된 것을 겸손히 받아드리고 있다” 하였습니다. 겸손한 것인지 굠손하지 않은 것이지 모르겠습니다. 코카콜라 본사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의 3 분의 2 는 물로 덮혀 있다. 그 나머지는 코카콜라로 덮혀 있다.” 코카콜라의 대부분의 구성요소 중 거의 97-8%가 물입니다. 이 물이 세계인들에게 심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 저는 우리 <기장농목>이 맑은 물이 되어 낮은 곳을 찾아서 맑게 시원하게 흘러 내려갔으면 좋겠고 <기장농목>의 브랜드 가치가 점점 상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카톨릭농민회, 정의구현사제단, 경실련, 기윤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참여연대 등등과 같은 단체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브랜드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기장농목>도 이 땅에서 하늘나라 운동 생명운동을 지금까지도 잘해오셨지만 앞으로도 더욱 농어민 선교를 잘 이끌어 주시어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이 땅을 바라보시면서 귀하게 여기시는 공동체가 되고 그리고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기장농목은 짱짱한 영적인 브랜드가치를 인정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애틀랜타에 코카콜라가 있다면 한국에는 기장농목이 있다!”
 
 
■ 오늘 성경말씀 에스겔서 47 장 부분은 특별히 농어촌목회를 하시는 분들께서 좋아하시는 말씀이고 그 내용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 중의 일부인데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 나옵니다. 그 흘러 나오는 물이 동쪽으로도 흐르고 남쪽으로도 흐르는데 그 흘러 나오는 물이 점점 많아집니다. 제일 처음에는 47 절 2 절에는 그저 스며나오다가 3 절에는 물이 발목에 오르게 되고 4 절에는 물이 무릎과 허리에 오르고 5 절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고 헤엄칠 만한 물이 되고 그 물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까지 흘러가게 됩니다.
 
 
■ 그런데 물이 단순히 그저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7 절에 보겠습니다.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을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절을 보겠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절을 보겠습니다.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도대체 무엇입니까?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물로 인해 한마디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살아납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저 한 두가지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나무도 살아나고 생물도 살아나고 고기도 살아나고 덩달아 어부도 살게 되고 과실나무열매도 살아납니다. 9 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 하였습니다. 생명이 단지 사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이 풍성해지고 더불어 주변에 있는 모든 유기체적인 생명이 덩달아 살아나고 풍성해집니다.
 
 
■ 살아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12 절에 있습니다. “강 좌우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무엇입니까?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란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는데 하나님께서 흘러 보내시는 물이라 그 물이 생명을 살리고 풍성케 하고 생명을 치유하는 힘이 있는데 단순히 사람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생물도 살리고 나무도 살리고 바다까지 살리게 됩니다. 물이 그냥 물이 아니라 엄청나게 허벌나게 착한 물인 것입니다.
 
 
■ 저는 안치환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이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1.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 물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 건듯 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 겨우내 낀 개구장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 2. 오뉴월 더운 날에 가뭄을 만났으니 / 돌돌돌 도랑에 흘러 농부의 시름덜고 /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 3. 봄따라 여름가고 가을도 깊었느니 / 나도 이젠 깊은 강가에 잔잔하게 흘러 / 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 잠 자러가지> 이 노래가사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물에게 물어보니까 물이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을 들어보니 물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이 흐르고 흘러서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약돌도 적셔주고 겨우내 낀 개구쟁이의 발 때를 벗겨도 주고 돌돌돌 도랑에 흘러서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셔주고 그래서 농부의 시름도 덜어주고 참 착하고 기특하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엄청나게 유출되어 그 물을 마시는 물고기는 기형이 되고 그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암에 걸리게 되고 방사능오염이 되어 죽게 되는 물입니다. 국정원 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물도 그렇습니다. 이 나라의 직접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불의한 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을 위한 국정원의 대통령입니다. 국정원에서 과거의 원장들과 현재의 원장이 문지방에서 흘려보내는 물이 이 땅의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죽이고 있는 것을 고소고발해야 합니다.
 
 
■ 국정원의 물과 달리 후쿠시마 원전의 물과 달리 성전문지방과 안치환 노래가사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흐르고 흘러서 나쁜 일을 하고 부정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선하고 착하고 뭔가 보탬이 되고 유익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겁니다.
 
 
■ 저는 강북구 수유2동에 살고 있고 거기서 한 2 km 정도 걸어가면 우이천이 있습니다. 언젠가 비오는 날 우이천변에 갔는데 비가 와서 흙탕물일 줄 알았는데 물이 참 깨끗하였습니다. 아니 서울에서 흐르는 내가 이렇게 맑은 것일까 참 신기했습니다. 저는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마냥 걸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송사리들이 떼지어 놀고 있었고 모래무치도 모래 위에 살짝 얹혀져 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보니 커다란 송어 두세 마리도 노닐고 있었습니다. 우이천 좌우에는 푸른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갔더니 야생오리들도 먹이를 찾고 있었고 흰 백로도 물 안에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고고히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덩달아 묵상을 하였습니다. 물이 흐르면서 참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하는구나? 송사리들과 송어들도 놀게 하고 야생오리들과 학도 주변에서 살게 하고 푸른 풀들도 살게 하고 나도 그것을 보고 참 좋구나를 느끼고 서울 안에 이런 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는 것에 참 감사했습니다. 나도 그 우이천변을 따라 가면서 안치환의 노래, “흘러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 그러면서 제 생각 속에도 어떤 흐름이 하나 흘러 들어왔습니다. 에스겔에 있는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스쳐온 것입니다. “그렇지! 이 셋 사이에 공통성과 유사성이 있구나?”, “안치환의 노래가사와 에스겔의 물과 우이천에서 흐르는 물은 첫째 흘러간다는 유사성이 있고 두 번째는 흐르면서 뭔가 착하고 유익한 일을 한다는 공통성이 있구나!”, “‘우이천’과 ‘에스겔’과 ‘안치환’ 이 셋을 합류해 보면 물이 있는데 그저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이고 그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흐르면서 그 물이 스쳐가고 그 맞닿은 곳에 그 물이 타치하는 곳마다 끊임없이 생명을 주고 생명을 살게 하는구나!” 단지 에스겔과 안치환 그리고 우이천과 다른 것은 에스겔에서는 어디서 즉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라 근원이 적혀져 있는데 비해 우이천과 안치환은 어디서부터 흘러오는지 모르는 것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수 있겠습니다.
 
 
■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저 화학분자식의 기호로 H2O일까? 아니면 성전에서 흘러나왔으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면 될까? 아니면 천천만만이라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천사들일까? 아니면 성전을 출입하는 이스라엘 백성일까? 농목동지 여러분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신학을 할 때 약간 박봉랑 교수님으로부터 약간 보수적으로 배웠습니다. 즉 “그리스도론적 해석”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어야 그 자체의 뜻이 드러난다는 해석입니다. 만약 에스겔 47 장을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성전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무엇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니 하나님의 집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 혹은 제사를 드리고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의 행렬 혹은 흐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언젠가 군산에 있는 우리 기장교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이 가까이 되었는데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행렬이 참으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성전을 가득 채웠고 예배가 끝났을 때도 계단을 가득 매우며 성전을 나가는 행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뿌듯하였습니다. 저 성도들이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흩어져 아니 흩어지는 교회를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금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누룩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면 하늘 뜻이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물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와서 차츰차츰 하나의 거대한 제자들의 거룩한 흐름이 되어 이 땅을 정의롭게 하고 평화롭게 하고 생명을 풍성케 한다면 그야말로 에스겔의 환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년을 향한 노래를 불렀던 것도 그런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정의가 강물같이 평화가 들불처럼 사랑이 햇빛 처럼 하나님 주신 생명 보듬어 희년을 향해 함께 가는 길 주의 약속 굳게 믿으며 일곱 번씩 일곱 번 넘어져도 약속을 굳게 믿으며”
 
 
■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비판이라기 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비난과 욕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로부터 한국국민들로부터 특별히 젊은 세대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기독교를 엄청나게 두둘겨 팹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고 목사를 먹사라 부르거나 교인들 피빨아먹고 산다면서 뱀파이어라고 부르고 집사를 잡사로 부르고 평신도를 병신도라 부르고 그리스도인을 개독좀비라고 하고 성경을 똥경이라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너무 한다 싶기도 하지만 바로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욕하고 폄하하는 저들을 향해서 무시하거나 같이 욕하거나 현상의 기독교를 변증하거나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러기 이전에 우리는 저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추한 자화상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 제가 신학교 시절에 예언자 씨리즈란 책을 샀는데 “칼 막스”가 예언자 씨리즈에 들어 있었습니다. 왜 저 유물론자가 그리고 무신론자가 특별히 기독교를 비판하는데 앞장 섰던 그가 예언자 씨리즈에 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씨리즈를 펴낸 책의 의도를 읽으면서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칼 막스가 살았던 때는 참으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양극화가 심각할 때 였습니다. 당시 참으로 민중들이 엄청나게 고통당하였을 때인데 기독교와 교회는 그것을 외면하고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오히려 종교의 교의를 이용하여 피폐한 민중들의 고혈을 짜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래를 내려다보시고 눈을 찌뿌리시면서 반기독교를 세우시고 안티기독교가 되셔서 칼 막스를 예언자로 삼으셔서 당시 현상의 기독교를 질타하신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 몇 년 전에 제자교회 총회에 갔을 때 신학자 하비콕스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해서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을 때까지는 기독교는 예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황제 이후로 기독교는 아주 망쳐버렸다! 제일 처음에는 그렇게도 박해받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어 로마제국을 먹어버린 것과 같았는데 실제로는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삼켜 버린 꼴이 되었다! 나중에 기독교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로마제국과 같이 기독교에도 계급을 도입하여 부제 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의 제도를 만들었고 훗날에는 십자군이라는 미명아래 헤아릴 수 없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죽이고 그러지 않았느냐? 교리가 다르다고 화형에 처해 죽이고!! 이는 예수의 사랑과 정신은 간데없고 무력으로 모든 것은 제압하는 실질적인 제국주의가 되지 않았나? 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의 탈을 뒤집어 쓴 이리라 하였는데 역사적 기독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가 되고 말았다! 하였습니다. 그의 통찰은 옳습니다.
 
 
■ 기독교가 130 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기독교는 성경의 초대교회와도 같았습니다. 순수했고 영적이었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목숨이 단 한 개뿐인 것을 아쉬어 하면서 기쁨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조선 땅의 기독교는 불일듯 일어났고 당시 민줄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엄청나게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있다해도 예수님성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계셔야 할 예수님이 없고 대신 성공주의 제국주의 물질주의 바리새주의 세속주의 권력지상주의 성장주의 등 칠거지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미가 썩으면 더 천박하게 됩니다. 한국교회와 한국기독교의 문지방에서 흘러 보내는 오염물질은 국정원의 그것보다도 더 냄새나고 후쿠시마의 그것보다도 더 유해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개독교라 비판하는 저들 젊은 세력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 우리의 개독좀비성을 통찰시켜주는 예언자라 생각하고 “찌르는 가시와 같은 은혜”로 받아드리고 감사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이 없거나 예수님성이 희박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지금 맛을 잃은 소금인데 사람들이 밟는다고 그 밟는 저들을 비판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소금성을 잃은 우리를 탓하고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한국기독교와 한국교회의 성전문지방에서 흘려 보내는 물은 흐르고 흘러서 생명을 살리는 물이 아니라 이 사회까지도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기장출신 연세대 교수님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장의 한 여당국회의원이 자기를 찾아와 “목사님! 우리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이 차떼기를 시작한 원조가 아닙니다. 우리 교단 목사님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온갖 나쁜 물을 흘려 보내는 곳이 교회와 성직자인 것은 오늘날 놀랄 사실도 아닙니다. 기독교단마다 싸움질입니다. 한기총, 기하성, 성결교, 장로교의 합동과 통합, 모두가 사회법정에 가있거나 교단 내에 교단들 사이에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감리교는 감독회장 선거를 이제야 끝냈는데 지금 다시금 법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노회 안에서 법정 분쟁이 있어 민사조정을 위해 법정에 갔었는데 시간이 있어 부장판사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목사님 저희들은 교회들 사이의 분쟁 때문에 재판의 병목현상이 생겨 죽겠습니다. 교회와 목사님들은 우리가 보아도 쉽게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을 대법원까지 끌고 갑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판사가 조정을 시도했던 교단 내 재판 건도 결국 끝까지 가는 것으로 인해 조정이 되지 않고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 한국기독교와 한국교회는 그 문지방에서 온갖 썩은 물, 오염된 물을 내보내고 있어 사회 까지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타난 가치관이 아니라 힘있는 이가 다스리는 제국주의의 가치관이요 자본주의 보다도 더 심한 자본주의의 가치관이요 물질적이고 기복주의적인 가치관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이 땅에 힘있는 자들에게 붙어서 군사독재이데올로기를 떠받들어주고 독재자들을 위해 힘내라 우리가 있다 조찬기도회를 해주고 축복해 주고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남과 북 사이에 대화를 가로 막는 반통일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땅 한반도에 독소가 가득한 물, 오염부패된 물만을 한국교회는 흘려 보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기독교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압살하였고 통일을 가로 막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일에 공헌을 하였습니다. 언젠가 저는 텔레비전에서 공장폐수를 비오는 날 무단방출하다가 잡힌 현장을 취재한 것을 보았는데 그야말로 검은 썩은 독소가 가득한 유해물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오늘날 한국교회와 한국기독교와 다른 점은 저들은 비가 오는 날에만 몰래 방출하지만 한국기독교와 한국교회는 매주일 그 독소오염부패쓰레기를 끊임없이 방출하고 있는 점입니다. 저는 언젠가 기독교 티브이를 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순복음교회 한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은 남김없이 다 죽여야 한다”, “북한 정권과 군대 아말렉 군사들을 다 도람해야 한다”고 계속 섬찍한 소리를 해대는데 거기 있는 수많은 교인들은 아멘을 힘쳐 외치고 있었습니다.
 
 
■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올해로 60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역사 속에 흘러 오면서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독재정권과 싸우면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유신과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과 싸우면서 군사반란세력과 싸우면서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기도의 행진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많은 이들이 잡히거나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공민권을 박탈당하였습니다. 지나온 독재정권의 시절 기장은 한국교회 카톨릭과 개신교 중에서 유일하게 교단 전체가 독재와 저항하고 항거하는 투쟁을 전개해 왓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무수하게 많은 교역자와 신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반공법으로 잡혀 가고 장기구속이 되었습니다. 기장은 지나온 60 년 동안 정의의 강물로 평화의 강물로 생명의 강물로 흘러 또 흘렀습니다. 기장과 민주세력이 고난의 강물로 흘렀을 때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이전보다는 나은 민주사회를 이루어갔으며 생명이 존중되고 살아나는 사회를 지향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기장도 지금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저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힘있는 교회가 권세를 부릴 때 그런 교회 앞에서 주눅이 들려 열패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교회를 열망하고 그런 교회를 쫓아가려고 하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기장은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예수 정신을 지니고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여전히 예수님의 정의 평화 생명을 구현해 낼 때 비로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고 기장교회가 될 것입니다.
 
 
■ 기장성은 예수성입니다. 기장이 이제 60 갑자 한 갑자를 돌고 다시금 한 갑자를 시작함에 앞서 예수 안에 굳게 서서 예수님을 꼭 붙잡고 예수님의 정신으로 지난 60 년 동안도 그렇게 해왔듯이 앞으로도 새역사 100 년을 향해서도 예수님의 정의,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평화의 강물로 흐르고 또 흘러야 하겠습니다.
 
 
■ 저는 기장농목이 기장이라는 대열 가장 앞서서 무엇보다도 생명의 파도 생명의 물결을 일으키면서 향도하여 앞서 가시기를 바랍니다. 안치환의 노래처럼 “흘러 또 흘러서 타는 벼포기를 적셔 주어서 농부의 시름을 덜어주는 물”로 흐르시기를 바랍니다. 농목이 있어 기장의 희망이 되고 농촌과 농민과 농업의 희망이 되고 한국교회와 선교의 희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농목이 활동하는 농목이 맑은 물이 되어 흐르는 곳에서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그런 생명공동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농목이 주체가 되어 지난 총회에서 농촌선교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기장 생협을 만들기 위한 전초작업을 해 주신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이 생협이 활동하는 곳마다 농촌을 살리고 농부의 시름을 덜어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카톨릭농민회를 기억합니다. 유신시절 농민의 권익을 지켜 내고 이 땅의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결코 적지 않은 일을 수행해 내었습니다. 저는 우리 기장 농목이 농촌과 농업과 농민을 살려내는 어떤 커다란 물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장농목이 흐르고 흐르는 길목마다 존재하고 활동하는 영역마다 영혼이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나고 농촌교회가 살아나고 농민의 마음을 생기있게 하는 이 땅에 둘도 없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짠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농목이 흘러 흘러서 가는 곳마다 흐르는 곳마다 터치하는 곳마다 살려내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 저는 홍순관 씨가 지은 노래를 좋아합니다. “손이 시리면 / 따스히 만져주마 / 추운 날이면 / 두 볼을 감싸주마 / 너무 힘들거든 내게 기대보렴 / 눈물 나거든 내 품에 안기렴 / 냇물아 흘러흘러 강으로 가거라 / 맑은 물살 뒤척이며 강으로 가거라 / 힘을 내거라 강으로 가야지 / 힘을 내거라 바다로 가야지 / 흐린 물주기 이따금 만나거든 / 피하지말고 뒤엉켜가거라 / 강물아 흘러흘러 바다로 가거라 / 맑은물살 뒤척이며 바다로 가거라 / 힘을 내거라 강으로 가야지 / 힘을 내거라 바다로 가야지 / 흐린 물줄기 이따금 만나거든 / 피하지 말고 뒤엉켜가러라 / 강물아 흘러흘러 바다로 가거라 / 맑은 물살 뒤척이며 바다로 가거라” 저는 이 노래와 함께 농목이 이 땅의 농민들을 만져주고 감싸주고 안아주고 맑은 물살 뒤척이며 농민들을 사랑하면서 뒤엉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 또 하나의 시를 기장농목에게 드립니다. 안도현의 우물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 누군가 목이 말라서 /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 슬프지 않은 것은 /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는 기장농목이 흘러 흘러가는 물이 아니라 우물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끊임없이 샘솟아서 빈두레박이 내려왔을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는 맑은 우물이 되시어 기장농목회원을 만나는 이들마다 스치는 손길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회복되고 더 풍성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기장농목을 말할 수 없이 사랑해 주시고 기장농목을 통해 더더욱 생명살림의 역사를 더 크게 일으켜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 혼탁한 시대에 기장농목을 맑은 물로 삼으시어 이 시대의 시냇가로 가로질러 흐르게 하시고 많은 죽어가는 이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기장농목이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살을 뚝뚝 떼어주는 우물이 되게 하시고 흐르는 곳마다 샘솟는 곳마다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해 주시옵소서! 기장농목이 있어 존재하고 있어 활동하고 있어 이 땅의 농촌이 돌아오는 터전이 되게 하옵시고 농업이 소생하게 하옵시고 농민의 영혼도 살아나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맑은 물로 흐르고 흐르게 하옵시고 솟아나고 또 샘솟게 하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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