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온 커런트(Ms. Marion Current, 구애련)
2013년 11월 18일 별세하셨습니다. 구애련 선교동역자님은 1959년 1997년까지 38년동안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물리 치료사로 파송된 그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의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파견되어 22년동안 임상 물리 치료사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재활 분야에도 남다른 공헌을 담당한 의료 선교동역자였습니다. 1981년부터 97년 은퇴할 때까지 연세대 보건학과와 재활학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장례 예배는 고인께서 출석하셨던 교회(Dentonia Park United Church, 알파한인연합교회) 공동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일시: 2013년 11월 28일(목) 오전 11시
장소: Dentonia Park United Church (2550 Danforth Avenue, Toronto)
구애련 선교사님을 위한 추모사
우리가 태어난 땅, 대한민국을 너무나 사랑하신 구애련 선교사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날은 어두운 밤이었지만 구애련 선교사님의 얼굴빛과 같은 하얀 달님이 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그 하얀 달님을 바라볼 때에 너무나도 곱디고운 구 선교사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하얀 달님처럼 보이신 구애련 권사님이 이 땅에 오시어 빛을 비추기 시작하신 때는 1959년 9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그 시절, 선교사님이 밟으셨던 대한민국 땅은 황폐되어진 땅이었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겠지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국 땅을 강제로 침탈하여 36년 동안이나 할퀴다가 황급히 도망간 뒤 얼마 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두 손 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며 드린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기에 그 신앙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고 자유를 얻게 되었던 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좀 숨을 쉬면서 살아 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에 설상가상으로 구 권사님이 밟으셨던 대한민국은 한국동란으로 동족상잔을 가져 오게 되었으며 남과 북이 분단되어 모두가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커다란 아픔을 가지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들고 한국의 땅을 처음 밟으셨을 때 얼마나 황당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선교사님은 그냥 보기에도 너무나 아까운 예쁜 모습으로 서리 맞은 식물처럼 되어버려 살아야만 한다는 소망마저 포기해 버린 우리들을 찾아오신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희망을 주기 위해 한국 땅에 오신 것으로 고백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선교사님이 너무나 사랑하셨던 대한민국이 일제의 만행으로부터 벗어나 해방이 된 후에 한국 사람의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신학교를 세워 복음의 역군으로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학, 온전하지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소위 바리새인과 같은 보수교단들의 위선으로 우리 교단에게 폭압을 가하면서 김재준 목사님을 비롯하여 예언자적인 소명을 가진 목회자들을 밖으로 내 몰아 냈을 때였습니다. 여기에 미국 장로교회도 한국교회의 농간으로 우리 교단을 외면했을 때에 캐나다연합교회는 우리 교단의 진정한 신앙의 벗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의 벗 속에 구애련 선교사님이 계신 것은 하나님의 귀하신 뜻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아니 계셨더라면 그 고귀한 인생을 다 드려 헌신하기 위해 한국 땅에 오실 것을 결단할 수 있었겠습니까?
계란의 겉과 같이 얼굴은 하얗고 예쁘고 고운 모습이었지만 진정 사람의 가장 중심인 마음만큼은 계란의 노른자와 같이 완벽하게 한국 사람이 되어 버리신 구애련 선교사님,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에 계시지만 너무나 보고 싶은 선교사님! 잘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1953년 6월 10일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새 역사를 출범한지 6년이 흐른 1959년에 선교사님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척박한 한국 땅을 정의와 평화의 씨를 뿌려 경작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우리들은 기억합니다.
권사님! 생각이 나시겠지요! 구애련 선교사님이 인천항에 첫 발을 내디디셨을 때에 한국 땅은 얼마나 황량했었겠습니까? 그러한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도 선교사님의 선구자적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연세대학교에 재활학과가 없었을 때에 선교사님은 그 학교에 재할학과를 설치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신 것은 인생이 한번 와서 그냥 가는 길에서 큰 획을 그으신 것으로 되었습니다.
또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한국교회를 섬기시며 봉사의 손이 미치지 않으신 곳이 없는 너무나 귀한 흔적을 남기시었습니다. 구애련 선교사님의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으로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 정말로 구 선교사님을 보고 싶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 선교사님에게 주어진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의 길은 고스란히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위해 섬기시며 몸으로 드린 희생과 헌신을 기억할 때에, “구 선교사님,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정성을 다하여 수고하신 것이 그것뿐이겠습니까? 38년 동안 한국에 계시면서 이루어 놓은 신 그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연세대학교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물리 치료사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신 것도 엄청 힘드셨을 터인데 구 선교사님이 진정 사랑하신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를 통해 펼치신 귀하신 활동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농촌교회를 위해서도, 그리고 여신도회의 폭넓은 교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참으로 선교적 관심으로 앞장을 서시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뿌리인 교회를 섬기시는 것도 대단한 열정이셨습니다. 우리 교단의 보광동 교회를 섬기시며 성남교회에서는 권사의 직분으로 성가대에서도 봉사를 하셨으니 권사님이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를 우리들도 배우고 몸으로 익혀서 권사님이 걸으셨던 신앙의 길을 우리도 걸어 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짐하겠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의 말씀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신 구애련 선교사님의 귀하신 신앙의 뜻을 따라 우리들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마음으로 깊이 새겨 봅니다.
구애련 선교사님, 권사님이 좋아하시고 사랑하시어 늘 가까이 지내시던 서고도 목사님, 문익환 목사님도 만나셨지요! 그리고 어둡고 추웠던 이 나라에 미래를 심어 주기 위한 민주화운동을 통해 빛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온 힘을 다하셨던 기장의 예언자들을 만나시어 지금은 즐거운 잔치 자리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구애련 선교사님, 선교사님에 부탁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국에 계실 동안 평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시며 헌신하신 우리 교단이 드리고 있는 평화통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어 어서 속히 이 땅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꼭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쉬지 마시고 꼭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켜 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애련 선교사님이 노심초사하셨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가시어 이웃의 어려움을 기억하며 장애우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신 일들은 이제 구 선교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 기장이 열심을 다하여 계속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구 선교사님, 구 권사님,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우리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권사님 그 때는 지금 다 못 드린 말씀을 꼭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애련 선교사님과 가까운 친족 분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모든 힘을 다해 기도로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고 있는 캐나다연합교회 위에도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함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3년 11월 28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박 동 일
총 무 배 태 진
MEMORIAL MESSAGE – KU AE RYUN
It is my honour and privilege to express our regards here today for our dear friend and sister in Christ, Marion Current. We know her by her Korean name, Ku Ae Ryeon, Missionary; she has a very important place in the heart of our nation.
Ku Ae Ryeon came to Korea in 1959 at the age of 27 to serve in the medical profession; Korea became her home until her retirement in 1997 when she returned to Canada. It has been a great blessing for u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PROK) and for Korea as a whole to have been joined by so many colleagues from Canada who have served this land and people with their talents, hearts and lives. Ku Ae Ryeon Sonkyosa came to practise Physical and Occupational Therapy at Severance Hospital and later taught in this field as Professor of Physiotherapy at Yonsei University in Wonju from 1981 to 1997. In the days when she began to work here, Koreans had almost no understanding of the need for or importance of Physical and Occupational Therapy in improving peoples’ lives. Marion was instrumental in opening up the rehabilitation field in Korea. For her dedication and commitment to the improvement of health sciences and practice in this country, she received an award from the Minister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of the ROK in 1996. More importantly, she influenced the lives of many practitioners of Physical and Occupational Therapy who studied with her. She became a close friend and mentor to many of her former students, and for many years after her retirement she continued to return regularly to visit and encourage them. In 2010, Yonsei University honoured her by naming a classroom in the new health science building at its campus in Wonju after her. She was able to attend this award ceremony and visited many friends; that was her last visit.
Ku Ae Ryeon’s passing is a great loss to us here. We remember her as a Missionary, a coworker who shared the light and love of Jesus Christ through her whole life.
She served our PROK in many different ways throughout the many changes in the Korea situation, including the congregational ministry of Songnam Church in Seoul. Songnam Church will hold a memorial service in her honour during December.
As all the Canadians did, Ku Ae Ryeon participated wholeheartedly in the Korean democracy movement. Since she returned to Canada, she has retained her strong interest in Korea and remained an ardent ally of our country, especially for its reunification. We thank her from the bottom of our hearts for her love and service to our people.
“Well done, Ku Ae Ryeon, good and faithful servant. Enter thou into the joy of thy Lord.” Although this is a time of sorrow, we rejoice that she has received her heavenly reward, and we offer our prayers for the comfort of her family and friends who keenly mourn her passing.
Thank you for this opportunity to share in this service of celebration of Marion’s life.
Rev. Park Dong IL, Moderator,
Rev. Bae Tae Jin, General Secretary,
Presbyterian Church in the Republic of Korea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6:2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