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일(주일) 오후 4시 30분 성능교회 강성호 목사 담임목사 취임식
성경본문 : 에베소서 6 장 5 절 ~ 7 절
제 목 :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담임목사를 로 취임하시는 강성호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담임목사를 모시기 위해 지금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오다가 마침내 그 기도의 성취를 보게 된 성능교회 성도님들 위에 오늘 이 예전을 집전해 주시는 서울북노회 노회장 지인성 목사님과 축도를 해주실 유원규 목사님, 권면을 해 주실 김민수 목사님, 축가를 해 주신 전예랑 교수님을 비롯하여 순서를 맡아주신 한 분 한 분 귀하신 분들 위에 축하하시고 축복하시고자 나아오신 모든 분들 위에 무엇보다도 이 교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계신 강만원 증경총회장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능교회가 오늘 담임목사 취임을 계기로 하여 그 이름 그대로 성령의 거룩한 능력 안에 있는 교회로서 주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전하는 초대교회를 더욱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 오늘 성경본문 에베소서 6 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감옥에 있으면서 소아시아 에베소에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5 절을 보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자유의 복음은 에베소에 사는 종의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고 에베소 역시도 로마의 통치자들과 토착지배층들의 지배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유인들이었고 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예계급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한 편으로는 지배계급에게도 전하여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노예계급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특별히 복음 안에는 강한 자유의 누룩을 지니고 있었음으로 인해 종들 계층에 환호성과 함께 받아드려졌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가 차별이 없고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다고 전하였습니다. 종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맛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데 그런 믿음이 들어가자 기존에 자신들이 모시던 상전을 무시하거나 상전을 모시는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에베소의 상전들 즉 지배계급들은 저것들 노예계급인 종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더니 시건방을 떨고 마치 자기가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무슨 나쁜 사상에 전염이 될까봐 아예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못나가도록 금지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필을 들어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기쁜 마음으로 상전을 섬기되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그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진행되는 일을 로마의 감옥에서 요리저리 따져보았을 것입니다. “만약 상전들과 종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점점 더 증폭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전들 계급에서는 종들이 하는 것을 보고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려는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은 종자로 여길 것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화해의 복음이 저들에게 통하여 전해지기 보다는 방해 받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의 발에 끼인 때를 닦아주신 것처럼 사랑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영적으로 유익인가를 깊이 통찰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더 성실하게 신실하게 주어진 종의 역할을 잘할 때 저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저들 종들을 통해 복음이 더 잘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종전의 주장인 그리스도 안에는 종과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조화할 것이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종이 되셔서 종으로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데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이 되어 섬기라 그리고 섬기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섬기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라 한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로마제국의 지배계급 안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어떤 촉진제가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 사도 바울의 이같은 생각은 에베소 상황을 놓고 기도하였을 때 성령께서 주신 감동으로 그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때의 상황에서 오늘의 상황으로 옮겨오고자 합니다. 보통 목회자들을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의 직분을 소개하는데 근거합니다. 그러고 보면 강성호 목사님도 “주의 종”입니다. 주의 종은 주님만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위탁하신 양떼들을 섬기는 종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으니 그 위임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동시에 양떼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이중적 종의 사역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만 섬기고 주님 이외에 다른 성도들에게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서는 그 어느 편으로도 종으로서 사역하였습니다.
■ 오늘 성경본문에 근거하여 저는 오늘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강성호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첫째 상전을 섬기듯이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총회본부의 간사와 부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여직원들은 평신도였습니다. 밥을 먹는데 한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의 종이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거든요!” “맞아요 틀려요!” 해서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 종의 높아요? 딸이 높아요?” 해서 “당연히 딸이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목사님!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오세요!” 해서 말없이 커피를 대령해다 바쳤습니다. 주의 종은 높임을 받는 직책이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서도 종은 섬기는 직책이요 땅을 향해서도 종은 사람을 섬기는 직책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섬겨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직책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듯이 양떼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섬기는 직책과 직분이 주의 종인 것입니다. 종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바로 섬길 때 나오는 것이며 죽기까지 섬길 때 거기에서 진정한 영적 리더쉽이 나오게 됩니다.
■ 오늘 성경본문에 근거하여 저는 오늘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강성호 목사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섬길 때 둘째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란 주로 섬기는 일인데 그 일을 억지로 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듯이 하면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5 장 2 절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자원함이란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라는 뜻입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할 때 보람과 의미가 차오르고 일을 하면 할수록 하늘나라가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목회가 그러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주께서 “내가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기고 누가 이 일을 할 꼬?” 하였을 때 사역자가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 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일은 상전이 되어 존귀함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순전히 종의 일들로만 채워져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종으로서 사역을 할 때 주님께서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불러 주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그 종의 일들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나에게 일을 시키셨으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도 가득히 주실 것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일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할 때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장 3 절에 뒤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자원함으로 하고 기쁨으로 하되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목에다 힘을 주어 할 때는 종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가 임직하고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축사를 하러 자주 갑니다. 한 번은 담임목사 취임 축사를 하는데 목포시장인 분과 함께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자기가 목포시장이 되어 목포에 있는 교회들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는데 부흥하는 교회들과 쇠퇴하는 교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오랜 정치생활 속에서 뭔가 하나 감이 잡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자기 나름대로 교회는 딱 두 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가 목사한테 맞먹으려 하지 않고 목사가 목에다 힘을 주지 않으면 즉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자기가 보니까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목포시장의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경험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강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교회에 부임하여 아직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 사택에 와서 청소도 해 주고 화장지나 필요물품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거실에서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나이 든 집사님 한 분이 정색을 하면서 “목사님! 아파트에 사시면서 쓰레기도 주으시고 계단 청소도 하고 그러세요!”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강진읍교회가 강(强) 자(字)로 시작하고 강하다고 들었는데 집사부터가 강하고 쎄구나!”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오지 말아야 할 교회에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집사가 자기 담임목사한테 농담도 아니고 진담으로 쓰레기도 줍고 계단청소도 하고 그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무슨 노래가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강진읍교회에서 4~5 년을 목회하는 가운데 그 집사님은 참으로 착하고 온순하신 분으로 그렇게 강하게 말하실 분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엔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아하! 하나님께서 망아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내가 자고할까봐 그 집사님을 통해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목회를 하면서 폼을 잡지 않고 목에다 힘주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마음으로 하였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목회초기에 지침을 주신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여 강진읍교회의 목회를 큰 실수 없이 마치게 되었습니다.
■ 마지막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근거하여 저는 오늘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강성호 목사님께서 주께 하듯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에 다녔습니다. 나중에 한신대가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과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4 년 동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2 년 반 동안 다녔습니다. 당시 수유리 캠퍼스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6 년 반 동안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식판을 받는 정면에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밥을 타려면 반드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6 년 반 동안 그 그림을 보아왔다면 괄호 열고 (365 곱하기 세끼 곱하기 6년 괄호 닫고 더하기 괄호열고 (183 일 곱하기 세끼 괄호닫고 ) 하면 이론상으로는 7110 번 그 그림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시는 그 그림이 채플실 들어가는 입구에 걸려 있지 않고 왜 식당에 그것도 밥을 타먹는 정면에 걸려 있어 밥을 먹을 때마다 그 그림을 보아야 하는가?” 그러다가 뭔가 가슴에 걸려 오는 것이 어떤 음성과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너도 발을 씻어주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학교 6 년 반을 다니면서 제가 봉사하는 교회에서 발을 씻어주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을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일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종이 되어 일하신 것은 하늘 아버지에게 대한 것만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발을 씻어주시는 섬기는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종으로서 일을 할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듯이 성도들의 발을 씻어줄 때가 내가 주님의 발을 씻어드린다는 자세로 봉사하는 것이 바로 주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事人如天인 것입니다.
■ 오늘 말씀에 따라 담임목사로 취임하시는 강성호 목사님은 에베소서 6 장 7 절에서 말씀하는 종이 지녀야 할 세 가지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해당되시는 종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목사님은 섬기는 종으로서 사역을 잘하실 텐데 오늘 성경말씀을 부여잡고 더욱 발을 씻어주시는 목회를 하실 것으로 믿고 성능교회는 그런 점에서 오실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였는데 은총의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지 성도들의 종이 아니다고 강변합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군림합니다. 그것은 틀린 행동입니다. 목자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만 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죄인들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섬기셨고 친히 나는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음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셨습니다. 저는 진실로 우리 강성호 담임목사님이 성능교회 목회사역을 하면서 온유하신 우리 예수님을 더욱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기 전에 강성호 목사님께서는 뜨겁게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섬기고 아울러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능교회 성도님들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실 것이며 기쁜 마음으로 섬기실 것이고 양떼들을 섬기실 때 상전을 섬기듯이 섬겨 양무리의 본이 되실 것입니다.
■ 어린이 솔티가 부르는 노래 중 그런 가사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섬기면 주님나라 이뤄지리! 주님나라 이뤄지리라!” 그렇습니다. 세상나라는 지배하고자 하고 남을 딛고서라도 올라서려 하고 섬김을 받으려 하고 그런 가운데 강짜와 폭력을 쓰고 그래서 스트레스와 싸움과 악이 동시에 증가하는 나라이지만 하늘나라는 정반대입니다. 서로 섬기면서 서로 발을 씻어주면서 서로가 기쁘고 서로가 즐거운 나라입니다. 오늘 강성호 담임목사 취임을 계기로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북노회 성능교회는 역사적 예수님을 닮아 서로 섬기면서 주님의 나라의 평수를 그 어느 교회보다 더 넓혀 가는 교회가 되시기를 성령님의 능력이 충만한 성능교회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은총의 하나님께서 값주고 피로 사신 성능교회에 섬기는 사역을 부여해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려 하는 성능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의 양떼들을 섬길 때 주께 하듯 하게하시고 자원함으로 기쁘게 하게 하시고 이 땅위에 하늘나라를 이루어가는 주님의 사역에 더욱 힘차게 동참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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