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의 역사와 과제 특강
일 시 : 2014년 1월 14일(화) 오후 7시40분
장 소 : 아카데미하우스 새벽의 집
모 임 : 2014 년 신년하례예배 및 사회복지종사자 대회 전진대회
□ 2014년 신년하례와 사회복지 종사자 전진대회에 나아오신 한 분 한분 귀하신 분들 위에, 헤예베레카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외서 보니 박동일 총회장님과 부총회장이신 황용대 목사님도 사회복지사이신데 이 자리에서 오직 저만 사회복지사가 아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아내가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사회복지에 관하여 특강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직책이 한기장복지재단 상임이사이기 때문에 아마도 자리를 넣어놓은 것 같습니다. 어떤 훌륭한 강의는 그 다음에 강의하시는 양진규 목사님에게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 “헤예 베레카”의 은총을 말씀드렸는데, 여러분들이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헤예 베레카”가 뭘까? 제가 언제인가 TV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어떤 분이 100세가 넘었는데, 히브리어 원어를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00세가 넘은 고조할아버지쯤 되시는 분이 그 연세에 왜 히브리어를 공부를 할까 했는데, 그 프로그램이 전하는 바가 두 가지였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게 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것과, 인생에서 어떤 목표가 설정이 되면 그것 역시 뇌와 온 몸을 활성화시키는 요인이 되어 장수로 이어진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원어로 읽으려는 거룩한 뜻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의 눈의 총기는 1~20년은 더 살고 남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 “헤예 베레카”는 히브리어입니다. ‘헤예!!’는 “당신이여!” “너여!” 그런 뜻이고, “베레카”는 하늘이 주신 복을 말합니다. 둘을 함께 부르면 “당신은 하늘의 복받을 사람이여!” “당신은 축복의 샘터여!” “당신은 축복의 통로여!”(the channel of peace) “당신은 축복의 물줄기여!”로서, 이는 전형적인 축복의 말입니다. 하늘의 복이 평강, 성장, 진보, 기쁨, 건강, 생명, 행복 등등이 다 포함되어있고, 그것을 맘껏 나누어주어도 또 다시 샘솟아나는 복이라 할 때, “헤예 베레카”는 지구상에서 축복할 수 있는 최고, 최상, 최선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시인 안도현의 “우물”이라는 시가 생각나십니까?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헤예 베레카”의 복은 넘치도록 담아주어도 어느 새 또 담아주도록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자유롭게 일어나 돌아가시면서, 꼭 안아주시면서 “헤예 베레카”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 서로가 축복해주니까 좋지요! 내가 이 땅에서 축복하고 살면 하늘에서 지켜보시고, 흐뭇하게 지켜보시고, 내 삶의 두레박에 베레카를 담아주시고, 또 담아주셔서 자꾸자꾸 담아주셔서 또 퍼주고, 자꾸 퍼줄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3 장 12 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축복하는 자에게 더 축복할 수 있도록 복을 더하여 주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 오늘 “헤예베레카” 이 축복을 꼭 암기하시고, 연습하셔서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면 집에서 자녀들에게 헤예 베레카로 축복하시고 여러분들이 섬기고 있는 현장과 기관에서 함께 일하는 일꾼들과 clients들에게도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 분이 병상에 누워 계신다면, 몸을 숙여 꼭 안아주시면서 “헤예 베레카”하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쌀쌀했던 분위기가 “뽀땃”하게 바뀌어져 갈 것입니다. “뽀땃”이 뭘까요? “포근하고 따뜻하게” 라는 사투리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요양원에서 계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꼭 헤예 베레카 축복하고 안아드렸습니다. 한번씩 안아주고 축복한 것 뿐인데도 어두침침한 분위기는 밝고 환하게 바뀌어져 가고 쌀쌀한 분위기는 온후하게 바뀌어 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 이왕이면, 내가 섬기는 clients들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시고, 아주 누추하고, 아주 힘없고, 늙어가고, 병든 모습으로 말할 수 없이 외로운 모습으로 분장하여 오시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시고 저들을 축복하며 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연습해 보겠습니다. 앞에 있고, 뒤에 있고, 옆에 있는 분이 지극히 적은 자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계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헤예 베레카 예수님”하고 꼭 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안아주면서 “헤예 베레카”를 잘한다면 이거 하나만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잘한다면 여러분들은 복지의 서비스의 질을 상당한 정도로 높이게 될 것이고 오늘 제 강의는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1mm 정도 이뤘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섬기는 클라이언트 한분 한분을 예수님이라 여기면서, 예수님을 섬기듯이 섬긴다면 바로 그곳에서 하늘나라가 잉태되고 만들어질 것입니다.
□ 테레사 수녀님이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굶어죽는다면, 그것 하나님이 보살펴주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에게 빵 한 조각과 옷 한 벌을 주지 않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랑의 도구가 되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몸이 꽁꽁 얼어 죽어가는 모습으로, 굶어 죽어가는 모습으로, 외로운 이의 모습으로 길 잃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장사’란 표현을 써서 여러분 이상할 지 모르지만 예수님도 하늘나라 비유를 하면서 장사하는 것으로 비유하실 때가 있으셨습니다. 왜 한국기독교가 장사가 안 될까? 기독교의 각종통계 자료와 지수를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예장통합 같은 경우는 지지난해 약 5만 명이 감소한 것으로 보고하였습니다. 한 해에 약 10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500 개가 사라진 것입니다. 예장통합만이 아니라 기장을 포함해 모든 개신교단의 교인수가 엄청난 비율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순복음교회와 예장합동의 교회들은 통합보다도 훨씬 더 큰 비율로 성도들이 감축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전반이 1970 년대 급상승하다가 1980 년대 완만한 성장 1990 년대 성장도 하강도 없다가 2000 년대부터 성도수가 하강하는데 2010 년대에는 그 하강곡선이 더욱 비탈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지금 세계 카톨릭교회와 한국 카톨릭교회는 아주 장사가 잘 되고 있습니다. 세계 카톨릭 교회는 교황 프란치스꼬 때문에 그이 발언과 행보가 유례없는 인기를 얻는 가운데 장사가 잘 되고 한국 카톨릭교회의 경우는 대부분이 정의구현사제단의 활약이 카톨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개신교가 장사가 안된 것은 개신교 안에 그 요인이 있습니다.한국교회는 지금 네티즌들로부터 “개독교”라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단순히 안티기독교 사탄의 무리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야단칠지탄을 받을 만하지요! 한기총과 연합기관의 분열, 한기총의 정권옹호 발언,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 감리교의 사회법정과 분쟁, 수천억대 교회건축! 대형교회의 자녀세습!! 지나친 교리주의와 개교회주의!! 복음보다도 자본주의 물질주의를 예수로 섬기는 일!! 등등 개독교를 입증 할 수 있는 근거들과 재료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전혀 예수님의 빛, 소금, 누룩, 편지, 향기가 되지 못하고 있기에 한국국민들로부터 한국교회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가 되게 된 가장 확실한 원인과 이유는 기독교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없는 가운데, 각종 종교의 독선과 교리들이 악독을 뿜어내고 판을 치기에, 비본질적인 것들이 본질을 쫒아버렸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정확하게 믿고 기독교를 개독교회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간디가 말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의 신도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의 가르침과 반대로 말하고 행동하더군요!! 앞으로 한국기독교가 계속하여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이제 3-40 년이 지나면 기독교란 존재는 지극히 미미한 소수자가 될 것입니다.
□ 1953년에 기장이 출범했으니 올해로 61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나이를 보면 환갑인데, 그래서 60주년이 되는 2013년 작년에 새 역사 6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컨셉을 어떻게 잡았느냐 하면 환갑이란 돌 ‘還’자에 甲할 때 ‘갑’이니까 “다시 갑으로 돌아간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니까 그 원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혹은 “예수님”으로 잡았습니다. 한국교회가 일그러진 자화상을 갖게 된 것은 예수님에게서 떠나있고, 예수님 정신과 상관없이 있었기 때문인데, 기장 60주년도 예수님에게로 되돌아가자, 그런 컨셉을 잡은 거예요! 그래서 총회주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새로워지는 교회”로 삼았습니다. 2017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지만, 종교 개혁도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Sola Scriptura) 아니었습니까? 기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딱 밀착이 되어 있어서 예수 정신에 따라 사는 원형(Archtype)이 되는 교회가 되어보자는데 강조점을 둔 것입니다.
□ 작년 2013 년 11월과 12월에 세계교회협의회 10차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총회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였습니다. 세계교회는 정의가 박살나고, 평화가 깨지고, 생명이 오그라드는 오늘의 현실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 예수그리스도의 평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제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이미 약 40 여년전에 기장의 창설자이신 김재준 목사님께서 한국교회가 지녀야 할 3大 가치로 말씀하시고 줄곧 서예 작품으로 써오셨습니다. 세계교회가 정의 평화 생명을 말하기 훨씬 이전에 김재준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녀야할 가치를 명료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 평화와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토록 비난받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 기장이 출범된 것은 한국교회가 교리주의, 바리새주의, 독선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예수정신이 아니다!” 부정하여 출범된 것입니다. 1950 년 당시에 한국교회는 예수정신의 중심에 있기 보다는 각종 교리주의, 문자주의, 독선바리새주의에 사로잡혀 상대방을 정죄하고, 이단이라 내몰고 하던 때에,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똑같은 그런 짓들을 했는데,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고자 출애굽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장은 또 하나의 교단을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예수성 복음성을 그대로 살리고자 하다가 축출이 된 것입니다.
□ 기장은 출범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이 땅 한반도에서 예수님의 정의, 평화, 생명 정신을 구현하고자 인권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생명운동, 복지운동을 하나님나라 운동으로 전진해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기장은 수많은 고난과 엄청난 고초를 당했습니다. 예장교회와 한국개신교들은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지, 그런 사회운동, 통일운동, 인권운동을 하면 교회가 아닌 교회인 것이며 이단이라 정죄하고 기장을 한국교회에서 쫓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또 민주화와 인권 통일운동을 하니까 당시 독재정부는 기장을 빨갱이, 좌파집단이라고 매도하고, 기장교회와 교인들을 엄청나게 박해하고 핍박했습니다.
□ 저는 약 25년 전에 기장총회 간사로 일했을 때, 당시 교회와 사회 위원회에서 유신과 군사독재시절 구속된 이들, 학생, 교역자, 신도, 교수 등등을 다 조사했었을 때 천명이 넘는 이들이 옥에 가고 갇히고 죽고 고문을 당하고 해직되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그랬습니다. 기장을 아는 어떤 분은 기장을 노밸평화상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고도 하였습니다. 당시 하나의 공동체로서 기장만큼 많은 고난을 당한 공동체는 그 어디도 없을 것입니다. 문익환, 문동환, 장준하, 안병무, 서남동, 이해동, 박노해, 이우정, 이해학, 김관석, 박형규 당시 수년 씩 수 십년 씩 옥에 갇혔던 이름을 다 헤아리기 힘들 것입니다. 기장이 6-70년 대 인권과 민주화운동을 하고, 7-80년대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고, 8-90년대 통일운동과 생명운동을 중점적으로 하게 된 것은 무슨 사회운동이나 단지 반정부 운동을 하기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딱 한기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길을 곱게 따라가고자 한 것,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한 것 외에 결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것이지요!
□ 저는 해외에 나가면 우리 파트너 교회들이 민중신학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아는 민중의 개념에 대하여 말합니다. 오늘 온 세계 신학이 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운동도 기장과 한신에 의해서 일으켜진 것입니다. 더 넓게 보면 민중신학은 한반도라는 Context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신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란 “Missio Dei"로서, 하나님께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역사, 노동, 모든 면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자 일하시는데, 우리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하신 말씀처럼, 이 세상의 여러 현장에서 주님과 함께 일한다는 신앙고백이고 신학입니다.
□ 민중과 함께 하는 민중운동이 민중교회운동과 함께 일어났고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다가 민중신학이 태동되었습니다. 민중교회운동은 다른 한 편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운동이었습니다. 민중교회운동 속에서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운동이 일어났고, “야학”이나 여러 바닥공동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교신학은 하나님의 봉사신학으로 더욱 확장, 심화되었습니다. “Missio Dei”는 “Diakonia Dei” (하나님의 봉사)로 발전을 거듭한 것입니다.
□ 어떻게 보면 기장의 민중운동, 민중교회 운동과 민중 신학운동은 오늘날 사회복지 선교로 열매 맺어지는 어떤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야학”이 오늘날 복지기관 중의 하나인 “지역사회학교”가 된 것이 그 하나의 일례입니다. 기장의 복지선교가 오늘날, 어느 종파, 어느 교파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지경에 이르게 된데에는 기장의 민중교회운동과 민중신학의 토양에서 발아된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날 한기장 복지재단이 시설만 해도 127개를 운영하고. 기장소속 교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유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것을 다 합친다면 480여개를 기장의 복지선교는 이제까지 “Missio Dei”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시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기장복지 재단은 새로운 Kairos의 지점에 와 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철저히 제국의 종교로 예속되어 예수의 가르침의 중핵을 잃어버린 것처럼 한기장이 복지선교를 시작할 시점의 신앙과 정신, 초기와 원형의 모습을 그리면서 reform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기장복지재단이 이제 큰 기관이 되어 마치 제국주의와 같이 힘있는 자의 입장에서 복지선교를 마치 시혜를 주는 것과 같이 제공한다면 우리는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로 로마의 제국주의에 함몰된 것과 같은 우를 또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저는 복지선교는 예수님의 사랑과 정신에 굳게 매어져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잃으면 우리 한기장복지재단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입니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복음성가가 있습니다만, 복지선교가 예수님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강진읍교회에서 일할 때, 강진군 노인전문요양원을 군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인전문요양원을 위탁한 이후의 제 초기의 생각과 행동들은 잘못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노인전문요양원을 통해 강진읍교회, 교회성장을 꾀하려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순한 의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인전문요양원을 통해 하늘의 거룩한 뜻이 이뤄지기를 하나님의 사랑이 편만하게 저들 영혼 속에 펼쳐지기를 기도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교인수를 그것을 통해 늘릴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복지와 선교를 지나치게 결합시키려 했고 그 선교가 하나님의 선교의 그 선교가 아니었습니다. “Missio Dei”의 신학과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너에게 복지기관에서 일하게 할 터이니, 너는 우리교회에 등록하고. 우리교회 예배 잘 드려야 하는거야 하는 맞바꾸는 式을 생각한 것입니다. 복지기관을 시작하거나 복지시설을 위탁하려할 때 목회자가 쉽게 가질 수 있고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 아주 정성껏,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대접하고 그래서 저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오도록 하는 진정한 선교의 방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Jesuit 수도자들이 타선교지역에 가기 전에 서약을 한다고 합니다. 결코 예수를 말하지 않겠다는 서약입니다. 저들을 위해 일하고, 발씻어주고 헌신할 때 원주민이 너 왜 이득도 생기는 게 아닌데 우릴 위해 그런 일 하니 할 때, 단 한마디 할 수 있습니다. “Because of Jesus" "예수님 때문에”입니다! 예수를 들이대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예수를 복지와 바꾸고 예수를 일자리와 연결시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잘못 대접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선교를 가장한 제국주의이고 주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 복지기관들이 지나치게 복지와 믿음, 복지와 선교를 맞바꾸려할 때 그 무리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거나, 개독의 영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 선교는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 발을 씻어주어 client들을 섬길 때, 저들이 그 섬김을 보고 감동이 될 때 선교의 알곡이 맺혀지는 순간입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 4년을 다녔고, 그 후에 한국신학대학이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년 반을 수유리 캠퍼스에서 다녔습니다. 그때 캠퍼스 식당에는 밥을 하는 그 자리 바로위에 대형 유화가 걸려있었는데 주님께서 무릎을 꿇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게 되면 반드시 그 유화를 보게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근데 몇 번 정도 봤을까 따져 보았더니 이런 수학의 셈이 나왔습니다. (365×6×3)+(183×3)=7110 번이 나옵니다. 언젠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저 그림을 채플실에 걸어두지 않고 밥을 타는 정면에 걸어 두었을까 생각하는데 문득 이런 것 하나가 제 속에 걸려왔습니다. “그래 너도 밥 먹고 힘내서 주님처럼 발 씻어주어라!” 그 메시지가 제게 오롯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누군가 내 발을 씻겨주는 그래서 의자에 앉아있는 자리에 있었고, 그런 자리를 선호했지, 무릎을 꿇고 수건을 허리에 동이고 발을 씻어주는 자리에 있지 않았었는지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저는 우리 한기장복지재단의 모든 일꾼들이 무릎 꿇고 발을 씻어주는 그 자리에 예수님의 자리에 우리 모두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가 우리 함께 좋은 강의를 듣고, 주님 안에서 친교도 나누고 한 식당에서 밥도 먹고, 힘을 내서 2014년 새해 주님이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주는 그 자리에 우리 모두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마지막으로 저는 백창우 선생의 노래가사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위에 따뜻한 햇볕만큼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저와 한기장복지재단의 일꾼들이 각각의 일터에서 기쁨으로 일하면서 노래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따뜻한 햇볕 한줌 한줌을 나누시기를 바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온기를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헤예 베레카!”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