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관리자 2010-10-18 (월) 22:38 13년전 4571  
 

2001 년 6 월 24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 교회


성경본문 : 요한복음 20 장 19 절 - 21 절, 마태복음 10 장 12 절  

제       목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의 은총이 가나안 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가 각 집을 심방한 일이십니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에서 동가숙 서가식하시면서 함께 음식도 함께 잡수시고, 아픈 이들을 고쳐 주셨으며 거기서 하룻밤을 유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각 집을 심방하실 때 제일 처음 무슨 일이나 혹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악수를 하면서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인사를 했을까 아니면 집의 주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초대해 줘서 고맙네! 그렇게 말씀하였을까? 성경 요한복음 20 장 19 절에서 21 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시어 하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이 모여 있는 집에 들어가시어 그 집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시던 도중에 또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21  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왜 한 집에 들어가셔서 그 집 가운데 서시어 두 번씩이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두 번씩 되풀이 하셨다면 이는 매우 중요하여 강조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십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화제가 무르익는 가운데 무슨 날자 이야기가 나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러고 보니 낼 모레가 내 생일인 것 같으네!” 그렇게 한번 얘기하고 나서는 다른 얘기를 한참 하다가 또 중간쯤에 “참 그런데 너희들 내 생일날 뭘 사가지고 오지 말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거기 참석자들은 눛치를 얼른 챕니다. “음! 저 녀석 생일에 안가면 그리고 뭘 사가지고 안가면 찍히겠구나!” 다시말하면 그 친구는 자기 생일을 다른 표현 방식으로 두 번이나 강조한 것입니다. 자, 예수님께서 집에 가시어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두 번씩이나 말씀하신 것은 집에 평강이 있어야 함을 강하게 역설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집의 한 가운데 서시어 “평강이 있을찌어다” 말씀하셨을까? 요한복음 20 장 19 절은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집의 한 가운데 서시어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말씀하신 그 깊은 뜻이 무엇일까? 어떤 고승에게 한 제자가 찾아가 가르침을 달라고 했습니다. 고승은 말없이 죽장을 세 번 땅에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어떤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제자는 새벽 삼경에 스승을 다시 찾아갔고 그리고 그는 거기서 법어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집 중앙에 서서 두 번씩이나 같은 말씀을 하셨다면 어떤 깊은 가르침이 있었을 텐데 그 가르침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집의 한 중앙에 집의 한 가운데 평강이 있고 또 있도록 기도해야함을 가르치신게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평강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중요한 것이며 도대체 평강이 집에 왜 한 가운데 있어야만 하길래 가운데 서서 평강을 두 번씩이나 빌었을까?“ 평강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 봅시다. 샬롬!! 옆에 사람에게 우리도 예수님처럼 두 번씩 샬롬!! 샬롬!! 하면서 인사해봅시다. 샬롬!!입니다. 발음을 잘하십시오. 잘못하면 이상하게 들립니다. 성경에서는 이 샬롬을 다양하게 말합니다. 평강, 평화, 평안, 화평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원성경원어는 같은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안 플러스 평강 플러스 평화입니다. 우리도 안녕!이란 말을 인사말로 씁니다. 안녕하세요? 밤새 별고 없으셨습니까? 우리나라가 지난 역사 속에서 하두 약한 나라가 되어서 강한 나라에게 969 번씩이나 침략을 당하다보니 밤새 무고하셨습니까? 밤새 별고 없으셨습니까?의 인사가 “안녕하셨습니까?”로 정착되었습니다. 아마 6. 25 전후에는 이 인사가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IMF 이후에는 직장인들에게도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는 직장에서 정리해고 되지 않았느냐?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녕의 의미는 샬롬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안녕은 별고가 없는 것 무사한 것을 뜻하는 데 비해 샬롬은 보다 단지 별고가 없고 무사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화를 말합니다. 하늘의 평화는 단지 분쟁이나 싸움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서 하늘이 주시는 기쁨으로 서로 기쁘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469 장 후렴에 보면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의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하늘에서 나리어 주시는 좋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물결이 덮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 20 장 21 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을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신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이는 “아버지께서 평강을 위해 나를 부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평강을 위해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각 집에 심방을 보내면서 사전교육을 시키시는 내용이 마태복음 10 장 11 절과 12 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집에 들어갈 때 평안을 빌라고 하셨으니 우리도 집에 들어갈 때는 평화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의 집을 방문할 때 첫마디가 “야, 가구가 좋습니다”, 라든지 “이 집 몇평입니까?”, “얼마 주셨어요? 전세입니까?” (우리 아들 - 오살나게 좁은 집에서 살았다 다른 집에 놀러가면 이 집 몇평이예요?) 그러게 묻기 보다는 제일 첫마디가 “주님의 평화가 이 집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간단하게 샬롬!하면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집의 평안을 빌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처하는 집은 셋입니다. 우리집, 부모집, 처가집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도 평안을 빌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평강을 빌어야 할 집은 세 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집 셋을 만드셨습니다. 하나씩 살펴 봅시다.  


첫 번 째 집은 하늘과 땅의 우주의 집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가 샬롬하기를 빌어야 합니다. 우주는 하늘과 땅을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사는 하나의 집입니다. 이사야 66 장 1 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이 하나님이 거할 처소라 하신 것입니다. 우주란 한자어 역시 집 宇 집 宙입니다. 우주가 별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땅이 우주의 일부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땅이 하늘의 평화로 샬롬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땅에는 평화로 채워져 잇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땅은 인간의 탐욕과 죄로 인해 너무도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공해와 오염으로 인해 자연은 무척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은 대부분 중국제품으로 이 때문에 중국의 산림이 형편없이 망가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편하게 살고 쾌적하게 사는 대신 자연은 현재 마구 망가지고 있습니다. 공기는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물은 고기가 살지 못할 만큼 썩어 있으며 땅은 각종 유해물질로 썩어 있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산업과 경제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살기 좋은 샬롬의 터전이 아니라 죽음과 위기의 터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평화가 철저히 깨어진 것입니다. 어떤 생태학자는 인간은 마치 지구라는 표면에 기생하고 있는 피부병 같은 존재라고 혹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를 인간이 자신의  탐욕의 죄로 철저히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제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이 생태계의 위기로 보다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이 땅의 샬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연이 인간과 같은 하나님의 동료피조물인 것을 인식하면서 온 땅과 자연에 샬롬의 평화로 채워지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단지 입으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생활용품들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씀으로 물자를 아끼고 보전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이 땅의 샬롬의 평화를 위한 기도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우리나라가 평화롭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사는 집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내 집이요 내 고향입니다. 평강이 무엇입니까? 사이좋게 즐겁게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서로 사이좋게 서로 사랑하면서 지내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일은 6.25 51 주년 기념일입니다. 6.25는 남과 북의 서로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에게 총을 쏘고 칼로 찌르면서 서로를 죽이고 죽이다가 약 500 만을 서로 죽였습니다. 이 땅에는 지난 세월동안 평화가 없었습니다. 샬롬이 산산조각났습니다. 이제 서로가 미워했고 서로를 죽이는 죄를 회개하면서 산산조각이 난 평화를 다시 붙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이 한 민족의 집에, 칠천만 겨레의 가슴속에 샬롬이 스며들고 남과 북이 서로 하나되어 한 집에서 유무상통하면서 사이좋게 살도록 민족이 하나되도록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집은 우리 가정의 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가정이 샬롬으로 채워지기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입니다. 예수님은 수도 없이 많은 심방을 하면서 가정에 들어가시면 “이 가정에 평강이 있을찌어다!” 기원하셨습니다. 가정은 샬롬의 꽃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합니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만사가 성취된다 그 말입니다.  가화만사성의 반대는 가불화만사패입니다. 가정이 불화하면 만사가 실패한다 그 말입니다. 어떤 리서치 센타가 노래방에서 여자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중 1 위가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였다고 합니다. 성경 잠언에는 “바가지 긁는 아내와 같이 사는 것보다 옥상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합니다만 남자가 여자를 귀찮게 하고 여자가 남자를 바가지 긁고 하는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가정에서 평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이냐? 사실 가정에서 싸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쌈이 전혀 없는 가정은 거의 없습니다. 화성에서 사는 남자와 금성에서 사는 여자가 함께 결혼을 했으니 쌈을 안할 리 있겠습니까? 보통 한 달에 한두번씩 싸우거나 언쟁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가정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화해를 하면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남편은 자신만의 고유한 틀을 가지고 아내를 그 틀 속에 맞추게 하려하고 아내 역시 자신이 친정집에서 만들어진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편을 그 틀 안에 집어넣어 순한 양같이 살게 하려고 합니다. 각각이 서로의 틀 속에 상대방을 쑤셔 넣으려 하면 평생 그 가정은 샬롬이 없습니다. 샬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이 세상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 들어오셔서 샬롬을 이루셨습니다. 샬롬은 상대방이 만든 틀에 한번 들어가서 살아보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내가 만든 틀을 절대로 유지하면서 내 가정 샬롬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골백번 해도 샬롬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샬롬을 이루셨습니다. 샬롬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싸움을 했을 때 속으로는 내가 거의 90 % 잘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어이 미안해 내가 전적으로 잘못한 거야!” 나 같은 놈은 혹은 년은 십자가에 못박혀 확 죽어야 해!! 잘못했어!! 그러면서 화해를 시도할 때 가정의 평화가 찾아오고 그러한 놀라운 융통성 속에서 가정의 평화는 차츰 정착되어 갑니다. 또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그 손은 바로 샬롬을 위해 기도하는 손이 됩니다. 언젠가 한 식당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꺼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사진을 찍어 놓고 싶었습니다만 아마 그 둘 사이에는 조그마한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도 그렇지! 서로가 서로의 눈 속에 티를 보거나 대들보의 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를 보면서 고춧가루를 빼주는 사이가 될 때 평화가 찾아옵니다. 평강은 기도하고 희생할 때 찾아옵니다. 항상 집에 들어가면서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우리 집에 평강이 있을지어다” 기도하면서 들어가고 집에 있을 때에도 샬롬!! 집에서 나올 때도 “우리 집에 하늘의 평강이 있을지어다” 기도하면서 나오시면서 여러분의 가정을 하늘의 평강으로 늘 기도하면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샬롬하기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설립한 소아시아의 많은 교회에 문안할 때마다 꼭 빠뜨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내용이 있습니다. 데살로니카전서 1 장 1 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뿐만 아닙니다. 바울 선생님은 자신이 설립한 모든 교회에 문안할 때 맨 처음에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습니다. 그만큼 교회에 있어 평강은 중요합니다. 교회는 평강으로 지어져 있는 집과 같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교회가 평강하기를 빌어야 합니다. 얼마전 무등산으로 가는 길에 제2 수원지가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걱정을 했습니다. 저 수원지가 말라버리면 우리가 물을 먹지 못하는데! 그런데 최근에 또 한번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많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교회는 평강의 물이 담겨 있는 수원지와 같습니다. 수원지가 마르면 개인의 영혼에 이 사회에 평화의 단물을 제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나안 교회라는 평강의 수원지에 가득 넘쳐 있어야 이 교회에 나아온 많은 영혼들이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하면서 노래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집 우리 교회를 평강의 물이 흘러 넘치는 수원지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아름답게 단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 2 층 중고등부 예배실이 수리되었고 그 다음으로 여신도회실이 마련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대문이 설치되었고 그 다음에는 바닥이 고르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교회 화단이 정돈되었고 교회창고가 마련되었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좀 더 아름답게 그 모습을 단장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얼마 후에는 예배후에 교회 앞마당과 옆마당에서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누면서 평화로운 점심을 같이 먹게 될 것이고, 조금 후에는 등나무가 우리 교회 담을 덮고 장미꽃과 백합꽃이 만발하고 앉는 의자와 그늘이 있어 아늑한 쉼터가 될 것입니다. 이런 속도로 나아간다면 우리 교회당 한 가운데 샘을 하나 파서 거기서 맑은 물을 모두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샘은 마시면 다시 목마르게 되는 물이 아닙니다. 그 물은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평강의 샘물입니다. 교회가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게 단장되어 가는 것과 같이 저는 이 교회가 내부의 모습도 아름답게 치장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진실로 단장되어감은 교회가 샬롬의 터전으로 만들어져 갈 때입니다. 저는 이 가나안 교회가 평강의 샘물이 넘쳐나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마음이 편치 못하고 영혼이 불안할 때 이 교회에 나와 기도하면 하늘의 평강의 샘물을 마시우는 새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누구든지 세상에서 평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소란하고 피곤함 때문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를 찾다가 이곳에 나아오면 그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평강의 가락이 울려나와 그 영혼을 감싸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누구든지 죄로 인해 고단하고 죄짐으로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몰라 이 터전에 나아오면 그 모든 죄의 짐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평강의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찬송을 부르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어느 누구든지 가정과 집이 평온치 못하여 어지러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답함이 있을 때 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평강을 빌 때 하나님께로부터 샬롬의 기쁨을 가득히 얻어 충만한 마음으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가 먼저 십자가를 지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샬롬을 먹고 자라나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교회가 비록 적지만 이 곳을 겉보기에는 마치 에덴동산 꽃동산과 같이 아늑한 우리 모두의 아늑한  영적 쉼터로 만들뿐만 아니라 진실로 내적으로도 샬롬의 샘이 흘러나와 여기를 다니는 모든 영혼들을 평강으로 적시우는 그런 터전이 되기를 기도하고 여러분과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비록 적지만 가장 아름다운 평강의 수원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집에 평강이 있을찌어다”는 기도가 이 가나안 교회, 하나님의 집에 100 %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 이 가나안 교회가 하늘의 평강의 터전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가 예배 때나 새벽기도에서나 철야기도에서나 가정에서나 구역예배를 드릴 때나 그 어느 곳에서도 이 교회가 샬롬의 샘터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 교회를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집으로 만들어 갑시다. 그리고 이 교회가 만민이 평강을 위해 기도하는 집으로 단장해 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가나안 교회 위에 역사하셔서 이 반석 위에서 평강의 샘물을 흘러 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제자로 삼으시고 평강을 위해 기도하도록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우주의 평화를 위해 비는 기도의 일꾼으로 삼아주옵소서. 저희로 남북으로 나뉘어진 이 나라의 통일과 평강을 위해 비는 기도의 일꾼으로 삼아 주옵소서. 저희로 가정의 화평과 평안을 위해 비는 기도의 일꾼으로 삼아주옵소서. 저희로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하신 이 교회가 평강의 샘이 되도록 비는 기도의 일꾼으로 삼아주옵소서. 저희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 하늘의 평강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기도의 일꾼으로 삼아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