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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관리자 2010-10-18 (월) 22:46 13년전 2588  
 

2001 년 10 월 21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빌립보서 3 장 12 절 - 16 절

제      목 :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시고자 노심초사하시는 여러분 모두 위에 넘치도록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상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물어본 저는 어떨 것 같습니까? 제가 살던 고향인 칠량은 당시 유치원이 없어서 상을 못받았고 초등학교 때는 당시 군목이신 아버지를 따라 세 번이나 초등학교를 옮겨 다녔기 때문에 어디 안정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상을 탄 기억이 없습니다. 중학교 때는 상을 받기 직전까지 여러번 갔습니다만 아쉽게도 못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죄송합니다만 상을 받기 직전까지도 못갔습니다. 대학교 때는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릴 때라 상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때까지 가을 낙엽과 같이 수 없이 많았던 상을 안타깝게도 별로 타본 적이 없습니다.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할 때 “전국신학대학원 최우수논문상”이라고 하나 탔습니다. 이 상을 탄 이전에 상을 탄 기억이 없고 이후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아들은 다릅니다. 지 애빌 닮지 않아서 그런지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갖가지 제목을 붙인 상을 타가지고 와서 상을 스크랩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 내역을 보면 소방차 그리기 장려상, 과학상상그림그리기대회 우수상, 일기쓰기 대회 최우수상, 소년조선일보 미술실기대회 장려상, 자연보호행사대회 장려상, 겨루기 상, 영화감상 소감문 쓰기 우수상, 소년한국일보대회 은상, 굴렁쇠 굴리기 금상과 은상, 등등 제목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미국에 갔을 때 그 상을 타는 행진이 멈추어질 줄 알았는데 미국을 간 첫해 가을 학기에 미국 대통령과 힐라리 클린턴 그리고 교육비서관이 주는 상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버클리시장이 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직접 초상화를 그려주어 상을 타 가지고 왔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상을 타오는데 최근에는 모범청소년이라고 하는 표창장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딸도 오빠의 뒤를 이어 상을 타왔는데 대여섯개의 상을 타왔습니다. 제가 알기에 제 집 사람도 학교 다닐 때 상하고 별로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왜 우리 부부는 상복이 없는데 자녀들은 상을 많이 탈까?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물학에 보면 隔世遺傳이라고 있습니다. 이 유전은 유전이 바로 그 다음 대에 되지 않고 한 다리 건너뛰어서 유전되는 경향을 격세유전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그렇게 상을 많이 탄 것은 아들의 할아버지가 상을 많이 탄 것이 유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이시고 여러분의 공로목사님이신 배 목사님은 엄청나게 많은 상을 타셨습니다. 성적우수상은 국민학교 1 학년부터 6 학년까지 싹 쓸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성적표는 보면 갑갑합니다. 갑을병정으로 성적을 매기는 시절에 을이 하나도 없습니다. 군에서 28 년 동안 군목으로 일하시는 동안 사단장 상, 군사령관 상, 육군참모총장 상, 합참의장 상, 국방부장관 상, 대통령 상을 비롯하여 나라에서 주는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받은 상과 상패, 트로피는 아버님의 서재를 가득 덮고도 부족합니다. 아버지와 제 아들과는 달리 저는 상을 별로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최근 이 가을철에 집중적으로 제가 상을 받고 있습니다. 심방을 가니까 성도들 각 가정에서 제 앞으로 꼭 상을 내 주셨습니다. 그런 상 외에는 저에게 이제 상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는 없고 하늘나라에서 목회 잘했다고 상을 주실지 큰 야단만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제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관 아저씨들이 상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옥조근정훈장에서부터 대통령상에 이르기까지 상을 받고 단체도 상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하늘나라에서도 상이 있을까? 하나님이 직접 수여하실까? 아니면 국무총리가 대독을 하고 주듯이 천사가 대독하고 하나님 명의로 상을 주실까? 상에 상장과 부상 같은 것이 있을까? 상을 줄 때 경찰의 날에서와 같이 교회와 같은 단체에게도 상을 주시어 우리 가나안교회도 상을 탈 수 있을까?  그리고 상의 종류에는 홍조근정훈장이나 옥조근정훈장과 같이 여러 가지가 있을까? 


우리는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이 바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상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이 상을 받을 것이다는 표현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상을 주실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 장 12 절에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옥조근정훈장은 나라에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상보다 더 큽니다만 하늘에도 적은 상, 큰 상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태 10 : 42) 이 말씀을 분석하자면 이 땅에서 행한 아무리 사소한 선한 일이라도 상과 관련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상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태 10 : 41) 여기서 보면 상에도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명목의 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이 오면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우리 믿는 모든 이들에게 상을 수여하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영접하고서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에서 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척 상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상 받는 것을 많이 의식하는 모습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고전 9 장 18 절에 보면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이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세속적인 모든 행복의 삶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복음에 헌신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세상의 명예와 입신양명에는 초연했지만 그는 보다 높은 하나님의 상을 받기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다 희생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이 땅에서 미리 보상받는 것을 멀리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상을 받아버리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적어질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바울은 영적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별히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전도자의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소아시아 전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도 맞으면서 그 모든 것을 참고 넘긴 것은 주님께서 주실 상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울 선생님은 이 땅에서의 삶을 상을 받는 것과 깊게 상관시켰습니다. 중학교 졸업할 때 주는 상은 중학교 전체 생활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것을 통털어서 상을 주게 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놀고 먹었는데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선생님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데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 : 8, 14) 씨를 심고 물을 주는 것과 세운 공력에 따라서 자기의 상을 받는다는 것을 마치 기정사실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상을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구원은 주님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하히 살았느냐는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개판으로 하고 하늘에서 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선한 씨앗을 뿌리는 사람,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세운 공력이 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상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상을 받기만 기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을 받을 것을 거의 확신하였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도자의 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의의 면류관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 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의의 면류관이라는데 그 의가 무엇입니까? 무슨 정의를 행한 것이 의가 아니라 “의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의이고 “주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님을 사모하는 것”이기에 바울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으로 그리고 자신에게도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머리에 씌워 주는 것이니 그것을 쓰면 얼마나 폼나겠습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 : 18)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단지 상받을 것을 의식한 것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상받을 것을 확신한 것만이 아닙니다. 한 걸은 더나아가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하여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을 받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상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바울은 부름의 상을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부름의 상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직접 바울을 하늘의 보좌 앞으로 불러주시어 상을 주시는 부름의 상일까? 아니면 땅에서 살다가 갑자기 휴거시켜주시는 그 부름의 상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서 사명을 주시는 그런 부름의 상일까? 아니면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 명단을 불러 주시는 그 부름의 상일까? 어쨌든 그 구체적인 내용이야 어쨌든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는 것은 확실하니 굉장히 좋은 상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참으로 욕심이 많습니다. 전도자의 상도 받고 의의 상을 받을 것을 확신하였으면서도 거기에다가 부름의 상까지도 받으려 하는 바울의 영적 욕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욕심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으려는 욕심은 기실 나쁜 것이 아니라 선하고 선한 것입니다. 저는 아들이 왜 상을 많이 타나 행동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아들은 굴렁쇠 굴리기 상을 두 번에 걸쳐서  받아 왔습니다. 저는 첫 번째 은상을 받아 오고 난 다음 아들의 행동에 대해 유심히 관찰을 했습니다. “저 놈이 어째서 지 애비는 못 받는 상을 그렇게도 잘 받는 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굴렁쇠를 가지고 밥도 안 먹고 뛰어 나가 이렇게도 굴려보고 저렇게도 굴려보고 놀이터에서 굴려보고 잔디밭에서 굴려보고 심지어는 계단에서도 굴려보고 굴렁쇠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하여 그렇게 하다가 마침내 시합에 두 번째로 굴렁쇠 굴리기 금상을 받았습니다. 은상을 받고 난 다음 금상에 대한 욕심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에 대한 욕심이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 욕심이 우리 삶의 굴렁쇠를 굴리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상을 받기 위한 목표 즉 푯대를 세워 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상을 받기 위하여 피땀흘리며 달리는 모습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해 부단히 달음질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 장 24 절에서 27 절에 바울이 상을 얻기 위해 얼만큼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를 마치 슬로비디오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는 것을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 : 24 -27) 바울은 세상으로부터 받을 명예와 상은 분토와 같이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시는 상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 모든 면에서 인내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전진 그리고 또 전진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늘나라외 완성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한데 모아 놓고 상을 베푸시는 대축제를 여시는 것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갖가지 명목을 단 많은 상이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 때 선생님들과 내빈이 앉아 계시는 탁자에 수많은 상이 포개져 쌓여있듯이 하늘나라는 그야말로 상을 주시는 일부터 grand opening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 오픈 하우스를 시작할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상을 주시는 일부터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에 금면류관의 상이 있다면 은면류관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그리고 가시면류관의 상이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의 상, 의인의 상, 전도자의 상, 부름의 상도 있을 것이고 이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수많은 명목의 상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수많은 명목을 달아 놓고 기다리시는 상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의 상은 이런 것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짜게 인색하게 군 사람은 상을 못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패한 곳에 가서 그리스도의 짠 소금이 된 사람은, salty 한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은 상을 얻지 못할 것이나 어두운 곳에 가서 밝은 빛이 된 사람은 상을 얻을 것입니다. 말씀과 실천으로 돌아가는 굴렁쇠를 굴려 보려고 애를 쓰면서 마침내 잘 굴리는 사람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남의 등뒤에 짐을 더 얹어 놓는 사람은 별로 상과 상관없을 것이나 남의 진 짐을 자신이 대신 지고 간 사람은 상을 얻을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너무도 어려워서 조금도 실천하지 않았던 사람보다는 그리고 그렇게 실천할 수 없었던 장황한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보다는 비록 원수는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지만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던 사람은 상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나 그것을 스스로 나팔불고 다닌 사람은 나발불고 다닌 만큼 디스카운트되어 세상에서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상이 줄어들 것입니다. 말을 할 때 그냥 생각나는데로 슈팅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가, 사랑을 더해주는 말인가, 평화를 더해 주는 말인가, 이 말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끼치는 말인가를 생각해 본 다음에 평강의 말을 많이 한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노벨상보다 더 귀한 하늘평화상을 받을 것입니다. 자기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를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성전을 아름답게 하고자 기도로 아름답게 단장하는 이들도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일터에서 땀흘려 정직하게 번 돈을 주의 제단을 위해 감사헌금이나 십일조로 바치는 이들도 하나님의 시상명단에 포함 될 것입니다. 내게 있는 달란트, 음악적인 재능 교육적인 기술, 과학기술적인 노우하우, 내게 있는 생명의 일부분인 시간을 아낌없이 주를 위해 섬기는데 사용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 평소의 선한 행실로 삶의 본이 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도 나누고 말씀의 은혜를 공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 비록 전도의 결실이 바로 열매맺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님의 상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도로를 지나가는 다람쥐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이들도 창조생명 보전의 상이 예비 되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만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또는 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의 시입니다. 비록 아무리 적은 일이라도 우리의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상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상은 특별히 많은 부분이 교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며 하나님의 집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셨고 교회는 주님이 부르신 공동체이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므로 아무래도 하나님의 상은 이 교회의 활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교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요 관심의 포커스가 아무래도 교회에 맞추어져 있고 아무래도 하나님의 상의 하이라이트는 교회의 내적 활동과 선교활동에 비추어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교회이면서 하나님의 소유물 비록 조그마한 교회이지만 이 광주가나안교회를 우리 주님,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시는지, 여러분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떻게 섬기는지, 여러분이 이 성전에서 받은 주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며 굴렁쇠를 잘 굴렸는지를 주님 보시고 주님의 시상목록에 기재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한 때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사원들에게 별 명목을 다 붙여서 월급을 주었습니다. 체력단련비, 효도수당, 기밀유지비, 그리고 무슨 품위유지비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기업주는 모차르트휴식과 수당을 주었습니다. 휴식을 하면서 모차르트 음악을 많이 감상하고 돌아와서는 모차르트 템포와 같이 신나게 빨리빨리 신명나게 일하라고 그런 수당을 주었습니다. 이 수당은 일종의 장려상과 같은 것입니다. 수출이 잘되고 경제가 잘되니까 기업들은 무슨 명목을 만들어서라도 사원들에게 돈을 더 주었습니다. 그러나 IMF를 맞고 난 이후 이런 명목들이 싹 줄어든 대신에 총액 연봉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창고는 재고가 넘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 IMF라는 경제불황이나 경제위기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창고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향한 상으로 언제나 늘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상을 타기만을 바라고 계시고 그 상을 주실 때 한없이 기뻐하시는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무슨 명목이라도 만들어 상을 줄려고 하시지 상을 아낄려고, 상을 창고에 그냥 쌓아 두시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상주시기를 기뻐하시는데 우리도 상 받기를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사행심이 아닙니다. 상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으로 주님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상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가나안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이 상을 받기 위한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찬송가 372 장은 웨슬레 목사님이 작사하신 것입니다. 2 절 가사는 이렇게 지었습니다.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후에 주를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행한 일은 주 앞의 모든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을 잘 행하여 이후에 주를 뵈올 때 주님께로부터 상을 받는 축복된 신앙인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들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주는 상보다는 주님의 나라에서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불러 주시는 상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의 이름을 하늘 보좌의 생명책에 기록하여 주시옵시고 저희들 마음에 하늘을 향한 소망과 열심을 주시옵소서. 주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하신 인생을 저희의 생명과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을 푯대로 삼고 그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일생이 하늘의 보좌를 향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삶이 되도록 은혜로운 손길을 펼쳐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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