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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예배설교)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관리자 2010-12-14 (화) 11:24 13년전 3425  

2002 년 4 월 19 일(금)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구역연합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122 편 6 절 후반절

제 목 :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시편 122 편 6 절 후반절에 대한 집중탐구를 하고자 한다. 122 편 전반절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그럼 후반절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란 무엇을 말합니까? 예루살렘은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서울이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이란 도시를 사랑하는 자가 형통하게 된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도시 자체가 아니고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시편 122 편은 원래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다윗이 작시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바쳤는데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 성전에 올라가면서 즐겨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 122 편에서 예루살렘은 바로 성전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1 절에 봅시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마지막 절인 9 절에 봅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1 절에서 여호와의 집을 말하고 6 절에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말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여호와의 성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6 절 후반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는 말씀의 뜻은 “여호와의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왜 형통할까?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박국 2 장 20 절을 봅시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성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것은 성전이라는 건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니 소중하게 여기고 거룩한 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전을 사랑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시편 150 편의 찬양시를 지어 여호와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안치할 법궤가 들어오자 너무도 좋아서 벌거벗은 몸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갈 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다윗은 자기 집보다도 성전을 훨씬 중요시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 모았습니다. 그러나 피흘린 자는 여호와의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여 아름다운 새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에서 일천번제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써 영토를 넓히는 일을 일순위로 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써 전쟁을 하여 승리하는 일을 일순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일을 일순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궁극적인 관심은 성전에 가 있었습니다. 성전이야말로 다윗에게 영순위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다윗이 얼마나 성전을 사랑하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고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왕이라면 모든 권력이 있으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왕들은 주색잡기를 탐하고 주지육림을 즐기는데 골몰하였습니다만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였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성전중심적인 생활이 평강을 가져오고 형통을 가져오게 됨을 체험하였습니다. 성전에 갈 때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을 체험하였고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고 살았을 때는 여호와께서 그것을 보시고 전쟁에 나가면 승리하게 해주셨고,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을 때 나라는 부강해지고 부국강병을 이루어짐을 체험하였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을 때 각 지역의 다스리는 고을이 평안하였고 백성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체험하고 다윗 왕을 칭송하게 됨을 알았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였더니 다윗에게 몸의 건강을 주셨습니다. 성전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았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 관여하셔서 사통팔달로 모든 것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오늘 122 편 6 절 후반절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사실상 다윗과 같이 성전을 사랑한 자가 있습니까? 사실 다윗과 같이 형통한 자가 누구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을 아끼고 성전을 사랑하는 다윗에게 형통과 평강과 평안의 복을 나리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됩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요, 오늘날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정말 형통합니다. 왜 하나님이 형통하게 해주시기 때문이요 예수님이 평강의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녔거나 봉사하고 섬긴 교회는 실로 여럿입니다. 어렸을 때는 칠량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원주에서는 원주영강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광주 양림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송암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용인장로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수원장로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가나안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서울 한빛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버클리 영성장로교회를 섬겼습니다. 다음에는 버클리 연합감리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밀피타스 한인제일감리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녔거나 섬긴 교회를 손꼽아보면 거의 열두교회에 이릅니다만 저의 경험으로는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에 충성을 하고 성전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잘되게 해주심을 체험하였습니다. 한빛교회에서 권사님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권사님들은 나이가 거의 육십이 다 넘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거의가 어떤 분은 경기도에 사시고 어떤 분은 인천에 사시는 분이고 두세 분만 제외하고는 교회에 오려면 거의가 한시간이 훨씬 넘으신 분들이 많은데 이 분들이 주일낮예배만 참석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주일오후 예배, 갈릴리 예배 그리고 삼일밤 예배도 잘 참석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 10 분전에 오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먼데서 한시간 훨씬 전에 와서 교회 청소를 하고 어린이들에게 과자를 나누어주고 교육관에 앉아서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들은 정말 성전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들은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 안에서 즐거워하시는 분들입니다. 모두가 성전 안에서 모여 평안함을 누립니다. 모두가 성전 안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이 권사님들은 마치 성경의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았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그렇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며 최대의 기쁨과 행복을 누렸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권사님들이 형통한 삶을 사는지를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습니다만 서로가 만나면 삼분에 한번씩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늘진 구석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아 평안과 형통한 삶에 있었거나 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형통합니다. 은혜가 그 사람에게 쏟아져 내립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성전을 사랑해야 합니다. 얼마큼 사랑해야 하느냐? 네 이웃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지만 자신의 집보다도 더 성전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전사랑이 극심하였습니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저는 아시다시피 칠 개월 반만에 태어난 자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다닐 때 공부를 좀 못했습니다. 강진 칠량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성적표에는 “주의가 산만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주의란 것이 무엇이지도 몰랐는데 산만하다는 것은 산처럼 크다고 하는 것으로 알아서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내 놓았는데 야단만 맞은 씁쓰레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입학할 때 각각 한번씩 두 번 씩 미끄러지는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 제 둘째 아이는 지난 번 반장 선거에 나섰다가 한번 미끌어졌는데 이번에는 최고득표로 일등으로 반장이 되었습니다. 물론 반장이 여섯명을 뽑는데 한명입니다만. 그런데 저는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 실장은커녕 분단장 한번도 못해 보았고  

자료1>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사66:10-12)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고 하셨습니다(대하6:5-6,20,7:12,33:4,7느1:9). 이름은 어떤 인물의 인격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 하신 말씀은 ' 내가 예루살렘에 있겠다 '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지만 특별히 예루살렘을 택하시고 거기 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신12:5,11,14,18,21,26왕상8:16왕하21:7). 그러므로 오늘 성경말씀에서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하는 말은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여 ' 하는 말입니다.

두번째로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하는 말은 ' 교회를 사랑하는 자여 '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지난 주일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많이 받았던 다윗에 대해 말씀 드렸었습니다. 다윗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하나님의 성전을 정말로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시122:6,9) 그는 '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다 '고 했습니다(시69:9).

다윗은 왕이 되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또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해 계셨습니다(삼하6:1-15)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실 때 다윗은 그것이 너무 너무 좋아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너무 너무 신나게 춤을 추다보니 속살이 옷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내 미갈이 신하들 앞에서 뭐하는 거냐고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미갈을 미워하셨고,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다음 다시 나라가 조금 더 안정이 되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더 좋은 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 선지자 나단에게 상의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해서 못견디겠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실 전을 짓고 싶습니다." 나단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으셔서 짓지는 못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 마음을 아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받으시고는 다윗에게 복에 복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8-17).

그는 성전 건축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재료들 뿐 아니라 설계도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었습니다(대상28:11) 그 모든 것을 준비하되 기쁨으로 준비했습니다(대상29:1-22). 사실 성전이 지어지기는 아들 솔로몬의 손에 의해 지어졌지만 그 성전은 지어지기 전에 이미 다윗의 마음 속에 다 지어져 있었습니다. 주님의 전을 위한 열성이 자기를 삼켰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전을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돈 바꾸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이 그렇게 된 것을 보았을 때 너무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소와 양들을 성전에서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다윗을 생각했었다고 했습니다(요2:17).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세번째로 예루살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즉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즉 건물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성전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 땅에 있는 모든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다 "고 했습니다( 시 16:3). 형제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 내가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복을 구한다 "고 했습니다(시122:9). 형제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너희들이 잘 되면 하나님의 집이 잘 될 것이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집에 영광이 될 것이니까 너희들의 복을 구하였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인 교회가 아름답게 지어질 때 그것이 좋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가 평안할 때 그것이 기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루살렘 즉 교회에 속한 성도들의 영육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기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에 속한 청소년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고, 반듯하게 자라고, 공부를 잘하고, 진학을 잘하고, 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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