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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롯!

관리자 2010-07-17 (토) 20:48 13년전 2342  
 

2006 년 2 월 12 일(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13 장 1 절 - 7 절, 19 장 29 절   

제       목 : 아브라함과 롯!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주시는 복이 오늘 성전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롯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성경에서 주는 영적 교훈을 배우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롯이 누구입니까? 창세기 11 장 27 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아브람과 하란은 형제간이니까 하란이 낳은 아들 롯은 아브람에게는 조카가 됩니다. 롯의 아버지 하란은 롯을 낳자마자 죽게 됩니다. 창세기 11 장 28 절입니다.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롯은 아버지도 없고 아무런 재산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간 어느 순간부터인지 참으로 잘되었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창세기 13 장 5 절에서 6 절입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5 절 첫 부분을 다시금 보겠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렇게 되었고 6 절 후반절에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롯이 엄청나게 소유가 많아졌음을 말합니다. 롯은 고아였고 이렇다 할 재산이 하나도 없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롯은 재벌과 같이 됩니다. 그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는데도 그 너른 땅도 부족하게도 양과 소가 떼를 이루어서 동거할 수 없을 만큼 재산이 많아진 것입니다. 재벌이 너무 소유가 많으면 어느 시점에 분가를 합니다. 현대가 원래 하나였는데 재산이 늘어남으로부터 현대자동차, 현대상선, 현대전자, 현대중공업, 등등 재벌이 현대라는 이름아래 이렇고 저렇고 하는 회사로 나누어집니다. 이렇듯 아브라함과 롯은 재벌과 같이 재산이 많아지게 되어 서로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별로 재산이 많지 않았습니다. 친척들도 다 떠나고 이미 있던 아버지의 집도 떠나왔으니 가지고 있는 것들이 별로 변변치 않았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처갓집에서 떠나올 때 재산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줍니다만 아브람이 자기 집을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에는 재산이 전혀 없었는지 재산의 상황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당시 아브람에게 재산이라고는 가족들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온 어느 시점, 네게브로 갔을 시점에 아브람의 재산상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13 장 1 절과 2 절입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다는 말은 부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는 그저 그랬었지만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갔을 때에는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부자가 되었을까?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셔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자가 된 연유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아브람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12 장 4 절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한 것이 아브라함이 성공하게 된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은 제단을 잘 쌓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향해 가라는 곳에 갔을 때 바로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2 장 7 절과 8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 생활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주요한 연유는 물론 하나님의 예정하시어 택정하심도 있지만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며 살았고 제단을 쌓으며 예배하며 살았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은총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여 복을 가득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을 살펴보면 이상합니다. 롯도 아브라함과 대등할 만큼 아브라함에 필적할 만큼 많은 양과 소가 떼를 이루며 엄청난 부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롯이 성공한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롯이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지는 복을 받을만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평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였습니까? 성경 창세기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면 롯이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을 잘 쌓고 예배를 잘 드렸습니까? 아닙니다. 롯은 단 한 번도 제단을 쌓아 제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양보에 의하여 물도 넉넉하고 보기에도 좋은 소알 땅으로 갔으니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그 많은 양들과 소떼들 중에서 골라 제단을 쌓아 제물을 드렸을 법도 한데 성경은 롯이 제단을 쌓아 제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롯이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기를 잘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롯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오히려 천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순종하지 않았고 자꾸 조건을 걸었고 롯의 아내는 순종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이 그러면 신앙이 좋았습니까? 성경에서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의로 여기시고”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창세기 15 장 6 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렇다면 이런 표현이 롯에게 있습니까?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롯이 그만큼 성공하였던 것이 그럼 롯의 심성이 착하고 선을 많이 행하여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오늘 성경 본문 이후 창세기 13 장 8 절 이후에 보면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네가 우하면 내가 죄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우선권과 선택권을 롯에게 넘기는 말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롯이 눈을 들어 얼른 자기가 좋은 땅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만일 롯의 심성이 착했다면 삼촌에게 그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삼촌,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좋은 것이 있으면 삼촌이 먼저 차지하셔야지요, 그리고 삼촌이 먼저 선택을 하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제가 선택을 하셔야지요! 했을 법도 하고 아니면 ”아니 삼촌 저는 재산이 아무 것도 없어도 좋으니 삼촌 뒤만 졸졸 따라다니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말했을 법도 한데 아브라함이 말하자 얼른 자기 눈에 좋은 땅을 선택해 버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롯이 그렇게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롯은 전라도 말로 허벌나게 복을 받았습니다. 먼저 양과 소가 떼를 이루는 복을 받았고 그런 복과는 또 비교할 수 없는 복,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인해 유황불로 심판과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출하여 주십니다. 한마디로 생명을 구원받은 은총입니다. 구원의 은총보다도 더 큰 은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롯이 왜 이런 복과 은총을 쏟아지게 받은 연유가 무엇일까요? 아무리 살펴보아도 롯이 복 받을 연유가 없습니다만 찾고 또 찾아보자면 연유라 할 수 없는 연유가 딱 하나 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창세기 12 장 4 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은 누구를 따라 갔습니까? 롯도 “그와 함께 갔다”는 말은 롯은 아브람을 따라 간 것입니다. 아브람을 따라 가서 롯은 복을 받았습니다. 따라 다닌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복을 받았을까요? 롯이 따라다닌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창세기 12 장 2 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개역개정판은 “너는 복이 될지라”로 되어 있지만 개역성경을 보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로 나와 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2 장 3 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무엇입니까? 땅의 모든 족속들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만 가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으니까 복이 샘솟듯 흘러넘치니까 아브라함 옆에 있기만 하면 그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롯은 무슨 신앙적인 삶을 살아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을 졸졸 따라다녀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복을 ”덩달아 복“이라고 합니다. 떡을 만지다가 보면 떡고물도 묻지 않습니까?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윤철상 씨는 15 대 16 대 2 선 국회의원입니다만 이 분은 정읍농고를 나와 김대중 총재만을 따라다녔고 나중에는 김대중 총재의 운전기사로 일하였는데 나중에 정읍에서 2 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따라다니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금번에 통일부장관이 된 사람이 이종석 씨입니다만 이 분은 장관들의 단골 출신학교인 그 흔한 서울대도 나오지 않았고 나이가 지금 40 대입니다만 지금까지 보통 60 대들이 하던 통일부장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원래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운영하는 연구소에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정세현 씨를 잘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 정세현 장관 이후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옹호자가 되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에 동행하였고 나중에 32 대 통일부장관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도 누구를 따라 다니느냐에 따라 속셋말로 팔자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롯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롯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제대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75 세가 넘은 사람을 따라 다니려 하겠어요? 아브라함이 75 세였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이미 살고 있던 고향에서 이제 묫자리나 슬슬 봐 놓는 나이에 고향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고 자기 아버지의 집을 떠나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을 따라 다니면 무슨 덕을 볼 것이 있다고 따라가겠습니까? 아마도 아브람 곁에는 여러 친척들이 말렸을 것입니다. ”아니 이보게 아브람! 자네가 그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고향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려 하는가? 아서게! 자네 미쳤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은 떠났고 롯은 그 아브라함을 따라 함께 떠났습니다. 롯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내 삼촌이지만 일흔다섯이나 되지만 보통 분이 아니시다! 저 분을 따라가면 내 인생도 바뀔 것이다!는 어떤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람을 따라 나선 것입니다. 만일 롯이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그냥 그대로 갈대아 우르에 남아 있었다면 롯이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만일 롯이 갈대아 우르에 그냥 남아 있었면 롯의 이름이 성경에 나오겠습니까? 우리는 롯이라는 인물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롯은 사람 하나 잘 본 것입니다. ”야! 삼촌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우리 삼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시니 내가 삼촌만 따라 다니다 보면 나도 내 팔자 고치겠구나! 믿고 칠십 오세나 되는 아브라함을 따라 다닌 것입니다. 롯이 아브라함 곁에 있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의 이른 비도 내려주시고 은총의 늦은 비도 내려주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소나기도 내려주실 때 롯이 어디 있었습니까? 아브라함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래 그 축복의 소나기를 함께 맞지 않았겠습니까? 롯의 삶의 반경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시는 축복의 사정권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롯은 순전히 아브라함으로 인해 축복을 받았습니다. 롯이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유황불의 심판 때 구원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성경의 또 다른 본문 창세기 19 장 29 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 보내셨더라”. 롯이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았습니까? 롯이 선행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롯이 예배를 잘 드려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순전히 롯은 하나님과 연결된 거룩한 아브라함 때문에 아브라함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창세기 13 장을 통해서 롯을 통해 주시는 영적인 교훈을 받아 봅시다. 무슨 교훈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주변에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롯은 사람을 잘 볼 줄 알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을 보고 아브라함이 복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롯과 아브람이 살던 갈대아 우르가 나무로 우상을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만일 롯이 나무우상이 잘된다고 그것으로 큰돈을 벌겠다고 우상을 만드는 사람을 따라 다녔다면 롯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육체와 함께 영혼도 망하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롯이 술 좋아하는 친구, 쾌락을 탐닉하는 친구들을 따라다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롯의 이름은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마도 일찍 하직하여 이름도 모르는 채 세상을 떠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장사하는 사람으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술이나 쾌락을 접할 기회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롯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사람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팔순에 가까운 할아버지로서 나이도 많이 들었고 세상적으로 보나 겉보기에는 할아버지로서 별로 소망이 없었는데도 롯은 깊은 눈매로 하나님께로부터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은 아브라함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그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롯의 성공은 아브라함을 알아본 데 있었습니다. 이 시간 롯과 같이 눈을 크게 뜨고 아브라함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되는 복 받은 사람이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이 샘솟듯 솟아오르니까 그 옆에만 있으면 그 흘러나오는 생수를 챙길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심방을 마치고 어느 성도 가게에 갔더니 목사님이 오시기만 하면 제가 정신이 없어요! 그때부터 막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하거든요! 여기 강진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여기서만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광주에 있었을 때도 사업을 하시는 많은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목사님만 오셨다 가시면 그 날 장사가 잘되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 용품을 파는 곳에서도 왔다 가면 너무도 잘된다 하였습니다. 그 성도는 잘 되고 잘 돼서 나중에 아파트 큰 평수를 샀다고 나중에 전화 왔습니다. 어떤 권사님은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을 그간 세 번 대접했는데 저희 집안에 좋은 일이 열 두 번 생기네요! 따따블이네요!! 광주 화정동에 있는 성도가 경영하는 어느 낙지집에 가서 그 말이 사실인가 하고 갔는데 정말 그때부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데려오시는 손님까지 언제나 공짜예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공사입찰을 할 때 제가 설교한 내용 중에 숫자가 나오는지 기다렸다가 설교 속에서 찬송가 502 장에 대해서 말씀을 한 바 있는데 그것을 적어 넣어서 당첨되어 4 억 5 천만원짜리 공사가 입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8 억짜리가 하나 입찰되었다고 입찰되자마자 전화를 해왔습니다. 어쨌든 제가 있었거나 제가 있었다가 지나가고 간 자리는 뭔가 잘되어지거나 잘된다는 소식이 실제적으로 많이 들려옵니다. 여기 와서도 그런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듣습니다. 물론 잘 안 되는 일도 있었겠지만 안되는 일보다도 되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이 많습니다. 히브리어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으십시오!” 아쉬레아 하이쉬! 하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더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흰 머리도 많이 나서 많이 늙었지만 그리고 배씨라 그런지 배도 불룩하게 나와 볼품이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담임목사를 가까이 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과 함께 함으로 그로부터 흘러가는 복이 쏠쏠할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인물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한번 롯과 같이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십시오! 주변에 복의 근원을 복을 받은 아브라함과 같은 인물들이 적지 않게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인물을 알아보는 것 만해도 영적인 큰 부가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그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 나도 덩달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는 믿음이 있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나 거룩한 것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벤치마킹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벤치마킹이란 말은 “기준점”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기준점을 설정해 놓고 그 기준점 이상으로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회사에서 나온 제품보다도 훨씬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내는 회사에 찾아가서 그 노우하우를 배우고 자신의 제품의 품질을 그 이상으로 올려놓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에 13 년째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의 경제 상황 속에서도 연간 15조 원이라는 경상이익을 올리는 기업이 있었습니다. 토요다라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미국에 가보면 토요다 회사의 차가 도로에 쫙 깔려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 토요다 차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저도 토요다에서 나온 캠리를 타고 다녔습니다만 참으로 좋은 수준있는 차입니다. 언젠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도요타를 벤치마킹하라는 특명이 내렸다고 합니다. 토요다 자동차를 벤치마킹하여 삼성 자동차의 수준을 그 수준 이상으로 올리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잘하려면 영적인 면에서 벤치마킹을 잘해야 합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듯이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믿음이 좋은 사람을 따라다니거나 그와 함께 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 내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사람을 보통 “멘토(mento)”라고 합니다만 이를 보통 “영적 스승”이라고도 부릅니다. 롯에게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멘토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성전출입을 잘 하시면서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를 잘하시면서 영적 스승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롯의 눈을 가지고 눈을 크게 뜨고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믿음이 현재의 자리에서 그냥 있기를 바란다면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고 믿음이 향상되기를 원하고 여러분들이 롯이 받은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멘토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살펴보시고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성도와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와 가까이 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를 닮아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게 되며 나도 롯이 받았던 복을 덩달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를 쓰게 되고 순종하는 자가 받는 복을 받게 되고 롯이 받았던 복을 나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을 잘 쌓는 성도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제단을 잘 쌓는 사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잘 드리고 예배가 삶의 1 순위가 되어 있는 이들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들과 가까이 하다가 보면 나도 성수주일하게 되고 예배에 성공하게 되어 인생에서도 성공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고 롯이 받았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어느새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그러다가 롯이 받았던 복을 덩달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신앙인격으로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려는 그런 신앙인격을 지닌 사람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보면 나도 가슴이 넓어지게 되고 롯이 받았던 복을 덩달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만 가까이 하여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들과 가까이 하여도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고 믿음의 사람이었고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거룩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연결된 사람 롯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를 우리는 더욱 확장시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과 가까이 하는 일도 복 받는 일입니다. 성경 레위기에 의하면 “거룩한 것을 만지는 사람도 거룩하게 된다“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거룩한 것들을 가까이 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과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거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거룩한 하나님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거룩한 성전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할 수 만 있으면 거룩한 것들과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영적 원칙을 하나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할 수만 있으면 거룩한 것들과 1 mm 라도 좀 더 가까이 하시고 할 수만 있으면 믿음의 사람, 복의 근원의 복을 받은 사람을 간격을 좁히시고 1cm 라도 더 가까이 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그런 원칙을 지켜 나가는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뜻밖에 하늘의 은총과 복이 내게 쏟아져 내리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교회 성도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강진읍교회 성도들은 단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날마다 날마다의 삶이 거룩한 것들과 점점 더 가까이 가시고 세속적인 것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시고 롯과 같이 아브라함을 가까이 하여 복을 받았듯이 은총의 사람,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과 가까이 하여 이미 예비해 놓으신 복들을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들은 말씀을 꼭 간직하고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그 말씀 그대로 실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5:06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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