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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관리자 2010-07-17 (토) 20:25 13년전 3040  
 

2006 년 12 월 31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골로새서 3 장 15 절 - 17 절      

제    목 :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성도 여러분들 위에 넘치게 내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2006 년 12 월 31 일 마지막 날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의 종점에 서서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 골로새서 3 장 15 절에서 17 절은 감사라는 말이 15 절에 한 번 16 절에 한 번 17 절에 한 번 도합 세 번 나옵니다. 15 절 후반절입니다. “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절 후반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절 후반절입니다. “다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 감사, 감사인 것입니다. 누구한테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 장의 욧점은 한 마디로 “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이전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하나님을 알고 누가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믿지도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더더군다나 부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생각하는 시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어떤 좋은 일이 있다고 해 봅시다. “오메!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날 사랑하셔서 또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셔부네!” 고백합니다. 노래 나오는 칠복이를 봅시다. 최진사 댁 셋째 딸과 마침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좋아합니까? 자기 이름처럼 일곱 개 복 중에서 한 개가 맞았다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예쁜 색시를 주셨다 하지 않고 내 사주팔자가 일곱 개 복을 받게 되어있는데 그 중에 한 개가 맞은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칠복이는 좋아하긴 하지만 누구에게 감사할 대상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주변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께서 touch 하셔서 일어났다고 보고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에 대해 감사합니다. 창세기 26 장은 이삭의 삶을 매우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이삭이 세 가지 사업을 하였습니다. 첫 번 째 사업은 농사였습니다. 12 절에 “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두 번 째 사업은 목축업이었습니다. 14 절입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세 번 째는 샘파는 사업이었습니다. 19 절에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이삭의 세 가지 중점사업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농사를 하였을 때는 그 해 백배나 얻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흉년이 들고 또 흉년이 들었던 때 이삭만은 그해 농사를 하여 100 배의 결실, 대 풍작을 이룬 것입니다. 목축업은 어떠했습니까? 양과 소가 떼를 이루어 심히 많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샘 파는 사업은 어떠했습니까? 파는 샘물마다 샘 근원을 얻고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삭이 추진한 세 가지 역점사업들이 요샛말로 다 대박을 터뜨린 것입니다. 사업마다 잘 되자 이삭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 내가 그동안 참으로 고생하고 고생하여 땀을 흘렸더니 고진감래 고생 끝에 낙이 오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아니면 내가 운이 억세게 좋구나 남들은 다 흉년인데 나만은 대 풍년이니! 다 운수로 돌렸습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그래 내가 빠릿빠릿한 종들을 잘 스카웃했어! 그것들이 일을 너무도 잘해주니까 내가 부자가 된 것이야!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단말야!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분명 이삭이 잘되고 형통하였으면 이삭 나름대로 그렇게 된 원인을 나름대로 생각하였을 텐데 성경 어디엔가 이삭의 생각이 나와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26 장 22 절에 있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무엇입니까? 이삭은 여호와께서 넓게 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하는 사업이 확대재생산되고 자신의 사업의 지경이 넓어지고 자신이 창대하고 번성하게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렇게 해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고백하게 된 배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받은 믿음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고 해석하기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총의 손길로 touch 하셨기 때문에 내가 흥왕하고 번성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바라보는 생각이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입니다. 바라보면서 해석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의 르호봇의 은총을 고백하면서 그렇게 하고 끝납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26 장 25 절입니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무엇입니까? 이삭은 이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믿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언젠가 저는 우리 교회에 부흥회에 오셔서 말씀을 해 주신 김동호 목사님이 텔레비전에서 설교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가 아마도 추수감사절 어간이었는데 하박국 3 장 16 절에서 19 절 말씀을 놓고 했던 인상적인 해석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17 절을 보겠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김동호 목사님의 논법은 이러했습니다. 외양간의 소가 없어도,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중이고, 먼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을 때, 외양간의 소가 있을 때, 우리에 양이 있을 때 그것만큼은 확실히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하기 이전에 있는 것 때문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였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그냥 있어주는 것만도 무화과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어주는 것만도 밭에 먹을 것이 그저 나는 것도 무해무탈한 것도 그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켜 주셔서 되는 것이니 그저 평범한 가운데서도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평범 속에서도 비범한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저 잘되는 것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믿음은 그저 평범한 것 속에서만 하나님의 지켜주시는 손길만 발견하지 않습니다.요셉이 당한 시련을 아십니까? 아직 철부지 어렸을 때 열 명의 형들이 자신을 쳐 죽이려고 하다가 나중에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인면수심의 형들이 인신매매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가서 보디발의 집에 있었을 때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였지만 넘어가지 않았는데 역으로 뒤집어써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죄를 뒤집어써서 거의 감옥에 3-4 년 동안 있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아마도 보통 사람들 같으면 자신의 연속적인 불행을 놓고 울화통이 터져 죽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는 캄캄한 현실 속에서도 기도하면서 보냈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하는 능력도 감옥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받은 것입니다. 캄캄한 감옥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통과 시련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하여 쓰시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자신이 지나온 역사를 어떻게 말합니까? 창세기 50 장 20 절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자신의 지나온 고통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예정하신 역사로 고백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것을 단지 추억으로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고 훈련시켜서 결국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형들을 바라볼 때 그저 나를 죽이려 하는 놈들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사에 쓰여지는 도구로 보고 형들의 자녀들까지 내가 기르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감사한 것입니다.


한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하나는 한나요 또 하나는 브닌나였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많았습니다. 브닌나는 자꾸 한나를 심히 격분시켰습니다. 애기도 낳지 못하는 것이 여자냐? 하였을 것입니다. 한나는 제일 처음에는 울고 먹지 아니하다가 나중에는 그 울음을 통곡의 기도로 바꾸어 갔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를 주셨는데 그가 바로 사무엘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가 되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란 말이 없지만 만일 한나가 순조롭게 아이가 생겼다면 아이가 생기지 않았더라도 브닌나가 옆에서 격분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한나는 울며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무엘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얻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나중에서야 한나는 하나님께서 브닌나와 같이 격동케 하는 존재를 내 곁에 두셔서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고 결국 사무엘의 은총을 주셨다고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써있지 않지만 한나는 나중에 브닌나의 손을 잡고 마음속으로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형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요 내가 기도하지 않았으면 나는 사무엘을 얻지 못했을 것이요 사무엘을 얻지 못하였다면 내 아들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면서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격동시키는 브닌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연단시키고 단련시키기 위해 기도하게 하기 위해 브닌나와 같이 격동케 하는 역할을 맡기셔서 그를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브닌나는 결코 우연의 인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드라마를 이루기 위해 미리 그 위치와 배역을 맡겨 놓으신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브닌나와 같은 이가 있으면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없애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브닌나의 존재를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쓰시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시각에서 보면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고 훈련시켜서 좀 더 크게 사용하고자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그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지 않습니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는 브닌나와 같이 나를 격분케 하는 존재가 없습니까? 미워하지 마시고 나를 더 기도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더욱 연단시켜 주는 하나님의 도구라 생각하시고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브닌나를 포함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면서 제단을 쌓으면서 감사하였습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은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믿음이 없을 때 그 사람은 불평하는 자가 되거나 감사하지 않은 자가 됩니다. 끊임없이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결국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그 안에 예수님이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시각이 그러므로 독특합니다. 믿음으로 보면 이렇게 잘 되고 저렇게 잘된 것도 하나님께서 내 지경을 넓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께서 은총의 손길로 인도해주셨다고 고백하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보면 그저 아무 일없고 작년과 올해가 특별하게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그저 외양간에 소가 있고 밭곡식이 평년작을 이루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된 것으로 고백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믿음의 시각에서 보면 그저 어려운 시련이 있을지라도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켜 좀 더 크게 쓰시고자 주시는 브닌나의 은총이니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내 주님이 되어 주시고 내 목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나는 어느 형편이 되었든지 그것이 호황을 누리던지 그저 그렇든지 불황을 경험하든지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나에게 적절한 필요한 형편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형편에서도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조숙녀>란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인상적인 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별을 공부하는 천문학도입니다. 천문대에서 별을 보여주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밤하늘 창공에 별이 빛나지 않느냐?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창공에 별이 없는 것이 아니잖느냐? 때론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나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항상 있다!”. 이 말 한마디로 요조숙녀를 사로잡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눈으로 보지 못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독특한 앵글을 가지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의 세계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보니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움으로 봅니다. 돌들에 핀 민들레 꽃 한 송이에서도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같지 못하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의 시편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면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해주셨으리라고! 하면서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12 월 31 일입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입니다. 2006 년은 매우 독특한 해입니다. 다른 해는 일 년 52 주이지만 올해만은 일 년 53 주입니다. 2006 년 1 월 1 일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06 년 12 월 31 일이 주일입니다. 2006 년은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시작하여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한 해를 마치는 해이니 얼마나 은혜의 해입니까? 오늘 말씀의 주제는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이 시간 2006 년 1 월 1 일부터 오늘 2006 년 12 월 31 일까지 믿음의 눈으로 지나온 365 일을 되 돌이켜 보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이 시간 믿음으로 내 삶에 감사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저 내 생명이 아직도 살아있음에 대해 내 심장이 아직도 뛰고 있음을 감사합시다. 어느 때이든지 원하시면 내 생명 종지부를 2006 년 어느 시점에 찍어 데려가실 수 있는데 내가 아직 호흡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이렇게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은 그저 한계수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총 베풀어 주셔서 나에게 기회를 주시고 나에게 호흡을 붙여주셔서 생명을 허락하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살 때 지난 한 해 동안 뭐 크게 잘 된 것은 없었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그저 무해무탈하게 산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외양간의 소가 여전히 외양간에 있고 밭곡식이 작년의 평년작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논농사가 그저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을지라도 그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씨를 뿌리면 하나님께서 햇빛과 단비를 주셔서 열매가 맺히고 소출을 그저 예년과 같이 여전히 얻을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는 것, 오늘 이 자리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걸을 수 있고 그저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믿음의 외과의사는 수없이 수술을 하면서 깨우치는 글을 남겼습니다. “왜 감사하질 않을까, 당연한 사실들을 /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자기 발로 갈 수 있고 /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도 있다 /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감사치는 않고 / ‘당연한 걸’ 하며 웃어 버린다 / 하루 세 끼를 먹는다 / 밤이 되면 편히 잠들고 아침이 오면 / 상쾌한 바람을 실컷 들이 마신다 /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뛸 수도 있다 /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당연한 일 / 그렇게 멋진 것을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른다 /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 오직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2006 년 한 해 동안에 받은 특별한 은혜가 있을 때에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그런 일들이 성도들 간에 적지 않았습니다. 승진도 되었고 당선도 되었고 합격도 되었고 자식을 낳았고 자식이 잘되었고 예상치 못한 소득도 있었고 질병이 있었지만 회복이 빠르게 되었고 사업이 잘되었고 싸웠던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고 풀지 못한 문제들이 있었는데 문제가 합력하여 오히려 선을 이루게 된 것, 이 모든 일들이 여러분의 둘레에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가슴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시간 하나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2006 년 한 해 시련과 고통도 있었을 것입니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을 잃은 때가 있었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오히려 건강의 소중성을 일깨워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바로 그런 일들을 통해서 오히려 깨우침을 주시고 문제와 시련이 있을 때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하기 바랍니다. 고통을 통해서 나를 연단하시고 더욱 훈련시키시어 더 좋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성령님께서 주신 은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누구나 믿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택하심 이에게 주신 특별하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으로 인해 - 비록 그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비록 그 믿음이 온전치 못하고 부족하다고 해도 - 그 믿음 가지고 살아가게 해 주신 은총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열 개 중에서 1 개만 있는데도 그 한 개가 있음으로 인해 지극한 감사를 올리는데 비해 어떤 사람은 9 개가 있음에도 열 개를 다 가지지 못함을 불평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입니까? 미국의 명문대학인 노스웨스틴대학교가 자랑하는 졸업생들 가운데 에드워드 스펜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140여 년 전 1860년 9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대학교 근방에 위치하고 있는 미시간호(湖)에서 여객선이 침몰하여 그 날 사고로 18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스펜서는 수영선수였습니다. 학교에 있었던 스펜서는 사람들이 살려 달라는 아우성 소리를 듣고 육지에서 800m 떨어진 침몰 현장을 16차례나 헤엄쳐 오가며 17명을 구조해 내었습니다. 800m 떨어진 곳을 한번 다녀올 때마다 1600m. 열일곱 번을 다녀왔으면 그것도 한 사람씩 옆구리에 끼고 수영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스펜서는 물속에서 너무 무리하게 몸을 썼기에 몸이 망가져 버렸고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스펜서는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스펜서 자신은 휠체어에 앉은 장애자의 몸으로 80세를 살았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신문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살렸으니까요. 그러나 당신 자신에게는 그 날이 비극적인 밤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스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구출해 준 17명 가운데 훗날 나를 찾아와 감사를 표시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자꾸 섭섭하게 기억이 납니다!" 스펜서가 선행을 하면서 치른 대가는 육체의 불구가 된 것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물속에서 빠져 죽어가는 것을 구원해 준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감사가 없었다는 그것이 휠체어에서 평생을 살았던 스펜서의 마음의 깊은 상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즉 택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하신 우리인생들을 바라보실 때 아니 내 인생을 지금 보고 계실텐데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뿌듯한 마음이 들까요? 아니면 스펜서와 같이 섭섭한 마음이 드실까요?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골로새서 2 장 6 절에서 7 절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지 않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믿음에 서 있을 때 감사함이 나오고 믿음에 굳게 서 있을 때 감사함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이 2006 년과 2007 년의 분깃점입니다만 믿음의 눈으로 지나온 한 해 2006 년을 바라보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눈으로 앞으로 다가올 2007 년에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실 줄 믿고 그저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부익부빈익빈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도 더욱 풍성하게 넘치게 되어 더욱 부자가 되고 믿음 없이 불평만 하고 감사없이 지내면 하나님의 은혜도 시들해져서 더욱 가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이왕에 그에게 많은 은혜가 있더라도 더 많은 은혜를 그에게 내리십니다. 감사는 그러므로 하늘의 은혜를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에 굳게 서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감사를 넘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지나온 어제에 대하여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를 넘치게 하시고 오늘 나에게 있는 오늘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게 하시고 앞으로 다가올 내일도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 날 사랑하셔서 내게 베풀어 주실 지극한 은혜를 생각하면서 미리 감사함을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가오는 2007 년은 여러분들이 믿음의 반석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내 잔이 넘치나이다” 노래하는 은총의 해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영적인 시야를 열어주셔서 하나님 날 사랑하셔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보게 하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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