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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관리자 2010-07-17 (토) 20:29 13년전 3503  
 

2006 년 12 월 3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성서본문 : 누가복음 14 장 15 절 - 24 절

제    목 : 너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오늘 성전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 예배를 마치고 나온 다음에 저희 집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여보!! 당신도 설교를 시작할 때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하고 시작하세요! 첨에만 그렇게 시작하면 설교가 끝날 때까지 졸지 않고 눈이 빤짝반짝해서 듣는다구요!” 그래서 그렇게 한 번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 방에 들어서서 짐을 정리 하다가 사모님의 가방에서 조그만 통을 발견했습니다. 궁금해서 사모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뭐여?"그러자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 열어보시면 안돼요, 알았죠?" 전도사님은 궁금했지만 워낙 완강하게 말리는 통에 알았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후 잊어버리고 세월이 20 년이 흘렀습니다. 전도사님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20 년간 목회하면서 어느 날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 하다가 20 년 전의 그 통을 우연히 발견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속으로 이제는 20 년이나 지났는데 설마 괜찮겠지 ..하면 살짝 통을 열어 봤습니다. 그 안에는 현금 200만원과 계란 3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사모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여?". 사모님은 절대 열어보지 말랬는데 열어 보았다고 원망하면서 마지못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말씀 드리죠! 당신이 저와 결혼한 후에 교회에서 설교하실 때마다 제가 졸음이 오면 그때마다 계란을 하나씩 모았어요? 목사님은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20 년 동안 내가 3번 밖에는 졸음이 오는 설교를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돈은 뭐지? 그러자 사모님이 머뭇거리면서 말했습니다. 계란 판돈이요!!“ 금번 부흥강사님으로 오시는 목사님은 말씀을 참으로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어서 말씀하실 동안 계란 사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되었는가 언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금방 흘러 갈 것입니다. 금번 강진읍교회에서 베풀어지는 말씀과 웃음의 천국잔치를 결코 놓치지 마시고 금번의 기회를 놓친다면 성도 여러분들은 올해 2006 년 가장 후회할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누가복음 14 장 15 절에서 24 절 말씀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저 한 여나무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 아니라 그 고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한번은 초청장을 보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집에 있는 종들을 시켜 직접 집으로 찾아가게 하여 확실히 오는 여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청받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오지 않았습니다. 종들은 돌아와서 주인에게 초청받은 사람들이 못 오는 이유를 보고하였습니다. “나는 그 시간이 제일 장사가 잘 되는 피크 타임인데 장사를 해야 하니 못가겠습니다”, 하고 “나는 그 시간에 드라마 “주몽”을 보는데 지난 주 아슬아슬하게 끝났는데 그것을 꼭 보아야 하니 못가겠습니다“,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잔치를 잘 준비하고 또 준비하였는데 안 온다고 하니 열불이 났습니다. 종들에게 다시금 명령을 내리는 것이 23 절에 나옵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종들에게 너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잔치집을 채우라 하신 것입니다. 지혜를 다 짜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라도 너희들의 인간관계를 총동원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라도 집을 채우라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비유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4 장 16 절에서 24 절의 비유도 하늘나라라고 하는 앵글(시각)에 비추어 보면 쉽게 들어납니다. 16 절에 나오는 “어떤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잔치집에 초청하는 초청인인데 누구입니까?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집에 잔치를 마련한 것은 무엇입니까? 천국은 잔치집과 같다 그 말입니다. 천국은 좀 조용하기만 한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흥겨운 잔치가 있는 곳이요 무척 즐거운 festival 축제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개그콘서트를 하고 유머 1 번지를 하지만 천국에 가보면 그런 것들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는 일들이 넘치고도 넘치는 곳입니다. 천국을 가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너무도 조용하고 거룩하고 신성해서 감히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즐거운 일도 하고 떠들썩하고 삶의 활력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 잔치를 즐기는 인간의 최고의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잔치집에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좋은 곳으로 오라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천국집에 초청하실려면 왜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우아하게 격조있게 초청하실 것이지 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셨을까요? 오늘 성경본문에 나오는 “
강권하여”란 말의 뜻은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윽박질러서라도, 엄포를 놓아서라도, 그런 뜻입니다. 마치 검찰이 피고인을 강제로 구인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위하여 최고의 최상의 행복의 어떤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공간에서 초청한 사람들과 북적북적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으면 안타까움이 드셨던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광주에 계십니다만 아버님은 명절이나 무슨 절기만 되면 모든 자녀손들을 다 오게 합니다. 상을 잘 차려 놓고 함께 식사하면서 애기하면서 지내는 것을 낙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손주 손녀들이 온통 방안을 돌아다니며 떠들썩하는 것을 즐기십니다. 그런데 만일 자식들이 안 오면 무척 섭섭하여 화를 내면서 왜 안 오는거냐? 합니다. 아버지의 최고의 즐거움은 자식들이 사오는 선물에 있지도 않고 먹는 맛있는 음식에 있지도 않고 자식들과 손주손녀들이 와서 서로 즐겁게 얘기하고 떠들고 북적북적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도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천국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창조한 자녀들이 다 와서 북적북적대고 천국의 잔치를 즐기게 하고 싶었는데 한 명도 안 오면 하늘 아버지는 화가 나서 강제로라도 데리고 와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잔치를 즐기도록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 아니면 지옥 밖에 없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연옥설을 말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지옥에 보내자니 그렇고 하는 이들이 연옥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천국과 지옥이지 연옥이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강권해서라도 데려오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자신의 종들을 이 땅에 보내어 너희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으로 데려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강권해서라도”는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지옥불의 위험을 강조해서라도, 약간의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멱살을 잡아끌고 와서라도 천국으로 데려오라는 분부이신 것입니다. 자식이 마약에 빠졌습니다. 마약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여자에 빠지고 질병에 걸려 거의 폐인이 되어 갑니다. 아버지는 형들을 불러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동생 다리몽생이를 분질러 놓더라도 강제로 끌고 오니라고 합니다. 아버지로서는 그대로 놓아두면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런 비상한 방법을 쓰게 한 것입니다. 마침내 형들은 동생을 끌고 와 동생을 구금하여 마약을 할 수 없는 교화소의 강제프로그램 속에 넣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동생을 살리려고 그럽니다. 하늘 아버지가 종들에게 명하여 강제로라도 데려오라고 한 것은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지옥의 유황불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우리 교회가 예배를 스포츠센타에서 드렸을 때 한 집사님이 오셔서 바이얼린으로 찬양을 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밀피타스에 있는 한 개척교회를 함께 섬긴 집사님입니다. 그 집사님은 서울대학교 음악과를 나와서 나중에 KBS 교향악단 멤버가 되었고 미국에서는 버클리대학교 바이얼린 부수석 주자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한세대에 강의를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어렸을 때 바이얼린을 하기 싫을 때가 있었는데 엄마는 강제로 자기에게 바이얼린을 시켰습니다. 그런 엄마가 그때는 너무 미웠지만 이제 와서는 너무도 어머니께 감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강제로 자신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나중에 그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바이얼린으로 아름다운 찬양을 하나님께 올리게 되었으니 강제로 공부를 시킨 엄마에게 감사한다 하였습니다. 지금은 자기 딸에게 바이얼린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가 싫어할 때가 있을지라도 아이가 언제가는 엄마에게 감사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인내하면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하였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와 교인들도 역시 비슷한 차원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목사가 하나님께서 보낸 종들이라면 목사는 성도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주의 종으로서 만일 하늘나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는 강제로라도 그를 이끌어서 천국으로 가도록 하는 사명을 맡은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가 성도들이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분명 반드시 있는데 그 지옥이라는 것이 대충 살만한 곳이라면 가라고 권장을 하겠지만 지옥은 성경에서 말한바 불구덩이인데 너무도 뜨겁고 너무도 고통스러운 곳인데 단시 한시적으로 고통을 받다가 나중에 천국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곳인데 그곳으로 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런 목사는 얼마나 사명감이 없는 목사입니까? 나중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심판보좌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서 지옥으로 끌려가면서 자기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를 원망할 것 아니겠습니까? 와따! 우리 목사님 내 팔을 비틀어서라도 내 멱살을 꽉 잡아서라도 내 다리 몽생이를 분질러서 라도 교회 나오게 하셨더라면! 원망하면서 지옥으로 끌려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땅에서 사는 것은 그저 한 7-80 년 살지만 천국에서 사는 것이나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니 얼마나 죽음 이후가 중요한 것이고 죽음 이전의 삶이 그것을 결정하니 그것 역시 짧은 세월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떤 신앙생활을 대충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에이 목사님! 이제 21 세기 개명천지에 무슨 천국과 지옥같은 것이 있을랍디여! 그저 세상에서 착하게 살라고 종교들이 모두가 다 한결같이 그런 있지도 않은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놓고 엄포를 떠는 것 아닙니까?” 입이 달렸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2-30 년이 지나든지 10 년이 지나든지 그는 어두운 지옥으로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면서 자신이 저 땅에서 살 때 그때 했던 헛소리를 슬피 울며 이를 갈며 뉘우치게 될 것이지만 때는 늦으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놓았고 천국이 좋은 것이고 지옥이 나쁜 것임을 알기에 강제로라도 구인해서라도 멱살을 콱 잡아서라도 천국의 잔치집으로 끌고 오라는 것이 예수님 비유에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단지 지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만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도 욕심이 있으십니다. 무슨 욕심이 있으실까?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조금 받는 것보다는 영광을 더 많이 받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 개미 눈꼽만큼만 사람들이 들어와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와서 자신의 집을 가득가득 채워서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더 영광을 받으시려고 무척 노력을 하십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영광을 많이 받으면 좋고! 적게 받아도 어쩔 수 있는가 그러면 그저 그만이고! 그런 유유자적한 자세가 아니십니다. “재들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가 보자!”고 단지 감시하거나 방관자적인 자세도 아니십니다.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더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일꾼을 시켜 자기 집을 더 채우고 더 채우려 하십니다.


마치 잔치 집의 주인이 자신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동네방네 모든 사람들에게 초청을 하여 자신의 잔치 집에 와서 먹고 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심지어는 ”품파타령을 하는 걸인이라도 내 집에 와서 배를 가득히 채우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잔치집 주인의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의 집에 많은 이들이 나와 성령의 술과 말씀의 떡으로 가득 배부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단지 그렇게 바라는 바램으로만 끝나지 않고 자신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자신의 영광을 더 채우고 만족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움직이시고 일꾼들을 움직여 부단히 집을 채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치라도 영광을 더 받으시려는 우리 하나님의 중심 그 맘을 읽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만인구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집 천국에 와서 구원을 받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시켜 강제로라도 천국을 채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천국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초월적인 공간에 있습니다. 정말 어디가 있는지는 죽어서 천당에 가보아야 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천사들에게 물어보면 그 주소를 알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이 땅에도 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이 땅에서의 집입니다. 요한복음 2 장 16 절과 17 절입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집이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구약시대는 성전이요 신약시대는 교회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하늘에도 있고 이 땅에도 불완전한 형태이지만 하늘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예배를 받으시기도 하고 땅 위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강림하셔서 예배를 받으시기도 합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땅에 있는 당신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집, 성전을 채우라 하시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채우라 하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있는 아버지의 집인 교회에 성도들이 가득 가득 차서 우렁차게 찬양을 올리는 것을 들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에게 너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지시하십니다. 교회가 비전 2013 project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선교 100 주년이 되는, 강진읍교회가 1913 년에 세워졌으니까 100 년째 되는 해인 2013 년에 2013 명의 성도들로 가득 채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은 그저 한국교회의 물량주의다 라고 비판할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성도로 가득 채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데 그게 무슨 물량주의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니 ”내 집을 채우라!“에서 오늘에 있어서 내 집은 ”하나님의 집“인 강진읍교회입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까 그 명령대로만 하면 됩니다. 만일 주인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 하였으면 그렇게 씻으면 되고 한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씻으면 됩니다. 만일 주인이 소를 지붕 위에다 올려놓아라!고 명령하셨다면 뭔가 주인의 심오한 뜻이 있을 것이니 지게차를 동원해서라도 소를 지붕에 올려놓으면 됩니다.


이제 우리 금번 부흥성회를 통하여 그 명령을 한번 준행해 보십시다. 우리 강진읍교회 성도들이 금번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말씀의 잔치 천국의 잔치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전을 한번 가득 채워 보십시다.

수원의 어떤 예수교장로교회에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자!”는 교회표어를 내걸고 주의 전을 채우는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교회 한 안수집사님이 “건설회사 인력관리부”에 있는 분인데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전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목표이고 주의 종 목사님의 말씀이니 100 일 전도작전 그대로 전도는 해야 하겠는데 예수 믿고 그 기간 안에 교회를 나오게 할 자신도 없었고 그렇게 시간을 낼 수도 없었습니다. 안수집사의 할당인원은 5 명이었는데 그날도 교회를 가는데 교회 앞에 큼직한 정문에 “내 집을 채우라”는 프랭카드를 보고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그 프랭카드에는 장로 10 명 안수집사 5 명, 서리집사 2 명 전도목표의 구체적인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령을 냈습니다. 자기 건설회사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 중 만만한 사람 다섯 사람을 붙잡고 “당신 하루 일당이 얼마냐?” “13,000 원이다” 그러자 내가 20,000원을 줄테니 이번 일요일날 11 시에 우리 수원성장로교회에 와서 1 시간만 앉았다가 갈 수 있겠느냐? “좋다” 그들 사이에 big deal이 성립되었습니다. “조건은 이렇다. 서로 떨어져서 앉았다가 예배가 다 끝나갈 때쯤 광고시간에 안내위원이라는 명찰을 붙인 사람이 인사하면서 무슨 쪽지를 내밀거든 거기에 당신 인적사항을 적고 인도자란에 ”김경찬 집사“라고 써주기만 하면 된다” “알았다” 만일 다음주에도 나오면 무조건 20000 원씩이다“ ”알았다“ 그래서 계약이 성립되었는데 예배시간에 안내위원들에 의해 정확하게 다섯 사람이 김경찬 집사에 의해 인도된 것으로 목사님이 소개하였고 목사님은 안수집사로서 벌써 다섯 명의 목표를 첫 주일에 달성한 사람이 있다고 김경찬 집사를 일으켜 세워서 만장이 보는 가운데 "전도의 모범"이라고 우리 교회 앞으로 기둥감이라고 해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김경찬 집사는 강권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직장 노무관리에서 하던 방법을 사용하여 주의 전을 채웠고 결국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시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만들든지 실천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우리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실 수 있도록 아버지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


주보에 끼인 부흥회 전단지가 있지요!! 전단지를 가지고 가서 예수 믿고 살아야 할 사람 딱 한 사람만 데리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금번 성회 목사님은 첫날만 데리고 나오면 그 뒤부터는 그가 예수 믿도록 하는데 책임을 지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오늘 첫날만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살살 달래서 데리고 나오든지 아니면 눈깔사탕을 사줘서 하시던지 아니면 김경찬 집사와 같이 해서라도 악한 방법만 아니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금번 성회로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나오라고 한다고 나오나?. "이렇게 유치한 방법으로 꼭 전도를 해야 되나?"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는 신비롭습니다. 고린도전서 1 장 21절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유치한 방법을 써서라도 어쨌든 말씀대로 전도하려고 하면 그 유치한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씨는 여러분이 뿌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금번 오늘 말씀, 너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셨으니 예수님 말씀대로 이 전단지를 가지고 가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강권하여서라도 딱 한 사람이라도 오늘 밤 부흥성회에 데리고 나오겠다!! 다짐하시는 분은 조용히 전단지를 가슴에 얹고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귀한 말씀을 들려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너희는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하신 말씀 그대로 준행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손으로 든 전단지를 가지고 가서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다짐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저희에게 지혜를 주시고 열심 주시어 어떠한 일이 있든지 한 사람을 주의 전에 데리고 나와 아버지의 집을 채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오늘 데리고 나온 이들이 은혜의 말씀을 듣고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는 역사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구원의 통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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