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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게 쓰임받는 인생

관리자 2010-07-17 (토) 20:51 13년전 2985  
 

2006 년 10 월 15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성경본문 : 디모데후서 2 장 20 절 - 21 절    

제       목 : 귀하게 쓰임받는 인생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지방 강진은 지금 축제 중에 있습니다. 제 11 회 청자문화 축제가 어제 토요일 개막하여 앞으로 22 일까지 지속됩니다. 강진청자의 원류는 물론 고려청자입니다. 신라말기 장보고 장군의 해상무역이 성행하면서 중국산 도자기를 수입하였고 그 영향을 받아 단순히 수입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번 만들어 보자는 운동이 옛 고려의 강진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입한 도자기의 면면을 뜯어 본 고려의 옛 강진 사람들은 에이 이런 정도라면 중국에서 수입해 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것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우리 토착의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진의 옛 선조들이 창조적 예술혼을 혼을 불어 넣었을 때 중국의 도자기를 훨씬 뛰어넘는 중국의 도자기가 따라올 수 없는 비색청자, 상감청자로 발전시켰습니다. 고려의 강진청자는 당시 중국으로 수출되어 송나라 시대 고려청자는 그 비색의 우수성으로 인해 중국에서도 절찬을 받아 중국의 권력자들과 부호들은 고려의 강진청자를 소유하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고려청자의 그 비색의 신비에 대하여 세계가 감탄하고 있습니다만 그 비색은 강진의 푸른 하늘, 강진의 푸른 바다, 강진의 푸른 산, 강진의 푸른 강물들의 조화를 이룬 색깔로서 강진청자의 맑고 시원하며 은은하기도 하고 푸르른 비취빛 배색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어느 지방은 땅콩 하나로 주민 전체가 풍성하게 먹고 삽니다만 앞으로 강진은 이 청자 하나로만 해도 세계에 그 문화적 우수성을 알리면서 더욱 세계 속에 강진을 심고 청자 하나로 만해도 강진의 경제적인 융성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 고장의 청자축제는 5 연속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앞으로 6 연속 최우수 축제로 선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강진읍교회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고장에 은총의 선물, 고장 전체에 푸르름을 주시어 청자가 태어나는 생태환경을 주심을 감사드리면서 우리 고장의 축제가 더욱 성공하여 사람들의 가슴 속에 더욱 새겨지게 되도록 청자축제의 성공을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축제를 이끌어가는 강진군수 황주홍 성도님과 문화관광과장인 김상수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모든 강진군의 모든 공무원들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어 성공적인 축제로 만들어 가도록 중보하며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릇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본문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권면한 내용 중의 일부입니다. 20 절부터 보겠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여기서 큰 집이 무엇을 말합니까? 보통 우리가 말하는 큰 집이란 아우나 그 자손이 ‘맏형이나 그 자손의 집’(종갓집)을 이르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큰 집이 무엇일까? 히브리서 10 장 19 절에서 21 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집이란 하나님의 집 교회를 말하고 하나님의 집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큰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큰 집은 바로 하나님의 집 성전을 말하고 시편에서 보면 큰 집은 생명피조세계가 사는 우주를 큰 집이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큰 집에는 여러 그릇들이 있다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릇에 그런 그릇만 있겠습니까? 사기그릇, 놋그릇, 스텐그릇, 프라스틱 그릇, 청자그릇 등등 여러 그릇들이 있습니다. 주인은 집에다가 여러 종류의 그릇들을 놓아 두어 주인의 마음에 따라 씁니다. 청자와 같은 그릇들은 집 안 안방에 두고 집을 품위 있게 하고 은은하게 하고 우아하게 하는데 씁니다. 오강도 그릇의 일종입니다만 오강을 사기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사기오강이 잘못 깨지면 오줌이 다 새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스텡오강이 나왔습니다. 집 안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오강이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만 옛날에는 변소간은 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볼 일이 있으면 오강에다가 해결하고 뚜겅을 덮어놓으면 편했습니다. 오강을 밥그릇 이상으로 귀하게 사용했습니다. 주인은 큰 집에 있는 그릇들을 주인의 목적에 따라 씁니다. 어떤 그릇은 주인이 사랑을 베풀 때 자주 애용하여 사용합니다. 어떤 그릇은 주인이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가게 하는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어떤 그릇은 은혜를 베푸는 그릇으로 사용하고 어떤 그릇은 축복을 베푸는 그릇, 축복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주인은 그 마음이 기뻐함에 따라 그릇의 용도를 달리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21 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1 절을 보면 “귀히 쓰는 그릇”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가 귀히 쓰는 것입니까? 주인이 귀히 씁니다. 귀히 쓴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입니다. 귀히 쓰기도 하고 귀히 쓰지 않기도 한다 그 말입니다. 어떤 그릇을 주인은 귀하게 쓸까? 내가 그릇이라도 그런 욕망을 가질 것입니다. 아 주인이 날 귀하게 써주기를 바라지 주인이 날 천하게 쓰거나 주인이 날 아예 손도 안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주인이 날 사용하여 줄 때 그릇에게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을 주인이 귀히 쓸까? 그것은 주인의 마음입니다. 주인이 쓰고 싶으면 어떤 그릇은 귀히 쓰고 어떤 그릇은 천히 씁니다. 이는 전적으로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황금빛 나는 금그릇이라도 주인은 귀히 쓰지 않을 수 있고 사기그릇이라도 주인의 마음에 들면 귀히 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고 권면하면서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이 어떤 그릇인지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


첫째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은 우선 자기를 깨끗이 하는 그릇입니다. 21 절 전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무엇입니까? 21 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릇이 있고 그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릇이 그릇을 깨끗하게 한다 그 말입니다. 그릇이 어떻게 그릇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는 그냥 그릇이 아니라 인생그릇을 말함으로 인생이 그릇과 같은 자신의 인생을 깨끗이 함을 말합니다. 깨끗하지 않은 그릇, 그 그릇 안에 더러운 것들로 소복히 쌓여 있는 인생그릇들은 주인이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그릇을 더럽게 하고 추하게 하고 냄새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그릇 속에 미움을 담고 있을 때 그릇은 더러워집니다. 사랑은 예쁘지만 미움은 예쁘지 않습니다. 미움이 우리 인생그릇에 담겨지면 미움은 독을 발산하고 분노로 터져 나와 인생의 그릇을 오염시키고 더럽게 합니다. 미움은 우리 안에 담겨질 때 우리 인생그릇은 추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불평이 담겨 있을 때 우리 인생 그릇이 더러워집니다. 그 사람에게 2 개를 주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은 3 개를 받았는데 왜 자신은 한 개를 더 주지 않느냐고 불평한다면 그 불평하는 것을 보고 그의 인생이 소유욕으로 물들여진 추함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은 한 개도 받지 못한 가운데 내가 받은 2 개로 인해 나도 역시 한 개도 받지 못할 사람인데 하면서 감사해 한다면 그 인생그릇은 옆에서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그러나 서로 비교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화를 내고 한다면 그 인생그릇은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이 담겨 있음으로 인해 그릇이 더러워집니다. 그런 그릇들은 쓰지 않습니다. 카인의 그릇 안에 미움과 분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나중에 카인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아닙니다. 미움, 불평 등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내 인생그릇의 가치를 하락시킬 뿐만 아니라 쓰임을 받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릇 안에 자아가 강하게 담겨 있으면 그릇에서 솔솔 안 좋은 냄새가 납니다. 때론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주장하지 아니할 때 그 그릇 속에 오히려 텅빈 충만이 있지만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앞세우고 관철시키려 하는 이들을 볼 때는 영낙없이 그 사람에게 썩은 냄새가 납니다. 이 냄새를 다른 사람이 아닌 제 자신에게서 나는 그런 썩은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내가 담임목사라고 하여 주장을 강하게 한다든지 내가 남편이라고 하여 마치 억지 부리듯이 내 주장을 강요한다든지 내가 아버지라 하여 자식들에게 내 생각을 관철시키고 강요한다든지 할 때 내 속에서 어떤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나는 것을 맡을 때가 있습니다. 내 그릇 속에 지나치게 세상적인 것들이 들어와서 세속적인 것들이 내 인생을 점령하게 되고 세속의 철학이 내 인생의 그릇 속에 가득 담겨지게 될 때 바로 그때도 내 그릇은 더러워지게 됩니다. 미움, 불신, 불평, 자아의 강함 이런 것들이 무엇입니까? 이름들은 다르지만 그것들을 통괄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그것을 죄악이라 합니다. 죄와 악이 내 인생 그릇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 내 인생 추해지기 시작하고 내 인생 냄새나기 시작하며 내 인생 탁해지기 시작하고 내 인생 더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내 인생을 그릇을 깨끗케 할 때 바로 그때 내 그릇이 하나님께로부터 귀히 쓰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 인생의 그릇에서 어떻게 죄악의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습니까? 죄악은 마치 아교풀과 같이 내 인생의 그릇 밑바닥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내 그릇에다가 죄악의 쓰레기를 담도록 방치한 것을 회개하고 정결케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바랄 때 예수님은 보혈의 은총으로 내 그릇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면 예수님은 보혈의 은총으로 내 인생의 그릇을 밑바닥까지 씻어 정케 해 주시고 깨끗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큰 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라 합니다. 돌은 움쩍달싹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안되는데요? 아버지가 말합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모든 일을 하지 않았다. 왜 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 우리가 우리의 그릇을 깨끗케 하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입니다. 요한일서 1 장 9 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회개함으로 우리는 예수님께 간구함으로 우리의 그릇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그릇이 깨끗할 때 주인은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 해야 내 인생 그릇이 주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됩니까? 둘째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은 우선 자기를 거룩케 하는 그릇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보십시오! 21 절 후반절을 보겠습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1 절 후반절에서 주의해서 보아야 할 단어가 “거룩하고”가 있습니다. 이는 단지 “거룩하고”란 수식어가 아닙니다. 거룩한 그릇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그릇이 될 때 주인의 쓰심이 합당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하여 쓰임을 받는다 그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그릇은 부단히 온갖 세속적인 것을 비우고 거룩을 담아야 합니다. 거룩을 담는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4 장 4 절에서 6 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그릇에다가 말씀을 담고 기도를 담으면 그것들은 거룩한 누룩씨와 같기 때문에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것들이 퍼져서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무엇이 내 인생 안에 거룩이 담겨지게 하는 일입니까? 내가 예수님의 거룩한 살과 피를 받을 때 내 속에 거룩이 담겨지는 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에 출입할 때 그것 역시 내 인생의 그릇에 거룩을 담게 됩니다. 또 무엇이 우리 인생의 그릇을 거룩하게 합니까? 시편 99 편 9 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내 영혼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져 거룩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인생의 그릇은 하나님께서 만든 작품입니다. 공동번역 이사야 64 장 7 절에 보면 이런 멋있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그래도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이,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손끝으로 세심하게 공들여 만든 하나님의 작품들입니다. 남자는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만든 작품이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까 본차이나 같은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작품 안에 최고로 좋은 것들을 담아 놓아야지 시시껄렁한 것들을 세상의 잡쓰레기 같은 것들을 담아 놓으면 주인이 속으로 나는 최고 심혈을 기울여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저 그릇은 그냥 세상의 허접쓰레기들로만 가득 채워 놓았구나! 하면서 그런 그릇들을 쓰시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하나님의 작품을 깨끗이 보전하면서 그 안에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좋아할 거룩한 것들로 채워 놓으면 그 그릇을 기뻐하시고 그 그릇을 귀하게 쓰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해 놓고 쓰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도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먼저 “청비채”란 말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청비채”가 무엇이냐? 청이란 청자를 말하고 비란 비우는 것을 말하고 채란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청자와 같은 내 인생 그릇에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으로 채우겠다는 뜻을 세 자에 담았습니다. 우선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인생을 먼저 그릇이라고 형상화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릇도 그냥 그릇이 아니라 고려비색상감청자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청자박물관에 가보았는데 그 중 어떤 도자기는 시가로 20 억원이 훨씬 넘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시가로 20 억원 정도 하는 청자 정도만 하겠습니까? 그 어느 누구가 와서 20 억원이 아니라 200 억원을 줄 터이니 당신 생명을 팔라 하면 생명을 선뜻 내어 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은 고려비색상감청자 훨씬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 그릇이며 단순히 그릇이 아니라 작품이고 단순히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손수 빚으신 명품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있는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이 세심하게 창조의 혼으로 빚어 만든 고려상감청자보다도 뛰어난 최고의 명품그릇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 앞에 최고의 강진청자가 여러분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여러분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여러분의 그릇 안에 담겨져 있는 가치 없는 것들 무가치한 것들 내 안에 담겨 있는 쓰레기 같은 것들을 비워내는 일입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그릇에 가치도 없는 것들이 들어 있다면 되겠습니까? 내 인생 앞에 놓여 있는 청자 속에 담겨 있는 미움을 헹구어 내고 내 그릇 속에 담겨 있는 불평을 씻어내고 내 그릇 속에 담겨 있는 내 자아를 비워내고 내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악한 욕망을 부단히 씻어내는 일입니다. 회개하면서 씻어내고 기도하여 씻어내고 악한 죄와 싸우면서 씻어내고 부단히 내 그릇을 헹구어내는 일입니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그릇 속에 있는 죄를 씻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찬송가 186 장 2 절을 반복하여 부릅니다.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주시네”. 찬송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요 찬송으로 씻어내는 일입니다. 


청비채입니다. 이제 채우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번 책상서랍을 정리하였습니다. 서랍 속에는 온갖 잡다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보니까 안쓰는 볼펜, 다 쓴 메모지 그 안에 두어도 하등 필요도 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다 비워내고 서랍 안에다 여러 조그마한 상자들을 배치해 두고 상자에 따라 어떤 곳에는 연필과 볼펜을 어떤 곳에는 칼과 가위를 어떤 곳에는 지우개를 어떤 상자에는 형광펜을 놓아두었더니 보기에도 좋고 쓸 때도 무척 편리하였습니다. 서랍을 정리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생각없이 산다면 서랍들이 쓰레기 같은 것들로 가득하여 서랍의 용도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볼펜 중에서도 꼭 써야 할 좋은 것들로만 가위도 가장 잘 드는 것으로 스카치테이프도 좋은 것들로 놓아두었더니 무슨 작업을 할 때 무척 편리했고 책상서랍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그릇은 엄청나게 소중하고 하나님 만드신 명품입니다. 이 명품 안에 꼭 있어야 할 것들로 이 명품 안에 소중한 것들로 채우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릇을 보고 자신과 닮은 거룩한 것들로 채워져 있을 때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씻어낸 내 그릇에다가 거룩한 말씀을 담고 내 그릇 속에 기도로 성령과 교통하여 거룩을 담고 내 그릇 속에 성전출입함으로 거룩을 담고 예배드림으로 거룩을 담아나갑니다. 바로 그때 내 그릇은 거룩이 담겨지게 되어 거룩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주인은 내 인생 앞에 놓여 있는 그릇을 보시고 귀하게 쓰시기도 하고 천하게 쓰시기도 합니다. 내 그릇이 깨끗하고 거룩한 것이 많이 담겨 있으면 귀하게 쓰실 것이요 내 그릇이 더럽고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쓰시지 않고 외면할 것이요 내 그릇 속에 거룩성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천하게도 사용하실 것입니다. 내 그릇이 잘 닦여져 있고 내 그릇 안에 거룩이 충만하다면 주인은 반드시 그릇을 보시고 그 그릇을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따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이라는 그릇을 하나님의 집에서 성전에서만 사용하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그릇을 보시고 이 세속사회에서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요셉은 자신의 그릇이 세속의 탐욕이나 유혹으로 더러워지지 않게 항상 깨끗하게 보전하였고 항상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살았음으로 인해 그는 나중에 세속의 세상에서 크게 쓰임받는 귀한 그릇이 되었습니다. 대제국 애굽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말씀에 먹지 말라고 한 음식들로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하였을 때 메데제국 앗수르제국 바벨론 제국 세 제국에 거쳐서 총리대신으로 세속사회에서도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들어 쓰셨습니다. 다윗이야 말로 참으로 초야에 묻혀있는 무명의 소년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노래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들어 선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으시고 성경의 구원사에 그를 귀하게 사용하셨고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인물로 크게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의 그릇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그릇 속에 죄와 악으로만 가득 차 있는지, 세속적인 것으로만 넘쳐 있는지 자기의 강한 자아로만 채워져 있는지 예의주시하시고 여러분의 그릇이 정결한 그릇인지 거룩성이 담겨 있는지를 보시고 그릇의 상태를 보시고 선한 목적에 따라 크게 쓰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릇이 어떤 재질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릇이 은그릇이냐 금그릇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릇이 어떤 재질로 만들어져 있느냐에 따라 명품그릇이 되기도 하고 그저 사기그릇도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중요한 것은 그 그릇의 재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그릇이 단지 진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이라 하여도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그릇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일 그 그릇이 질그릇이라고 하여도 그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은 그릇 자체가 은그릇이고 금그릇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그릇이 정결케 되어 있고 그 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를 보시고 앞으로 귀하게 자주 애용할 것인지 그저 그렇게만 여길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그릇을 깨끗케 하고 그릇이 거룩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마침내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무슨 일입니까? 주님이 우리의 그릇 안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 장 7 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 그릇 속에 보배이신 주님을 오심을 말합니다. 질그릇이 보배그릇으로 바꿔지게 됩니다. 우리의 그릇이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이라 하더라도 보배이신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그 즉시 보배그릇이 됩니다. 보배그릇이 되면 보배이신 주님이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우리의 그릇을 큰 집에서 크게 사용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선한 일에 크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간절한 마음의 소원과 함께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면서 여러분의 그릇을 준비하시되 오늘부터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릇 속에서 미움을 비워내시고 불평을 헹구어 내시고 강한 자아를 비워내시고 여러분의 인생을 냄새나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비워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면서 헹구어 내시기 바랍니다. 한편으로 성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그릇을 거룩함과 사랑함으로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의 그릇을 보시고 하나님이 정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지역사회에서 나라에서 온 세계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귀하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마음에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 인생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 그릇을 살피시고 지금 사용하실 그릇이 없나를 보고 계십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 인생이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저희를 정결케 하시고 저희 안을 주님의 거룩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저희 인생을 주님의 선한 목적대로 예비하여 주옵시고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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