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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게 하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0-07-20 (화) 22:32 13년전 2356  
 

2006 년 10 월 1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성경본문 : 사사기 3 장 1 절 - 4 절 

제       목 : 안되게 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 여러분의 일터와 사업, 여러분의 계획과 미래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때론 안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되게 하시되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만 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안되게 하시는 걸까요? 오늘 사사기 3 장 1 절에서 3 절에 보면 안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다음에 주변의 대적들을 다 물리쳐 주시고 평안하게 살게 하셨으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사는 가나안 땅 주변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적들을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들을 배치해 놓으셨고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가나안 사람, 시돈 사람, 히위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주변 곳곳 사면팔방에 있다는 것은 여차하면 이스라엘을 칠 수 있다는 말인데 이스라엘이 어디 한시라도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적들을 이스라엘이 아닌 애굽 가까운 곳으로 옮겨놓으실 일이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주변에 놓아 두셨을까요? 이는 꼭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바로 믿는 우리들에게 있는 동일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케 하시는 하나님!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는 하나님!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 병든 자를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시는 하나님! 척척척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뭐든지 되게 하시고 합격도 시켜주시고 승진도 하게 하시고 인생의 진보와 향상이 팍팍 이루어지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과 반비례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생활에서는 뭔가 잘 안될 때가 많습니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불통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추진하는 일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한 문제가 생겨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또 다른 문제가 거듭하여 터집니다. 그토록 기도했건만 침묵만이 메아리되어 돌아옵니다. 몸도 계속 아파오고 그토록 “낮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기도했건만 질병은 내게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믿는 자를 사랑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형통하게 해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은 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만사가 잘 안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성경에 묻고 성경에서 대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이들의 생활이 다 잘되거나 잘 풀린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아픔과 고통과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 세가 되도록 자기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삭도 결혼을 한 다음에 한참이 지났어도 아내 리브가와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집니다.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믿음의 표본이라고 하는 인물들을 보면 결혼하자마자 바로 자식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창세기 16 장 1 절에 보겠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는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 변칙적으로 첩을 들여 자식을 낳게 됩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창세기 25 장 20 절과 21 절 전반절을 보겠습니다.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였으므로” 성경에서 그 이름이 유명한 믿음의 조상이란 분들의 가정에는 처음에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들에게 생기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하였습니다. 출애굽하였던 애굽 땅과 가나안 땅 사이에는 광야가 있었습니다만 밥해 먹으면서 자녀들과 삼육구 게임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단지 직선거리로 3 - 4 주일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를 왜 40 년 동안 뺑뺑이를 돌리셨을까요? 애굽에서 430 년 동안 고통당한 것도 너무도 긴 세월이었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어서 빨리 들어가게 해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면 완전히 대적을 없애주실 일이지 왜 대적들을 두어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하는 것입니까? 바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셔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시고 세계선교를 위해 택한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지혜를 넘치게 주고 힘도 넘치게 주었다면 더 힘차게 복음을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게 하였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찌르는 가시와 같은 육체적인 질병을 주셨을까요?


성경에 보면 뭐 잘 되어 형통하게 된 역사도 많이 있지만 너무도 안되고 시련과 실패를 거듭하게 된 일도 많은 데 특별히 믿음의 사람 가운데 그런 일이 많습니다. 시편에 보면 시인에게 고통이 있었습니다. 시편 38 편에 보면 시편시인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1 절에서 3 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이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왜 시편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인데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고 아픔의 눈물을 흘리고 고통당하게 된 배후에는 그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또한 사탄이 고통을 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안 되는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통의 요소를 남겨 두시며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손수 안되게 하십니다. 정말 그런가 한번 살펴볼까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라헬이 왜 잉태하지 못하였습니까? 성경에 보면 분명하게 그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태케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하여 짜증을 내자 야곱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창세기 30 장 2 절입니다. “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은 하나님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어 잉태할 수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이 사무엘상 1 장 5 절에서 6 절에 나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 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가 강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찌르는 가시와 같은 고통이 있었을 때도 그것을 없애달라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셨습니다. 이는 그 찌르는 가시와 고통을 주께서 친히 주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안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그물을 던졌습니다만 단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고기잡이 전문가가 던졌는데도 단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이야 말로 확률상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번에 153 마리를 잡을 수 있지만 밤새내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확률이 오히려 더 적습니다. 이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못 잡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옆에 오셔서 때론 안되게 하십니다. 이것을 해도 안되고 저것을 해도 안되고 요것을 해도 안되고 안되게 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형통이 아닌 불통하게 하실까요?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실패를 경험케 하시고 몸과 육신이 고통 중에 있게 하시고 왜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되게 하셔야지 안되게 하시는 일을 하실까요? 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곳에 이방인들을 계속 남겨두시어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하실까요? 왜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고 한나 옆에는 한나를 괴롭히고 격동하게 하는 브닌나와 같은 인물을 옆에다 배치해 두셨을까요?


만일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에게 거듭되는 어려움이 있고 시련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이 없어!”, “하나님은 지금 부재중이셔! 하나님은 지금 안식년에 들어가셨어!”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렇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간디!, 하면서 하나님과 담을 쌓거나 하나님의 절대능력을 제한시켜 버리지만 믿음의 사람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야!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무엇인가 있을꺼야! 하나님께서 하셨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하신 뜻이 있을 거야! 하면서 그 뜻을 찾으려 합니다. 유대인들은 지나온 역사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난 세기에는 히틀러에 의해 600 만명이 가스실에서 죽어갔습니다. 이 엄청난 고통 가운데에서도 유대인들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만약 하늘나라에 간다면 하나님께 물어야 하겠다고! 왜 그때 하나님 그렇게 하셨는지를!  이 시간 우리가 성경이 가르쳐 주는 범위 안에서 그 안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봅시다. 그 깊으신 뜻이 무엇일까요?


우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안되게 하시는 대상들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찾아다니며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유감스럽게도 아닙니다. 악인들은 보란 듯이 활개를 치고 득세하고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하나님은 이들이 잘되는지 못되는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무엇이 잘 안 되는 사람,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를 안 되게 하시는 사람을 집중 연구해 보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이삭과 야곱을 얼마나 사랑하였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미워하셔서 그로 임신을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사도 바울을 미워하셔서 찌르는 가시와 같은 고통을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극한 찬송시를 써 올린 다윗을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뽑으신 이스라엘 백성을 왜 그토록 고통의 광야를 40 년 동안 곁에 놓아두신 것입니까? 살펴보십시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시련을 주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만일 나에게 어떤 집중적인 고통이 계속 뒤따른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매를 때리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어 계속 나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자신은 사랑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거짓이고 허구이고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의 법칙에 하나님도 예외가 없으십니다. 하나님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에게 때론 안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 자기에게로 다가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로 가까이 오지 않을 때는 가까이 오도록 하는 모종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일부러 어떤 일을 안되게 하시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 자신에게 간구하고 하나님께 찾아오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을 안 되게 하신 것은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찾아와서 자신에게 간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삭을 볼까요?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성태치 못하였습니다. 창세기 25 장 21 절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음으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무엇입니까? 마치 하나님은 이삭의 간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와 기도하게 하시려고 그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십니다. 한나에게도  안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 장 6 절에 볼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아이를 성태치 못한 것만으로도 너무도 괴로웠는데 설상가상으로 브닌나가 옆에서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때 한나가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사무엘상 1 장에 보면 한나는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게 되고 통곡하고 기도하게 되며 성령에 취하여 기도하게 되고 결국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는 여자가 되게 하여 그 기도로 인하여 사무엘이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정치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자를 아울러 겸하는 최초의 지도자인 사무엘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무엇이 잘 안되면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도하기를 요청하시는구나! 아 하나님께서 내가 믿음으로 바르게 서기를 원하시는구나! 그렇게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뭔가 잘 안되게 하시고 시련을 계속 가중시키신다면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니 그 길에서 돌이키라는 멧세지입니다. 요나가 시련을 당하였습니다.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폭풍이 불어 그 배가 뒤집혀 지게 되었습니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간 요나는 눈물로 회개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다시스에서 니느웨로 길을 돌이켰습니다. 휘몰아치는 폭풍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 기뻐하는 길로 가지 아니하고 세속적인 길로 가거나 쾌락과 어둠의 길로 가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가 가진 물질을 한꺼번에 빼앗기도 하고 그가 가진 건강을 뒤흔들어버리시기도 하고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을 두어 그 인생을 가로막기도 하시고 그가 가진 사업과 자녀들과 계획들을 전적으로 흔들어 혼돈케 해버리시기도 합니다. 악인들은 그렇게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깨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어려움은 처음에는 약하게 피아니시시모에서 시작하다가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포르테시시모로 고통이 가중되어 갑니다. 그러나 깨우치고 돌아선 경우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 2006 년 9 월호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남자가 엘리야 선지자와 함께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조건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가 선지자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 들른 곳은 어느 가난한 부부의 집이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이 먹을 음식의 일부를 나누어주고 심지어 잠자리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부부의 주된 수입원이자 그들에게 우유를 제공하는 암소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부부에게 고맙다는 말만 남긴 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남자는 선지자를 못 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저토록 착한 부부에게 암소가 죽는 시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선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어느 부자의 집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하인이 나와 그들에게 수리 중인 헛간 한쪽 구석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헛간 벽이 말끔히 수리돼 있는 게 아닌가. 이제 남자는 더는 침묵할 수가 없었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그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남자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여행을 그만 두어도 좋습니다. 어째서 그 착하고 친절한 부부한테는 소를 뺏고, 인색한 부자한테는 헛간까지 수리해 주신 겁니까?” 엘리야는 남자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세. 우리가 그 친절한 부부 집에 머물었던 그날 저녁, 죽음의 천사가 그 집 부인을 찾아왔네. 나는 그에게 그들이 좀 더 같이 살 수 있도록 그녀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부탁했지!. 그리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그 부자의 경우는 말일세. 헛간 지하실 벽에 금은보화들이 묻혀 있었다네. 일꾼들을 시켜 공사를 마무리하다 보면, 부자는 그 보화들을 찾고 말았을 거야.” [좋은 생각], 통권 176호, p.87(2006. 9).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에게서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이해가 되지 않고 풀려지지 않는 수수께끼란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께 그토록 기도하고 기도하였는데도 시련이 그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가중되는 때가 있습니다.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고통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데도 문제와 시련의 폭풍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기도도 계속 하고 있고 어떤 특별한 잘못을 범치 아니한데도 시련과 고통은 친구와 같이 동행하려 합니다. 바로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사랑하신 경우입니다. 그로 무엇인가 믿음의 큰 인물로 만드시기 위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기한이 끝나기 까지 그 고통은 지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셨습니다. 그에게 줄 수 있는 고통들은 다 주었습니다. 고통의 꼭지점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깊고 신비한 뜻을 욥은 눈치챘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욥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23 장 8 절에서 10 절입니다. “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가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도 바울에게 찌르는 가시와 같은 고통이 있었을 때 사도 바울이 이 고통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만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랑하셔서 삼층천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시 받은 것이 너무 큼으로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겸손케 하는 훈련을 통해 더 큰 믿음의 인물로 만드시기 위해 찌르는 가시와 같은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당할 때 불평할 수 있습니다만 불평은 고통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분별해 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현재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불평함으로써가 아니라 묵상을 통해서 자신에게 묻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왜 이런 고통이 나에게 있을까? 왜 이런 문제들이 떠나지 않을까? 아하,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구나! 아하 하나님께서 내가 더 당신께 다가가기를 원하시는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셔서 그렇게 하셨구나! 아하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정결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구나! 내 발이 죄악에 빠질 때 주 나를 붙드시기 위하여 이 시련이 내게 오는 것이구나! 기도하고 기도했는데도 그 고통이 떠나지 않으면 아하!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단을 시키셔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려고 그러시는구나! 하나님 깊으신 뜻을 헤아려 보다가 안 되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찾고자 엎드려 간구할 때 하나님은 어느 순간 눈의 비늘이 떨어진 것 같이 깨닫게 하시고 왜 내가 고통을 당하는지 왜 내가 시련 속에 있는지 왜 내가 문제에 휩쌓여 있는지 보혜사 성령께서 알려주십니다.


광주조선대학병원 엘리베이터 옆에 적혀진 기도문을 다시금 들려드리겠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 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겹게 하심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 혹시 여러분에게 시련은 없습니까? 여러분에게 찌르는 육체의 가시들은 없습니까? 여러분 옆에 혹 브닌나와 같은 대적은 없습니까? 아니 여러분의 삶의 주변에 블레셋 방백들과 같은 골치꺼리들은 없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에 성태치 못한 일은 없습니까?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는 일은 없습니까? 여러분이 밤새 그물을 드리웠는데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경험은 없습니까? 여러분에게 실패의 아픔은 없습니까? 바로 그때 맨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아하! 아하! 하나님이 지금 날 사랑하시는구나! 아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잘못을 해도 아무런 채찍질도 하시지 아니하시고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잘되어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나로 버린 자식 취급하시는구나! 하나님의 관심권 밖에 멀어졌구나! 이는 위기 중에 더 큰 위기인 것입니다. 아픔과 시련의 순간 속에 하나님이 가장 근접거리에 오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시련이 다가올 때 나의 일이 오히려 안 되어갈 때 하나님 날 사랑해주심을 감사드리며 “안되게함” 속에 시련과 고통 속에 담아 놓으신 하나님의 깊고 깊으신 뜻을 무릎을 꿇고 주께 가까이 가서 하나님의 소매를 잡고 물어보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바람 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도 감사 잘하는 믿음의 인물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로 모든 일이 잘 안되어갈 때에도 하나님 날 사랑하셔서 깊으신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일로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 그렇게 하신 뜻을 찾아가는 더 큰 믿음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되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도 감사하며 안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항상 주님의 뜻을 구하는 생활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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