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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네 가지 존재양식

관리자 2010-07-20 (화) 22:48 13년전 2620  
 

2006 년 12 월 17 일 (주일) 오전 8 시,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시편 143 편 1 절 - 12 절

제       목 : 영혼의 네 가지 존재양식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오늘 주의 전에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식당에 갔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6 살 난 아들이 기도했습니다.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아멘!" 한참 웃고 있는데 가까이 있던 한 아줌마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이 나라가 이래서 틀렸어. 요즈음 애들은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조차 모른단 말야. 하나님께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기도하다니!" 아들은 아줌마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바로 그때에 노인 한 분이 옆으로 지나가다가 아이에게 윙크하며 속삭였습니다. "저 아줌마가 하나님께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기도해 본적이 없다니 정말 안되었구나. 가끔 아이스크림을 조금 먹는 것은 영혼에 유익하단다." 후식이 나왔을 때, 소년은 자기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그 부인의 식탁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그 아줌마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때때로 아이스크림은 영혼에 좋대요. 그런데 제 영혼은 이미 좋거든요. 이것은 아주머니가 잡수세요." 영혼에 진정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말씀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143 편 1 절에서 12 절에는 영혼이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옵니다. 3 절 전반절에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가 있습니다. 6 절 후반절에 보면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되어 있습니다. 8 절 후반절에도 있습니다.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11 절에도 있습니다.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12 절에도 있습니다.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영혼이라고 말할 때 “내  영혼”이라고 내 영혼을 다섯 번이나 말한 것입니다. 내 영혼만 말한 것이 아닙니다. 4 절에 보면 “심령”이란 말이 있습니다. 7 절에 보면 “영”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 뒤에 바로 “내 인생”, “내 생명”이란 말이 연달아 나옵니다. 내 영혼, 내 심령, 내 영, 내 인생, 내 생명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영혼과 심령이 어떻게 다르고 인생과 생명을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내 인생”과 “내 생명”은 동일한 말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이란 내 마음과 내 영혼을 합쳐 놓은 것을 말합니다.


내 인생의 생명은 대체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손으로 꼬집어 떼면 아프고, 날씨가 차가우면 벌벌 떨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찾고 하는 모든 것,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내 몸이요 내 육체입니다. 내 육체는 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4 절에 나오는 “내 마음”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내 마음은 내 몸 바깥에서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내 몸 안에 있습니다. 마음은 있긴 분명히 있는데 형체가 없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실로 헤아릴 수 없는 여러 가지를 합니다.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무엇인가 따져 봅니다. 무엇인가 분석하기도 하고 종합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의 범주 안에는 내 정신, 내 생각, 내 감정이 모두 다 있습니다. 자, 육체가 하나의 원이라면 마음은 육체의 그 원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원 안에 감정, 정신, 생각, 느낌 등등이 오순도순 모여 있습니다. 마음이 원이라고 가정할 때 마음 안에는 또 하나의 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마음 중의 마음이라고 하고 마음의 중심이라고 하는 영혼입니다.


오늘 성경본문 4 절에 있는 심령이 있는데 “심령”이란 마음과 영혼을 동시에 말할 때 그렇게 씁니다. 마음과 영혼의 경계선을 어디다 그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히 마음의 차원이 있고 영혼의 차원이 있습니다. 부대로 하면 “사령부”(HEAD QUARTER)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우리 인생의 중심으로서 우리 인생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사령부인 것입니다. 마음은 생각하고 따지고 계산하고 느낍니다만 영혼은 그러면 무슨 일을 합니까? 영혼의 제 1 기능은 하나님과 통하는 일입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알아보는 일을 합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을 합니다. 동물은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이 있습니다. 하등동물로 내려갈수록 정신이나 마음이 없습니다. 고등동물로 갈수록 정신이 있고 IQ 지능과 약간의 느끼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에게도 느끼는 기능이 있어 자기 죽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고등동물이나 하등동물을 다 포함해서 인간 외에는 영혼이 있는 동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기 때문에 오직 인간만이 영혼을 지닌 존재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을 때 인간에는 영혼의 방을 만들어 놓아 그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영혼은 방과 같기 때문에 그 방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와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젯밤 한 집사님이 밤을 가져다 주셔서 밤에 밤을 먹었습니다. 밤을 먹으면서 옛날 신학교 스승이셨던 박근원 박사님으로부터 수업시간에 밤 따는 얘기를 들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이들이 밤을 따는 형태에 비추어 인간을 네 가지 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밤을 딸 때 나무에 올라가 막가지를 가지고 밤을 따는 아이는 소양형이고, 밑에서 열심히 밤을 까서 자루에 집어넣는 형이 태음형이고 밤 따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막상 주인이 나타났을 때 도망도 못가고 잡혀서 온갖 죄를 다 뒤집어쓰고 엉엉 울고 있는 형이 소음형이요, 주인이 나타났을 때 까놓은 밤 자루만 얼른 챙겨서 도망가는 아이가 태양형이라 하였습니다.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을 분류할 때 나름대로 분류하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자기 기준에 의하여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나에게 지극히 잘해주시는 분”,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 “나에게 그저 그렇게 대하는 자식”, “나에게 악하게 못되게 구는 놈“입니다. 이 시간 인간이 자신의 영혼의 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영혼은 네 가지 존재양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존재 양식은 “영혼이 텅 비어 있는 양식”입니다. 영혼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없고 귀신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아무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영혼이라는 방안이 비어있는 것은 영혼을 움직이는 주인이 없다 그 말입니다. 無主空山 빈 방입니다. 빈 방이지만 그 누구도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영혼의 방은 거미줄이 쳐져 있고 영혼으로 들어가는 방은 닫혀 있습니다. 영혼이 텅 비어 있을 때 그 영혼이 속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 그 어떤 소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 줄 모르며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붙잡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기 공연된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기생하는 도박꾼들이 거듭나서 새생활을 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이 도박꾼들의 영혼을 걸고 내기하자고 하니까 한 도박꾼이 말합니다. "글쎄 나 같은 사람에게 영혼 같은 게 과연 있을까?". 주인공 스카이는 지나가는 말처럼 합니다. "잘 찾아봐, 어디엔가 있을 거야." 그러자 다시금 도박꾼은 '순전히 죄인'으로 산 사람에게 무슨 영혼이 있겠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영혼이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단지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사는 영혼 망각증에 걸린 인간들, 하나님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인간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인간의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그저 본능에 따라 살 뿐이지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고 삽니다. 시편 53 편 1 절에 보면 그런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영혼이 비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맘껏 부패할 수 있고 맘껏 악을 행할 수 있고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없기 때문에 그 인생은 중심이 없고 거품만 있는 인생이어 시간이 지나면 거품과 같이 사라지고 바람 앞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됩니다. 영혼이 비어 있는 인간은 위험합니다. 악령이 그 안에서 거주하기 위해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존재양식은 “영혼 속에서 자기가 주인이 된 양식”입니다

. 영혼의 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방에 누가 있느냐 자신이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 자신이 가진 정보, 자신이 가진 지식, 자신이 가진 감성, 자신이 가진 느낌으로 모든 것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이 사람에게서는 “자아”가 강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결코 하나님을 자신의 방의 아랫목으로 모시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의 아랫목에는 자신이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하나님을 자신의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인이고 하나님은 초대된 손님 정도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만이 하나님을 부르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평상시에는 자신의 자아가 영혼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한마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온 우주의 중심입니다. 만일 태양계가 있다고 한다면 자신이 태양이고 자신이 아닌 이들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되어 자신의 주변을 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자신의 주변을 도는 위성이나 행성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주변을 돌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의 잣대가 저울이 자신에게 있어서 자신이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자신이 무엇에든지 중심이 되어야 하고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돕는데 수단이나 보조로 사용하지 자신의 인생의 운전대는 여전히 자신이 쥐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이 있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실제로는 자신을 믿고 나를 믿고 있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自 하나님 神 해서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래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중에서 이런 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자신의 영혼의 주인이 되어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구세주가 되지 못하십니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 모든 것을 처리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 따라서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내가 좋으면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신앙의 모습도 자기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나를 위한 종교적인 감정만족이나 예배참석만으로 나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결국 메마르고 힘없는 신앙생활을 해나갑니다. 겉모양은 좀 변한 것 같고 그럴 듯하지만 자기 영혼의 주인은 자기 자신인 사람입니다.


세 번째 존재양식은 “영혼을 마귀가 다스리는 양식”입니다. 이 사람의 영혼에는 텅 비어 있지도 않고 이 사람의 영혼에는 자신의 강한 자아도 없습니다. 마귀가 이 사람의 영혼 중심 속에 들어와 있어서 다스립니다. 마귀가 이 사람의 영혼 중심 속에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그 사람 안에 사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마귀는 군대마귀도 있고 음란마귀도 있으며 다툼마귀도 있고 물질마귀도 있고 자꾸 탐욕으로 할딱거린다고 해서 할딱마귀도 있고 마약마귀, 술마귀, 도박마귀, 사기마귀도 있습니다. 특별히 음란마귀와 도박마귀가 오늘날 무척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 현대인들의 영혼에 침투하여 영혼의 주인이 이미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귀들은 홀로 다니기 보다는 떼거지로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이 마귀들이 들어가면 그 이름 그대로 사람 속에 들어가서 철저히 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지 합니다.


누가복음 8 장 29 절에서 30 절입니다. “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군대마귀란 모든 잡다한 귀신들이 뭉쳐서 함께 살고 있는 귀신들입니다. 모든 마귀들이 뭉쳐서 그 영혼 중심 속에 살고 있어 그 사람의 인생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 장 43 절에서 45 절에 보면 영혼을 설명하는 일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무엇입니까? 마귀가 그 사람의 영혼 속에서 외출을 했습니다. 마귀가 다시금 돌아와서 보니 그 사람의 영혼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마귀는 자기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 인생은 더욱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그 영혼을 다스리게 되면 그 인생은 비참하게 됩니다. 결국 이 땅에서 마귀에 사로잡혀 살다가 마귀들과 함께 쾌락을 누리다가 결국 마귀들과 함께 무저갱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이 마귀들이 영혼을 점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가 그 영혼을 점령하였을 때 결코 그 사람에게서 습관이 된 것을 빼앗아가지 않습니다. 교회도 다니게 하고 신앙생활도 하게하고 교회봉사도 하게 합니다. 중세시대의 마귀는 결코 교회를 가게 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21 세기 마귀들은 영악해져서 결코 구시대의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맘껏 교회 다녀라! 그러나 니 영혼은 내 손 안에 있다 하면서 교회 다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들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에 의해 영혼이 다스려지는 사람은 결국 이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든지 이 땅을 떠나서라도 지옥불에 들어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네 번 째 존재양식은 영혼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양식입니다. 이 사람은 영혼의 중심부에 주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영혼 중심부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삽니다. 고린도전서 3 장 16 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자신의 영혼을 성전으로 삼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삽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영혼 중심에 삼위가 하나가 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언제든지 든든하게 삽니다. 자신의 길을 모를 때에는 길과 진리가 되신 예수님께 자신의 길을 물어 봅니다. 믿음과 지혜가 부족할 때는 성령님께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합니다. 시련을 당할 때는 피난처가 되시고 피할 바위가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잘못했을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의 은총을 얻습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는 만병의 의사되신 예수님께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성한 생명을 달라 합니다.


영혼의 중심 속에 삼위가 되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 놓고 살기 때문에 삼위가 일체가 되셔서 우리 인생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그러므로 내 인생이 든든하고 짱짱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보시고 살기에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감독이 되어 주시어 내 인생을 진리로 코치해 주시기 때문에 내 인생 흔들릴 것도 없이 가는 곳마다 사랑과 화평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안에 내 영혼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되어 다른 이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주인이 나일 경우는 내 강한 자아가 들어나서 냄새를 풍기고 모든 것이 내 이기적인 자아 때문에 뒤틀어지지만 하나님이 내 영혼의 키를 잡고 계시면 내 인생은 다른 이들에게
은은함을 주고 기쁨과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고 살게 됩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내 인생 전반을 설계해 주시어 내 인생이 명품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보다는 내 영혼의 주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어 내 인생이 광빨 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금번 아시안게임에 유일하게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박재명은 창던지기에서 79.30 미터를 던져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금메달을 따자마자 자신을 가르쳐 준 핀란드인 코치 에사 우트리아이넨(53) 코치의 품에 안겼습니다. 에사 코치는 현역시절인 1977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80m를 돌파했고, 핀란드 코치를 맡아 87년 로마 세계선수권과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일궈 금메달 제조기로도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박재명은 훈련을 하면서 에사 코치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하였고 자신의 지휘권을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코치의 지도대로 맡기자 그는 일취월장 성장을 하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일구워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은 순전히 에사 코치 덕분이라면 스승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시편 37 편 5 절에서 6 절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그렇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지휘권을 주님께 넘겨드릴 때 내가 지휘봉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내 인생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풍요로워 지고 정오의 햇빛과 같이 온누리를 비추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43 편은 다윗의 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143 편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무척 아꼈습니다. 자신의 육체보다도 자신의 마음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중시하였습니다. 시편 143 편 한 편에서만도 내 몸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나와 있지 않고 내 마음이라는 표현은 딱 한번 나와 있는데 비해 내 영혼이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를 생각하고 자신의 육체가 강건함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의 다이어트를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자신의 몸에 무슨 보약을 먹을 것인가를 관심합니다만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 가장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8 절입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이 8 절 말씀 무척 중요합니다. 내 영혼을 주께 드린다 하였습니다. 영혼을 주께 드린다함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의 소유권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내 영혼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입니다.


8 절의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영혼의 주인이 되셔서 내 인생이 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내 인생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십사는 것입니다. 그저 영혼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지를 6 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
주를 향하고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하나님을 영혼의 중심에 모실 뿐만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는 지 마치 마른 땅이 비를 사모하듯이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었고 나라의 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자신의 영혼 속에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총사령관으로 모셨습니다.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의뢰하고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지켜 주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올라가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의 잔을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나라를 굳건하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에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시고 산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영혼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되어야 내 인생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주권을 맡겨드리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을 때 내 인생이 훨씬 더 안전해지고 복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팽이가 중심축을 돌 때 팽이는 잘 돌아갑니다. 중심축이 없을 때 팽이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 중심이 주님이 계실 때 우리 영혼은 신나게 춤추면서 돌아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영혼에 주인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의 방이 혹시 텅 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관습에 따라 예배를 드릴 뿐이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뿐이라면 여러분의 영혼은 텅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혹 여러분의 영혼의 주인이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때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도 하지만 여전히 주인은 나고 하나님은 가끔 어려울 때나 초청을 하는 객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자아가 강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끔 기도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여러분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의 영혼 속에 악한 그림자가 여러분을 다스리는 사람이 없습니까? 물질마귀가 음란마귀가 여러분의 영혼을 점령하여 다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옥으로 내려갈 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제 대강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절기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에 구유를 만들어서 아기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리십시다. 주님이 내 영혼 한 가운데 오시기를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오셔서 내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시기를 기다리십시다. 은총의 하나님, 삼위가 일체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 중심 속에 좌정하셔서 성도 여러분의 인생을 복되게 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 안에 오셔서 저희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저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저희 안에 구유를 만들어 놓고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속에 오셔서 저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옵소서! 오셔서 슬픔 많은 이 세상에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오셔서 불신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에 저희 속에 화해의 영을 내려 주시어 사이좋게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저희 속에 오셔서 저희를 다스리시고 저희를 주님의 뜻에 따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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