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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관리자 2010-07-27 (화) 21:25 13년전 3319  
 

2007 년 1 월 21 일(주일) 오전 8 시, 오전 11 시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24 장 50 절 - 60 절"       

제       목 :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신도주일에 고운 한복을 입고 나온 여신도들과 이 예배에 참예한 모든 성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교단이 정한 여신도주일입니다. 오늘 여신도주일에는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대강의 전개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었을 때 자식 이삭을 위해 아내를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종 가운데 가장 신실한 늙은 종을 불러 분부를 내립니다.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명령을 받들고자 메소포타미아로 갑니다. 일을 수행하기 직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한 대로 모든 일을 순적하게 하사 이삭의 아내감 리브가를 만나게 하였습니다. 리브가의 오빠 라반과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은 혼사를 처리할 때 매우 신중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으로부터 지금까지 자초지종을 듣고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한 일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방향을 결정하였습니까? 창세기 24 장 50 절입니다. “라반과 부드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무슨 뜻입니까? 브두엘과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으로부터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감히 가타부타 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브두엘과 라반에게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짱짱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다음에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당사자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창세기 24 장 57 절과 58 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들은 리브가에게 의사를 타진한 것입니다.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이 물음은 너 이삭과 결혼하겠느냐? 질문인데 리브가는 가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무척 지혜롭게 결정하는 과정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결정하였으면서도 당사자의 의사를 물어 최종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한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혼사의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창세기 24 장 50 절에서 60 절은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이제 신랑 이삭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향해 떠나기 직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부 리브가를 떠나보내기 전에 신부측 사람들, 브두엘과 라반의 형제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을 시집이나 장가보낼 때 무슨 말이나 당부를 합니까? 언젠가 제주도에 갔더니 원숭이 모양의 돌하루방이 있는데 어떤 하루방은 눈을 가리고 있었고 어떤 하루방은 입을 가리고 있었고 어떤 하루방은 귀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가이드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묻자 여자가 시집가서 3 년은 귀머거리로, 3 년은 벙어리로 3 년은 장님으로 지내고 있어야 한다는 옛날 가르침을 돌하루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였습니다. 3 년 동안 시집와서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3 년을 해야 고춧가루 시집살이를 잘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딸자식을 시집보낼 때 “참아야 하느니라!” 즉 인내부터 먼저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브두엘과 라반을 비롯한 가족들이 리브가를 떠나보낼 때 무슨 가르침을 주었습니까? 창세기 24 장 59 절에서 60 절입니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리브가를 보내면서 뭐라고 하고 보냅니까? 59 절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축복하여 이르되”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아들 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말하고 보낸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같으면 부모들이 “너 결혼하더라도 마누라에게 잡혀 살지 말아라!”, “너 결혼해도 남편한테 기죽어 살지 말아라! 첫날부터 호락호락해 보이면 안된다!” 단단히 교육을 해 보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들은 뭔가 다릅니다. 보낼 때 어떻게 보냈습니까? 축복하며 보냈습니다. 축복이란 하나님께서 복 내려 주시라는 뜻의 간구를 담은 기도의 일종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성입니다. 보낼 때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입니다. 매사에 축복합니다.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믿음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합니다. 야곱이 열두 자식들을 일일이 축복합니다. 할아버지도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야곱이 요셉의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라반과 오빠들이 누이동생 리브가를 축복하면서 보냅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제사장과 부모가 축복권자가 되어 있습니다만 신약에 와서는 축복권자가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축복의 범위를 넓혀서 누구나 서로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 장 28 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산상에 나아온 수천의 사람들에게 저주하면서 살지 말고 서로 축복해주면서 살라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나를 저주하는 자에게도 축복하면서 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축복하라고 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유대와 사마리아 두루 돌아다니면서 도처에서 축복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천국으로 올라가시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제사장과 부모가 축복하는 그 축복권을 모든 사람들에게 확대하시어 모든 사람에게 축복권을 주시면서 누구에게나 축복하되 저주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브두엘과 라반 그리고 오빠들이 동생을 보내면서 축복을 할 때 그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축복도 예사로운 축복이 아닙니다. 단지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참 축복치곤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고 좀 멋있지 않습니까? 천만인이 무엇입니까? 당시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았던 고대 근동에 살았던 사람들을 다 합쳐도 천만인이 훨씬 안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사람들을 다 합쳐도 400 명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축복의 범위가 어떻습니까? “우리 누이여 너는 천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가 아닙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도 아닙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십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도 아닙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백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도 아닙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입니다. 당시 숫자로 더 이상 헤아릴 수 있는 최대수가 천만인이었으니 이는 이렇게 바꾸어야 옳습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모든 족속과 모든 백성의 어미가 될지어다”고 축복한 것입니다. 축복도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뻥이 셉니다. 그저 있는 것을 크게 부풀려서 말합니다. “장자”라는 책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대붕이란 새가 되었다. 날개 길이도 몇 천리인지 모른다.“ 대붕이란 새는 날개의 길이가 3 천리이고 한번 날개짓을 하면 9 만리 장천을 날아간다 하였으니 중국인들의 뻥은 알아줄만 합니다.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과연 이 축복은 약간 중국의 뻥이 들어간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축복은 축복한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을 하여 야곱과 에서를 낳고 야곱은 요셉과 열두 아들을 낳는데 그 가문에서 나중에 다윗왕과 솔로몬왕도 나오고 그 가문에서 열왕이 나오고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도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볼 때 리브가는 하나님을 믿는 천만인도 훨씬 넘는 어미가 된 것입니다. 축복이 오랜 역사를 통해 현실이 되고 그 축복보다도 더한 믿음의 축복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 하니 아브라함과 이삭의 계보에서 낳은 자식들이 아니겠습니까? 천만인이 아닌 천천만만의 어머니가 된 것 아닙니까?


오늘은 여신도주일입니다. 오늘 창세기 24 장 50 절에서 60 절 말씀에 기초하여 여신도들에게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세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 땅에 살면서 가까이 있는 이들을 축복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그들이 이제 결혼하려고 떠나는 가까이 있는 누이동생을 축복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가 자식을, 부모가 손주손녀를,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축복은 격려 칭찬 이상입니다. 격려와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축복은 하나님의 복을 비는 것이니 차원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면서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축복해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축복하였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라반과 집안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종을 축복하였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축복하였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축복하고 교역자는 성도들을 축복하고 성도들이 성도들을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고 살아야 합니다. 축복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우리에게 자녀들이 있는데 자녀들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가 잘되기를 바라고 오순도순 살면 부모된 입장에서 얼마나 흐뭇합니까? 우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러십니다. 자녀들이 서로 축복해주고 살면 기뻐하시고 축복하는 그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축복의 대상에게도 복을 내려 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서로 저주하면서 서로 깍아 내리면서 사는 것을 역겨워하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남을 저주하고 남을 비판이나 하고 남이 안 되기를 빌면서 살아간다하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런 인생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쓰레기 같은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축복을 해주고 살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늘나라의 모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축복은 제사장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축복권이 있었습니다만 성경에 누구만 축복해야 한다고 축복하는 것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만 저주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하였습니다만 축복하는 것을 제한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축복은 축복을 낳고 저주는 저주를 낳습니다.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이 임하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합니다. 축복하면서 사는 인생은 플러스 인생을 사는 사람이요 저주하면서 사는 인생은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우선 가까이 있는 이들부터 축복해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 중에서 부모는 자식을 축복하여야 합니다. “야 이 뒈질 놈아! 저런 옘뱅할 놈! 팍 썩을 놈의 자식이!하고 자식을 저주하면 실제적으로 자식들이 시들시들 앓거 먼저 객사하거나 중병에 걸립니다.” 아니 뭐 정말 미워서 욕했겠어요 그저 입에 붙어서 그랬지라우! 하면 미워하지 않고 그저 입에 붙은 것들이라도 그것이 자식을 망치게 됩니다. 내 가까이 있는 이들을 축복하고 축복하면 정말 달라집니다. 신앙의 선조들을 보십시오! 다 축복하며 키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축복하고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은 열두 자식들을 축복하고 키웠습니다. 축복하며 키운 자녀들은 남다르게 커서 나중에 창공의 별과 같이 빛나 성경에도 그 이름들이 뚜렷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 아들을 낳은 한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이미 딸을 낳았으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엄마에게 창세기 49 장 22 절을 주면서 이 성경구절로 무조건 아이를 볼 때마다 축복하는 엄마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나 “지희는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성경말씀대로 축복하고 이제 태어난 아이도 안을 때마다 머리에 손을 얹으며 “인효는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하고 축복을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그 축복은 마치 이슬과 같이 임하여 그가 부모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풍성하게 키워주신다 하였습니다. 내 자식들이 다 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냥 손을 잡으면서 창49:22의 축복을 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도 서로 축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축복하는 많은 말이 있겠습니다만 일하러 나가는 남편을 안아주면서 “당신은 축복의 통로!!” 그렇게만 해도 훌륭한 축복이 됩니다. 남편도 아내를 안아주면서 함께 축복해 주면 좋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축복하고 살아갈 때 그 가정에 떠나갔던 에덴동산이 다시금 돌아오게 됩니다. 어떤 지혜로운 환자는 자신에게 문병 오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하고 자신을 축복하고 가게 합니다. 수십명의 내방객들이 그 부탁을 듣고 갈 때는 손을 올려서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하고 갑니다. 그렇게 축복을 받음으로 질병의 치료속도가 현저히 나아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까이 같이 사는 사람들을 질시하고 깍아 내리고 나쁜 말하고 살 것이 아니라 축복하고 축복하고 또 축복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을 길거리에서 만났습니다. 목사님! 저기 저 식당에서 목사님네 교회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안 좋은 말을 막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그 즉시 기도하였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저들이 말한 잘못보다도 훨씬 더 잘못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에게 잘못이 있다면 용서해주시고 그 잘못들은 얼른 고치게 하시고 저에게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저들을 축복하셔서 저들이 누군가를 축복하고 말하고 돌아다니는 인생들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였습니다. 특별히 성도들과 성도들은 서로 축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긴장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라이벌 사이로 인식이 되어 암암리에 잠재적인 적으로 상정해 놓고 견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에 함께 갈 사람인데도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개와 고양이와 같이 원수가 되어 적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화해하지 않고 서로 앙앙거리면서 예배를 드린다면 두 사람은 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십년집사이십년권사삼십년장로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서로 싸우고 제단을 쌓으려 하면서도 화해하지 않고 싸우는 이들의 제물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을 천국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십니다. 천국에 들어와서도 거기서도 아웅다웅 싸운다면 천국물이 흐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성도들을 칭찬하고 축복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 축복을 이루어주십니다. 천국에서는 서로 축복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습니다. 축복하면서 살면 내가 한 그 축복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거나 결코 공중분해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복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게 해 주시고 축복하는 그에게도 복내려 주십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에서 나오는 그들이 축복하였던 것처럼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크게 축복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오늘 여신도주일을 지키는 모든 여신도들이 이 축복받기를 축원합니다. 천만인의 어머니가 된다함은 어떤 많은 수효의 어머니가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만 그보다도 더 심원한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며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인정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저와 여러분을 포함하여 많은 후손들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족보에서 본다면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며느리요 우리로 말하면 믿음의 선조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라반과 형제들이 동생 리브가를 축복할 때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축복한 것 속에는 큰 믿음의 어머니, 믿음의 빛을 밝히는 어머니가 되라고 축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만 믿음이 크면 믿음의 자식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믿음의 어머니가 되면 될수록 더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그를 따르고자 합니다.


어제 저는 불이 난 집사님과 권사님 집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곳간에 불이 붙어 모판을 해 놓았던 것들과 농약들과 농기계들이 싹 불에 타버렸습니다. 집에 갔을 때 권사님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였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였는데 곳간만 탔지 다른 곳에 옮겨 붙지 않아서 가족의 생명은 아무런 이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 것입니다. 집사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뭔가 깨우침 주실라고 그랬다고 하면서 감사하였습니다. 지난 번 그 권사님이 경운기에 치어 크게 다쳤을 때도 병원에 가자 권사님은 생명은 손상당하지 않고 이만만큼 다쳤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남편 집사님은 직분자 선거가 있었을 때 그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을 때도 그랬습니다. 목사님! 될 사람이 되었고 저는 아직 될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였습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집사님과 권사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무엇이 안 되어도 감사!, 몸이 크게 다쳤어도 감사! 불났어도 감사!! 참 하박국과 같은 신실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시련을 당하면 그 믿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련의 불을 통과하면 그 믿음의 공적이 다 드러납니다. 시련의 불이 집사님과 권사님을 타들어갔지만 오히려 감사로 응답하였습니다. 천만인의 아비가 되고 천만인의 어미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그렇습니다. 우리 배영석 목사님도 믿음으로 순교하시어 이 땅 천만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천만인의 아비가 될찌어다!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이 축복은 믿음의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축복한 것입니다.


오늘 여신도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축복하는 어미가 되시기를 바라고 남신도 여러분들은 축복하는 아비가 되시기 바랍니다. 축복할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가장 가까이 있습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축복할 때 여러분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어 여신도는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남신도는 “너는 천만인의 아비가 될찌어다” 그렇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오늘부터 한번 실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한 축복도 반드시 자신에게 임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어 “너는 천만인의 아비가 될찌어다” 나 자신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자네는 천만인의 에미가 될 것이네” 축복하시고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당신은 천만인의 아비가 될 것입니다”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집사람을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그대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축복하였고 아내는 아멘하였습니다. 축복한 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믿지 않은 남편은 어떻게 합니까? 잘 때 조용히 머리에다 손을 얹고 속삭이듯이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축복하고 또 축복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믿음을 주시고 큰 믿음 주실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까이 있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자식들이요 손주손녀들입니다. 자식들 머리에 손주손녀들 머리에 손을 얹고 부모가 축복하는 것입니다.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너는 천만인의 아비가 될지어다” 그렇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지 않습니다. 축복은 남습니다.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가슴에 저축됩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자신이 자신 이후로 오는 모든 세대에 자신이 믿음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리브가도 자신이 축복을 받았을 때 자신이 진정 천만인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 축복은 현실이 되었고 현실이상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계산교회에 행사가 있어서 갔더니 계산교회 정면에 표어가 있었는데 “바보같이 살자!”가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심오한 목회철학이 거기 있었습니다. 계산교회이니까 계산하면서 영리하게 살자가 아니라 바보같이 살자!였습니다. 우리는 바보같이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아이구! 무슨 자기 머리에 손을 얹고 “너는 천만인의 에비에미가 될찌어다” 그런 쑥스런 짓을 해! 난 그렇게 못혀! 실천가능한 말씀을 해야지! 그렇게 너무 영리하게 계산하지 마시고  바보와 같이 말씀을 들었으면 미련하게 그렇게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식들 머리에다 손을 얹고 “너는 천만인의 아비가 될지어다!” 그렇게 축복하는 것이 무슨 시간이 듭니까? 무슨 돈이 듭니까?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까? 아니면 힘이나 노력이 듭니까? 목사님이 한 번 해보라고 했으니 한 번 꾸준히 해보자! 하고 “천만인의 애비(에미)가 될지어다” 오늘부터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계산하면서 하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미련하게 바보같이 해야 믿음이 자라납니다. 강진농고에서 보았는지 광주 비엔날레에서 보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물레방아를 보았습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면서 물이 방울방울 두레에 담아집니다. 서서히 담아지지만 두레박이 물을 가득 담았을 때 이겨내지 못하고 내려가 두레박의 물을 아래에다가 쏟아 내놓습니다. 다시금 가벼워진 두레박은 위로 올라가 방울방울 물을 담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축복하고 또 축복하면 그것들은 방울방울 하나님의 가슴 속에 담아집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가슴 속에 있는 두레박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축복의 물을 쏟아내 놓게 됩니다. 축복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들은 방울방울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가슴 속에 쌓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 반드시 그 축복을 현실이 되게 해 주십니다. 축복하시면서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오늘 리브가의 가족들이 리브가를 축복한 것과 같이 저희도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너는 천만인의 아비가 될지어다” 축복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행여 저희로 남을 저주하지 않게 하옵시고 저희의 가장 가까운데 있는 사람들로부터 축복하며 또 축복하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27:30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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