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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과 저주

관리자 2010-07-17 (토) 13:07 13년전 3455  
 

2008 년 12 월 28 일(주일) 오전 11 시 신사동교회 


성서본문 : 누가복음 6 장 27 절 - 35 절   

제       목 : 축복과 저주에 관한 열 가지!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성전에 나아오신 신사동 교회 모든 성도들과 당회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사동 교회는 한국개신교의 두 선교사 중 한 분인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세운 20 교회들 중의 하나인 교회입니다. 1900 년 5 월 5 일에 시작되었으니 이제 내년 2009 년이면 110 년의 역사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년 교회 역사 110 년을 기점으로 하여 신사동 교회가 반석 위에 세운 든든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장총무로서 교단의 한 지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을 돌아보고 인사를 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 저의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그간 교단을 위하여 증경부총회장으로서 귀한 봉사를 하신 추병국 장로님과 여러 성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어려움에 처한 신사동교회를 위해 중보하고 기도하며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위로와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6 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하셨습니다.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라!” 하셨습니다.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2000 년 전의 말씀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말씀은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시고 선대하라 하시고 축복하라 하시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는 것이 하늘나라 백성으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데 예수님은 우리의 상황은 아랑곳없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 하십니다. 원수를 맺으면서 미움을 가지고 저주하면서 남을 모욕하면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시간 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축복과 저주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이 가르치는 바 10 가지 묵상한 것을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몸뚱이를 가지고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말을 하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는 일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일들을 세 가지를 뽑으라면 하나는 머리를 쓰는 일이요 둘째는 손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하는 일이요 세 번째는 말을 하는 일입니다. 인생을 살 때 말하는 일을 빼놓는다면 별로 남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말을 할 때도 여러 가지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말도 있고 축복의 말이 있고 저주의 말이 있습니다. 어느 말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축복의 말을 주로 하는 사람이 있고 저주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축복도 저주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이 시간 축복과 저주에 대한 묵상의 결과를 한 가지 한 가지씩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열 가지들을 깊이 생각하시고 성도 여러분들의 생활 속에 그 하나만이라도 반영하시면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첫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하였을 때 내가 한 그 저주가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아니하였을 때 그 저주는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때리게 됩니다. 내가 한 그 저주가 그에게 합당하지 않을 때에는 그 저주는 그저 공중에 떠돌다가 그저 흩어져버리는 구름과 같지 아니하고 유턴하여 나에게로 돌아와 내가 그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레위기 20 장 9 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부모에게 저주를 한다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저주가 합당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부모를 저주할 경우 결국 어떻게 됩니까? 그 저주가 자신에게로 돌아와 자신이 저주를 받아 피를 흘리며 죽게 됩니다. 조선왕조 말기의 민비(민비, 1851-1895)는 자기의 시아버지요 한심하고 볼품없는 자기를, 일국의 국모로 삼아준 대원군이 빨리 죽도록 무당을 시켜서 집요하게 저주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민비는 대원군이 78 세로 천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나기 무려 3 년 전에, 그야말로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저주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한다면 그 저주를 하기 전에 먼저 산수나 수학으로 얼른 계산기를 두드려 보아야 합니다. 내가 저주를 하는 그 사람이 그 저주가 합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에게 저주가 와서 내 인생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생각지 못한 때에 그 저주가 나에게 몰려와 내 인생과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때리게 됩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두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저주한다하여 저주하는 그 대상이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저주하였는데 생각하기를 그 저주가 그에게 합당하다 생각한다하더라도 그 저주가 곧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합당하다고 저주를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주한 그에게 오히려 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저주의 여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생에게 복 내리시기를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 장 2 절입니다.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발락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시켰지만 오히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람 선지자를 시켜 하나님께서 한 것은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주가 임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복이 임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이가 다른 이를 저주를 하였다 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아니하면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십니다. 요셉의 열 명의 형들이 동생을 미워하고 질시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요셉이 큰 복을 받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저주한다고 해서 내 생각으로 그가 저주받기에 합당하다고 여기고 저주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은 내 생각이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축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세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하였을 때 저주를 받은 그가 성자여서 나에게 저주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주를 받은 그가 깊고 깊은 신앙이 있어 저주를 한 나에게 오히려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기란 조개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것과 같이 무척 희소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내가 저주를 하면 그는 내 저주를 듣고 - 웬만한 신앙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 그 역시 내게 저주는 아닐지라도 내게 악한 말을 하든지 내게 좋지 않은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주와 악담을 서로 하고 그 저주를 받은 그 사람이 저주를 하는 가운데 그 저주는 서로에게 동시에 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하면 그 누군가도 나를 향해 저주를 하고 그 저주가 내게 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저주를 하는 순간 나도 또 다른 저주들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울이 저주를 하는데 악한 말과 함께 다반사로 저주하였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저주하고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사울 자신이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31 장 3 절에서 4 절입니다.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다윗을 저주하고 다윗을 창으로 수도 없이 찔러 죽이려 하였을 때 결국 자신이 저주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네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구를 저주하였을 때  내 저주를 듣고 있는 제 3 자는 은밀히 속으로 나에 대한 평가를 합니다. 저주를 하는 나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지 아니하고 부정적인 인상을 갖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저 사람은 남에게 저주나 하고 남에게 욕설과 악담이나 하는 형편없는 사람이군!!” 하면서 자신의 본 바를 다른 사람에게 알립니다. 또 누군가 그를 중용하려 하거나 그를 칭찬하면 “그렇지 않네 이 사람아!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 그 사람은 당사자가 없을 때 악담이나 하고 욕설이나 하는 사람이네! 그 사람 쓰지 말게!”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평가절하당하여 중책을 맡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하였을 때 그것은 제 3 자에게 알려지게 되어 그것은 올무가 되어 내 인생을 가로막고 내 인생에 덫을 놓고 내 인생 주변에다 어둠의 장막을 스스로 쳐 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내가 남을 저주하였을 때는 그 저주의 말을 들었던 제 3 자가 나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어 결국 그것은 내 인생에 마이너스로 누적됩니다. 즉 내가 저주하는 것을 듣고 그 사람은 남에 대해 악한 말을 하고 저주나 하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어 결국 저주하는 것은 나에게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헤아릴 수 없는 손해로 돌아오게 됩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다섯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에 복 내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면 나를 사랑하시어 내게도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서로 복을 빌어주면서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시자마자 성급하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인생을 만드시자마자 복부터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2 장 2 절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꼭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저주하면 손해될 것이 많습니다만 누군가를 축복하면 복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여섯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면 그 축복의 내용을 설령 그 당시 그 당사자가 듣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 축복의 내용을 듣게 되고 내가 축복한 그도 역시 나에게 축복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원리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7 장 12 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꼭 대접을 받기 위해서 대접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축복하면 내 축복을 받은 그는 나에게 축복을 하게 됩니다. 내가 현재 열 명의 사람들에게 축복을 하는 것은 미래 내가 열 명의 사람에게 축복을 받게 될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일곱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였는데 그에게 축복이 합당하면 그 축복이 그에게 미칠 것이요 그 축복이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축복은 내게로 돌아와 유턴하여 나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축복을 하였다 하더라도 바로 그 누군가가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어떻게 되는가? 내가 한 축복은 공중분해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내가 빈 축복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 장 12 절 - 13 절입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내가 누군가를 위해 평안을 빌었는데 그 평안이 그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내가 빈 평안은 곧 나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의 평안을 빈다는 것은 축복을 비는 것과 같습니다. 축복의 원리도 그렇고 평안을 비는 것도 그렇고 저주도 같은 원리가 통용됩니다. 내가 축복을 빌 때 그 축복이 그에게 합당하지 않으면 그 축복은 내게로 돌아오게 되어 나에게 복이 됩니다. 축복을 하고 살아가면 그 어느 쪽으로도 유익입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여덟  번째 원리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면 그 축복을 듣는 제 3 자가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저 사람은 축복을 하는 것을 보니 나에게 대해서도 축복을 하거나 좋은 이야기를 할 사람이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축복하면 어느 모로 보아서도 유익이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축복하면 그 축복의 내용을 설령 그 당사자가 듣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 그가 한 축복의 내용을 건너건너 듣게 되고 내가 축복한 그는 내게 역시 축복을 하기 시작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내가 없을 때 나를 칭찬하고 나를 축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축복하였다고 합시다. 마음속에 그를 기뻐하게 되고 그런 착한 사람이 있나! 하면서 그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 그에 대해 얘기 하였을 때 자신의 호감을 말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축복을 하는 그를 위하여도 축복을 하게 됩니다. 축복을 했는데 저주로 돌아오는 예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하면 할수록 내 주변에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는 우호유대감의 성벽을 쌓아놓는 결과를 만듭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아홉 번째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하는 인생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다른 피조물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잘 대접하며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좋은 말로 대접하는 인생들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누구를 세워주고 높여주고 이끌어주고 하는 인생들을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에게 저주나 하고 악담이나 퍼붓고 욕설이나 하고 남이 안 되기를 바라고 그 사람이 없을 때 그 사람 얘기를 어둡게 하는 그런 인생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생들이 돌아다니면서 어둠 속에서 모의나 꾸미고 누구를 안되게 하고 넘어뜨리려고 곡해하고 그런 인생들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시지 저주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인생들이 어떤 인생이냐? 오늘 성경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6 장 28 절입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나를 저주하는 자를 어떻게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35 절의 복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아들이 되리니”. 이 말씀이 성경에 나타난 축복과 저주의 결정판입니다. 비록 누군가 나를 저주하더라도 그를 위하여 축복하라!!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하늘에서 큰 상을 예비하여 주실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저주를 하였을지라도 그를 위하여 축복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슴이 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거룩한 사업을 위하여도 크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링컨은 자신을 저주하고 원숭이같다고 하고 그런 사람을 위해 오히려 축복하며 그가 잘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링컨을 대통령으로 세우셨습니다. 링컨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자신을 모해하고 저주한 그를 국방장관직을 맡겼습니다. 그는 나중에 링컨을 흠모하고 링컨을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축복과 저주에 대한 열 번째 원리입니다. 인생을 살 때 축복을 많이 하고 살면 내 인생에 유익이 되고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윤택하게 하지만 또 그 축복이 나에게 곱하기로 돌아오게 되지만 내가 저주를 많이 하고 살면 남에게 욕설이나 하고 남을 모해하고 자빠뜨리고 곤경에 빠뜨리는 인생은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먹칠하게 하고 자신의 인격을 떨어뜨리고 자신이 스스로 지옥의 어둠길로 걸어가게 되어 자신의 인생에 지금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축복하는 인생은 천국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인생이요 저주를 하는 인생은 지옥을 쌓아가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생의 공식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축복-인생유익, 저주-인생손해”입니다.


말씀을 마감하겠습니다. 인생을 살 때 참으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모해하고 나를 자빠뜨리려 하고 나를 저주하고 한다할지라도 나는 그를 축복하고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 나를 박해하고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 해도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보시고 내 인생에다가 특별가산점을 덧붙여 주시어 정하신 때에 큰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모욕하고 다니면 속으로 “저런 후레자식이!” 그렇게 분노할 것이 아니라 나도 똑같이 그 자식에게 앙갚음해야 하겠구나! 할 것이 아니라 “야,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과 상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면서 얼른 그런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나를 저주하면 속으로 “옳다 기회가 왔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생각하시면서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저주했다고 들은 그 순간 그를 위해 진심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실시간에 그 자리에 계셔서 누가복음 6 장 28 절 그 지키기 어려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으로 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악행을 저지르고 나를 넘어뜨리려 애쓰는 이를 보시면 마음속으로 그에게 ”고맙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 주어서 고맙다!“ 하시고 그를 진심으로 선대해주시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더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나를 축복하면 나는 그를 위해 더욱 축복하며 기도하며 사시고 누군가 나를 저주하면 그를 위해 오히려 축복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며 하나님께로부터 고임받고 사랑받는 인생이 될 뿐 아니라 내 인생을 가치있게 하고 윤택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작품과 같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축복보다도 저주를 많이 하고 살아왔다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뉘우치시고 앞으로는 축복을 많이 하시면서 살아가시고 내게 저주를 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축복하는 주님의 사랑과 복을 받는 그런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신사동교회를 세우신 언더우드 목사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기도문을 보았습니다. 그 중간의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하신 말씀을 따라 / 믿음의 앞 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 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언더우드 목사님이 올린 마지막 기도문을 지금 하늘나라에서 신사동 교회를 내려다보시고 동일한 기도를 올리고 계실 줄 믿습니다.

신사동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더욱 선대하고 축복하고 사랑하고 기도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의 기도처럼 비록 보이지 않은 가운데서도 황무지 위에서 맨 손으로 서 있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은총의 하나님께서 믿음의 앞날을 보게 해 주실 줄 믿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 신사동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저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 무척 사랑하십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저희에게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로 이 세상을 살면서 저주하고 욕설하고 깍아내리고 안되게 하는 그런 낮은 차원의 삶이 아니라 저희로 저희 자신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웃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더 위해주고 위로하며 살게 하옵시고 저희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자주 축복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는 예수님 말씀처럼 축복하며 위해서 중보하며 기도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로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는 주님의 눈을 의식하며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사동 교회를 더욱 사랑하여 주옵시고 이 교회를 통해 주님의 복음이 더욱 멀리 퍼져 나가게 하옵시고 나간 교회를 위해서 하늘의 뜻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예

수님 복되시고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0:07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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