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 개소식 설교 - 가슴이 따뜻하신 하나님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 개소식 설교 - 가슴이 따뜻하신 하나님

관리자 2015-01-14 (수) 14:56 9년전 2112  
2015년 1월 13일 (수) 오전 11시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 개소식 연세빌리지
성경본문 : 신명기 24 장 10 절 ~ 22 절
제 목 : 가슴이 따뜻하신 하나님!!

■ 오늘 순서지를 보니까 제가 설교하는 시간이 30 분이 됩니다. 신년 새해 제가 드리는 선물로 30 분 설교를 15 분으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저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 중에 한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이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우연히 얘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의 성씨가 이씨입니다. 이 목사가 전도사였을 때 결혼하겠다고 집에 데리고 간 처녀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부모가 죽어라고 반대했을 법 한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며느리 후보를 만나고 난 다음부터 당시 이 전도사의 아버지는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있었습니다.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와 대화하려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가슴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세상이 냉냉하다고 말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가슴 따뜻한 일들이 결코 적지 않게 있습니다.

■ 신명기 24 장 17 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잡지 말라” 17 절에는 객, 고아. 그리고 과부가 나옵니다. 19 절에는 나그네, 고아, 과부가 나옵니다. 20 절에는 객, 고아, 과부가 나옵니다. 21 절에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나옵니다. 24 장 17 절에서 21 절 사이에 객 고아 과부가 몇 번 나오느냐 하면 12 번 나옵니다. 그렇다면 “객”과 “나그네”의 차이점은 뭔가? “객”과 “나그네”는 같은 단어의 다른 번역으로 그 나라에 온 외국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외국사람을 고아와 과부의 카테고리에 넣었을까요? 객과 나그네는 살기 위해 그 나라에 까지 왔으니 처지는 고아와 과부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객과 나그네는 오늘날로 하면 이주민을 말합니다.

■ 왜 신명기 법전에 집중적으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언급하였을까요?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고아는 부모를 잃었으니 사회적 약자요 과부는 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을 잃어 홀로 살기 벅찬 사회적 약자요 객과 나그네는 이국땅에서 따돌림을 받고 멸시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 고아와 과부와 객을 위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신 것인지 구체적인 것을 보겠습니다. 신명기 24 장 10 절부터 22 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서 빵이나 돈을 꾸어 주었을 때 그가 갚지 않거나 못 갚을 경우를 대비해서 전당물을 잡을 때 구체적으로 이러이러 하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입니다. 전당물을 잡을 때 그 집 안에 직접 들어가지 말고 꾸어간 그 사람이 스스로 전당물을 가지고 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가난한 사람인데 무엇인가를 꾸고 옷을 전당을 잡혔다면 해가 질 때는 그 옷을 다시 돌려주라 하였습니다. 왜 돌려주어야 합니까? 덮고 잘 것이 그것 밖에 없는데 그 사람이 해가 져서 덮고 자야 하는데 오돌오돌 떨고 잔다면 어디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신명기 24 장 13 절입니다.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공의로움이 되리라”. 전당잡힌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받을 때 그 사람이 옷을 입으면서 돌려준 그 사람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축복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시겠다 하셨습니다.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엄청나게 크고 위대하신 그 하나님께서 세상에 인간사의 이렇게 지극히 사소한 일, 즉 사람들이 전당을 잡히고 물건을 돌려주는 그런 세세한 일까지 개입하실까? 덮을 것을 저당잡혀 밤에 잘 때 저녁에 덮을 것이 없이 오돌오돌 떨면서 잠 못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 떨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그 추위와 그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는 분이 오늘 신명기에 나타난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가슴이 따뜻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 신명기 법전은 모세가 만든 법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여 주신 법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법전에는 하나님의 뜻이 올올히 스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법을 만들 때 그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법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강자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을 만드셨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객)을 위한 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만드실 때 아주 큰 틀만 만들고 정신과 가치만 만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꼼꼼하게 만드셨습니다. 19 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아주 눈꼽만한 것까지 일일이 언급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살 수 있는 어떤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자 그런데 이 법을 만드신 분이 누구십니까? 창세기 1 장 1 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모세에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법을 주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닌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도대체 천지가 얼마나 큽니까? 과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에 태양계와 같은 별의 수만 무려 약 2000억개가 된다고 합니다. 지구같은 것은 아예 세지도 않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2000 억개나 되는 은하계 같은 것들이 다시금 2000 억개 이상 된다고 하는데 2000 억 곱하기 2000 억이면 도대체 계산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 넓은 우주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 전체에서 보면 먼지 보다도 더 쬐끄만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큰 제국도 아닌 지극히 적은 이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염려하여 법을 꼼꼼하고 세심한 법을 만드셨으니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은 광대무비하고 넓으신 분이 동시에 얼마나 세밀하고 꼼꼼 자상하신 분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가슴이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그저 광대무비한 우주를 법칙으로만 움직이고 인간사에는 초월하고 초연하시는 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전당잡힌 물건을 돌려줄 때 전당잡힌 이의 자존심까지 생각할 만큼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흘리는 눈물을 애잔하게 보면서 함께 가슴 애타하시면 저들을 긍휼히 여기시면서 저들을 품에 안으시는 참으로 가슴이 따뜻하신 분이십니다.

■ 오늘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의 개소식을 합니다. <이주여성위기>란 말 속에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사회적 약자성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주라 할 때 그 이주민은 오늘 신명기에서 말하는 객과 나그네의 성격이 담겨 있고 여성이라 할 때 과부 혹은 미혼모의 성격이 담겨 있으며 위기라 할 때 미혼 이주여성이 아이를 낳을 때 합당한 돌봄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고아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으니 이주여성위기란 사회적으로 최약자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주민이 아닌 사람들보다도 이주민들이 훨씬 약자성이 많으며 이주남성보다도 이주여성이 더 훨씬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고 그 이주여성들이 법적 제도적 의료적 뒷받침이 없는 가운데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가 겪을 사회적 위기는 엄청난 것이며 그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심각한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바닥 중에서는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불쌍하고 가장 짠하고 가장 눈물이 나는 이들입니다.

■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방화범인 것처럼 말씀하신 대목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 장 49 절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누가복음 12 장 49 절) 이 불은 예수님께서 폭력과 폭압 가운데 짐승과 같은 냉냉한 사회 속에서 십자가 사랑의 불을 지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불의 사람이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자신의 동족 히브리 사람이 애굽인들에게 박해를 받을 때 도무지 못견뎌서 가슴이 불이 일었던 사람이고 나중에 떨기나무의 불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불쌍한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의 대역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김해성 목사님은 불의 사람입니다. 가슴에 모세의 불이 있고 예수님과 같이 이 땅 이곳저곳에 이주민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가서 불을 지피는 방화범입니다. 중국동포인교회가 작년에 불탔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신 분이 방화를 했습니다. 김해성 목사님도 또 다른 의미에서 방화범인 처지에서 그 방화범을 감싸안고 용서하면서 울면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방화범이 방화범에게 또 방화를 사랑의 방화를 한 것입니다. 이주민 선교와 중국동포인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동안 수없이 이주민 관련 기관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오늘 이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김해성 목사님의 가슴 속에 불이 일어서 그렇게 된 것이요 불을 질러서 그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7-80 년대 나라가 군부독재정권하에 있을 때 김해성 목사님은 맨 선두에 서서 독재정권과 싸우는 투쟁의 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불이 옮겨갔습니다. 이 땅에 온 여러 나라의 이주민들과 중국동포인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개차별당하고 개무시당하고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복지혜택에서 제외되고 소외당하고 이주민의 자식들은 학교도 다니지도 못하고 의료혜택도 받을 수 없었을 때 저들을 보고 참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하고 짠한 마음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보고 짠한 마음을 들어 그들을 보호하려고 신명기 법전을 만드셨는데 김해성 목사님은 여호와의 가슴에 든 불을 옮겨 받아 예수님 가슴 속의 불을 당겨와서 그 불을 동력으로 삼아서 이주민들을 돕는 제도와 조직과 기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도 김해성 목사님 가슴 속에 그렇지 않아도 짠한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저 어찌핧 수 없이 설리설리 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불이 일어 “이를 그냥 놓아두면 안되지! 정말 정말 안되지!” 가슴 속에 불이 일어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김해성 목사님의 가슴 속에서 그 뷸을 최초로 점화시킨 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동안 목사님 속의 불을 점화하시어 불을 일으키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에너지로 발전시키시어 이주민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게 하셨고 이주민들을 위한 병원도 설립하게 하셨고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 법률지원팀도 만들게 하시고 이주민들의 영적 생활을 하기 위한 교회들도 설립하게 하셨습니다. 불길이 이곳저곳에 옮겨 붙어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 성령님께서는 불로 불로 역사하시어 이 사랑의 불이 이 인자와 자애의 불이 점점 타올라가게 하실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령님께서 불길을 일으키셔서 그 불길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타올라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주 성령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김해성 목사님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의 불을 더욱 타올라가게 합시다. 특별히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들이 우리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불의 따뜻함을 느끼도록 더욱 불을 지펴나가도록 우리 역시 김해성 목사님과 함께 방화범이 됩시다. 김해성 목사님과 우리가 지펴가는 불로 인해 이 땅 눈보라 치는 얼음산 위에 있는 이들이 주 예수님의 따뜻함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랑의 불을 지펴나가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그 일을 하는 우리 모두를 그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크신 은총으로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가 시작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불을 주님의 종의 가슴에 불을 붙여 주셔서 이렇게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되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가 참으로 이 땅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치유가 되고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이주여성위기지원센터로 인하여 참으로 하나님의 가슴의 따뜻함을 모두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은총의 주님께서 이 지원센터가 참으로 주님의 사랑을 공급해 주고 지원해 주는 사랑의 샘터가 되도곡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을 시작하는 김해성 목사님과 모든 사역자들에게 더욱 뜨거운 사랑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