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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1년에 대한 평가와 전망 / Ecumenian 인터뷰

관리자 2015-03-27 (금) 12:55 9년전 2562  
4월 16일에 갇힌 사회, "세월호 1년 성과 없다"
세월호의 1년에 대한 평가와 전망
[인터뷰] 한국기독교장로회 배태진 총무
2015년 03월 25일 (수) 18:55:23 고수봉 기자" target="_blank">
세월호 참사 1주기,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의 막말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위해 함께 해왔다. 특히 각 교단을 중심으로 세월호 이슈에 맞춰 기도회, 단식농성, 서명, 지원사업, 추모주간 등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세월호 1년, 대한민국 유례없이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월호 특별법에 서명을 했고, 힘겨운 여야 공방 속에서 간신히 합의를 했지만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는 아직 활동도 시작하지 못했다. 오히려 앞으로의 1년이 더 걱정되는 것은 거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한국기독교장로회 배태진 총무를 만나 1년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세월호 1년? 변한 게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한국사회는 진상규명과 안전사회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진상규명이었지만 정권은 국민들의 아우성에 귀를 닫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가 삭혀지지 않은 채 속절없이 1년을 맞고 있다. 또한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 우리도 죄인이라는 아픈 가슴을 안고 있다.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서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선행되어야 진정한 위로와 치유가 가능하고,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데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허비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사회는 1년이라는 시간을 이윤보다 생명, 경쟁보다 협력과 상생 등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로 전환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어떤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와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시간, 크로노스”(Chronos)를 보냈을 뿐이다.   

평가 여부를 떠나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1년 동안 많은 활동들이 교회 안팎에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세월호 참사 당일, 위로서신 발표와 함께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긴급 구호활동을 시작으로 5월 총회 시국대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와대 서신 발송, 기장 전국교회 세월호 기도회, 추모기도주일 등을 진행했다. 특히 여름에는 총회장과 총회임원을 비롯한 목회자와 성도가 광화문광장에서 일일단식과 특별 금식기도를 갖기도 했다. 이외에도 팽목항 기도회, 식사 및 청소 지원활동을 했었으며, 제99회 총회 기간 중에는 수요예배에 세월호 유가족을 초청해 함께 슬픔을 나누고, 다짐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가족들의 아픈 가슴을 천만분의 일이라도 위로가 되었을까? 그 아픔을 위로하기에는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일부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몰지각한 발언으로 세월호 가족들과 국민들을 더 큰 충격과 슬픔, 공분에 빠지게 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갚고 싶었다. 그 방법은 ‘잊지 않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종자 9명, 조사위는 답보 상태, 성과를 말할 수 없다

    

기장의 활동이 유가족들을 위로하기에 매우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반대로 성과는 없었는가?

지금까지 진도 앞바다에는 실종자 9명이 그대로 남겨져 있고, 실종자 가족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선체인양에 대한 결정조차 하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7일에서야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직됐지만 정부가 특별법 시행령에 대한 처리를 미루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무슨 성과를 말할 수 있겠나? 성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 단지 세월호 참사를 대하며 처음 가졌던 마음과 약속,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를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일부 대형교회에 대한 평가를 잠깐 언급했었다. 여전히 ‘그만 하라’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가 폭거를 저지른 것이라 본다. 아픔을 당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질 못할망정, 더 큰 상처를 주었다. 마치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곤궁에 빠진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비호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교회인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 헐벗은 자, 눈 먼 자, 과부와 나그네, 아픈 자들과 함께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인가 생각할 때, 교회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 집단일 뿐이다.

기장의 활동 중에서 독특한 것으로 꼽자면 광화문에 목회자(선교사)를 파송한 일이다. 특별히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전북노회에서 해당 노회의 교회와사회위원장 이윤상 목사(전주경동교회)를 세월호 가족에 대한 목회적 돌봄과 진상규명 활동을 위해 파송했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이요, 신앙적 결단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 목사의 지속적인 활동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활동과 연대를 위해 ‘JPIC 선교사’ 제도를 생각하고 있다. 캐나다 연합교회의 사례를 보면 다양한 선교현장에서 Diakonal Minister(사회선교담당목사)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 전적으로 돕고, 기도해 주는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 정신에도 맞는 것 같다. 프로그램 개발 및 활동지원 체계 마련 등 구상을 보완해서 이번 제100회 총회에 헌의할 계획이다.

교회의 사랑 실천, 아픔을 당한 사람을 안아주는 것

    

세월호 유가족들은 ‘4월 16일’에 아직도 갇혀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문제에 대한 기장의 기조와 계획, 전망에 대해 말해 달라.

시간이 흐를수록 곳곳에서 ‘이제 끝난 거 아니냐? 그만 좀 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가 남아있으며, 그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총회는 앞으로도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이웃”이 되길 원한다. 세월호 선체 인양, 실종자를 찾기 위한 기도와 활동, 진실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세월호를 위해 노력하고 동분서주하는 교회들과 ‘소통과 연대의 정신’으로 묶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다. 정치를 바꿔낼 수 있는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필요하다. 기독교 시민의식을 토대로 정치가들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월호 이후’라는 말을 많이 해왔다. 한국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표현이었는데,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70년 동안 대결하는 것만 배워왔다. 체제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기는 것만 중요했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윤리도 없었고, 물질에 의해서 인간을 평가했다.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한 ‘물질주의’, ‘성장주의’, ‘개인주의’, ‘경쟁중시’ 등을 대신할 가치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생명, 공동체, 상생, 나눔 등의 가치는 말의 성찬 속에만 있다. 개인과 이웃 나아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와 영향력을 끼치는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가치의 변화는 문화, 법,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신앙의 우선순위’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가치의 변화를 지적했는데, 교회와 교인들이 일상에서 변화를 위한 성서적 의미는 어떤 것이 있겠는가?

얼마 전, 한 목사가 ‘북한의 공산주의자와 이 땅의 종북주의자들이 다 도말되어야 한다’는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성경도 설교도 아니며, 이런 기독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한 것처럼 사랑을 실천했으면 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안아주는 것만큼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많이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픈 가슴을 지니고 있는 잃은 양들을 찾아가서 안아주었으면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는 고백과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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