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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리교회 장로임직권사임직 예배 설교

관리자 2015-06-03 (수) 15:59 8년전 1785  
2015년 5월 31일(주일) 오후 4 시 양무리교회 장로임직권사임직 예배
 
성경본문 : 에베소서 6장 5절 ~ 7절
제 목 :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십시오!!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양무리교회 위에와 오늘 임직되시는 최영준 장로님과 권사님 위에, 귀한 찬양을 주께 드린 성가대 위에와, 오늘 이 임직 예배를 맡으신 모든 귀하신 분들과 권면을 해주실 추병국 증경 부총회장님, 기도를 해주신 김동한 장로님, 축사를 해주실 박영주 노회장님, 축도를 해주실 존경하는 김인호 목사님 위에, 주께서 값주고 피로 사신 양무리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는 최부옥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최부옥 목사님께서는 금번 9 월에 한국기독교장로회 100 회 총회에 총회장이 되실 것입니다. 교단 총회장이 되시어 교회와 사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하시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만 100 회를 기념하는 총회의 총회장님은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일이 많게 되실 것입니다. 100 회를 기념하여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개혁교회협의회 등 수많은 대표들이 오셔서 100 회 총회를 축하하고 총회장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만 100 회 총회기간에는 여느 때 총회와 달리 수많은 행사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려면 최부옥 목사님의 힘으로만 감당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하늘이 특별한 힘을 주시지 아니하면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양무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기도하실 때마다 하나님께 특별한 요청을 해 주시어 여러분의 담임목사님께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잘 수행하실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총무로서 총회장님이 시대적 선교적 교회적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도록 더욱 합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임직하게 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이 제일 앞장 서서 그 일을 잘 감당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에베소서 6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 있으면서 에베소에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이 말씀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자유의 복음은 에베소에 사는 종의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고 에베소에도 로마의 통치자들과 토착지배층들의 지배계급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유인들이었고 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예계급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졌을 때 한 편으로는 지배계급에게도 전하여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노예계급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특별히 복음 속에 강한 자유의 누룩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 종들 계층에서 환호성과 함께 받아드려졌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가 차별이 없고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다 하였습니다. 종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맛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데 그 믿음이 들어가자 기존에 자신들이 모시던 세상의 상전을 무시하거나 상전을 모시는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에베소의 상전들은 저것들 노예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더니 시건방을 떨고 마치 자기가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무슨 나쁜 사상에 전염이 될까봐 아예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자신의 종을 못나가도록 금지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진행되는 일을 걱정스럽게 보면서 로마의 감옥에서 하나님께 아뢰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주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만약 상전들과 예수를 믿는 종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점점 더 증폭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전들은 종들이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려는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은 종자로 여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화해의 복음이 저들을 통하여 전해지기 보다는 방해 받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시어 저들에게 권면할 말씀을 내려 주옵소서!”> 깊게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하심과 함께 사도 바울은 필을 들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더 성실하게 신실하게 주어진 종의 역할을 잘할 때 저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저들 종들을 통해 로마의 지배계급에게도 복음이 더 잘 전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종전의 주장인 그리스도 안에는 종과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조화할 것이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종이 되셔서 종으로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혹은 상전이든지 그 어느 처지에 있다하더라도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데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이 되어 섬기라 그리고 섬기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섬기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라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 가운데 에베소의 복잡한 상황을 그리스도에게서 아주 간단한 해법을 찾은 것입니다. 아마도 에베소교회의 종들을 포함해서 로마제국 식민지 안에 있었던 모든 교회들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게 됨으로 복음은 밀가루 서말 속의 누룩이 퍼져나가듯이 부풀어 갔고 마침내 주후 313 년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교회 안에서 우리가 <주의 종>이라고 할 때 목회자만을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를 분간하지 않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종>이란 개념을 씁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성도들을 향하여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교회에서 주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이들, 장로교로 말하자면 교회의 제직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꾼이자 종인 것입니다. 오늘 장로로 임직되시는 분이나 권사로 임직되시는 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섬기는 종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특별히 금번 임직되시는 분들이 주의 일을 할 때 첫 번째 <내가 종이다> <내가 머슴이다>는 자세(attitude)를 가지시고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교단 총회본부의 간사와 부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여직원들은 평신도였습니다. 밥을 먹는데 한 여직원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의 종이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거든요!” “맞아요 틀려요!” 해서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 종의 높아요? 딸이 높아요?” 해서 약간 듣기에 떫었지만 “당연히 딸이 높겠지!”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목사님!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오세요!” 해서 말없이 커피를 대령해다 바쳤습니다. 교역자를 포함하여 제직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계급적 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제일 높고 그 다음에 장로가 높고 그 다음에 안수집사와 권사가 높고 그 다음에 집사가 평신도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 것은 더 섬기라고 주신 직분이지 더 대접받으라고 주는 직분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기 위해서 왔다 말씀하셨는데 항차 우리이겠습니까? 이 땅에 있는 한 우리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섬기다가 봉사하다가 발을 씻기다가 가야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임직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주의 일을 할 때 두 번째로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에베소서 6 장 7 절 말씀은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직으로서 섬기는 일을 할 때 그 일을 억지로 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듯이 하면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5 장 2 절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자원함이란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누가 이 일을 할꼬 하셨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자원함으로 하였고 나중에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직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신 제직 여러분들을 사랑하니까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편에서 보면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니까 이 일을 저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는 여러분들에게 각자 맡기신 그 일 자체가 그 일을 주신 여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니까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해서 그 일을 함으로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무슨 일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단 한 번에 손가락 한번만 움직이면 온 세상에서 되어질 일, 단 한 번에 스마트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하는 그 사람을 참으로 사랑해서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하여 보람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꺼꾸러 생각해야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았을 때 그 일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의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주의 일을 주시고 그 일속에다 흔들어 되어 누르고 넘치도록 나에게 줄 기쁨과 행복을 허벌나게 감춰놓고 쌓아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하면서 기쁨으로 할 근거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면서 어떤 영적인 깊은 깨우침도 담아 놓으셨고 그 일을 땀 흘리면서 할 때 주실 건강도 담아 놓으셨고 그 일을 기쁨으로 할 때 그 일꾼의 자식들에게도 축복의 통로가 되는 복도 미리 포함시켜 놓으셨으며 그 일을 할 때 기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게 될 사건들도 포진시켜 놓으셨으니 우리가 어찌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제직은 성가대에서 봉사를 하고 어떤 제직은 계단에서 성도들을 맞이하고 어떤 제직은 주차장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 일들이 생각하기 나름으로 아무리 적은 일이고 비중이 작은 일이라고 여겨지더라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맡겨주신 거룩하고 소중한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과정 속에 하늘의 복들이 coming-out 하도록 프로그래밍해 놓으신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자원함으로 할 때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장 3 절에 뒤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자원함으로 하고 기쁨으로 하되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목에다 힘을 주어 할 때는 종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강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교회에 부임하여 아직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 사택에 와서 청소도 해 주고 화장지나 필요물품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거실에서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집사님 한 분이 정색을 하면서 “목사님! 아파트에 사시면서 쓰레기도 주으시고 계단 청소도 하고 그러세요!”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강진읍교회가 굉장히 강하다고 들었는데 집사부터가 강하고 쎄구나!”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오지 말아야 할 교회에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집사가 자기 담임목사한테 농담도 아니고 진담으로 쓰레기도 줍고 계단청소도 하고 그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무슨 노래가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4~5 년을 목회하는 가운데 그 집사님은 참으로 착하고 온순하신 분으로 그렇게 강하게 말하실 분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엔가 아하! 깨우침이 왔습니다. “아하! 성경에 하나님께서 망아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내가 목회하면서 자고할까봐 초장에 그 집사님을 통해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목회를 하면서 계단 물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줍고 하면서 폼을 잡지 않고 목에다 힘주지 않고 종으로서 섬기는 마음으로 하였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목회초기에 지침을 주신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여 교회의 목회를 큰 실수 없이 마치게 되었습니다. 우리 최부옥 목사님은 부총회장님이십니다만은 한번도 폼을 잡거나, 권위와 위세를 부리지 않으십니다. “양무리의 본”이 되셔서 일하신 것을 보신 주님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섬기는 일을 맡기실 것이라 믿습니다.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오늘 임직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은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주께 하듯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캘커타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볼 때 죽어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옥합을 깨서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과 같이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듯이 사랑으로 저들의 종이 되어 섬겼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만일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고 내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되고 도구가 되어 빵을, 옷을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굶주린 사람, 고독한 사람, 집 없는 어린이, 살아갈 집을 찾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다시 오셨으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토록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었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는 이들을 대하면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저들 모습으로 분장하여 오셔서 그렇게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시면서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예리한 눈으로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짜증을 내고 불평하는 이를 더 사랑으로 잘 돌보았습니다. 특별히 임직되시는 이들이 섬기실 때 테레사 수녀가 가졌던 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섬기는 그들이 바로 분장하여 오신 예수님이라 생각하시고 저들을 섬겨보시기 바랍니다.
 
■ 얘기 하나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1977 년에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나중에 한국신학대학이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과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4 년 동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2 년 반 동안 다녔습니다. 당시 수유리 캠퍼스에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6 년 반 동안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 가면 식판을 받는 정면에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식판을 들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 그림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계산해 보았습니다. 6 년 반 동안 그 그림을 보아왔다면 괄호 열고 (365 곱하기 세끼니까 3 곱하기 6년이니까 곱하기 6 하고 괄호 닫고) 더하기 괄호열고 (365 일 절반은 183 일이니까 183 곱하기 세끼니까 3 곱하기 괄호닫고) 하면 이론상으로는 7110 번 그 그림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계산을 하는 중에 또 다른 질문 하나가 물어졌습니다. “왜 저 그림이 채플실에 걸려 있어야 제격인데 밥 먹는 식당에 그것도 하필이면 밥을 타려고 식판을 들고 줄을 서있으면 반드시 보게 되는 그곳에 걸려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보니 뭔가 가슴에 걸려 오는 그 어떤 음성과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밥먹고 힘내서 너도 나같이 발을 씻어주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신학교 6 년 반을 다니면서
내가 봉사하는 교회에서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 발을 씻어주는 그 자리에 있었지 내가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드리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 오늘 임직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들께서는 모든 제직들과 함께 일을 할 때 의자에 앉아서 여러분의 발을 씻김을 받는 그 자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드리는 그 섬김과 헌신의 자리에 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예수님으로 오셔서 인간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하셨는데 오늘 임직을 받으신 장로님과 권사님들 그리고 온 양무리 교회 제직들은 주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으로 종노롯하면서 서로 발을 씻어주는 옳은 일들로 여러분의 섬김과 헌신으로 주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한 해를 가득 채우시고 여러분의 인생의 그릇을 주를 위해 일하는 보람과 가치로 채워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저희를 사랑하셔서 오늘 장로로 임직되고 권사 로 임직되는 이들이 주의 일을 할 때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하게 하시고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게 하시고 저희로 깊은 영성을 주셔서 낮은 자리에 힘들고 어려운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알아 뵈옵는 영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의자에 앉아서 발의 씻김을 받는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수건을 두르고 발을 씻어드리는 자리에 언제나 저희가 있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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