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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성광교회 주일낮예배 1,2부

관리자 2015-06-05 (금) 11:43 8년전 1797  
2015년 5월 3일(주일) 오전 7시 반, 10시 반 광주성광교회 주일낮예배 1,2부
 
성경본문 : 에베소서 6장 5절 ~ 7절, 출애굽기 23장 25절-31절
제 목 :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광주성광교회 모든 어린 생명들 위에와 가르치는 교사위에 은혜의 찬양을 주께 드린 샤론성가대위에와 오늘 오후 원로장로로 추대되시는 분, 취임하시는 장로님 임직되시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 안수 집사님 위에 모든 제직들과 성도님들 위에, 주께서 값주고 피로 사신 성광교회를 위해 썩어지는 밀알과 같이 헌신하시는 박상규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셨던 조원태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부모님이 광주에 계시고 아버님은 여든 다섯이시고 어머님은 일흔 여덟이시기에 자주는 못 오지만 조금만 무슨 이유가 있으면 광주에 가서 부모님은 뵈옵고 왔다 갑니다. 이번 달이 가정의 달인데 그래도 가정의 달에는 다른 달보다도 더 많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하는데 마침 좋은 이유가 생겼습니다. 며칠 전 총회본부에서 서류결재를 하는데 광주성광교회 장로 권사 임직식을 하는 초청장을 보았습니다. 저에게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지는 않은데 그 중에 한 친구를 꼽으라면 단연코 박상규 목사님이고 제 아내와 이숙 사모님과도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성광교회 임직식에도 참여하고 부모님도 뵈옵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하도록 배려해 주신 박상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목요일 저는 광주무등경기장에서 기아와 한화의 경기를 보았습니다. 노회장서기 모임을 유성에서 마치고 직원단합대회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한 것입니다. 그 경기는 타이거즈가 졌습니다. 졌지만 하나 건진 것은 있었습니다. 양현종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자세를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그의 자세는 마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이 느껴졌고 그의 태도는 참으로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참으로 경건하게 느껴질 만큼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세속에 속한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할 때 저토록 하는데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과연 저렇게 신중하게 온 몸과 맘을 다 합하여 하고 있는 것일까? 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 에베소서 6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 있으면서 에베소에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이 말씀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자유의 복음은 에베소에 사는 종의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고 에베소에도 로마의 통치자들과 토착지배층들의 지배계급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유인들이었고 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예계급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졌을 때 한 편으로는 지배계급에게도 전하여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노예계급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특별히 복음 속에 강한 자유의 누룩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 종들 계층에서 환호성과 함께 받아드려졌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가 차별이 없고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다 하였습니다. 종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맛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데 그 믿음이 들어가자 기존에 자신들이 모시던 세상의 상전을 무시하거나 상전을 모시는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에베소의 상전들은 저것들 노예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더니 시건방을 떨고 마치 자기가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무슨 나쁜 사상에 전염이 될까봐 아예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자신의 종을 못나가도록 금지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진행되는 일을 걱정스럽게 보면서 로마의 감옥에서 하나님께 아뢰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주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만약 상전들과 예수를 믿는 종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점점 더 증폭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전들은 종들이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려는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은 종자로 여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화해의 복음이 저들을 통하여 전해지기 보다는 방해 받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시어 저들에게 권면할 말씀을 내려 주옵소서!”> 깊게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하심과 함께 사도 바울은 필을 들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썼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더 성실하게 신실하게 주어진 종의 역할을 잘할 때 저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저들 종들을 통해 로마의 지배계급에게도 복음이 더 잘 전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종전의 주장인 그리스도 안에는 종과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조화할 것이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종이 되셔서 종으로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의 세상에서의 신분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혹은 상전이든지 그 어느 처지에 있다하더라도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데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이 되어 섬기라 그리고 섬기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섬기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라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 가운데 에베소의 복잡한 상황을 그리스도에게서 아주 간단한 해법을 찾은 것입니다. 아마도 에베소교회의 종들을 포함해서 로마제국 식민지 안에 있었던 모든 교회들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게 됨으로 복음은 밀가루 서말 속의 누룩이 퍼져나가듯이 부풀어 갔고 마침내 주후 313 년 로마제국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때의 상황에서 오늘의 상황으로 옮겨오고자 합니다. 보통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성가대원 목자 등등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고 장로교에서는 이 모든 사람들을 <제직>이라고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주의 종>이라고 할 때 목회자만을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를 분간하지 않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종>이란 개념을 씁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성도들을 향하여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교회에서 주를 위하여 일하는 모든 이들, 장로교로 말하자면 교회의 제직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꾼이자 종인 것입니다. 오늘 장로로 임직되시는 분이나 권사로 임직되시는 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섬기는 종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저는 첫 번째로 광주성광교회 안에서 일하는 모든 제직 여러분들과 특별히 금번 임직되시는 분들이 주의 일을 할 때 <내가 종이다> <내가 머슴이다>는 자세(attitude)를 가지시고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교단 총회본부의 간사와 부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여직원들은 평신도였습니다. 밥을 먹는데 한 여직원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의 종이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거든요!” “맞아요 틀려요!” 해서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 종의 높아요? 딸이 높아요?” 해서 “당연히 딸이 높겠지!”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목사님!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오세요!” 해서 말없이 커피를 대령해다 바쳤습니다. 교역자를 포함하여 제직들은 교회 안에서 어떤 계급적 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제일 높고 그 다음에 장로가 높고 그 다음에 안수집사와 권사가 높고 그 다음에 집사가 평신도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광주에서 목회를 하였을 때 그런 얘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성가대 총무가 빵을 나눠주는데 “어이 이것 봐! 성가대 총무! 나는 안수집사 9 호봉인데 단지 서리집사일 뿐인 박집사에게 왜 먼저 빵을 주는거야! 그리고 서리집사에게 빵을 하나 준다면 안수집사님에게는 적어도 두 개는 줘야 하는 거야!” 해서 모두들 웃었습니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실제로 교회 안에서 직분자들은 더 대접받고 싶어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혹 직분자인 내가 더 대접받고 싶고 누군가 내 발을 씻어줘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 나는 복음을 잘못 이해했고 이미 그리스도의 일꾼과 종으로서 타락했구나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 것은 더 섬기라고 주신 직분이지 더 대접받으라고 주는 직분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기 위해서 왔다 말씀하셨는데 항차 우리이겠습니까? 이 땅에 있는 한 우리는 죽는 바로 그 순간까지 섬기다가 봉사하다가 발을 씻기다가 가야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저는 두 번째로 광주성광교회 오늘 임직되시는 장로와 권사들이 주의 일을 할 때 둘째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에베소서 6 장 7 절 말씀은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직으로서 섬기는 일을 할 때 그 일을 억지로 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듯이 하면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5 장 2 절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자원함이란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누가 이 일을 할꼬 하셨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자원함으로 하였고 나중에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직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장로의 직분을 주고 권사의 직분을 주신 것은 사랑하니까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편에서 보면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니까 이 일을 저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는 여러분들에게 각자 맡기신 그 일 자체가 그 일을 주신 여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니까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해서 그 일을 함으로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무슨 일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단 한 번에 손가락 한번만 움직이면 온 세상에서 되어 질 일, 단 한 번에 스마트하게 끝낼 수 있습니다.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을 하는 그 사람을 참으로 사랑해서 일을 주시고 그 일을 통하여 보람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해야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맡았을 때 그 일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총의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에게 주의 일을 주시고 그 일속에다 흔들어 되어 누르고 넘치도록 나에게 줄 기쁨과 행복을 허벌나게 감춰놓고 쌓아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하면서 기쁨으로 할 근거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그 일을 하면서 어떤 영적인 깊은 깨우침도 담아 놓으셨고 그 일을 땀 흘리면서 할 때 주실 건강도 담아 놓으셨고 그 일을 기쁨으로 할 때 그 일꾼의 자식들에게도 축복의 통로가 되는 복도 미리 포함시켜 놓으셨으며 그 일을 할 때 기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게 될 사건들도 포진시켜 놓으셨으니 우리가 어찌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어떤 일꾼은 성가대에서 봉사를 하고 어떤 일꾼은 계단에서 성도들을 맞이하고 어떤 일꾼은 주차장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 일들이 생각하기 나름으로 아무리 적은 일이고 비중이 작은 일이라고 여겨지더라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맡겨주신 거룩하고 소중한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과정 속에 하늘의 복들이 coming-out 하도록 프로그래밍해 놓으신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그런 익명의 시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교회에서 걸레를 빠는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천국을 1mm제곱만큼이라도 이 땅에 하늘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더없이 거룩한 일인 것입니다.
 
■ 그런데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할 때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장 3 절에 뒤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자원함으로 하고 기쁨으로 하되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목에다 힘을 주어 할 때는 종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강진에 있는 한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교회에 부임하여 아직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 사택에 와서 청소도 해 주고 화장지나 필요물품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거실에서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집사님 한 분이 정색을 하면서 “목사님! 아파트에 사시면서 쓰레기도 주우시고 계단 청소도 하고 그러세요!”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강진읍교회가 굉장히 강하다고 들었는데 집사부터가 강하고 쎄구나!”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오지 말아야 할 교회에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집사가 자기 담임목사한테 농담도 아니고 진담으로 쓰레기도 줍고 계단청소도 하고 그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무슨 노래가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4~5 년을 목회하는 가운데 그 집사님은 참으로 착하고 온순하신 분으로 그렇게 강하게 말하실 분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엔가 아하! 깨우침이 왔습니다. “아하! 성경에 하나님께서 망아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내가 목회하면서 자고할까봐 초장에 그 집사님을 통해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목회를 하면서 계단 물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줍고 하면서 폼을 잡지 않고 목에다 힘주지 않고 종으로서 섬기는 마음으로 하였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목회초기에 지침을 주신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여 교회의 목회를 큰 실수 없이 마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6 장의 말씀에 근거하여 세 번째로 에베소서 6 장에 근거하여 오늘 특별히 임직되시는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주께 하듯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캘커타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볼 때 죽어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옥합을 깨서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과 같이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듯이 사랑으로 저들의 종이 되어 섬겼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만일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리고 내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손길이 되고 도구가 되어 빵을, 옷을 그들에게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굶주린 사람, 고독한 사람, 집 없는 어린이, 살아갈 집을 찾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분장하여 다시 오셨으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토록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었는데 알아주지도 않고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는 이들을 대하면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저들 모습으로 분장하여 오셔서 그렇게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하시면서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예리한 눈으로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짜증을 내고 불평하는 이를 더 사랑으로 잘 돌보았습니다. 특별히 임직되시는 이들이 섬기실 때 테레사 수녀가 가졌던 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섬기는 그들이 바로 분장하여 오신 예수님이라 생각하시고 저들을 섬겨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제직으로서 섬길 때 만일 새 신자가 우리 교회에 왔다고 한다면 마치 그들을 전혀 교회를 모르고 성경도 모르는 한 사람이 왔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을 안내하는 것을 무슨 시혜를 베푼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이 전혀 교회를 모르는 새신자로 분장하여 오셨다고 생각을 해보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섬기듯이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새 신자들은 자신을 대하는 여러분들의 섬김 속에서 오히려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한기장복지재단에 128 개 기관이 있습니다만 각 기관에는 무척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들이 한 두명이 반드시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가양5종합복지관에서 봉사한다면 거기 무척 까다로운 클라이언트가 역시 있을 것입니다. “밥이 왜 이렇게 적으냐? 반찬도 더 가져와라! 음식 가져오는 시간이 왜 이렇게 늦느냐? 나를 대하는 말투가 그게 뭐냐 좀더 공손하게 말해라” 자기가 돌봄을 받으면서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이런 불평분자들을 만날 때 한 번 그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하 이분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구나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을 섬기는지 지금 이런 식으로 테스트 해보는 구나? 옳다 예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구나!” 생각하고 더 상냥하게 더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설령 그 분 안에 예수님이 분장하여 오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저들을 섬기는 그 섬김을 예민하게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만약 광주성광교회 일꾼들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섬긴다면 예수님이 분장하여 오실 수도 있고 예수님이 보내신 천사가 분장하여 올 수도 있고 둘 다 아니다 하더라도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성광교회 제직들이 임직되신 분들이 일할 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가를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면서 우리의 섬김과 헌신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록하고 계실 것입니다.
 
■ 얘기 하나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1977 년에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나중에 한국신학대학이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과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4 년 동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2 년 반 동안 다녔습니다. 당시 수유리 캠퍼스에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6 년 반 동안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 가면 식판을 받는 정면에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식판을 들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저 그림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계산해 보았습니다. 6 년 반 동안 그 그림을 보아왔다면 괄호 열고 (365 곱하기 세끼니까 3 곱하기 6년이니까 곱하기 6 하고 괄호 닫고) 더하기 괄호열고 (365 일 절반은 183 일이니까 183 곱하기 세끼니까 3 곱하기 괄호닫고) 하면 이론상으로는 7110 번 그 그림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계산을 하는 중에 또 다른 질문 하나가 물어졌습니다. “왜 저 그림이 채플실에 걸려 있어야 제격인데 밥 먹는 식당에 그것도 하필이면 밥을 타려고 식판을 들고 줄을 서있으면 반드시 보게 되는 그곳에 걸려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보니 뭔가 가슴에 걸려 오는 그 어떤 음성과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밥먹고 힘내서 너도 나같이 발을 씻어주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신학교 6 년 반을 다니면서
내가 봉사하는 교회에서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 발을 씻어주는 그 자리에 있었지 내가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드리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는 제가 선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드리는 자리에서 섬기려고 노력을 더하려 합니다. 오늘 헌신을 다짐하는 강남교회 제직 여러분들도 의자에 앉아서 여러분의 발을 씻김을 받는 그 자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드리는 그 섬김과 헌신의 자리에 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 하나가 이 시간 오롯이 새겨진다면 여러분의 인생을 질적으로 고양시키고 삶의 차원을 승천시키는 블루칩이 될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 출애굽기 23 장에 보면 주를 섬기는 이들을 은총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복을 주시되 25 절에서 31 절까지 보면 12 가지 복을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예수님으로 오셔서 인간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하셨는데 우리 강남교회 제직들도 주님께서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으로 종 노롯 하면서 서로 발을 씻어주는 옳은 일들로 여러분의 섬김과 헌신으로 주님께서 은총으로 주신 한 해 2014 년을 가득 채우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저희를 사랑하셔서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성가대 교사 등의 직분과 직책을 주심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이 모든 일을 할 때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하게 하시고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게 하시고 저희로 깊은 영성을 주셔서 낮은 자리에 힘들고 어려운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알아 뵈옵는 영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의자에 앉아서 발의 씻김을 받는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라 무릎을 꿇고 수건을 두르고 발을 씻어드리는 자리에 언제나 저희가 있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임직 받는 장로와 권사들에게 은혜위에 은혜를 내리시어 사랑하며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교회를 섬기시는 박상규 목사님과 이숙 사모님에게 더욱 강건함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십자가상에 피를 흘리시며 죽으심으로 구원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가 주의 명령에 따라 섬길 때 주님을 닮아 섬기면서 살 때 한량없는 복을 예비하시고 퍼부어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오늘도 거룩한 영으로 우리로 하여금 실생활에서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의 말씀을 듣고,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며,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발을 씻어주셨듯이, 서로 발을 씻겨주며 사랑하며 섬기고자 하는 광주성광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장로와 권사를 임직 받는 예수그리스도의 일꾼들과, 주의 몸 된 교회를 값 주고 피로사신 교회를, 썩어져가는 밀알로써 헌신하며 섬기는 박상규 목사임과 이숙사모님 위에 지금부터 언제까지나 임마누엘 함께 하옵시고 축복을 내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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