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옥봉교회 주일 오후예배 설교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군산 옥봉교회 주일 오후예배 설교

관리자 2015-06-11 (목) 15:05 8년전 1787  
2015 년 6 월 87 일(주일) 오후 2 시 반 주일오후예배 군산옥봉교회
 
성경본문 : 마태복음 13 장 33 절
제 목 : 선한 영향력과 악한 영향력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온 옥봉교회 성도님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좀 불안합니다. 얼마 전에는 세월호로 많은 학생들이 죽고 정부는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하고 아우성치는 실종자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종북과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또한 메르스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어가고 있는데도 그저 낙타우유나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는 정도로 안이한 대응으로 메르스는 계속 퍼져나가고 있고 수 천 명이 격리되어 있고 그 가운데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런 가운데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위로부터 오는 은총과 평강입니다. 옆 성도들과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서로 인사를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그 존재 주변에 있는 타 존재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 존재의 영향이 지극히 미미한 것들도 있고 그 존재의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 영향력이 강하고 미미하든 어쨌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있고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들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세상에 나도는 것들 중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중에 하나가 <ISIS>입니다. ISIS 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라는 뜻인데 이들은 서방의 국가의 국민들을 붙잡아 놓고 거액의 돈을 요구하고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목을 잘라 처형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으로 방영합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수 천 명을 처형하고 잔인하게 죽여왔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911 테러를 저지른 국가라 하여 또한 대량살상무기를 지녔다 하여 무력으로 이라크를 점령하고 수십만의 이라크인과 아프카니스탄인을 죽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겠다는 나머지 그런 악종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려는 나머지 세상은 점점 더 안녕하지 못한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악한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 신천지의 악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이단들이 발호할 때는 기존의 교회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진정으로 소금과 빛이 되었다면 이단들이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미미할 것입니다.
 
■ 오늘 성경본문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 장 33 절을 보겠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여기서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어머니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남편과 자식들을 먹이려고 밀가루 서 말에 물을 넣어서 반죽을 하고 거기에다가 누룩을 넣으면 어느 정도 지나면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게 되고 그것을 화덕에 구우면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것으로 집안사람들도 먹이고 굶주리고 있는 이웃도 먹이게 될 것입니다.
 
■ 여기서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으로 들어갈 때 누룩은 그 존재가 그대로 남아있지 아니합니다. 밀가루 반죽 속으로 스며들어 누룩이라는 자신의 존재는 없어지게 됩니다. 누룩이 자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빵은 그냥 저절로 부풀어 오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누룩은 자신의 존재가 점점 사라지면서 빵이 맛있게 되는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누룩은 자신을 전적으로 희생시키면서 가족들이 이웃들이 빵을 먹음으로 생명이 살려지고 이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밀가루와 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물도 밀가루 속으로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형태도 없이 사라집니다. 밀가루는 물과 누룩과 함께 변화되어 구워지게 되고 결국 맛있는 빵이 되고 사람들에게 먹힙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살리게 됩니다.
 
■ 여기서 어머니로서 여자 그리고 밀가루 그리고 물 그리고 누룩은 서로 합쳐지고 변화되어 생명을 살리는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생명을 살리는 선한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밀가루와 물 그리고 누룩은 결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자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희생시킵니다.
 
■ 우리 주변을 보면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 성도님들이 저를 보시기에 사람이 쫌 약간 착하게 생겼다 적어도 사고는 치지 않을 것 같이 느끼실 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에 살았는데 골치덩어리 사고뭉치였습니다. 한 네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인가 마을 공동우물가에 가서 우물을 들여다보니 제 얼굴이 보여서 좀 더 가까이 보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그만 우물 속에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마침 우물을 기르러 오던 동네 아저씨가 저를 지게를 질 때 쓰는 지팡이로 우물을 휘휘저어 저를 끌어올려 살았습니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것이지요! 근데 마을 사람들은 물이 더러워졌다고 그 우물을 밑바닥이 보이도록 다 퍼버렸습니다. 근데 다시금 그 우물에 갔습니다. 아까 물을 다 퍼버렸는데 그 물이 다시 솟아올랐는지 궁금해서 갔습니다. 허리를 숙여 우물을 보려하는데 아까 거기에서 제가 빠져죽을 뻔한 것을 알고 있었던 빨래하는 아줌마가 우물에서 소리소리 질러댔습니다. “아니 저 오살할 놈이 또 빠져 죽을라고!!” 제가 그때 물장난만 친 것이 아닙니다. 그때 당시 전기가 없었습니다. 호롱불을 켰는데 등잔에 석유를 넣고 창호지 같은 심지를 집어 올려 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불이 켜지는 것이 신기해서 등잔 속을 들여다보려고 만지다가 등잔이 넘어지고 석유가 엎어지고 불이 붙어 이불이 다 타고 온 집안이 다 탈 뻔 했습니다. 어른들이 다행히 집안에 있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초가삼간 다 태우고 저는 또 죽을 뻔 했습니다. 그때 사기로 된 흰 등잔이 깨지자 어른들은 양초에 불을 켰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촛불이 살랑살랑거리는 것이 신기해서 다가가 얼른 엄지와 검지로 불을 잡아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아버지가 “저 자식이 또 불에 타 죽을 궁리를 한다!”고 하면서 “양초에서 멀리 떨어져!!” 야단을 들입다 맞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몹시 부잡해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도 두 세 번 있었고 불에 타 죽을 뻔한 일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제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생전에 드리신 서원기도를 받으시고 저를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물이 엄몰치 않게 해 주시고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불길에 타거나 그을리지 않게 해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 총회본부를 올해 1 월에 종로 5 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으로 옮겼는데요 제가 일하는 방에 전도사인 한 직원이 출근하여 일하기 시작할 때 방에다 보라색 양초에다가 불을 붙여줍니다. 저는 타고 있는 양초를 볼 때 마다 그때 옛날 불장난을 했다가 죽을 뻔한 옛날 기억이 났습니다. 양초를 보면서 묵상하였습니다. 양초는 타들어 가면서 촛농이 옆으로 주르륵 흘러 내립니다. 그 양초 자체에 향이 들었는지 타들어 가면서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향을 온통 방에 쏟아내 놓습니다. 양초가 타면서 초 자체에 무슨 유익을 가져다 줍니까? 양초가 불을 밝혔다고 초의 키가 더 커집니까? 오히려 키가 작아집니다. 아니면 몸무게가 더 늘어납니까? 더 줄어듭니다. 양초는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자신이 아닌 전적으로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의해 쓰여집니다. 양초가 자신을 태워 아낌없이 다 바친다 해도 자신의 살을 태워 자신의 향을 나 나누어주다 해도 그 초의 혜택을 본 이들이 양초에게 공로패나 감사패를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말 하나 해 주지 않습니다. 양초가 자신을 태우면서 “내가 말이야 이 어둠을 밝히고 있어! 나를 희생시켜 너희들과 주변을 환하게 밝게 해 주고 있는거야!” 하면서 자신을 드러냅니까? 아닙니다.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키가 점점 줄어들고 촛농이 흘러 몸무게가 점점 깍여지게 되면 결국 사람들은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립니다. 양초는 단 한마디도 항의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양초가 기실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중심인 심지를 태워 자신이 아닌 존재들에게 환함을 주고 자신의 살을 태워 향기를 나누어 주고, 그렇게 주고 또 주다가 결국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이 적어지고 심지는 타버리고 그래서 사람들에 의해서 폐기되고 버려집니다. 어찌보면 양초는 거룩한 삶을 살다가 갑니다.
 
□ 저는 지난 구정 설날 아버님께 갔는데 그때 아버님이 넘어지셔서 다리가 다치셔서 보훈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거기서 칠량에서 바로 윗집에 살던 평애 누나를 만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3 년전으로 돌아가는데 그 누님은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저를 이뻐해서 저에게 향나무 연필을 주고 그 연필을 아주 이쁘게 깍아주셨던 누나입니다. 한글을 가르쳐 주시고 글자를 깨우치게 해 주신 분입니다. 이제는 70 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 계셨습니다. 그 누님 얼굴을 보니 향나무 연필, 그 향 냄새가 다시 나는 것 같았습니다. 향나무 연필도 어찌 보면 양초와 같습니다. 깍을 때 자신의 살점이 깎여져 나가면서 짙은 향을 냅니다. 그리고 연필심으로 글씨를 씁니다. 글씨를 쓰면서 한글을 배웁니다. 심이 다 닳으면 다시금 칼로 깍습니다. 그러다가 몽당연필이 되면 역시 쓰레기통에 던져버립니다. 향나무연필은 초등학생을 공부하게 하고 글씨를 쓸 줄 알게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버려집니다. 마침내 몽당연필이 되어 버려졌을 때도 연필이 왜 쓰고 버리느냐고 일인시위를 하거나 항의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향나무 연필 제일 꼭대기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남이 한 실수를 지우면서 자신의 살점은 뚝뚝 떨어져 나갑니다. 결국 지우개도 다 쓰게 되면 버려집니다. 언젠가 아내가 저에게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어내는 도끼날에도 향내를 묻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저를 공격하는 이들에게 향을 묻혔던가 생각해 보니 그저 부끄러움만 남아 있습니다.
□ 제 99 회 총회 주제가 “하나님 앞에 세상 앞에 참회하는 교회”입니다. 총회를 개최하였을 때 한 회원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것은 맞지만 왜 세상 앞에 참회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 앞에 선포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빛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야할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국기독교가 세상에 빛을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흑암을 서비스하였기 때문에 세상은 정반대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니 그래서 교회와 기독교를 비판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인데 세상이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빛의 서비스를 받아야할 당연한 권리로 본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가 세상 앞에서 참회해야 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저들은 받아야할 서비스를 우리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받지 못하였습니다. 지나온 우리 한국교회와 기독교가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니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세상 앞에 참회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히 양초와 같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여 자신이 아닌 존재를 위해 아낌없이 빛을 비추었다면 향나무연필과 같이 자신을 깍아내어 향기를 날리고 저들의 소용이 되었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을 일보다는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을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앞에서 참회해야 할 근거인 것입니다.
 
□ 올해가 본헤퍼 목사님이 나찌와 히틀러를 저항하다가 순교한 지 70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신학자 본헤퍼 목사는 예수님의 삶을 “전적으로 타자를 위한 삶”이라 하였고 교회란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교회라 하였습니다. 본헤퍼 목사님은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삶을 결코 살지 않으셨고 온전히 자신이 아닌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사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여 십자가 상에서 물과 피를 다 흘려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삶은 일점일획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생명을 얻고 또 얻어 풍성한 삶을 위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온전히 십자가 상에서 버림을 받고 죽으셨습니다. 죽으심으로 자신을 내던지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여기에 거룩이 아니 거룩한 삶 자체가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거룩의 빛이 가장 환하게 빛날 때가 언제였느냐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이고 그 중에서도 그 거룩한 빛이 환하게 비추일 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가시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매달고 못박고 조롱하고 비웃고 창으로 쿡 옆구리를 찌르는 저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나님께 간구하실 때입니다. 도대체 자기를 죽이는데도 죽이는 저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저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심장의 온도는 도대체 몇 도나 되겠습니까?
 
□ 아까 제가 제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살았다고 하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어머니도 양초와 같은 삶을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제 엄마가 저를 가지신 지 한참 되었는데요! 중간에 피를 토하고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았는데 고칠 수 없는 병이 발견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와 아이 둘 다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아이야 또 가지면 되는 것 아니냐? 당신이 살아야 한다!” 하면서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요! 제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느그 엄마가 그때 칠칠육군병원에서 의사가 주는 약을 다 쓰레기통에 버려 부렀다. 한 번도 먹지를 않더라! 그 대신 먹히지 않는 밥은 꼭꼭 십어서 먹더라! 그리고 약을 두 주먹으로 꼭 감싸쥐고 병원 침대 위에서 계속 웅얼웅얼 거리더라!”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랬습니다. 만일 의사가 주는 약은 무척 독한 항암제가 담긴 약인데 그것을 먹으면 태내에 있는 자식이 죽을까봐 안 먹었고 밥을 꼭꼭 먹었던 것은 태내에 있는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기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두 주먹을 감싸 쥔 것은 하나님 이 아이 꼭 살려 주세요! 결사적으로 기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의사와 길고 긴 싸움을 하였는데요! 의사는 제 엄마를 살리고 아기는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고 엄마는 자신이 죽어도 좋으니 제 아이만은 꼭 살려주세요! 하면서 딱한 제목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저를 낳으신 후 20 일 만에 광명한 그 빛의 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을 때 눈을 뜨고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아무리 감기려 해도 눈이 감겨지지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니 자식땜에 그러냐? 염려말아라 내가 잘 보마! 하고 감기니 그제서야 눈이 감겨졌다고 합니다. 저는 당시 태어날 때 1.9 킬로그램이었는데 의사는 자신의 경험상으로 아이가 죽을 것이라 하였는데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병원침대에서 결사적으로 복중의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신다면 하나님께 바치겠어요! 어머니가 서원기도를 해서 저는 살았고 그 서원기도 그대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 이별하여 그 나라에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자신을 죽이고 저를 살리신 어머니를 만나 볼 참입니다. 어머니는 자식를 위해 거룩한 빛을 비추이시다가 양초같은 삶을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제가 살았고 어머니가 비추이신 그 거룩한 빛을 가슴 속에 따뜻하게 간직하고 삽니다.
 
□ 저는 교단 총무로서 교단 증경총회장님들을 모시면서 삽니다. 제가송암교회 다닐 때 모셨던 기원형 목사님은 나중에 총회장을 하셨는데 자신의 성도 중 하나가 신장질환으로 고생하자 그 즉시 자신의 신장 하나를 떼어 주어 그 성도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기 목사님은 설교를 할 때 피치를 올리실 때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하시는데 아마도 신장이 하나가 없으셔서 가슴에 고통이 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기 목사님은 일찍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재임기간 중에 총회장으로 모셨던 분들 중에 신장을 비롯한 장기를 기증하신 증경총회장님들이 많으십니다. 증경총회장이시면서 총회유지재단 이사장을 하셨던 김옥남 목사님께서도 장기를 기증하셨고 박원근 목사님께서도 신장을 기증하셨고 기장의 증경총회장님께서 장기를 기증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유재천 증경총회장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가산을 다 털어 겨자씨후원회를 만들어 해외선교사를 후원하시는데 사용하셨고 소천하셨을 때에야 5 천만원을 한신대학교에 남모르게 기증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시고 난 다음에 유재천 목사님께서 참으로 모든 이들의 모범을 보이시면서 기장과 한신을 위해 온전히 다 희생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에서 살면서 어쨌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든지 악한 영향력을 끼치든지 하면서 살아갑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것이 미미하더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악한 것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병 중에는 콜레라와 에볼라가 전염성이 무척 강합니다. 중세 때 유럽의 흑사병과 콜레라는 일거에 수천만명을 죽였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도 전염성이 무척 강합니다. 바이러스들 중에는 흑사병의 바이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가 넘버원으로서 자기네들 세계에서는 그 치명적 전염성으로 인해 최고로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메르스는 확산 속도는 훨씬 더 빠릅니다. 순식간에 수천명이 감염이 되었습니다. 저들의 시각에서 보면 흑사병과 콜레라 그리고 메르스의 바이러스는 전염을 시키는데 엄청나게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들 바이러스는 인간을 망하게 하는 악한 영향을 끼치는 것들입니다. 악한 것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쉴 새도 없이 일하고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일합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면서 소금과 빛 누룩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선한 영향력은 무슨 큰 일을 해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서도 큰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그런 연설을 했습니다. 오늘날 만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수천만명이 소아질병으로 죽어간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비누로 손을 씻어주는 단순한 행위 하나로 수천만명의 절반 이상을 살릴 수 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길거리에서든 교회에서든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단순히 손 한번 씻어주는 가벼운 일일일지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길가는 사람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단 한 번의 미소를 짓고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 하나만으로라도 좋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에밀리 디킨슨 시인이 그런 시를 썼습니다. “내가 만일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또는 괴로움을 달래거나 또는 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 얼마 전 문동환 박사님이 책을 내셔서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올해 95 세이십니다. 아직도 정정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넌 세상에서 무얼하다가 왔느냐 물으신다면 나는 하나님 저는 제가 낳지 않은 아이를 제 아이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말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문동환 목사님은 사모님이 미국인이신데 자신의 두 아들과 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가장 미울 것 같은 딸을 하나 데려다가 사실상 자신의 세 자녀보다도 더 사랑하면서 키웠습니다. 문혜림 사모님은 맛있는 빵을 만들어 그것을 두레방빵이라 하였는데 그것을 팔아서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매매춘 여성들의 자립과 인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살았습니다. 교단 안에나 신학교 안에는 예수님처럼 타자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을 사신 많은 이들이 계십니다.
 
■ 이제 오늘 내일이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주님은 주님 앞으로 간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세상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다가 왔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서 대답할 말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이 땅에 살면서 되도록 이면 어두운 영향을 덜 끼치게 하시고 선한 영향력 착한 영향력 좋은 영향력을 많이 끼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결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게 하시고 밀가루 서말 속에 들어간 누룩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게 하옵소서! 이제 오시는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이 옥봉교회가 이 지역사회에 참으로 없어서는 안될 등경위의 등불이 되게 하시고 산 위의 마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축복기도> 이제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피를 흘려 죽어가신 그리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한량없이 사랑하시어 이 땅에 존재를 보내시어 소금과 빛과 같은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오늘도 거룩한 영으로서 우리로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밀가루 서말과 물과 누룩을 빚어 생명을 살리는 여인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랑하는 옥봉교회 성도님들 위에 지금부터 언제까지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