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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교회 주일낮 1,2,3부 예배

관리자 2016-05-09 (월) 10:33 7년전 2135  

201651(주일) 오전 7, 9, 11시 중국동포교회 주일낮 1,2,3부 예배

 

성경본문 : 누가복음 12 6 - 7

제 목 :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으니!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중국동포교회에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러 나아온 모든 성도 여러분들 위에 그리고 지구촌사랑나눔에 속한 모든 임직원들 위에 크신 은총과 평강을 나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산자교회 30주년 기념예배 설교하러 가셨기 때문에 부족한 사람이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성남산자교회는 김해성 목사님께서 담임을 하시다가 사모님이신 김현의 목사님께서 담임을 맡아 수고하신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번 약속한 대로 이제 중국동포교회 출석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8 년 동안 강남교회 출석교인이었습니다. 전병금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원로목사가 되셨고 새로운 담임목사이신 백용석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저는 앞으로 좋은 교인으로서 여기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김해성 목사님과 이선희 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을 위해 돕고 성도 여러분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며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여러분은 중국동포교회 고참이시고 저는 신참인데 따뜻하게 잘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교단의 일이 9 월에 끝나게 될텐데 그 이전에 전병금 목사님과 김해성 목사님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단법인 지구촌구호개발연대에 참여하여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지구촌에 재난을 당한 이들을 돕는 일에 나서고자 합니다. 중국동포교회 성도 여러분들께서도 이 지구촌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많이 도와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27절에 주목해 봅시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는이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희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12 1 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그동안에 무리 수만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그러면 너희에게는 일차적으로 먼저는 제자들을 지칭해 말씀하신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수 만 명들 예수님을 따라온 이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제나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한 말씀이니(히브리서 138)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중국동포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에게는 그리고 뭐죠?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었나니머리털을 누가 세는 거지요? 여기서 세었다하지 않고 세신 바되었다하셨으니 즉 높임말을 쓴 걸 보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세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tm리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지구라고 해도 그저 점에 불과할텐데 그 분이 뭐 할 일없이 우리 머리털을 한 올 한 올씩을 세고 계시는 걸까요? 왜 하나님께서 그 머리털을 세서 뭐하실려고 그 쓸데없는 일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하늘에 계시면서 하두 심심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머리털을 세셨을까요? 옛날 어떤 사람이 이발관에 갔습니다. 가서 대뜸 양쪽으로 가르마를 타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발사는 머리카락이 하두 적어서 세어 보았습니다. 한 올. 두 올! 뿐이었습니다. 머리카락 숫자가 좀 부족한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 숫자가 대충 몇 올인지 세고 있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무척 소중히 여깁니다. 제가 부교역자로 일했던 목사님이 지금은 소천하셨습니다만 그 분은 머리카락당 한 올 당 10 만원씩 주고 심으셨습니다. 목사님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 머리에 검은 머리가 뒤덮이게 하자는 제안에 따라 나는 다섯 올 그래서 오십만원 나는 7 70 만원 해서 그렇게 해서 거의 수천 올을 심게 되셨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소중한지 만질 때도 조심스럽게 만지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카락을 심어준 성도들의 사랑을 생각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얼마나 귀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 숫자를 알고 있지 못합니다. 인터넷에서 살펴보니 보통 사람 저같이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이 12 만개 정도라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다고 할 때 그것을 다 10 만원씩 주고 심는다면 약 120 억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데 우리 머리에 120 억원이 자라고 있는데 별로 쓰다듬어 주지도 않고 지내고 하나님께 별로 감사하지 않고 지냅니다만 오늘 이후부터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감을 때마다 아이구 내 머리 120 억원어치!” 하면서 은총의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실까요? 근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만 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에 보면 우리의 발걸음도 세신다 하셨습니다. 어디 볼까요? 욥기 14 16 절에 보면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란 말씀이 있습니다. 왜 욥의 발걸음을 세셨을까요? 저는 지난 2월말부터 3월말까지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왔습니다. 약 한달간 800km를 걸었습니다. 원래 그 길은 프랑스 생장 피에르에서 스페인, 성경에서는 서바나로 기록되었습니다만 산티아고 데 콤뽀스텔라까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스페인 전도를 위해 걸었던 길인데 그 길을 역사상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습니다. 저도 아들과 같이 30 일간 매일 35 km 씩 걸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스마트폰에 있는 앱에는 하루에 제가 몇 킬로미터를 걸었고 몇 보를 걸었는지를 알려주어서 대략 하루에 4만 보를 걸었고 한 걸음 당 67cm 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걸음도 세셨으니 내가 가는 순례길의 걸음도 세시겠지! 제가 걸었던 걸음을 총 합산해 보니 약 1268천보 정도를 걸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길에서 여러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때론 스페인 사람들로 분장한 천사, 때로 같이 길을 가는 사람으로 도움을 주다가 사라지는 천사 등등 여러 천사들이 있어서 끝까지 그 길을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무척 목이 마르는데 속으로 콜라 한 잔 딱 마시면 좋겠는데 생각했지만 그 산 길에 무슨 콜라같은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콜라 두 병 오렌지 서너개를 놓고 산기슭에서 팔고 있었습니다. 콜라 1유로 50센트를 해서 그 골짜기에서 콜라를 사서 마셨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 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거기서 그 사람이 콜라 몇 캔 오렌지 몇 개를 팔아서 뭐가 남겠습니까? 저는 꼭 천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가면서 길을 잃으면 꼭 그 지점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때론 할머니가 때론 길을 가는 순레객들이 그 길이 아니라고 말해주곤표표히 사라졌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않고!! 저는 그들을 나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이 보내주시는 천사로 느껴졌습니다.

 

머리카락을 세시고 발걸음도 세신다면 그 분이 내 심장 박동도 세시지 않을까요? 내가 모태에서 조직이 되어 어느 순간 심장도 조직이 되어 심장이 첫 번째로 뛰는 어느 순간부터 이 세상 이별하는 그 날까지 심장이 단 하루 아니 단 일 분도 쉬지 않고 뛰는데 그 심장박동수도 마찬가지로 세지 않으시겠습니까?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명은 최초의 심장박동으로 시작되며 마지막 박동으로 끝난다 하였습니다. 보통 1분에 심장박동은 60회에서 100회 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이 1분에 80회를 뛰고 80년을 산다고 하면 80회 곱하기 160초 곱하기 24 시간 곱하기 1365 일 곱하기 80년은 3,363,840,000번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가 걸어온 총 발걸음 수 나의 머리카락수, 나의 심장 박동수 이 모든 것을 다 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머리카락도 세시고 계시는데 다른 것을 물어 무엇하겠습니다.

 

시편 1391절에서 6 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하나님이 단순히 나를 세시는 것만이 아니죠. 나를 세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나를 빠삭하게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고 일어섬도 아시고 내 생각도 아시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무슨 말을 할지도 알고 계시고 내 앞도 아시고 내 뒤도 아시고 나의 존재의 전후좌우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고 합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마치 실시간으로 cctv가 촬영을 하는 것과 같이 한 동작 한 동작 다 알고 계시고 그저 내 겉으로 나타난 동작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은밀한 속까지도 한 눈에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도무지 미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나의 발걸음도 오늘 일자까지 세시고 계시고 오늘 교회를 나왔을 때 집에서 교회까지 발걸음 수도 세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내 혈압의 수치도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내 심장박동수가 일 분에 몇 번 고동치는 지도 알고 계시고 내 당수치도 재고 계신다는 건데 왜 하나님께서 그러실까요? 광대무비한 우주에 그 우주를 운행하는 거대한 일에만 매달려 있지 않으시고 왜 우주에서 보면 지구가 점과 같을 것이고 그 지구 안에서 지극히 미물과 같은 나를 그것도 머리카락까지도 세고 계시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6 절을 보겠습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도다두 앗사리온은 우리 돈 일이천원에도 못미치는 것인데 그렇게 팔리는 참새까지도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것 아니냐? 지극히 적은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로서 잊지 아니하신데 너희는 내 형상으로 만들었으니 참새보다도 훨씬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 한 마리도 살피시는데 너희는 그것들보다도 훨씬 귀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알려합니다.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알고자 합니다. 그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노영심이 부른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나를 처음 본 게 정확히 목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 그 때 귀걸이를 했는지 안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 시시콜콜한 걸 다 기억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번호 8자를 적을 때 왼쪽으로 돌리는지 오른쪽으로 돌려쓰는지 같이 걷던 한강 인도교의 철조 아치가 6개인지 7개인지 그때 우리를 조용히 따르던 하늘의 달이 초생달인지 보름달인지 우리동네 목욕탕 정기휴일은 첫째 셋째 수요일에 쉬는지 아니면 둘째 넷째 수요일에 쉬는지 혹시 기억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수많은 모습과 내 마음속의 깊은 표정까지도 오직 나만의 것으로 이해해주는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이 노래가사를 보십시오! 노영심의 모든 것을 그것이 시시콜콜하게 별 걸 왜 다 기억하는 것입니까? 다름 것이 아닙니다. 영심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관계된 것이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면 자식의 모든 것들을 알고 있거나 기억하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의 모든 것을 알려 하고 자식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식이 밥 먹는 습관하며 어느 반찬에 젓가락이 자주 가는지 자식이 몸이 아픈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그 부분이 왜 아픈지 어느 병원이 그 아픈 부분에 전문인지 어느 의사가 그 분야에서 최고인지를 잘 압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가지고 있는 습관도 다 압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라든지, 밤에 잠꼬대하는 소리라든지 자식이 역류성 위장병이 있다든지 그 위장병에는 무슨 약이 좋고 어떤 생활습관이 좋고 어떤 약이 있다든지 자식이 게임을 좋아하면 어떤 게임을 즐겨하는지 그 게임을 지나치게 하면 수면에 장애가 온다든지 자식이 치킨을 좋아하는데 그 치킨을 어떤 음료수와 함께 먹기를 좋아하는지 자식이 공부하기를 싫어한다면 왜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하기 좋아하는지를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아는 것입니다. 그저 자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힘써 알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귀하고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자식의 몸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있어 그것이 수십만 카라트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한 오천억 가치가 넘는 그 다이아몬드와 자식을 바꾸겠습니까? 자식을 혹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식이 난장판을 쳐도 사고뭉치다 하더라도 부모에게는 그 자식이 살아있으면 그 자식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라고 부르면 그것으로 그냥 좋습니다. 자식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알고 알려고 하고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니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머리카락수를 세시고 나의 발걸음을 세시고 나의 심장박동수를 세시고 내 고혈압 수치를 알고 계시고 내 당수치를 알고 계시고 내 약점과 결점과 허점과 단점을 알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기에 다 아시고 다 세시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라고 너무 넓게 보지 말고 나 자신이라고 축소해 놓고 보십시다. 내가 믿고 있는 그 하나님께서는 내 걸음을 다 세시고 내 머리카락이 123456올인지 그 중에서 흰머리카락 올수도 98765올인지도 아시고 계시고 주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세시고 계시는 것이 너무도 많아 내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여 오늘 이 날 이 때까지 몇걸음인지도 알고 계시며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수도 세고 계시며 내 몸 속의 유전자 조합도 알고 계시며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을 가슴 속에 새겨놓고 계시며 내가 했던 말이 모두 몇 문장인가 몇 마디인지도 알고 계시며 그 내용도 알고 계시며 내 몸 속의 피가 하루에 몇바퀴를 돌고 있는지 지금까지 총 몇 바퀴를 운행했는지를 다 세고 계십니다. 왜 세십니까? 나를 참 귀하게 여기고 나를 참 사랑하시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만 세실까?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들만 세실까요? 성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에 성전에 나아오는 발걸음을 세시지 않을까요? 중국동포인 여러분들이 중국의 어느 성에서 몇 년 몇 개월을 살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땅 대한민국에 들어왔는지도 알고 계시며 그 걸음도 세고 계셨고 이 땅에서 살면서 당하는 고통과 설움과 눈물도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 속에 있는 좌절과 슬픔도 아시고 발음이 조금 다르다 해서 따돌림을 준다든지 해서 가슴 아픔도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바램과 여러분들 속에 감춰진 저희의 열정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여기 모여있는 중국동포교회 성도들 한 성도 한 성도를 낱낱이 여실히 빠삭하게 알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얼마나 이 여러분들이 이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는 시간과 분과 초도 합산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중국동포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일하는 현장도 지켜보고 계시며 거기서 힘들게 뼈빠지게 일하는 모습도 알고 계시며 그래도 주일날 하루는 쉬어야 하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성전에 나아와 각종 봉사를 하는 여러분을 조용히 바라보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나 자신이 아닌 중국동포들을 위해 이 중국동포교회를 위해 김해성 목사님과 교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도 이미 다 카운트해 놓으셨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중국동포교회를 위해 흘린 땀방울을 카운트 하시고 내가 이 교회에 나와 눈물로 기도한 것을 주님의 눈물병에 담아 놓지 않으셨을까요? 특별히 중국동포로 살면서 참으로 먹고 살기도 힘든 가운데 그 중에서도 주일을 성별하여 온전히 바친 그 소중한 시간들을 그래프를 만들어 놓고 보면서 즐거워하지 않으실까요? 중국동포교회 성도들이 교단 총회가 주최하는 월요평화통일기도회에 나아온 것도 그 출입을 지켜 보시며 그 때 바친 헌금도 새겨놓고 계시며 재난이 날 때마다 해외에 나가서 구호활동을 하는 것도 거기서 굶주린 이재민들에게 밥을 해서 퍼주고 쌀가마니를 나눠주고 어린이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고 집을 지어주기 위해서 양철지붕을 치며 수없이 못을 박는 그 못들의 숫자도 헤아리고 계시며 거기서 일을 하다가 지쳐 쓰러진 모습도 기억하고 계시며 무료로 봉사하면서 생계를 도외시하고 더 고통당한 이들을 돕는 횟수도 세고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김해성 목사님 같으신 분들은 24 시간 실시간으로 보고 계시면서 이것도 헤아리시고 저것도 세시고 계실지 모르지만 나 같은 것이 뭐가 중요하다고 나의 머리카락을 헤아리고 내 발걸음 세시랍디여? 그것은 중요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겠죠! 아니 나 같은 것이 뭣이라고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 내 심장박동수를 세시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시고 그런답디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참새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나는 지구상에 66 억 중에 한 사람이겠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신다면 66 억분의 1 을 나에게 쏟아 붓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중에서도 중요한 사람에게나 신경을 쓰시지 나 같은 것에게는 그냥 66 억분의 1 로 생각하시겠지 그렇게 착각을 하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나와 하나님을 1 1로 여기십니다. 나는 하나님과 일 대 일로 대면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선 나는 단독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대하실 때 나에게만 집중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나는 참새보다도 온 우주보다도 귀한 존재이고 바로 나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날 대하시는 것이 전혀 전적으로 다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만 때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23편에 보면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우리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가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셨다 고백하였습니다. 인간관계로 보면 그것은 그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나를 생각하실 때 1 대 일로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기에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를 지었는데 하나님을 너라고 <ETERNAL THOU 영원한 너>라 불렀습니다.

 

테제공동체가 부르는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잠잠히 주를 바라보라 주님의 사랑 넘쳐나리 잠잠히 주를 바라보라!여러분을 24 시간 1440 86400초를 한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잠잠히 여러분을 바라보시면서 여러분을 지켜보시고 헤아리시고 세시고 계시고 일거수일투족을 집중해서 보시는 나의 주님을 잠잠히 생각해 보시고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향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중국동포교회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전화기로 다이얼을 누르면 저기 지구 반대쪽에 다른 사람이 받으면 무슨 전깃줄이 가는 것도 아닌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파라는 것이 있어서 상대방이 거기서 받고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그런 차원입니까?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그런 정도의 차원의 믿음 정도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의 나의 하나님 믿음은 천지를 만드신 분이 날 온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최고이신 하나님께서 날 아시되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도 날 더 잘 아시고 날 사랑하시되 내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도 날 더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시기에 내 머리카락도 세고 계시고 내 발걸음도 세고 계시고 내 심장박동도 내가 모태엣 조직될 때부터 지금까지 세고 계시고 날 사랑하시기에 날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만큼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굳게 붙잡는 것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되 온 세상보다도 우주보다도 온 피조물보다도 나를 최고로 나를 제일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이 바로 그것이 신앙입니다. 중국동포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날 허벌나게 허벌창나게 그렇게 그토록 날 최고로 사랑하시는 주님 바로 그 손을 꼭 붙잡고 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 주님과 동행동거동락하시며 이 땅에서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게 웰빙을 누리시며 살아가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저희를 아시는 것은 주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저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심을 알았습니다 사랑하시기에 저희를 귀하게 여기시고 저희의 발걸음도 세고 계시며 저희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계시며 저희의 눈물방울도 세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신 것을 압니다. 저희 중국동포인 저희를 참으로 아끼시고 저희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주님을 사랑하며 의지하며 꼭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동거하며 동락하며 기쁨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저희를 아신 것같이 저희도 주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저희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가슴을 알게 해 주시옵시며 저희를 향한 주님의 눈물도 알게 해 주옵소서! 저희를 향한 주님의 가장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뜻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사랑을 만분지 일이나마 알게 해 주옵시고 그 사랑에 응답하여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나를 사랑하시기에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시고 나의 구원을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 머리카락까지고 세시면서 나를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오늘도 거룩한 영으로 함께 하시어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지혜가 이 이른 아침 성전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만분지 일이나마 응답하여 살고자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중국동포교회 성도 여러분들 위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썩어지는 밀알과 같이 헌신하시는 김해성 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님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헌금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주님 사랑하는 맘으로 예물을 드리옵니다. 그저 예물만이 아니라 저희 속에 있는 주님 향한 뜨거운 심장도 함께 드리옵고 저희 존재 모든 것도 함께 바치겠다는 마음도 함께 드리옵니다. 이 시간 강림하셔서 저희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시고 저희에게 만복을 내려주시옵시되 저희에게 특별히 주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겠다는 헌신의 맘도 뜨겁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로 더욱 귀한 것을 바치게 하시고 자주 바치게 하시고 더욱 기쁨으로 바치게 해 주옵시고 주님을 위해 전 존재를 바쳐 헌신하는 김해성 목사님과 교역자들과 지구촌사랑나눔 임직원들의 헌신도 기뻐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배의 부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러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온 주님의 자녀들 머리에 손을 얹어주시옵시고 복에 복을 더하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 주시옵시며 생명을 주시고 또 주시어 풍성한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이들의 영혼에 주님의 풍성하심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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