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년 7 월 12 일(주일) 오후 1 시 30 분 주일오후예배 군산금성교회
성경본문 : 마태복음 5 장 38 절 - 42 절
제 목 : 주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이 자리에 나아온 군산금성교회 모든 성도님들 위에, 임시당회장이신 윤기원 목사님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앞으로 오실 목사님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잔을 부딪치면서 ”당신멋져!“라고 인사한다고 합니다. ”당신멋져!“에서 당은 당당하게 살자! 신은 신나게 살자! 멋은 멋지게 살자! 져는 져주면서 살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탄마귀와 싸움에서는 꼭 이겨야 하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져주고 아내는 남편에게 져주면서 사는 사람이 오히려 매력있는 사람입니다. 무슨 싸울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손해를 보면서 져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이겼던 그 사람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고 우리의 삶 속에서 말없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끝까지 세상 속에서 이기려 들고 이기면서 살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사는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져주면서 사는 것 중요합니다. ”져주면서!“ 에서 져를 빼면 ”주면서!“ 입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면서 –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받기 전에 옆 사람과 인사하면서 “당신멋져!!” 하며 인사하십시다! 이 자리에서 보니 군산금성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예쁘고 멋지게 보이십니다.
오늘 마태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산상에서 가르쳐 주신 보배로운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마태복음 5 장 41 절 말씀을 관심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어라” 만일 여러분을 아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와서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리는 얼마큼 입니까? 2 km입니다. 오늘날에는 차가 있으니 오리라고 해도 불과 약 2-3 분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걸어가야 하는 거리이니 그냥 쉽지 않은 거리였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억지로 오리를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을 때 사람들마다 각각 반응이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내가 엄청나게 지금 바쁜데 너 하구 어떻게 오리를 같이 가니? 내가 오늘 소도 사야 하고 논과 밭에 나가 할 일이 너무 많아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니 미안하지만 너와 오리를 못가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여기지 말아라! 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역으로 제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내가 지금 너하고 오리를 가줄 터이니 너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십리를 가줄 수 있니? “ 그렇게 제의하여 가준다고 약속하면 그제야 오리를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 너하고 지금까지 정분을 생각해서 딱 오리만 가는 거야! 더 이상은 1 리도 더 안 돼!” 하면서 딱 오리만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너와 함께 1리를 같이 가주는 대신 10 분의 1 데나리온씩 내라 5 리면 반 데나리온이다고 노동의 대가를 받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얘,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너하고 오리 그까짓거 못 가겠니 오만리도 같이 갈께!” 하면서 막상 오리를 가자고 하는 시각에 그 장소에 얼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사시던 때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식민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식민지에서 폭동이나 봉기가 일어났을 경우 신속하게 폭동의 현장이나 전선으로 가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 로마병정들은 칼과 창과 방패를 포함하여 30-40 kg의 완전군장을 하고 폭동이 일어난 현장으로 가야 했었습니다. 이것을 쉽게 하기 위해 로마제국의 법은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시켜 군장과 배낭을 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이에 반항하거나 불응하면 반역에 해당하여 처형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법에 의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골고다언덕을 올라갈 때 구레네 시몬이 이 법에 의해 십자가 짐을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대신 짐을 지게 하는 경우 반드시 한 사람이 가는 거리를 오리로 제한시켰습니다. 로마의 모든 도로에는 오리마다 그것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었습니다. 만일 군인들이 이 법을 어기고 민간인에게 짐을 메고 가게 하기를 오리를 더 이상 넘어가면 백부장은 군법을 어기는 군인들에게 처벌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안가면 바로 즉결처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만 만일 오리를 넘어 십리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한다면 그 군인이 처벌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같은 로마법을 알고 계시면서 거기에 빗대어 산위에 올라온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리를 가자고 하면 오리를 넘어서 십리까지라도 같이 가주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억지로 십리를 가게 하면 누가 피해를 입게 됩니까? 로마군인이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로마법에 있는 오리법을 말씀하려 하셨을까요? 물론 예수님께는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군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리를 가자고 하면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안가겠다고 버티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라도 같이 가주어 죽음을 피하라고 생명을 아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런 단순한 데 산상보훈의 중심 뜻이 있었을까요?
말씀은 말씀으로 풀이할 때 가장 그 뜻이 잘 들어납니다. 산상보훈의 마태복음 7 장 12 절을 빛으로 삼아 오늘 성경 마태복음 5 장 41 절을 비추어 보면 보다 분명하게 그 뜻이 들어납니다. 마태복음 7 장 12 절입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예수님은 이웃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해주어라! 합니다. 그러면 아니 예수님! 우리가 상대방이 바라는 대로 다 해 줘버리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그냥 가준다면 우리는 곱절로 손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시기를 그래 너희가 손해를 보거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약간 바보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남이 달라고 하면 선선히 내어 주면서 기뻐하고 오른뺨을 때렸는데도 웃으면서 왼뺨을 돌려대고, 누군가 달라고 하면 달라고 한 것보다도 두 배나 더 주면서 좋아하고 상대방이 바라는 대로 해주면서 자기는 손해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 뭔가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어쩐지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 사람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고 그 사람 곁에 살고 싶습니다. 천국에 가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왼뺨을 때렸는데도 오른뺨을 대주는 사람, 박해를 했는데도 박해한 그 사람을 위해 오히려 잘되기를 기도한 사람,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해주면서 자기는 기꺼이 손해 보았던 사람들이 천국에 지금 가 있습니다. 손해만 보고 사는 바보 같지만 나누면서 베풀면서 사는 그런 사람들이 지금 천국에서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너끈히 같이 가줄 수 있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는 말씀 중심에는 천국에 걸 맞는 넉넉한 사람이 되라! 남이 바라는 대로 해주는 사람이 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좀 가슴이 펼쳐져서 넉넉한 사람, 좀 가슴이 터져서 시원한 너그러운 사람, 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사람, 오리를 가자고 하면 손해를 보면서 까지 십리를 같이 가주는 그런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제가 광주에 있는 한 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 년 전 일입니다. 그 교회에 임 집사님이라고 계셨는데 어느 날 그 집사님이 오리 두 마리를 뜨겁디 뜨건 물에 데쳐서 털을 뽑아내고 난 다음에 아직 더운 김이 식지 않은 상태에서 목사사택으로 가져왔습니다. 오리탕을 만들어 냄비에 담아 온 것이 아니라 금방 잡은 오리를 그것도 두 마리를 보냈습니다. 그 집사님은 약간 사연이 있는 집사님입니다. 언젠가 제가 새벽에 기도회를 인도하고 강단의자에 꿇어 앉아 기도할 때 그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아부지! 저 지금 돈이 한 100 만원 필요한데요! 100 만원만 주십시오!” 누구나 다 듣게 말씀드린 것도 아니고 속삭이듯이 기도한 것도 아니고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으로만 기도했는데 이틀이 지난 그 날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제단 의자 앞에 꿇어 앉아 기도하고 있었을 때인데 그 임 집사님이 신문지에 싼 것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신문지를 풀어보니 돈뭉치 100 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가 침묵으로 기도했을 뿐인데 집사람이나 그 누구에도 그 만큼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이틀 후 정확하게 1 원짜리 틀리지 않는 100 만원을 신문지에 싸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래 물어보았습니다. 왜 돈을 가져왔느냐고 했더니 “하나님한테 물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져다주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임 집사님이 어느 날 오리 두 마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가져다주고 서둘러 갔습니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저 집사가 무슨 뜻으로 오리 두 마리를 주고 서둘러 갔을까?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오리 두 마리를 거실에 놓아두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으니까 오리고기를 먹고 오리와 같이 꽥꽥거리면서 말씀을 힘 있게 잘하라고 보냈을까? 그럼 한 마리만 보내도 되지 왜 두 마리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오리 두 마리니까 “오리 보태기 오리는 십리”라는 괴상한 산수셈이 생각나면서 오늘 본문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 장 41 절). 이 말씀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그 집사님이 오리 두 마리를 가지고 온 뜻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