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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금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관리자 2014-07-15 (화) 16:16 11년전 1133  
2014 7 13 (주일) 오전 11 시 주일낮예배 군산금성교회
 
성경본문 : 요한복음 13 34 - 35
제 목 : 서로 사랑하는 금성교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주님 값주고 피로 사신 군산금성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직분을 맡으신 모든 분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성가대원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저는 군산노회 체육의 날에 축사를 맡아 이곳 군산에 왔고 주일날 오후에는 군산성광교회에서 임직식 축사를 맡았습니다. 마침 임시당회장이신 윤기원 목사님께서 금성교회에서 말씀하라 하셔서 순종하고 왔습니다. 그동안 금성교회가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때 교단총무인 제가 함께 하지 못한 점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보통 어려운 때를 위기라 합니다만 저는 위기를 위해서 <>, 기도할 <>해서 위기의 때는 위해서 기도할 때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도 박해의 위기 속에서 모여서 기도에 전무하였습니다. 금성교회도 이 어려운 때에 더욱 기도하시면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이루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관목사로서 말씀을 은혜롭게 잘 전하는 목사는 아닙니다. 앞으로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와 함께 오실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의 귀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 34 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의 중심은 바로 하늘나라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신다 하였을 때 그것은 단순히 이전과는 다른 한 인간윤리가 아니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행해지는 윤리를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를 사는 핵심의 계명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이는 그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박아 죽이는 이들을 향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 올리시는 예수님의 심장의 온도는 도대체 몇 도나 되겠습니다.
 
1995 년 한국교회 희년행사때 가수 조용남 씨가 종로 5 가 기독교회관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그가 부른 노래가 그야말로 감명이었습니다. 유명한 가수 조용남이어서 감명이 아니라 그의 노래가사가 감명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 / 인생은 사랑 영원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시고 / 예수님도 사랑 / 인생도 사랑이라 노래 불렀습니다. 예수님 하면 십자가인데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용서, 구원, 속죄 그리고 화해라 말합니다만 왜 용서하시고 왜 속죄하시고 왜 구원하시고 왜 화해하신 것입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 아닙니까? 성령님도 무엇입니까?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데 왜 하나되게 하십니까? 그것 역시 사랑하시기 때문 아닙니까? 예수님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을 하실 때 성경의 핵심을 두 가지로 말씀하시었는데 큰 계명과 새 계명을 말씀하셨는데 그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아닙니까? 사랑이 이웃에만 머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네 이웃도 사랑하라 하시지만 네 원수도 사랑하라 하십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이에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질문하십니다. 원수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이요 예수님도 사랑이시고 성령님도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니 사랑 아닙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인생의 본질도 사랑입니다. 테제공동체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비 까리따스 데싸무어 우비 까리타스 데우스 이비 에스트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계실 때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 거기 현존하십니다. 하나님 거기 계실 때 천국도 거기 있습니다. 인생이 뭡니까? 오사오사입니다. 오지게 사랑하고 오지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다가 이 세상 이별할 때 사랑하는 주님의 품에 싹 안기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 사랑하라 하였을 때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이 물을 것입니다. 사랑을 어떻게 한답니까? 사랑이란 그저 존재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사랑이 마음 안에만 있고 마음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반쪽 사랑 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적극적으로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언젠가 그런 강론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 사랑을 전파하세요 / 먼저 당신 자신의 집에서 / 그 일을 실천하세요 / 당신의 자녀를 /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 그리고 그 다음엔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 표현되도록 하세요 / 당신의 얼굴에, / 당신의 눈에, / 당신의 미소 속에, /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 속에 /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세요.”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할 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좋은 표현은 무엇입니까? 안아주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일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멀리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서 총리대신을 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식량이 떨어져서 애굽으로 와서 식량을 사고자 하였을 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자신을 밝히고 나중에 형들과 동생을 끌어안고 웁니다. 요셉이 꼭 안아준 형들이 누구입니까? 자기를 구덩이에 쳐 넣어 맹수의 밥이 되어 죽이려 했던 원수같은 형들 아닙니까? 그런 형들을 그저 꼬옥 안고 울었습니다. 안아줄 때 이미 다 용서한 것입니다.
 
제 아버님은 지금 여든 넷이시고 어머니는 일흔 여덟이십니다. 아버님이 여든이 넘으시고 나서 제가 하나 달리 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꼭 안아드리는 일입니다. 명절이 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부모님께 갑니다. 차가 막혀 어떤 때는 10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13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부모님께 가는데 부모님은 아이구 그렇게 길이 막히면 오지 말지 그랬냐!!” 그러면서도 좋아하십니다. 아버지께 선물도 드리고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언젠가 한 번은 사시는 아파트를 나오기 직전에 아부지!” 하면서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 잘가라!!” 했는데 !” 하실 때 약간 떨리는 듯한 음성이었고 무척 감격하신 것 같았습니다. 문을 나오면서 ! 아버지를 안아드렸더니 의외로 그렇게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하면서 나오는데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문 앞까지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안아드렸더니 어머니도 얼굴이 환해지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 어머니를 볼 때마다 더 많이 꼬옥 안아드려야 하겠구나! 그저 한번 안아드리는 것인데 그렇게 좋아하시는구나! 그 뒤부터는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도 부모님 집을 떠날 때에도 꼭 하는 일이 꼭 안아드리는 일인데 제가 무슨 선물을 드릴 때보다도 용돈을 드릴 때보다도 안아드릴 때 제일 감격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광수생각>이라는 만화에 보면 아부지 전상서!”라는 제목의 만화에 그런 글이 있습니다. “아부지 생각나시는지요? 전에는 당신과 돗자리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함께 누워 벼를 보곤 했지요. 최근에도 당신과 함께 보던 별들이 잘 있나 궁금합니다. 저도 기회가 닿는다면 아부지의 손자와 함께 그때 보던 별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당신이 제게 보여준 사랑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돈을 벌어 돗자리 하나를 사야겠지요. 아부지 징그럽다 하겠지만 요즘의 저는 당신을 한번 꼭 안아보고 싶습니다.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습니다.” 금성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부모님들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볼 때마다 한 번 씩 안아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 아이가 둘 있습니다만 아이들을 키울 때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 하나가 아이를 꼭 안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갈 때나 올 때에도 오매 내 새끼!” 하면서 많이 안아주었습니다. 학교를 간다고 할 때 안아주면서 기도하였고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내 새끼가 왔능가!” 하면서 안아주었습니다. 집 안에서 하는 자식들에 대한 교육이 뭐 별 겁니까? 자식들 볼 때마다 한 번 씩 안아주는 것 이상 더 좋은 교육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는 별로 잘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비틀어져 나가지 않고 애비애미 말 대체로 잘 듣고 이웃을 그래도 조끔은 배려하면서 살 줄 안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된 연유 중에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꼭 안아준 것이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 한 유럽언론의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아니 수녀님은 왜 일을 하실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이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품에 안기는 그런 경험을 하고 가게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늘나라를 경험합니까? 하늘나라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알지 못합니다만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미리 예비적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안아줄 때 그 따뜻함과 훈훈함 속에 그 신비한 하늘나라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포옹을 받을 때 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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