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3일(주일) 오후 7 시 원주영강교회 주일저녁예배
한국기독교장로회 제 100 회 총회를 위한 기도회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1 장 23 절 _ 26 절
제 목 : 성찬의 깊은 뜻, 세상 안에서!!
□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은총과 평강이 존경하는 서재일 증경총회장님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제 100 회 총회를 앞두고 준비하며 이 시간 함께 기도하는 원주영강교회 준비팀과 영강교회 온 성도님들 위에 오늘 찬양을 주께 올린 직원/교역자 찬양단 위에 총회본부와 총회 교육원 팀 그리고 한기장복지재단팀과 한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 팀 모두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예배에서 영강교회의 역사성을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제 83회 부총회장이시고 영강교회 장로이신 손숙자장로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영강교회의 역사성으로 따지면 저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이 교회를 주일학교 학생으로 다녔습니다.
□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교회를 아름답게 지은 직후 교단 총회를 위해 두 번씩 총회장소를 허락해 주신, 특별히 금번 100 회 총회 개최를 위해 성소를 허락해 주신 영강교회 서재일 증경총회장님과 당회 장로님들께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서재일 총회장님은 제가 총무가 될 때 바로 모셨던 총회장님 이셨고, 기억에 남는건 남북교회가 평양봉수교회에서 사자후를 토하시며 설교하실 때, 봉수교회 모든 성도들이 아멘 했던 것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습니다. 총회를 두 번씩이나 그것도 100회 총회장소로 주시고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제 1 회 총회에서 제 100 회 총회 중에 중요하지 않은 총회가 어디 있겠습니다까마는 그래도 장로교 제 100 회 총회는 시대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여러 가지 중요한 뜻을 지닌 카이로스 총회라 할 수 있습니다. 100 회 총회는 단지 총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대회, 신도대회, 선교박람회 및 바자회, 환영리셉션, 홈커밍 컨설테이션, 기장미술인선교회전시회 등등 약 10 개의 중요한 행사가 동시에 개최됩니다. 아마도 약 2 천여명 이상의 기장인들이 여기에 참예하여 축제와 잔치 그리고 총회를 동시에 하게 됩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영강교회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서재일 담임목사님께서 개최를 허락키로 결정하신 것을 넘어서서 은총의 하나님께서 이 좋은 장소를 정해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시간 좋으신 은총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동시에 영강교회와 서재일 목사님께 감사드리는 박수를 함께 드리도록 하십시다.
□ 특별히 이 행사를 위해 가장 많이 수고해 주실 분들이 영강교회 준비팀들과 영강교회 제직분들과 성도님들과 부교역자님들이신데 이 시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신학과와 신대원 자원봉사단 여러분들과 총회 각 기관의 실무자들에게도 역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만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합력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선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흘리는 땀을 보시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은밀한 가운데 보시고 그 땀과 수과와 헌신에 적절히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전서 11 장 23 절에서 26 절은 누가복음 22 장 19 절에서 20 절에 그 원문이 나와 있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을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붇는 것이라” 이 말씀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이었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하신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하는 것이며 오래지 않아 자신은 잡혀가게 되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리라고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빵을 나누시면서 자신의 살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자신의 피라 하시고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 혹은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현장 그 자리에 앉아 하신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예수님의 음성과 표정에서 예수님의 심장의 고동으로부터 빵과 포도주를 나누신 그 진정한 뜻은 무엇이셨을까 짐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여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을 전달받았는데 오늘날 이는 예배에서 설교로 발전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 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데 무척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44 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절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46 절을 보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저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 가운데 놓칠 수 없는 걸 하나 발견합니다. 여기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과 떡을 뗀다는 것이 각각 있습니다. 떡을 떼는 것이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라면 그냥 한 번에 써도 될텐데 서로 따로 떼어 말씀한 것은 떡을 뗀다는 것 속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는 때문입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단지 식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떡을 떼셔서 나누어 주시면서 “이는 내 몸이다!” 하신 것을 깊이 가슴에 새기기 위하여 함께 떡을 뗀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가슴 속에 새기기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떡을 뗀다는 것을 단지 음식물을 먹기 위해 쪼갠다는 뜻이 아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심을 깊이 생각하고 떡을 떼는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떡을 떼면서 그렇지!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살과 피를 아낌없이 다 나누어 주셨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단지 떡만 떼어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지! 이 땅에 계실 때도 하늘의 말씀도 주시고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정도 나누어 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시어 병도 고쳐주시고 죽으시면서 까지 물과 피를 흘리시면서 죽어 가시면서도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지! 자신의 몸을 분해하시고 해체하시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온전히 모두 다 몽땅 털어 다 나누어 주셨지! 그렇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삶을 회상하면서 기억하면서 기념하면서 떡을 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회상만 하고 기억만 하고 떡만 뗐습니까?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삶을 떼어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의 물건을 내놓아 서로 함께 통용하기 시작하였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 그것만이 아닙니다. 초대교인들은 마음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과 박해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 나누며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웃의 발을 씻어주며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나눔과 섬김의 삶을 자신들끼리에게만 해당시키고 그것을 세상사람들과 아직 안믿는 이웃들과는 담벼락을 쌓고 살았더라면 사도행전 2 장 47 잘 말씀의 현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47 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단순히 머리 속의 기억으로만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화시켜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인카네이트(incarnate)하여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전환시키면서 살았는데 그 삶을 보고 세상사람들이 너도 나도 예수를 따르고 믿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성찬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이것이 빛이 되어 예루살렘을 환히 비추었고 그 빛이 광속도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되어 그것 자체가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점점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로마제국 깊숙이 복음이 스며들어 약 300 년이 지난 다음에는 로마제국이 자신의 국교로 선포할 만큼 기독교는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고 영향력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화가 되면서 예배를 드리는 예전도 점점 복잡한 형식을 더하게 되었고 예수님이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말씀을 즉 예수님의 성찬을 아주 예배와 예전 속에 담아 아주 긴 시간을 예배 속에 할애하였고 그 성찬예전을 신학화하여 <화체설>이라는 교리로 확립하였습니다. 화체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카톨릭의 사제가 서품을 받으면 천국의 열쇠를 맡는다. 사제가 떡과 포도주 위에 손을 얹고 축성을 하면 떡과 잔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고 불사의 능력이 그곳에 임재하게 된다.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위해 기도할 때 그 떡과 포도주는 본질이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이것이 바로 화체설입니다.
□ 이에 대하여 종교개혁가 루터는 반박하였습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지 말아라! 성례전은 마술이 아니다. 그래 사제가 축성하여 떡이 예수의 살로 변했다 치자! 그럼 제일 먼저 구원받은 이들이 교회성도들일 것 같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구원서열 1 위는 교회 안에 돌아다니는 쥐들일 것이다. 빵도 갉아 먹고 포도주도 찔끔거리면서 마실테니까! 성찬의 효과는 마술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찬에 실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믿음이 없이는 그것은 헛것이다. 사제가 축성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상관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믿음 가운데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실재설>입니다.
□ 이에 대하여 또 다른 종교개혁가인 쯔빙글리는 말하였다. “루터! 너는 성경 좀 더 읽어라! 예수님께서 제정의 말씀에서 뭐라고 하셨냐? 나를 기념하라 되어 있잖냐? 그러면 말씀 그대로 보면 성찬의식은 그날 그때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