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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사랑교회 주일낮예배

관리자 2016-08-16 (화) 14:26 9년전 227  

201687(주일) 오전 11시 온사랑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마태복음 69~ 13

제 목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예수님 주시는 크신 은총이 온사랑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그리고 담임이신 배태영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예배에 참예하신 모든 성도님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여름이 역사 속에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상청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 해수욕이나 시원한 곳으로 피서를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전에 나아온 여러분들의 면면을 보시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맘껏 복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땅과 하늘이 나와 있고 계시록 마지막 장에도 새하늘과 새땅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는 배태영 목사님과 사모님의 땅에 계시는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예하셨습니다. 광주에 사시는데 멀리서 오신 것은 아들이 목사가 되어 그 어렵다는 교회를 개척하여 예배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을 기뻐하시고 또한 최근에는 아들의 아들이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증손주를 보시게 되고 무척 좋아하셨는데 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예배를 드리고자 오셨습니다. 배야섭 목사님과 사모님은 새벽이면 일어나 제일 먼저 기도하시는데 이 온사랑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두분의 기도의 울타리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두 분이 이 교회를 위해 드리는 기도가 하나도 헛되이 되지 아니하고 열매맺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시고 적자와 같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되어 주님의 거룩한 나라와 역사를 확대해 가는데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올해가 제가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나가 반지를 맞추었습니다. 물론 금으로 된 반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은으로 된 반지도 아닙니다. 반지의 겉면에 글자가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주기도문>이 깨알과 같이 적혀져 있습니다. Our Father who are in heaven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죠. 예수님 가르쳐 주신 기도의 가장 첫 머리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반지를 낄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부분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하고 거꾸러 끼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반지를 낄 때마다 약간 불편함이 있지만 매일 아침 반지를 끼고 나가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특별히 첫 부분을 집중적으로 묵상합니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였는데 그 하나님 계신 하늘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고개를 들어 위로 보면 푸른 하늘이 있는데 저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있는 것일까요? 찬송가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노래하는 가사인데 그러면 하늘이란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있는 우리로부터 너무도 먼 어떤 공간에 있는 것일까요? 지구는 별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을 내지 않기 때문에 항성이라 하지 않고 행성이라 합니다. 보통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을 별이라 합니다.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별이 태양입니다. 지구와 태양과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15천만 km입니다. 시속 100km인 고속버스를 타고 15천만 킬로미터를 가야 한다면 180년 정도 가야합니다. 엄청나게 아니 까마득하게 멀고 먼 거리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계시다면 태양보다도 훨씬 더 멀리 계시다면 과연 그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를 만큼 가까우신 분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상 하나님이 계신 하늘이 그렇게 공간적으로 멀다면 그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렇게 부를 수 있겠지만 그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보통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아버지는 가장 가까운데 계신 분이 아버지 아닙니까? 창세기 227 절을 보겠습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아브라함과 이삭이 서로 아버지여! 내 아들아! 서로 부르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을만큼 가까이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데 보통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가깝고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너무도 멀고 그 먼데 있는 분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 아닙니까? 만약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렇게 부르지 않고 땅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하거나 우리 곁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라 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 아버지는 너무도 가까우신데 하늘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예수님이신데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하였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런 문제를 전혀 느끼지 않으셨을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알고 계시는 <하늘>은 우리가 개념상으로 알고 있는 <하늘>과는 무엇인가 분명한 오차가 있거나 질적으로 그 하늘은 다른 하늘일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이 어디일까요? 하늘이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있는 어떤 공간일까요?

 

하늘에 하나님 계신 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늘의 보좌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라는 행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태양계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은하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지점일까요? 아니면 온 넓고 광활한 우주의 정확하게 한 중간지점에 하늘이 있을까요? 보통 빛이 1 년간 달려가는 거리를 1 광년이라고 합니다. 1 광년은 사람이 걸어서 이동한다면 도보 속도를 한 시간에 5 km로 볼 때 무려 22500만년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가야 하는 거리입니다. 수치로 환산하면 약 94700km입니다. 그러나 일광년이 아닌 수억광년이 떨어진 자리에 별이 있다고 하니 도대체 하늘은 얼마나 넓은 것입니까? 저 높고 높은 별을 넘는다 하였을 때 그저 그 거리는 아득하고 아득하기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 땅 지구에 오신다면 하늘의 보좌가 있는 곳을 떠나서 오셨다고 한다면 다시금 하늘보좌로 돌아가셔야 한다면 공간적으로 무한히 먼 곳으로 다시 가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하늘>을 생각할 때 그 <하늘>이 우리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그 <하늘>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요? 우리는 보통 생각하기로 하늘이 있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공간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늘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나중에 옵니다. 순서가 이것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에 하늘입니다. 하늘이 먼저 있었고 그 담에 하나님이 계시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계셨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로서 하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 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였을 때 천지는 하늘과 땅입니다. 하늘을 만드시고 그 담에 땅을 만드셨습니다. 순서로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맞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태초라는 시간도 천지라는 공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고 그 다음에 시간의 시초가 만들어 지고 그 다음에 하늘이라는 어떤 공간 혹은 거처가 만들어지고 그 담에 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 하였을 때 하나님이 하늘에 올라가 그 안에 거처하신다 함이 아닙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땅에 계시다 하였을 때 하늘을 떠나시어 땅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을 필사한 사람들은 하나님이라고 쓸 때에는 대여섯번 목욕재개를 하고 난 후에야 겨우 하나님이란 글자를 썼습니다. 땅에 있는 피조물들이 어찌 감히 하나님의 함자를 감히 함부로 부르거나 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를 때나 쓸 때 주여!” 그렇게 쓰든지 하늘이라는 말로 대신해서 썼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하나님을 하늘님! 하느님!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불렀을 때 하늘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만일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로 처소를 옮기신다면 바로 그곳이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이란 곳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하나님이 하늘 안에 계시기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든지 그곳이 하늘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로 움직이신다면 하늘의 보좌는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머무시는 그곳이 바로 하늘보좌이고 하늘의 보좌가 펼쳐집니다. 우리가 보통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라 합니다. 하느님이 어디든지 있지 않는 데가 없이 아무 데나 있음을 또는 없는 데가 없음을 뜻합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를 신의 내재성(內在性)’ (divine immanence) 곧 모든 피조물에 충만해 있는 신의 보편성을 말씀합니다. 신의 遍在性이라고도 합니다. 편이라는 두루 편인데 하나님은 안계신데 없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임마누엘이라고 씁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뜻이나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보편적 내재성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은 그저 눈을 들어 하늘보라! 하였을 때 공간적으로 위치가 위인 그곳이 하늘이 아닙니다. 하늘이 먼저 오고 하나님이 나중에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하늘이고 하늘보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하늘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하늘이 우리 옆에 우리 안에 들어와 있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만일 천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계시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어디를 떠나시면 천사들은 그냥 하늘의 보좌에 머물러 있으며 그 거룩한 처소에서 하나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바로 그곳이 바로 하늘의 옥좌로서 천군천사들이 옹위해 있는 곳이요 그룹들과 스랍들이 있는 곳이요 하늘보좌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땅에 오신다면 그 땅이 하늘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신앙인들은 이것을 깨우쳐 알았습니다. 깊은 믿음의 체험을 한 찬송가의 작시자도 이것을 알았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 찬송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모셔드렸다면 바로 그곳이 초막이 되든지 궁궐이 되든지 바로 그곳이 하늘나라로 변하게 됩니다. 만일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면서 주를 중심으로 모셔드렸다면 그 영혼이 하늘나라로 변하게 됩니다. 만일 내가 주님을 외면하고 그와 담을 쌓고 지내왔다면 그래서 내 안에 컴컴함만 남아있다면 황량함만 남아 있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됩니다. 그 반대로 주님이 내게 오신다면 하나님이 계신 하늘과 내가 서 있는 땅은 겹쳐지면서 진부분 집합과 같이 되면서 새로움과 거룩함이 세속적임과 땅을 감싸 안게 되고 삼키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떨기나무는 땅에 심기워져 있었습니다. 그 땅과 그 나무에 하나님이 불꽃으로 현존하셨습니다. 바로 그 땅은 하나님의 현존하심으로 거룩한 땅이 되는 동시에 거룩한 하늘이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외삼촌으로부터 화투 짓고땡을 배웠습니다. 그중에 재미있는 것이 삼팔광땡과 삼팔따라지였습니다. 같은 삼팔의 조합으로 되지만 삼광과 팔광이 조합하면 최고의 끝수가 되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따게 되는 삼팔광땡이 되지만 광땡이 아닌 것과 조합이 되면 삼팔따라지가 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지옥과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차원은 같은 장소에서도 차원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지옥과 하늘은 한끗발 차이도 아닙니다. 불가의 가르침에 고개 한번 이리 돌리니 극락이요 저리 돌리니 무간지옥이로구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은 엄청나게 멀고 먼 나라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내 삶 속에 들어오신다면 내 삶에 간여하신다면 만일 예수님이 내 중심 속에 초청하게 된다면 거기서 바로 그 순간 3차원 4차원 5차원이 아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차원이동이 일어나 하늘이 내게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수로 헤아릴 수 없는 순간적인 차원이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로 오시는 순간 하늘보좌가 내게로 동시에 쳐들어오기 때문에 엄청난 것들이 동시에 밀려오게 됩니다. 찬송가에는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이 노래했습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치네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창세기 2816절에서 17절입니다.“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무엇입니까? 야곱이 말한 바로 여기에 자신이 잠을 잔 그 땅에서 하나님의 집을 발견하고 하늘의 문을 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곳은 루스인데 베델로 이름하였습니다. 야곱이 무슨 천리안이 있어 별들을 넘어 천국의 문을 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뵈온 그곳이 바로 천국이 있고 천국의 문이 있고 천사들이 있습니다. 야곱이 잔 그곳 루스는 땅이지만 야곱이 뵈온 하나님을 만난 그곳은 하늘이었고 베델 하나님의 집 하늘이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나는 그곳이 바로 루스는 베델로 변합니다. 사람들마다 어떤 이는 이 땅에 살면서 루스로만 사는 이들이 있고 루스를 베델로 바꾸어 사는 땅을 하늘로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상에 두 강도는 한 사람은 주님을 모시어 십자가상 위에서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른 한 강도는 저주하고 죽으면서 지옥을 맛보았고 지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적인 거리는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대에 같은 삶의 조건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은 생지옥을 경험하다가 결국 저주하면서 지옥으로 갔고 다른 한 사람은 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모셔드리면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공간적 거리가 4-5미터 이내였다고 볼 때 한 사람에게는 지옥이 쳐들어오고 다른 한사람에게는 천국이 쳐들어왔습니다. 공간적 거리 속에 천국과 지옥이 위치해 있지 않습니다.

 

이는 무엇이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결코 공간적으로 멀리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늘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 저 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이면 그 어디나 하늘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우리 허물을 참회하거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이 되거나 하였을 때 우리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였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시고 하나님이 오시면 하늘은 당연히 따라오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고 우리 영혼은 하늘 안에 있게 되어 땅에서 하늘로 수백차원을 넘어 이동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은 너무도 무섭고 떨리고 엄위하시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십니다. 감히 다가갈 수도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를 있게 한 내 존재를 가능하게 한 나를 사랑하신 우리 아버지 같으신 분이고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무슨 나라와 같기 보다는 가정과 같습니다. 천국이라기 보다는 천당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기에 천당은 아버지와 아들과 딸이 오순도순 사는 가정과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고 딸이 있을 때 가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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