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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강남교회 성탄절 예배 설교 -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

관리자 2014-12-25 (목) 11:00 9년전 1398  

세상의 빛, 예수 그리스도

사 42:1-4

 

성탄절이 되면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동방박사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와서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 나온 이 동방박사들에 얽힌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동방박사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은 카스파(Caspar), 발타자르(Balthasar), 멜키올(Melchior) 이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는 페르시아 지역에서 별을 연구하는 점성술사 혹은 현자(wise men)라고도 하는데, 어느 날 특별한 별을 발견하고는 약대를 타고 그 별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박사 가운데 제일 젊은 ‘카스파’가 타고 가던 약대가 사막 한 가운데서 독사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당황해서 얼마동안 서성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카스파’를 남겨놓고 두 사람만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떠나던 ‘발타자르’와 ‘멜키올’은 얼마를 가다가 그만 별을 잃어버려서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별도 보이지 않고, 길도 잃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야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동방으로 돌아가다가 보니까, 아까 약대가 독사에 물려 같이 가지 못했던 ‘카스파’도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의논하여 ‘카스파’와 함께 약대를 번갈아 타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약대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서로를 위해주며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세 사람이 같이 가게 되자, 사라졌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 그들의 길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 별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서로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 도우며 그 어려운 사막길을 무사히 통과하여 유대나라 수도인 예루살렘에 이르게 되었고, 또다시 거기서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광과 감격 속에 예수를 만난 동방박사들은 귀한 예물을 드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전설은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 사랑하며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한 우리들 또한, 이들 동방박사들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통해 아기 예수를 영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헬라나, 로마나 그 밖의 이방 세력에 의해 노예 생활을 속박을 당하다가 구원을 얻는 역사의 연속입니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할 메시야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비록 다른 민족에 의해 노예 생활이나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무엇인가에 의해 여전히 속박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속주의 물결 속에서,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나날이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가는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야 말로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것은 수단화 됩니다. 심지어 인간의 생명까지도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우리는 지난번 세월호의 침몰로 이것을 철저하게 경험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에서 빚어진 비극을 지켜보았습니다. 이는 경제발달로 풍요를 누리던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본주의에 포로로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마치 침몰하는 배에 갇힌 사람들처럼, 누군가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처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벨론 제국이라는 현실과, 물질문명이 극대화된 현실에서,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절망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 위기의 상황을 해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에게 오직 단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구원의 하나님, 절대자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를 간구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택한 자” “하나님의 의 종”을 보내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1절).

“나의 종”, “나의 택한 사람”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아브라함이나 모세 혹은 다윗처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인물들에게 자주 사용된 표현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한 이상적인 통치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은 그때 파사의 고레스 임금이 나타나서 바벨론 포로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해방할 것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고레스의 이스라엘 해방은 궁극적으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구원 사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레스 임금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도구로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역시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능력을 갖춘 유일하고 완전한 메시야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좌우되기 쉽기에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완벽한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예수님은 이 세상 모두에게 정의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 외에 인간은 그 누도 완전한 정의를 실현하는 이는 없습니다. 정의 실현은 커녕 오히려 불의와 부정만 저지르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가운데는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운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 불의한 사회를 가리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나라를 정의로운 사회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만이 불의한 것이 조금도 없는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에야 비로소 의로울 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다스리는 곳은 의로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됩니다. 그 분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가정을 다스리면 가정 천국을 이루고, 세상을 다스리면 참된 의로움이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주님이 다스리시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2절) 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주로 자신의 위세와 폭력으로 사람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메시야의 통치방식은 세속적인 정복자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세상의 왕들처럼 인기를 높이지도 않고, 무력을 사용하여 그 권위를 세우지도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다스리며, 모든 불의에도 대항하지 않고 순순히 당하시는 모습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기까지 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합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서로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죄와 욕심으로 격동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고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런 세상적인 것을 요구하거나 내세우시지 않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부귀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시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직 하나님만 즐거워했고, 오직 하나나님께만 순종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고요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3절에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3절)라고 했습니다. '갈대'는 늪이나 습기가 많은 땅에서 자라는 연약한 줄기입니다. 때로 강한 바람이 불면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상한 갈대'란 바로 그런 상처입은 갈대를 말합니다. 주님은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인생의 험한 바람을 맞아 연약하고 결점투성이인 인생들, 세상에서 쓸모 없게 된 사람들 조차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복음서에서 보면, 우리 주님은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도 구원해 주셨고(막 16:9),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도 버리지 않으셨으며(눅 22:61, 31-32, 요 21:15-19),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도 그 옆의 사형수를 버리지 않으셨고(눅 23:43),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에게도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 앞에서 ‘실패한 인생’이란 없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가 더 필요한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꺼저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꺼져가는 등불”이란 작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즉, 믿음이 조금만 있어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같은 작은 믿음의 소유자들도 주님은 그 희미한 ‘믿음의 불’을 돋우어 주변을 더욱 환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 땅 위에 공의를 세우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라는 말은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한 공의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은 진리와 공의를 등한히 하곤 합니다. 인간은 사랑과 공의를 같이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세워나가는 분입니다. 우리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종 재정 비리와 성적인 문제 등으로 얼룩져있는 한국교회는 특별히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세상에서 양심적이고 바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 더욱 애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4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는 주님”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한 주님의 사역은 단지 공생애 3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이 공생애 3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 제자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하여지고, 그 다음 우리들을 통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전 8세기에 활동하였던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수 백 년 뒤에, 그 예언대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이 분을 맞이하기 위해서 먼 나라에서 별을 보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 메시야는 이스라엘 백성만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분을 맞이해야 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분쟁하며 불의한 이들은 주님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탐욕으로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도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한다는 것은 그를 따르며 그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 분은 이 세상 가운데 “정의를 베풀고” “정의를 시행하고” “정의를 세우는” 정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사랑과 정의의 사역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을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일터에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살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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