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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관리자 2011-01-23 (일) 11:00 13년전 1131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1-4절

 

몇 년 전 캐나다 벤쿠버에서 한 달을 거주하면서 쉰 적이 있었습니다. 벤쿠버는 미국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마침 미국 씨애틀에 가 볼 일이 생겨 국경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건너는 사람들이 많아 차도 밀려 있었고, 그로 인해 약속 시간이 점차로 가까이 와 좀 짜증이 났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출입국 관리 직원은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 하나 조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 한 사람을 3,40분 동안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비자를 받고 갔는데도 무엇인가 불안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희들 차례가 되어 쉽게 통과했지만 잠깐 동안이나마 불안하였습니다.

이런 불안은 법을 어길 때 나타나는 마음의 현상입니다. 잘못되어서 거부당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마음에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마귀가 주는 고발장입니다.

두려움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사람은 거센 비난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대립에 대한 두려움, 능력부족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갖가지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그 두려움에 직면한 사람을 성경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레26:36)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과 걱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것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4:18)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함께 3년여 동안을 동고동락했습니다. 예수께서 한 제자의 배신으로 팔려 죽게 되고 또 한 제자가 당신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파묻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소망에 넘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위로와 권면의 말을 하듯이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평화를 주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우리 주님은 오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싸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주님의 위로의 메시지를 통해 참된 소망을 회복하여 인생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1.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고난과 제자들 가운데 예수를 배반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초상집 같이 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제자들이 얼마나 근심과 두려움에 빠졌겠습니까?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마음이란 어떤 외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육체와 지적인 능력과 도덕적 인식과 법적인 판단력과 영적인 생명력의 중심이자 요체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의 근심은 인간의 영과 육을 동시에 멍들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그냥 놓아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방황하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마음도 그 당시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곧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모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싶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없앨 전능한 힘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실상 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본체였기에 능히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가 있으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대주재이시고, 만사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인류의 진정한 구원자이시고, 우리 인간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기에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함께 계시는 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11살부터 배를 탔던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요한을 궁중해군의 선장으로 키우기 위해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훌륭한 과정을 이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행동과 반항적인 태도 때문에 계속 강등되었고 심지어 처벌까지 받았습니다.

20대 초반, 요한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나르는 그레이하운드라는 배의 선원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항해 중에도 사람들을 비꼬았고, 특히 신앙인들을 조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혹평하던 그 날 요한이 탄 배가 광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배가 빙빙 돌아 파도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더니 갑자기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곧 이어서 배의 가장자리가 부서져나갔고 선실은 물로 가득 차 오르면서 침몰하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한과 다른 선원들은 배를 구하려고 9시간 동안이나 사기를 잃지 않고 발버둥치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어쩌면 그 날 밤이 그들에게 최후의 순간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반항적이었던 요한은 오싹한 공포감마저 느꼈고 갑판 위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인간들의 노력이 소용없어질 때 모든 선원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폭풍우 속을 헤치고 생존한 요한은 영국으로 돌아간 후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선원에서 찬송가 작곡가로 바뀐 그가 바로 요한 뉴턴입니다.

한 때 그렇게도 반항적이던 인간이 변하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찬송가 305장)와 같은 은혜로운 찬송가를 작곡하고 당대의 위대한 설교자가 되어 그 후 50년 가까이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능히 담당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능히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다 아뢰고 그분께 맡기면 다 해결됩니다. 근심과 걱정이 다 물러갑니다.

 

2. 예수께서 천국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근심과 염려로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소망을 간직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2절)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이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있는 나라를 말합니다. 곧 천국입니다(딤전3:15).

그리고 ‘거할 곳’이란 여행 중에 심신이 지친 나그네가 다리를 쭉 펴고 편히 쉴 수 있는 여관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죄악된 이 땅의 나그네들인 우리들이 언젠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지친 심신을 평안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는 말씀은 세상의 호텔 방은 모자랄 수 있으나 천국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로 너무 넓어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공간이 제한되어 있고 사람이 또한 많아 들어갈 사람이 다 들어가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집은 있을 곳이 많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 믿는 사람이 살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 나라는 넓고 커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예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가 어떻게 생겼는가 궁금해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예수와 함께 있는 곳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서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제일 행복할 것입니다. 그 사람과 교제를 나누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살면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면서 사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가게 됩니다.

하늘나라는 예수와 함께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와 교제해야 합니다. 예수와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이 가는 나라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기적이 있고 축북이 있습니다.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입니다.

천국은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이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그 고유번호가 되었으나 지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고 자기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합쳐져서 11-1111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고, 따라서 지옥의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지옥 좌석을 예약하려면 자기가 최고라는 주장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연히 천국 좌석 예약은 어렵고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자신의 의를 겸손히 내려 놓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또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3. 예수께서 분명히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2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부활을 통하여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들이 거할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하늘 문을 여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죄와 피 흘리는 싸움으로 파멸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은혜로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의 은혜와 축복 때문입니다.

또 우리 주님은 마냥 천국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처소를 다 예비하면 다시 와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과 함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 때, 즉 역사의 끝 날에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재림하셔서 주님은 우리들과 함께 그 나라에 영원히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완전한 구원도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재림 때 예수 믿는 감격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으로 인해 우리는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계시는 곳이고 주님과 영원히 호흡할 수 있는 곳인 하늘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재림의 때에 우리는 주님을 마주 대하고 볼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고 오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쓰는 말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관계된 말입니다.

태종(太宗) 이방원은 태조(太祖)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서, 전비(前妃) 한씨의 소생이었는데, 이성계가 이씨 조선을 세울 때 가장 크게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성계가 나라를 얻은 후에, 계비 강씨가 낳은 아들 방석을 세자로 정했을 뿐 아니라 간신 정도전 등이 방석에게 붙어서 자기를 모해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태종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도전 등의 무리를 죽이거나 몰아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대노하여 왕위를 장남 정종에게 물려준 후, 야반(夜半)에 함흥 옛집으로 달려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정종의 양위로 임금 자리에 오른 태종은, 아버지의 귀환을 바라 문안사(問安使)를 보내게 되었는데, 태조는 이들을 모두 죽임으로서, 문안사로 간 차사는 한 사람도 돌아오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즉 가고 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두 이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도 이 말을 가져다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재림을 말할 때, “그도 함흥차사이지, 오긴 무얼 와! 2천년이 넘었는데도 안 오지 않아?”하고 비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1:7-).”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주신 사명인 복음 전도를 헌신적으로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그날 주님을 만나 영원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고, 또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복음 전도에 헌신하여 이 땅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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