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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7.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존귀한 생명

관리자 2011-08-07 (일) 11:00 12년전 1291  

존귀한 생명

 

요한복음 19:17~22절

 

로마 클럽은 영향력 있는 학자들과 실업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운명의 예언자,’ ‘인류의 양심’으로 불려온 온 단체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도 취하지 않고 단지 인류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서 인류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 준다고 합니다.

“종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인류가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해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 모임의 의장을 맡고 있는 아우렐리오 페체이는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대략 10년에서 20년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때가 늦습니다. 역사의 파국은 어느 한 순간 돌연히 닥쳐올 것입니다.”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니느웨 성을 멸망으로부터 구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성 주민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라나 단체나 개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처음에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생을 얻게 되고 천국에도 들어가게 되며, 회개할 때 재난이 물러가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일찍이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은 다 깊은 회개의 과정을 거친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마다 회개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팔복 가운데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했고, 구약의 이사야도 부름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뵙고 난 후에 자기의 추한 죄를 깨닫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탄식하며 회개하고 재단 숯불로 정하게 함을 받은 뒤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게 증거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회개시킬 수가 없습니다. 회개를 깊이 한 사람의 말은 예리한 칼과 같이 다른 사람의 심령을 찔러 쪼갤 수 있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도 방탕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을 접하고 깊이 회개한 뒤에 죄의 욕망이 일어나면 자신의 팔을 물어뜯으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졸도할 정도로 심각하게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시편 51편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깨어진 심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들어 복음의 역사에 크게 쓰십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 사람의 판단착오에서 옵니다. 모든 일에 올바른 판단만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에게는 행복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께서 매달리게 되는 십자가 윗 부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서 대제사장이 불만을 가지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죄패의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단호하게 “내가 쓸 것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빌라도의 단호한 모습은 뜻밖입니다.

그가 예수를 재판할 때는 예수가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또 그의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예수를 죽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죽이도록 했는데, 예수의 죄목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했습니다.

본래 십자가형은 로마의 사형법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형은 세상의 사형 가운데 가장 잔인한 형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썼던 고대 페르시아나 앗시리아 제국은 땅은 신성하기 때문에 악한 죄인의 시체가 땅에 닿아 땅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죄인이 십자가에서 죽은 뒤 독수리와 까마귀가 그 시체를 처치하도록 방치하였습니다.

카르타고인들이 페르시아의 사형법을 이어 받았고, 로마에서는 이 사형법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 땅 외의 식민지에서만 사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사형을 받은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사형법입니다.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으면 당장 끌려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많은 채찍질을 당한 후 사형장으로 끌려갑니다.

예수께서는 해골이라는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해골은 히브리어로는 ‘골고다’였고, 라틴어로는 ‘갈보리’였습니다.

이 장소는 예루살렘 성문 밖이었습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는 죄수를 사형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전설이긴 하지만 그곳이 해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죄인들이 사형당하는 곳이어서 그곳에 해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독수리나 까마귀가 시체를 처리하도록 하였지만 유대인들은 시체를 해가 지면 곧 묻어 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참하게 골고다로 끌려 갔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 그 험한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들이 난무하는 곳으로 끌려 올라가셨습니다.

우리 죄가 얼마나 크면 우리 주님이 이런 엄청난 사형을 당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죄와 실수와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정말 한심하고 안타깝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써 붙인 죄패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3대 언어는 고대 세계의 3대 언어였습니다.

헬라어를 쓰는 그리스, 라틴어를 쓰는 로마 그리고 히브리어를 쓰는 이스라엘은 세계에 위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스는 이 세상에 철학과 예술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로마는 그 유명한 로마법을 통해 이 세상에 법과 탁월한 정치를 가르쳐 주었고, 히브리 민족 공동체인 이스라엘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상, 예술, 법률, 정치 이 모든 것의 극치는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찾으려고 하는 모든 것은 예수 안에 다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인 빌라도가 예수를 3대 언어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하고 주변에서 빗발치는 반발도 물리치고 “내가 쓸 것을 썼다”고 선언한 것은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참된 왕임을 온 세계가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 사건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백성들의 요구와 민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아내가 예수를 절대 사형판결을 내리지 말라고도 하고, 또 그 자신이 보기에도 죽을 죄를 전혀 지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형판결만은 피해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백성들이 혹시 민원을 로마황제나 원로원에 보내면 어쩔까하여 어쩔 수 없이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민심에 촉각을 세우고 예수의 십자가 형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였습니다.

예수는 온 세상의 왕이시기에 모든 사람이 왕이신 예수께 머리 숙여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있은 후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세계 복음화는 요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동토의 땅 북한과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눔선교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나설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명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킬 것인지, 석방해야 하는 것인지 우유부단하게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유대인들의 공갈과 협박에 위압당하여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일에는 우유부단했지만예수의 죄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완강하였습니다.

즉, 그는 아주 중대한 일에는 우유부단하였으나 작은 일에 대해서는 단호했습니다. 별로 상관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완강하였고, 가장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연약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문제입니다.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서서 한치의 양보도 없으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곧 생명 문제를 연약하게도 양보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명문제는 양보하면 안 됩니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농노 제도가 성행하였습니다. 악마 같은 노동감독관의 횡포가 대단했습니다. 사람을 때려 죽이기도 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쇠고랑을 채우기도 하고 또 농노의 아내를 빼앗아 하녀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누군가가 참다 못해 반항하면 더욱 심하게 괴롭히고 횡포를 부렸습니다. 마침내 농노들 사이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저 감독을 죽여 버리자. 몰래 죽여 버리자”고 막 협의가 되려고 할 때 딱 한 사람 표트르 미하일로프가 반대하고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참으면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해결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는 간곡하게 다시 한 번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맛대응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악질 감독관을 죽이는 것이 보류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쉬고 즐기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인 부활절에 그 악한 감독관이 농노들에게 어려운 일을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마지못해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하일로프는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쟁기질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쟁기 끝에 촛불을 켜 놓았습니다.

움직이는 쟁기 위해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 포악한 감독관은 놀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꺼지지 않는 촛불을 보면서 그 못된 감독관은 “내가 졌다. 네 놈이 이겼다”고 하면서 말에서 떨어져 그만 배가 터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그 농장 주인은 농노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미하일로프는 악한 감독관의 생명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렇게 생명은 귀중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사소한 것은 끝까지 지켰으나 예수의 생명은 자기 정치 생명을 위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도 인간의 생명을 존엄하게 보호하고 지켜야 합니다.

고급 호텔 프런트에서 어떤 키 작은 남자가 빈 객실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리 인상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프런트에 있던 사환은 곧 그에게 '손님이 사용할 만한 빈 객실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마침 그 호텔의 지배인이 뒤편에 있는 사무실에서 프런트로 나오다가 그 작은 사람을 알아보고는 사환을 한쪽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객실을 구하는 그 사람이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유명한 지휘자 피에르 몬티우스(Pierre Monteaux)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였습니다.

사환은 곧 프런트로 돌아왔고, 그 사람에게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을 위한 객실은 물론 있습니다. 왜 제게 당신이 누구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그 지휘자는 호텔을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존경 받아야 할 귀중한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인상을 살피며, 혼자만의 서열을 매기고, 누군가를 귀한 사람으로 또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며 거기에 맞춰서 언행을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대형 외제차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 또한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권력도 없고 소형차를 모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도 그 차와 마찬가지로 형편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접대를 하는 것은 바리새인도 잘한다고 하시면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새겨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누구나 대단한 사람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진리인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보고 복음을 전하여 그 형상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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