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 > 이사장칼럼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2011.05.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

관리자 2011-05-22 (일) 11:00 12년전 1029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

 

요한복음 17:1~5절

 

인도의 위대한 성자 선다싱(Sundarsingh, 1889-1929)은 본래 기독교를 지독하게 싫어하고 박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같이 회심한 후 힌두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다싱이 영국에 갔을 때 어떤 신학교 교수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힌두교가 기독교와 비교해서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다싱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대답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말을 바꾸어 묻겠습니다. 기독교에는 당신이 이전에 믿었던 힌두교와 다른 무슨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가르침이나 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개종시킨 것은 바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도 그 교수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선다싱 선생, 제가 질문하는 의도가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군요. 제가 묻고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가 힌두교와 다른 철학 즉, 당신이 기독교를 신봉하게 한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선다싱은 이 질문에도 역시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당신의 삶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영광이었고 영원한 영광에 도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힐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의 사형 방법 가운데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영광에 도달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는 짐승을 죽여 피를 흘려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났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구원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통로가 됩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죄악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는 의인이라 칭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화목의 축복은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민족, 나라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우주적인 축복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19-20).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골로새에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모든 만물과 화목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교훈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를 예수께로 이끌어 줍니다.

 

사람의 인물됨은 그가 죽었을 때 드러나곤 하는데, 특히 위대한 인물들은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위인들은 흔히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오해도 받고 과소평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유죄 선고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에서 그들의 인물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살아 있을 때 정적들이 많았습니다. 정적들이 그를 과소평가하고 비판했지만 그가 암살당하자 그들은 링컨의 위대함을 고백했습니다.

그 당시 링컨 정부에서 국무장관이었던 스텐턴(Stanton)은 링컨을 과소평가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링컨이 조잡하고 세련되지 못했다고 모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이 죽었을 때 죽은 링컨을 바라보며 “여기에 누운 사람은 이때까지 세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류의 지도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프랑스의 영웅 쟌다르크는 영국인들에 의해서 마녀 혐의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많은 영국 사람들은 그녀를 화형시킬 나뭇단에 자신도 나무를 보태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화형시키는 현장에서는 “저 여자의 영혼이 있는 곳에 나의 영혼도 있게 하소서”라고 모두 외쳤다고 합니다.

영국 왕의 측근 중 한 사람은 “한 사람의 성녀를 화형시켰으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노라”고 말하면서 화형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은 죽었을 때 멸시와 오해에서 벗어나 그의 참다운 인물됨이 드러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음의 형장에서 당신이 인류의 구세주이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성소 휘장이 갈라지고, 지진이 일어나고, 죽었던 사람들이 무덤에서 살아나자(마27:51-52)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던 로마의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고 고백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처럼 당신의 위엄과 권위가 드러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의 영광이었습니다.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회개하지 못했던 백부장이 그 영광의 십자가를 보고 그 자리에서 회심하였습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회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단순한 징표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신비 자체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찬송가 149장)

 

우리는 이 십자가만을 묵상하여 세상의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이 세상에서 우리도 거룩하고 위대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예수의 십자가는 당신의 활동의 완성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간을 위한 구원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다가 그만 중단하셨다면 당신의 사역은 미완성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인류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단하셨다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거절하셨다면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이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안 돼’라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마지막까지 감당하셔서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사랑이 무한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를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야전 전화선을 가설하는 통신병을 그린 것입니다.

그는 매우 중요한 통신이 오고가는 전화선을 겨우 가설했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그는 적의 총탄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개통’이라는 한마디 말이 써 있었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통신이 오가도록 통신선을 가설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얼마나 고마우신 분입니까? 우리는 두려워 말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은 순종을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가지 길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순종할 때 그 부모에게 영예가 됩니다. 시민은 그 나라에 복종할 때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다 줍니다. 학생은 스승에게 순종하고 그 가르침을 따를 때 그 스승에게 영예를 가져다 줍니다.

예수께서도 그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피할 수도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지 않고 어디에 숨을 수도 있었습니다. 외국으로 피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명령인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이러한 순종으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부활이 따라왔습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예수께 행한 최악의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예수를 말살하고 정복하고 분쇄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악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를 부활시킴으로 인간의 죄악을 영광의 부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 무엇이라도 절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 순 임금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하루는 신하들을 불러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 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는 밑빠진 항아리였습니다.

신하들은 임금이 하라고 해서 하긴 하지만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뭘로 보고? 우리를 시험한다 이거지? 그래도 수준있게 시험해야지….”

그래서 모두들 근처 우물로 가 물을 깃는 시늉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포기하는 자가 늘어났습니다. 약은 꾀를 쓰는 사람들은 옮겨담는 그릇에 담긴 물을 임금이 나타나면 보이려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신하는 뻔히 물이 다 새어나가는 줄 알면서도 계속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은 소리가 들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옷이 젖고 손바닥이 벗겨져도 우직하리만큼 이 일을 계속한 신하는 우물 바닥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건져 올렸고 그것을 임금님께 가져갔습니다.

그에 대해 이미 몰래 숨겨둔 신하를 통해 듣고 있었던 순임금은 그 상자를 도로 건네 주며 “이것은 내가 네게 주는 상이니 네 것이다!”라고 말하고 열어보도록 했습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일평생 한번 보기도 힘든 진귀한 황금보석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순종했다고 바로 대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가 확 바뀌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순종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최고의 덕은 첫째도 순종이고 둘째도 순종이고 셋째도 순종입니다. 존 맥도날드 목사는 “순종은 모든 문의 열쇠다”고 했고, 존 스튜어트는 ”오늘의 순종이 제일 중요하다. 오늘 순종하면 내일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순종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