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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9.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사명자의 길

관리자 2012-12-09 (일) 11:00 11년전 1236  

사명자의 길

 

로마서 15장 30 ~ 33절

 

박동한 선교사는 진흙쿠키를 만들어 먹는다는 아이티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박선교사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이랜드에 입사하여 재무본부장으로 회사를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운 주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비즈니스(business)와 선교사(missionary)의 합성어인 ‘비지너리’( businary)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휴가를 얻을 때마다 제 3세계로 단기선교를 나갔고 선교사들의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7월, 그는 자신의 모든 일을 내려 놓고 남미 도미니카로 직접 나갔습니다.

그는 편안한 삶을 내려 놓고 선교의 최전선에 서고 싶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현장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평생 비지너리의 삶을 살아온 박선교사의 삶의 경험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도미니카의 제2도시 산티아고에서 만성적자로 허덕이는 미션스쿨의 경영을 정상화시켰습니다.

비지너리의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니 도처에 할 일이 넘쳤습니다. 먼저, 도미니카의 인접국인 아이티의 굶주림이 보였습니다. 진흙쿠키를 먹고 있는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박 선교사는 저 불쌍한 아이들을 아이티의 민족 복음화의 기수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는 대학생시절 가입한 CCC의 ‘순’ 전도 방법으로 아이티 사람들에게 전도했고, 100여명의 청소년을 키웠습니다. 지금 그들이 아이티 전국에 흩어져 선교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아이티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 굶주림이 더욱 극심해졌지만 박선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선교로 아이티는 복음의 새시대를 꿈꾸며 나가고 있습니다.

박선교사 같은 분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험난한 땅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세상의 스펙을 쌓으려고 힘씁니다만 하늘의 스펙을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박 선교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안디옥을 거쳐 소아시아 지방 이어서 유럽 선교까지 기나긴 선교 여행을 3차에 걸쳐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꿈은 어떻게 해서든지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는 로마에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교회에 어려움이 생겨 많은 성도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이 경제적인 위기를 만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주고자 직접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작정했습니다.

평생의 소원인 로마 선교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평생 소원을 잠시 뒤로 늦추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교회의 굶주린 교인들을 돕는 것은 바울의 평생 꿈이었던 로마 선교까지 연기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더욱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교인들은 그 사실을 알았고 어떻게 해서든 경제적으로 돕고 싶어 헌금을 모은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교인들이 서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제가 제자대학을 하면서 집사님들께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은 성경이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까?” 집사님들은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마땅히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집사님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집사님들은 또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장 위의 말씀을 읽어 주고 제가 또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은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본받아 참된 공동체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까?” 집사님들은 또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가지고 제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은 교회에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집사님들은 교회에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집사님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시렵니까?” “예 그렇습니다.” “집사님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자 한참을 생각한 후에도 예 그러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기를 원하십니까?” 이 물음에는 집사님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재차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거나 더함이 없이 그 말씀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떡을 떼며 모이기를 힘쓰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라는 말씀에는 담대하고 아멘하시더니,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라는 말씀에는 아멘을 하시지 않으십니까?”

이 때부터 많은 집사님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만의 대답을 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둥, 지금의 시대에 적용되는 말씀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씀이 있다는 둥, 지금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둥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제가 또 물었습니다. “집사님들은 떡을 떼며 교제하라는 처음의 질문에는 그런 의견을 내지 않으셨고,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아멘하고 절대순종할 것을 고백하셨기에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토’를 달지 않으셨는데, 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라는 말씀에는 그렇게 많은 ‘토’를 다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이 진정으로 믿음이 있는 자의 모습입니까?”

우리는 지금 서로 책임이 없는 일에만 열중해서 공동체 운운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떡을 떼며 모이기를 힘쓰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내가 조금만 희생하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의 책임감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라는 말씀은 행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여 재산과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막중한 부담감에서 벗어나고자 그 말씀에 토를 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재산을 팔아 교회에 봉헌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책임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서로 간에 책임이 없는 단체는 공동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간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적인 것에 대한 적극적인 책임이 필요합니다.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라는 말씀을 사도행전의 2장 말씀에서 빼버리면 공동체가 되기 위한 진정한 길을 막는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인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예루살렘 교인들과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고자 그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자신들의 어려움처럼 생각하고 돕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교인들이 서로 돕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다른 교회의 어려움도 돕는 것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또한 적극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사도 바울에게는 죽으로 가는 길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스러워야 할 예루살렘은 핍박과 배척으로 피가 얼룩진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랬기에 잘못하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그곳에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의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외면하지 않으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용기란 비록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그곳을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말입니다. 박동한 선교사도 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이티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가 은퇴할 무렵 늙고 몸이 약하여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사라졌고 자신의 강의에는 수강신청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 그의 외로움은 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를린 대학 공원을 산책하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겼습니다. 공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공원지기가 와서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온 사람이요?” 공원지기는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를 갈 곳이 없는 노숙자로 알고 갈 곳이 있는지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정신이 든 쇼펜하우어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걸 알았다면 이렇게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요. 인생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소.

그러나 단 한 가지 아는 것은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 뿐이요. 우리는 생명을 뒤로 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소이다.”

사명 없이 사는 것은 실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명이 있어야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이 주신 사명, 즉 주의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가고 있습니까? 아직 가고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그 길로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길을 떠나기 전에 로마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30-32절).

아마 로마 교인들은 아직 믿음이 약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많이 못하는 이들이었을 텐데,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대 사도요 성자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로마 교인들의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있을텐데, 그런 자들에게서 자신이 무사히 살아나는 것과 예루살렘 교인들이 자신이 들고 가는 구제금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로마에 꼭 가서 로마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아직 미약한 신자들의 기도도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의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협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 또한 30절에서 ‘나와 힘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을 같이하여’라는 말은 ‘함께 투쟁하자,’ ‘협력자가 되자,’ ‘같은 목표를 두고 힘쓰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전투에 임한 군사들이 힘을 합하여 공동의 적을 무찌르는 상황을 연상시켜 주는 말로서 바울이 로마 교인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완전한 팀웍을 구축하기를 열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일을 혼자 다 할 수 없습니다. 초인적인 인간은 없습니다.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협력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같은 연약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을 동역자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파트너입니다. 하나님과 네트워크로 엮인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선교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일을 위해서 나눔선교재단을 만들어 출발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여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어 기도와 헌신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교회의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여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는데 유형, 무형으로 책임을 감당하는 참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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