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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소망의 그리스도

관리자 2012-11-11 (일) 11:00 11년전 1244  

소망의 그리스도

 

로마서 15장 7~13절

 

유명한 역사가인 찰스 베어드에게 “당신은 역사를 연구하여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 역사를 연구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것을 멸하려고 하실 때는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권세욕에 날 뛰게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권세욕에 날뛰는 개인이나 국가나 민족을 보면 벌써 망할 때가 가까운 줄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데 너무 천천히 돌아 하나님의 맷돌이 진짜 있나 없나 의심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맷돌은 결국 의는 의로, 불의는 불의로 보드랍게 갈아낸다.

셋째, 벌이 꽃에 가서 꿀을 도적질해 오지만 그렇게 도적질해 옴으로써 꽃이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벌과 같은 강도가 항상 악을 행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기적이 나타난다.

넷째, 날이 점점 어두워질 때 별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암흑과 혼란이 깊어가면 그것들이 다 지나가기 전에 소망의 별이 나타난다.“

신구약 사이를 보통 ‘신구약 중간기’라고 하는데 그 시기가 약 400년이라고 합니다.

그 때 유대교는 율법주의화 되고 예루살렘 성전은 권력화 되었습니다. 종교로서 유대교가 백성들이 종교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백성들의 멍에와 큰 짐이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로마 권력과 유대 헤롯 정권 그리고 예루살렘 종교 권력이 합해져서 유대 종교는 완전히 율법주의화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암흑과 혼란이 깊어 의인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세상에서의 암흑을 견딜 수 없어 순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이렇게 종교적으로는 암흑시대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해질 수 있는 준비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먼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그리스어가 세계의 공통언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스어를 한다고 해서 전 세계와 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다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그 어떤 언어가 세계 공통으로 쓰일 수는 없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에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이 되어 예수 이후 세계 선교에 이바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전 세계를 이어주는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50-80Km까지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로마가 건설한 도로를 통해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가 로마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로마의 평화는 제국주의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평화, 즉 폭력적인 평화였지만 세계가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었기에 기독교 복음은 그 통일된 로마의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구약 중간기에 기독교의 복음이 전 세계에 전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런 좋은 여건들이 구비되었기에 기독교 복음이 세계에 아주 빠르게 전파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전 세계에 빠르게 전파될 여건이 구비되자 하나님은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신구약 중간기가 암흑의 시대였음에도 하나님은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셨고, 그 기반이 갖추어지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신구약중간기는 정말 온 백성이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평화를 구가하는 시대였지만 그것은 군사적인 폭력의 시대였기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 다윗의 후손이 아닌 이방인 헤롯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 또한 권력에 눈이 먼 사두개인들이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런 때 무슨 희망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서도 역시 절망적인 상황이 지배하는 때가 많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맞아 요즘 시민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표상으로는 흑자가 나고 있어서 경제가 문제가 없게 보이지만 사실 그 흑자는 수출이 적어서 생기는 불황형 흑자로서 지금 국내 경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부터 여러 대기업에서 인원감축에 들어갈 정도로 국내 경제는 국제 경제의 불황과 맞물려 고전에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인 신구약 중간기에도 하나님은 복음의 역사를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교회 목사가 예배 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를 잘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제직회를 인도하면서 ”여러분, 우리 교회 상황은 전혀 희망이 없고,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입니다“고 비관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전 성도들은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도하고 ‘교회 상황이 절망적이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 목사의 기도는 의미 없는 상투적인 언어의 나열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줄 믿는다고 기도해 놓고 회의에서는 절망적인 보고를 하면서 가능성이 없다고 하니, 그 목사의 기도는 위선적인 기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희망이 없는 사태는 있지 않고 오직 사태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수상 처칠은 국가적인 큰 위기에서 “여러분 저는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그 누구도 말살할 수 없고 온갖 어두운 그림자로도 덮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그 누구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한 절망적인 사태는 없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을 목적으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산발랏과 도비야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될 경우 자신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발랏은 5가지 질문으로 조롱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무력한 모습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느4:2).

그리고 도비야는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느4:3)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일로 낙심하여 성벽 재건을 포기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믿음의 삶을 살다 보면, 주변에서 공격을 받거나 방해를 받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그들의 비웃음을 듣다 보면 낙심하고 좌절하여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대와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 자들을 만났을 때 느헤미야는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외부의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반대와 핍박으로 실의에 빠져있습니까? 느헤미야처럼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세력이 견고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반대자들은 성벽 재건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공격과 위협에 의기소침하거나 하던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하는 자들은 저마다 칼을 찬 채로 건축을 했고, 나팔 부는 자를 따로 세워 비상시 전략까지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하며 성벽 재건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음모와 유혹으로 방해를 받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끝까지 최고의 헌신을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쌓으면서도 경계를 소홀하지 않았던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세상의 생명이시오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분을 영접하는 자는 생명이 있고 이분이 없는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분이 오심은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이고 영광입니다. 이 분은 유대인으로 오셨지만 유대인만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곧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예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받아들여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스타워즈’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 보면 머나먼 은하계 저편 어딘가에서 괴이한 형상의 생명체들이 먹고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주인공 루크가 두 로봇과 함께 그곳에 들어갔을 때 놀랍게도 “우리는 여기에 저런 부류는 받지 않소”라는 매몰찬 박대를 받으며 쫓겨납니다.

이 이상한 장면은 우리 모두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고질병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들은 나와 같은 부류가 아니야”

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듯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8)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이 태도나 관점, 인종, 계층, 정치적 성향,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우리와 다르더라도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그것들이 차별요인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배척하지 말고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경계가 없는 사랑을 통해 그들을 복음화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 민족을 복음화 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에게만 영원한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그런 놀라운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82세가 되신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 우리나라의 복음화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 때 우리나라의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40일을 금식하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또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최후를 보냈던 자리에 갔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성 바울 교회가 서 있습니다.

80 노구의 김준곤 목사님이나 사도 바울 모두 민족 복음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오직 예수요, 영원한 소망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이 분을 전 민족이 믿도록 전 세계의 복음화에 나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 인류의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역사의 어둠 속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고 주님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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