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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관리자 2012-01-22 (일) 11:00 12년전 1158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롬 3:19~31

 

마틴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원에 있을 때 꿈을 꾸었는데 마귀가 나타나서 책을 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 책에는 루터가 아이 때 지은 죄부터 젊어서 지은 죄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마귀가 책을 보여 주면서 “네가 정말 이 죄를 다 지었느냐?”고 물었을 때 루터는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마귀는 “네가 이렇게 더러운 죄를 많이 지어 놓고도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루터는 그 말에 크게 낙담하였습니다. 그때 위로부터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루터는 힘차게 그 마귀에게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모든 죄를 지우고 죄를 깨끗하게 하여 나를 구원했노라!”고 말하자 그 마귀는 황망히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한 종교의 창시자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공부 잘해서 성공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어떻게 화해된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하면 소외감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공포감이 없이 살 수 있느냐가 인간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은 율법이 정하는 바를 정확히 지킴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모든 율법의 행위를 완수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하고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준수함으로써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율법의 모든 조항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나 불완전한 피조물이어서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 지키지도 못하는 율법을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만이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줍니다. 율법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의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또한 율법은 율법을 지키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율법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율법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십계명의 9번째 계명이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전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킨 것뿐입니다.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를 몰랐습니다. 오로지 지키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그 율법에서 자유로울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그 사람이 죽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율법은 지켜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었으나 실제로 그 결과는 살릴 수도 있는 한 인간이 죽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죽인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인간을 위해 있지 않고, 인간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뜻, 즉 사랑을 알았다면 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고, 불의한 것이었고, 죄를 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흠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이는 전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의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인데, 이 중요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갈 때 그의 제자들이 밭 사이로 길을 만들며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래새인들은 주님의 잘못을 잡아내기 위해 정탐꾼을 통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여보시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고 있소”라고 비난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제자들이 손으로 밀을 자르는 행위는 “추수행위”고 비비고 부는 행위는 “탈곡행위”이므로 안식일에 금지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전통에도 “생존을 위해 밀을 먹는 것”은 허용되었으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행위가 안식일에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노동행위로 확대해석하면서 제자들의 스승인 예수님에게 죄의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에 대하여 구약 사무엘상 21:1-6에 기록된 구절을 예로 들어서 제자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막2:25-26).

이는 “의식과 율법보다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다”라는 하나님의 원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과 그 일행은 제사장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거룩한 떡인 진설병을 먹고서라도 살아야만 했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히멜렉 제사장을 통해 그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하심으로 율법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근본적으로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서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용인되어지는 일이고, 안식일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리새인들에게 알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이라”고까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병고치고 밀이삭을 잘라 먹는 행위를 “안식일을 어기는 행위”로 알고 주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안식일이 지켜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안식일이 사람을 얽매고 구속하기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휴식과 안식을 통해 육체와 영혼에 쉼을 주기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는 참된 의미를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뒤에서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하나님을 위해 거룩하게 지키려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하였으나 결국 사람의 잘못된 노력과 전통에 의해서 그것이 변질되어 안식일이 사람의 생명을 해치고 구속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안식일 규정에 대하여 “안식일의 주인은 나”라는 말씀을 통해 잘못 인식된 안식일 규정을 하나님께서 원래 주셨던 목적인 “사람을 쉬게 하여 생명을 살리는 안식일”로 다시 바꾸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리새인적인 태도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모든 형식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해야 한다고 말씀하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기에 반드시 하지 않는 것은 율법에 구속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율법에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을 보다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지만 인간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도 있는 신앙의 자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행위로 완전하나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절).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복음의 크라이막스라고까지 합니다.

이 말씀은 태초의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능가하는 사건으로서,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재창조 사역입니다.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복음 중의 최대의 복음이요, 기적 중의 최대의 기적이요, 사건 중의 최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의한 자가 의롭게 되는 방법을 사도 바울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여기서 ‘속량’이라는 말은 당시 노예 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로서 곧 노예의 값으로 노예의 주인에게 일정을 값을 지불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하게 값을 지불한 결과로 얻어진 완전한 해방이나 자유를 말합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집트 노예의 처참한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는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 전에 이미 죽은 우리 인간에게 새 생명이 부여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값으로 죄와 사망의 쇠사슬에 얽매어 있던 인간은 사단이라는 주인으로부터 해방됩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 양의 피는 바로 예수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십자가의 죽음의 피로 화해시키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려진 희생제물의 피가 인간의 죄를 가리웠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십자가 제단에 뿌려짐으로 인간의 모든 죄는 가려지고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죄에서 구원 받는데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데에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예수께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은혜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만 높입시다.

인간이 자신의 어떤 행위나 노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로지 예수의 그 크신 십자가만 믿으면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죄의 용서와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피공로로 인해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를 받아들이고 그 의로 옷을 입으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해 주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무엇을 이루는 행위가 아니고 예수의 십자가의 피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행함을 조건으로 하는 율법이고 예수의 복음은 믿음을 조건으로 하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십자가의 복음은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의 피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마틴 루터는 로마 교황청의 계단을 오르면서 이런 고행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되기 때문에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롬1:17)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일어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는 진리를 종교개혁의 모토로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 믿음 또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또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고 오직 은혜로 믿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대의 복음이니, 이 복음을 전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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