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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5.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의인은 하나도 없다

관리자 2012-01-15 (일) 11:00 12년전 1098  

의인은 하나도 없다

 

(로마서3:9~18)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우리 부대에 영관 장교 하나가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신실한 교인으로 믿을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대에서도 인정을 받고 부대교회에서도 열심히 붕사하고 군목인 저를 언제나 존중해 주는 사람으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육사출신 장교였습니다.

그가 저를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이번에 아기를 낳았는데 몸에 뼈가 없는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아이를 낳았는지 정밀 검사를 해 보았더니 화류병의 균 때문이라고 의사가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월남 전쟁에 참여한 장교인데 월남에서 지내기가 너무 외로워서 동료 장교들과 함께 가면 안 될 곳을 찾아가서 그런 균에 감염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자기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그 죄를 용서 받은 줄로 알았고 또한 병원 치료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한탄했습니다.

물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사람을 끈질기게 따라옵니다. 죄를 지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꼭 져야 합니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추한 죄를 짓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알고 죄로부터 구원 받는 주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성선설과 악하게 태어났다고 하는 성악설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악설을 믿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9절)고 선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들은 이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받은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율법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율법을 온전하게 준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죄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본질적으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결국 율법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사망에 이르게 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이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율법 아래 모든 인간은 다 사망에 이르게 될 죄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도 죄인이고, 이방인도 죄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그 마음에 새겨진 율법 곧 양심대로 살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죄가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 아래 있기에 죄는 보편적입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가릴 것 없이 영육 간에 전적으로 부패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측면에서 볼 때 율법과 양심 아래 있는 인간은 모두 죄의 노예로 전락해 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한데 없이 죄의 악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의 목구멍, 혀, 입, 발 등 모두가 죄악에 물들어 있어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악할 뿐입니다.

인간의 죄 가운데 말을 통해 짓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죄악은 입을 통해 나타납니다.

곧 목구멍, 혀, 입술을 통해 나오는 온갖 죄와 악독과 거짓과 속임수는 마치 열린 무덤에서 썩은 시체의 악취가 풍기듯 풍겨나옵니다.

독사의 입술 밑 송곳니의 뿌리에 치명적인 독이 있듯이 인간의 혀 아래에도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이런 점에서 야고보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날 때 가장 먼저 괴로워 한 것이 바로 자기의 입술이었습니다.

그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고 하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입으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식들과 성도들을 가슴 아프게 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 주위 사람들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까? 우리는 말로 많은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있습니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자를 묻을 수 도 있다. 말, 그것으로 인하여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거인을 철저하게 두드려 없앨 수도 있다”고 하이네는 말했습니다.

어느 날 가위와 톱과 혀가 서로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먼저 가위가 입을 열었다. “나는 어떤 천이라도 날카로운 내 이빨로 끊어낼 수 있다. 조금도 흠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자 톱이 말했습니다. “내 이빨은 장작을 썰어낼 수 있고, 나무토막도 거뜬히 베어낼 수 있다.”

그러자 혀가 소리쳤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으시대 봤자 소용없다. 내가 가진 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나는 남의 명예나 평판을 단번에 반쪽으로 쪼갤 수 있다.

친구 사이에 끼어들어 의리를 갈라놓을 수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간사와 가정 일에 파고들어 짓이겨 놓을 수 있다. 나는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짓씹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자 가위와 톱은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반면 우리의 발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피 흘리는데 빠릅니다. 발은 빠르게 달리는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발은 선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데 빠릅니다.

독을 가지고 있는 독사가 그 대상을 찾으면 재빠르게 수풀 사이를 헤쳐가듯 인간도 그 마음에 악독을 품고 시기와 증오와 질투와 음란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파당을 짓는 일을 위해서 재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런 이들이 가는 곳에는 평강은 사라지고 온갖 시비와 다툼과 파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간의 말과 행동이 그 무서운 죄악 속에 빠져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18절)고 말씀했고, 시편에서는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시36:1)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는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사이며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의 죄가 심히 큰 것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헌금에 손을 댔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멸시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멸시하여 그들은 전쟁터에서 전사를 하고, 그들이 매고 갔던 하나님의 언약궤는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겨 나라와 민족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에는 겸손과 경건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곳에는 교만과 고난이 존재할 뿐이다”고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죄는 하나님 밖에서 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런 죄 속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인간은 영원한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죄의 세력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깨닫고 절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율법을 붙잡고 살아도 파멸과 죽음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로지 은혜로 그 무서운 심판을 면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길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하나님께 특별 사면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잡힐 듯 하면서도 잘 잡히지 않는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율법과 은혜의 관계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아 율법은 좋은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같은 말씀을 보면 ‘아, 율법은 안 좋은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것을 조금 넓혀 정의해 보면 성경에 하나님이 하라, 혹은 하지 말라고 한 모든 것이 다 율법입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율법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바울도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반문합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만약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줄 모를 것입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

율법은 죄에는 형벌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그 죄의 결과가 어떠한지도 알려줍니다. 죄를 지으면 망합니다. 죄를 지으면 비참해집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으면 지옥 갑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여기까지입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죄의 형벌이 무엇인지까지 알려줍니다. 그리고는 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죄의 형벌도 알았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의 삯이 사망인 것도 알았습니다. 죄의 형벌이 살아서는 불행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란 사실도 알았습니다. 모르면 오히려 편했을 텐데 알았기 때문에 더욱 비참한 것입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고,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4:10).

만약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의 요구대로 다 했다면 그들은 저주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 가운데 그 누구도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다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비참한 사람에게 은혜가 임했습니다. 바로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죄를 지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주님이 다 치루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내가 너를 구원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던 사람에게 복이 임한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죽은 사람에게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닙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5:18).

은혜 아래 있는 우리는 그럼 율법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을 폐기해야 합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바울은 대답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3:31).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폐기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죄도 아닙니다. 율법은 완전해져야 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은혜와 진리가 더해질 때 완전해집니다.

율법을 버리고 은혜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율법만 내세워서도 안 됩니다. 율법에 은혜가 더해져야 합니다. 죄는 죄라고, 죄에는 형벌이 있다고 분명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은혜를 더해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용서를 더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율법 안에서 죽었으나 은혜 안에서 다시 살 수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살 길을 전해야 합니다. 은혜로 율법을 완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복음이 아니라면 인간과 인간 세상은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입과 발의 죄를 의식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만이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는 것임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위해서 살고 그분의 가르침에 우리의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율법을 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은혜를 세상에 널리 전해 모든 사람이 구원에 동참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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