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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6.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교회의 일꾼

관리자 2012-12-16 (일) 11:00 11년전 1171  

교회의 일꾼

 

로마서 16장 1~2절

 

제가 샌프란시스코 주변의 ‘실리콘 벨리’라는 세계 IT 산업의 중심도시에 있는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그 부흥회에 참석한 한 사업가 집사님이 부흥회가 끝나는 날 이 지역의 여행을 위해서 시간을 내 달라고 제게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그 집사님은 그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간 의아스러웠지만 그 집사님의 공손한 요청에는 예라고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날 그 집사님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나와 아주 멋진 차에 저를 태우고 주변의 유명한 곳으로 안내했는데, 너무나 지극정성이라 제가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는 모든 것을 저를 중심으로 하여 1박 2일 동안 여행 안내를 해주셨고, 제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섬세하게 돌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최고급 호텔로 저를 안내했고,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저를 대접했고, 먼 여행길이었기 때문에 차 속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풍성하게 준비했습니다.

그 부부는 그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의 교인들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하여 저의 마지막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흥회에 참석하여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저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여행을 마치고 그 부부는 교회에서 준비한 숙소로 저를 데려다 주면서 무릎을 꿇고 제게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부부의 섬김으로 인하여 1박 2일 동안이 마치 꿈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바빴지만 그래도 내외가 시간을 내서 1박 2일 동안 자신들이 잘 모르는 고국에서 온 부흥회를 인도하는 저를 선대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뒤 그분이 한국에 왔을 때 연락이 와서 저녁을 대접한 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그가 제게 부탁한 것은 또 한번의 안수기도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서 안수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 집사님과 헤어진 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그 집사님의 섬김을 떠올리며 제가 무엇 때문에 그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 대답은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이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주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 때문에 그런 따뜻한 섬김을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주님의 이름만큼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있습니까? 주님의 권세만큼 정의로운 권세가 있습니까? 그 주님의 이름을 전하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런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 하면서 자신이 쓴 이 편지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인 뵈뵈의 손에 들려 보낸다면서 뵈뵈라는 여집사를 로마 교회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우리 자매 뵈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뵈뵈는 혈연으로 맺어진 바울의 누이가 아닙니다. 그녀는 믿음 안에서 사도 바울과 맺어진 교회 자매입니다.

신앙 안의 자매로서 그녀는 사도 바울을 존경하고, 바울도 그녀를 믿음 안에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순결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영적인 사랑을 주고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혈연이나 지연, 학연을 뛰어넘어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가 따로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예수님의 선교 활동을 돕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수산나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다른 사도들에게도 그들을 돕는 존경할 만한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뵈뵈는 사도 바울을 도운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주의 종들을 돕는 여인들이 그 때나 지금이나 교회에 있습니다.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여인들이 늘 있어 왔고, 이런 헌신적인 여인들의 섬김으로 교회는 나날이 발전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4세기의 성 마틴(Martin of Tours)은 몇 번씩이나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목회하던 뚜우르 지방의 감독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크고 화려한 교회를 목회하게 되었고 훌륭한 시설의 사택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틴은 이를 사양하여 그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자신은 교회 옆에 조그마한 움막을 짓고 거기서 기도생활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루는 초라한 거지가 와서 구걸을 하자 마틴은 줄 것이 없었으므로 자신이 잠잘 때 깔기도 하고 덮기도 하는 담요의 반을 잘라 주었습니다.

그 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마틴의 담요 반 자락을 걸치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마 25:45)라는 말씀대로 낮에 구걸한 그 거지가 바로 예수님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마틴의 담요의 나머지 반 자락은 유명해져서 마틴이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여 그 담요 반 자락을 그가 시무하던 교회 제단 위에 걸어 놓았습니다.

그 담요의 반 자락을 라틴어로 천 조각을 의미하는 ‘카펠라(Capella)’라고 하는데 여기서 예배당을 가리키는 ‘채플(Chapel)’이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섬김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돕는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일꾼’이라는 말은 헬라어의 ‘디아코노스’인데, 이는 ‘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종은 말씀을 전하는 종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사도들이나 성도들, 더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과 호의로 돕는 것이 책무였습니다.

뵈뵈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여유가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지방에서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교회의 봉사에 힘쓰는 성도였습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사론만(Saronic Gulf)에 위치한 고린도의 두 항구 중 하나입니다.

사도행전 18장 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서원이 있어서 이곳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겐그레아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겐그레아 교회는 고린도 교회의 자매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뵈뵈가 온 정성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겐그레아는 해안에 세워진 도시였기에 그곳은 상업과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겐그레야 교회는 그 요충지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아마 뵈뵈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고 뵈뵈는 자신의 집에 모인 교인들을 잘 대접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녀는 전도하기 위해 겐그레아를 오가는 손님들을 잘 대접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집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로 내주는 뵈뵈의 헌신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답습니까?

개인적인 살림살이를 하면서 남편과 자녀들이 있는 여집사가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모임에 자신의 집을 개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에 유익이 되겠다는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뵈뵈의 가정은 이 일을 해 냈습니다. 진실로 그녀의 가정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헌신한 가정입니다.

뵈뵈는 자신의 가정을 모임의 장소로만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주의 종을 섬겼고, 자신의 집에 모인 성도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아름다운 성도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섬기던 교회에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은 교회 아래에 바로 당신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교인들이 늘 모이는 장소였고, 모일 때마다 장로님은 식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 장로님 가정은 성도들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뵈뵈와 같은 성도였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되고 먼 훗날 성도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또 뵈뵈가 섬겼던 교회인 겐그레아 교회는 그 당시 고린도에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심해지자 도저히 예배를 드리기가 불가능해 일부 기독교인들이 겐그레아로 피신하여 이룩한 교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빌립보 교인들이 그 도시 외곽의 강가에서 모임을 가졌던 것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던 겐그레야 교회에 뵈뵈는 사도 바울이 ‘우리 자매’라고 말할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뵈뵈가 여러 사람과 자신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절). 그녀는 주의 종인 바울을 특별히 많이 도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온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도와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녀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뵈뵈에게서 받았던 사랑과 봉사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이 서신을 다음 세대도 읽을 것이라 생각했고, 뵈뵈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다음 세대도 뵈뵈의 헌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녀가 자신의 보호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뵈뵈가 바울의 선교를 도운 것을 세계 교회가 알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위대한 헌신은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뵈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로마 교회에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2절)를 도와 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그녀를 환대하고 영접하라고 했는데, 예수를 믿는 어느 누가 바울의 이러한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뵈뵈를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말했습니다. 뵈뵈 같은 헌신적인 사람을 정성껏 모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뵈뵈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잘 받들어서 우리 주님이 천국의 모든 천군천사들에게 우리를 잘 대접하고 잘 모시라고 당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2절)라고 했습니다. 아마 뵈뵈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무슨 사업가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 가서 그녀는 사업을 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사업을 위해 로마 교인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끼리는 사업적인 것을 서로 도와 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을 도와 준다든지, 무슨 청탁하는 것을 도와 주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되지만 서로 도와줄 수 있으면 최대한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불시에 이웃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도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교인들을 도와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고, 공동체인 한 우리는 서로에 대해 경제적인 필요까지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임과 의무가 부담스러워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골의 한 청년이 교회에 나가는 것의 필요성을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혼자서도 교회에서 만큼이나 예배를 잘 드리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저녁, 목사님은 그 고집 센 청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나 교회 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님이 벽난로 속에 타고 있던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내어 난로 밖에 따로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석탄은 이내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년은 그제야 깨닫고 “목사님, 이번 주일부터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꺼내 놓은 석탄은 금새 꺼지지만 난로 속에 있는 석탄은 난로라는 보호막과 주위의 불씨들로 인해 계속해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꺼내 놓은 석탄이 되기 쉬운 법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라는 모판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자라고 성장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한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인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교회를 떠나는 것은 진정한 교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 책임 속에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의 일꾼입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로서 교회를 잘 섬겨 사도 바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맡은 바 직분에 따라 교회를 잘 섬겨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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