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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어리석은 인간의 교만

관리자 2013-06-09 (일) 11:00 10년전 1205  

 어리석은 인간의 교만

고린도전서 4장 6-13절

  

20세기 미국의 탁월한 경영인인 아이아코가는 파산 직전의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경영자로 취임하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경영 능력과 공격적인 세일즈 작전으로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파산직전에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여 얼마가지 않아 300%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교만해져 “나는 6개월이면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경영자였지만 그 동안의 성장에 자만하여 초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31%의 시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아이아코카는 이사진의 퇴진 압력에 시달렸고, 결국 크라이슬러는 벤츠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아코카와는 반대가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스타벅스 커피의 운영자인 하워드 슐츠입니다.

슐츠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는 마침내 스타벅스를 설립하였고, 직원들을 동업자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사 후 6개월이 지나면 스톡옵션을 주어 직원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이 둘은 탁월한 경영자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높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낸 아이아코카는 경영자로서 성공하지 못했고, 자신을 낮춘 슐츠는 경영자로서 성공했습니다.

아이아코카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는 사람이 교만하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합니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로 행동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하고 항상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 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것이 있으면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랑하는 것이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랑거리와 우월함에 의지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무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8-19)“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선생은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게바파, 아볼로파, 바울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져 서로 싸웠습니다.

이들은 파당을 만들어 자기들만이 옳다고 보고 상대편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특히 게바파의 성도들이 바울에 대해서 험담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와 함께 활동을 했던 사도가 아닌데도 사도를 사칭하고 있다고 바울과 바울파를 무시하고 대적하였습니다.

본문 6절에 나와 있는 ‘대적한다’는 말은 원문상 ‘다른 한편을 상대로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게바파는 바울의 사도권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기들이 바울파 위에 올라서려고 했음이 분명합니다.

아볼로파에서도 바울파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볼로파는 아볼로의 탁월한 성경 실력과 언변을 자랑하면서 바울의 눌변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아볼로파는 지적인 말씀으로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오로지 눌변으로 십자가만을 전하는 바울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게바파와 아볼로파는 이렇게 자기의 스승과 스승의 장점을 내세우면서 결국은 바울파를 무시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 위에 서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자신들을 따르는 성도들이 파당을 만들어 자신을 숭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남을 억누르는데 사용했다는 것을 알면 크게 그들을 책망했을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 총무로 있을 때 신흥우와 함께 강연차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주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신흥우가 먼저 등단하여 월남 선생을 소개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미 돌아가신 명사들만 존경하고, 숭상하고, 찬양할 것이 아니라 현재 생존해있는 위인을 더 존경하고 아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앉아 계신 월남 선생 같은 분이 바로 그러한 인물입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이상재 선생은 화가 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진 신흥우가 “선생님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월남 선생은 “예끼, 이 사람. 사람을 앉혀놓고 죽인단 말인가”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위대한 인물은 죽은 후에 만들어지고 받들어지는 법인데 뒤에다 앉혀놓은 체 위인이라 떠들어댔으니 자신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신흥우는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종교도 정치도 학문도 산 사람을 숭배하거나 떠받드는 것은 사람과 역사를 위해 불행한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로 그 불행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남을 무시하는 이 모습은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무서운 죄입니다. 천사가 사탄이 된 것도 바로 교만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원래 하나님의 수종들던 천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땅에 떨어져 하나님의 대적자인 사탄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천사는 교만하여 사탄이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낙원에서 쫓겨났으며, 인류는 교만으로 인해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할 때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할 때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떨 때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가 외적인 핍박을 받을 때가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할 때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인 교만에 빠진 고린도 교회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했느냐”(7절).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7절).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7절).

이 말씀은 “너희가 만일 우월하다면 그것이 누구 때문이냐?” “너희들의 은사(재능)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그런데도 어찌하여 너희는 그 재능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고 자신들의 것인 양 자랑하느냐?”는 말입니다.

결국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게바의 사도권도 자기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고, 아볼로의 학문과 유창한 언변도 자기가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 모두는 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능을 주신 하나님만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사업수완이나 재물, 미모나 건강 등 우리가 가진 재능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재능을 주신 그분을 높여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사랑하고 의지하며 주만따라 살리라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찬송가 50장 1절).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결코 나를 드러내서 앞세우면 안 됩니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 그리고 내 인생은 모두 주님의 것이기에 그분의 일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가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것 없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많은 책망을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으면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고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자기들은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면서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난 체하고, 남을 무시하고, 분쟁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책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스스로 왕이 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서 왕같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왕같이 되는 방법은 세상의 이치와는 다릅니다. 세상에 왕이 되려면 권력이 있어야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왕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 바로 왕이 되는 비밀입니다. 이는 영적인 진리로서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신비입니다.

당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때문에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생사가 엇갈리는 원형경기장에서 잔혹한 사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싸운다고 하지만 사자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성도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들은 세상이라는 원형경기장에 보내진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많은 유혹과 시련 앞에서 어떻게 싸우는 가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실로 세상 사람들의 눈은 우리들의 믿음을 용기 있게 하는 촉매제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신앙이 승리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할 세상의 구경거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러한 고난의 길에 서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을 위해서 그 어떤 고난이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고난과 맞서 싸워 나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멸시와 천시를 이겨냈습니다. 바울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는 것보다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가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스승이었던 스데반이나 야고보 사도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처럼 복음을 위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자랑하면 교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재능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감당하여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러낼 최고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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