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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성찬의 감격에 빠져라

관리자 2013-10-27 (일) 11:00 10년전 1303  

성찬의 감격에 빠져라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제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방학 때가 되면 영국 교회에 파견되어 몇 주 동안 영국 교회의 목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그 당시 영국에서는 목사 한 명이 3, 4개의 교회를 하나로 묶어 목회를 하는데, 주일이 되면 3 ,4개의 교회를 돌면서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목사들은 상당히 바빴습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이렇게 바쁜 데, 교회는 활기가 없었습니다. 교회들마다 건물은 반듯한데 성도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갔던 교회도 과거에는 영광스러운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용하다 못해 침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영국교회의 영광이 떠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찬식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도중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찬식을 그냥 의미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은 한 달에 한 번씩은 성만찬을 한 번 이상은 꼭 받고 있었고, 심방 때도 목사가 꼭 성만찬을 베푸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알던 피터 킬릭 목사가 어느 날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초청으로 아침 일찍 학교를 방문했는데, 제가 거기에 동행했습니다.

킬릭 목사는 예배 가운데 말씀 증언과 성찬을 거의 비슷한 시간으로 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만찬 시간에는 흐느끼는 교사들도 보았습니다.

그 뒤 저는 귀국하여 28년째 우리 교회에서 성만찬을 매월 첫 주일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만찬이 오늘날 감동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행해지고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합니다. 성만찬의 본래 의미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요즘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본래 구약 시대에는 화목 제사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사람과 그 가족과 그의 노예와 레위인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죽으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할 때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이 전통에 따라 초대교회는 성만찬을 집례했는데, 성찬을 한 후에는 애찬을 겸하여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는 성찬 후 애찬을 나눌 때, 그 애찬을 각자가 준비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만들어 온 음식을 함께 모아 나누어 먹었는데, 후에는 각자 준비해 온 것을 각자가 먹었습니다.

값비싼 음식을 만들어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앉아 먹으면서 오히려 이 애찬식이 교회 분규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만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의 만찬이란 우리 주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고귀한 살을 찢고, 피를 흘린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만찬이 오히려 부자들이 호기를 부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이 되었으니, 이것을 진정한 성만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기에 대해서 책망하고, 성만찬의 진정한 의미를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4절). 여기서 ‘나를 기념하라’는 말은 ‘기억하라, 회상하라’는 말입니다.

성만찬에서 신자는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전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대속의 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만찬에서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성도의 몸으로 들어갈 때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화체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과 고난을 기념하는 기념설을 주장합니다. 이렇게 성만찬에는 구원론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만찬이 구원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녔기에, 성만찬은 우리에게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성도들은 성만찬을 들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을 기억하고 이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성만찬을 들면서 하나님의 그 고귀한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고난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었으니, 우리도 이웃을 위해서 고난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인류를 위해 죽어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주님처럼,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때, 어디 장소에서도 죽어야 함을 다시 다짐해야 합니다.

이번 총동원 주일도 그냥 시간을 보내지 말고 복음을 전하여 한 생명이라도 구원해야 합니다. 또한 성만찬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본 받아 우리도 이웃과 사랑의 나눔을 가져야 합니다.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우리 교회는 돼지 저금통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그마한 것이라도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성만찬을 통해 받은 주님의 은혜를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미래에는 심판주로 오셔서 우리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는 초라한 것 같으나 영적으로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 우리는 주님과 잔치 자리에 설 것입니다. 지금 성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최후의 심판의 날의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만찬에 참여한 누구나 다 최후의 심판날에 있을 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 자격에 합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만찬의 의미를 알고 참여하고, 그 성만찬의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를 살피라고 말했습니다(28절). 이 말씀은 자신을 검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세세하게 검사해야 합니다.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날 신부로서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신부는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순결을 지키고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일제 말에 주기철 목사는 장로교 총회가 신사 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결의했을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순결한 신앙의 소유자로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성만찬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각자가 각자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죄를 졌습니다. 순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너무 더럽습니다. 그러기에 성찬 예식 때 우리의 더러운 마음과 양심과 생활을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한 회개의 시간이 될 때 성만찬은 우리에게 큰 은혜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고 아무 의미 없이 성찬을 대하게 되면 징계를 받습니다(32절).

그러나 그 징계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일시적인 징계입니다. 성만찬 때 의미 없이 들어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징계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하면서 성만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982년 남미에 있는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모였던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총회에서 채택한 소위 '리마 문서'가 있는데 여기에 성만찬의 의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성찬과 설교의 관계인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신 일에 대한 기념은 설교와 성만찬 두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설교와 성찬은 예배에 필요 불가결한 두 요소인데 이 두 부분은 서로를 강화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이 설교를 등한히 해 온 것과 개신교에서 성찬을 등한히 해 온 것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가톨릭은 최근에 설교가 강화되는가 하면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찬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2) 성찬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찬은 우리로 하여금 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도록 해주고, 또 그것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성찬의 자리는 바로 하늘나라 밥상공동체를 미리 앞당겨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성찬과 성령의 관계입니다. 성찬식의 주인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우리 신앙이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며, 성령의 능력으로만 새로워져서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지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성찬과 선교의 관계입니다. 리마 예식서에는 “성찬은 신자를 세계사의 중심적 사건과 연관시켜 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적어도 성만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계의 상황과 인간의 상태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5) 성찬과 일치의 관계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떡과 공동의 잔에 참례하게 되는데 이것을 통하여 먼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이 떡과 잔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 서로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와의 친교적 일치, 그리고 전체 교인의 일치가 중심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장로님이 평소에 자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성도와 함께 이웃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성만찬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장로님과 그 성도는 주님의 몸과 피를 서로 나누면서 각각 떨어져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예배가 끝난 후에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왜 같이 오신 성도님과 함께 성만찬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와 돈 거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정직하지 않았고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상대하기도 싫기 때문에 떨어져 앉았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장로님은 자신이 우리 주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주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함께 앉아서 만찬을 나누시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은 다시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실 돈 거래에서 그가 딱 한 번 실수를 했던 것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자신과 차별을 두는 것은 자신이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장로님은 그 성도와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가까이 앉아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성만찬은 이렇게 용서와 일치와 사랑과 교제의 자리입니다.

성만찬에서 받은 이 용서와 사랑과 일치와 교제의 은혜를 우리도 세상에 나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일치를 이루고, 참다운 교제를 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미국신사가 자기집 정원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서있었습니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신사는 “너에게 줄 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음료수라도 한 잔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국신사는 “너처럼 개 같은 인디안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인디언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이 미국신사는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서 사냥개를 놓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에서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가던 인디언이 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당장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며 후히 대접했습니다.

그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미국신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그런 미국 신사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감복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 여호와께서는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25:21-22).

우리도 이 인디언처럼 사랑과 용서와 자비, 그리고 그 사랑으로서 다른 이웃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만찬은 용서와 사랑과 교제와 일치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와 사랑을 이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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