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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갈보리로 가는 길

관리자 2013-01-13 (일) 11:00 11년전 1321  

갈보리로 가는 길

 

로마서 16:13

  

제1회 이태석 신부 봉사상 수상자로 박무열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기독병원 원장이 선정되었습니다. 박무열 원장은 의대생 시절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뜻에 따라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산간오지에 의료봉사를 많이 나갔고, 의료혜택을 못 받는 나라에 가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인기 없는 일반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가 무료로 진료한 외국인 노동자 중에 방글라데시인이 많아 방글라데시 선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일단 그는 10일 동안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함께 방글라데시 현지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가지뿔 지역에 장기 의료 선교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일반인이라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 방글라데시 땅에 선교사로 일한다면 그런 어려운 곳에서 해야 되겠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지 위해서 영어와 방글라데시어인 벵골어까지 숙지한 다음 선교 현지의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병원은 열악했습니다. 30병상 정도를 가진 그 병원 수술실에는 제대로 된 의료장비가 거의 없었습니다. 또 수술 중에 정전이 되는 불상사가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악한 병원에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현지인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는 진료비로 현지 병원의 10분의 1 수준을 받았고, 돈이 없는 환자는 무료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동안 약 3천명을 수술하여 생명을 건져 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워낙 위급한 환자가 많아 그는 다양한 수술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현지인을 돕는 이웃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그런 곳에서 자신을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동하여 오늘도 그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본받아 우리 또한 명목상의 신자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똑같은 사명, 즉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예수를 영접한 좋은 신자들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총 26명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거론한 사람들 26명의 배경은 각기 다 다르지만 이들은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26명의 이름이 죽 거명이 되는데 이 중에 9명이 여자입니다. 남녀차별이 심하던 이 당시에 26명 가운데 9명이 여자라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런 사실로 보아 초대교회에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같은 경우에는 부부인데 부부가 같이 일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2절을 보면 드루배나와 드루보사가 나오는데 앞에 ‘드루’라고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자매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자매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예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특별히 본문 8절을 보면 ‘암블리아’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 이름은 이 당시에 주로 노예들에게 붙여졌던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 9절을 보면 ‘우르바노’라는 이름과 ‘스다구’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도 다 노예들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본문 10절에 보면 ‘아벨레’라든가 ‘아리스도불로’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여기서 ‘아벨레’는 로마교회에 있는 유대인의 이름이고, ‘아리스도불로’는 당시 헤롯 왕의 손자입니다. 즉 악독한 가문이지만 왕족에서 나온 그리스도인입니다.

또 본문 11절에 나오는 이름을 보면 ‘헤로디온’이 있습니다. 헤로디온도 역시 헤롯 가문의 사람입니다.

또 ‘나깃수’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글라디우스 황제 때 해방된 유명한 노예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는 황제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의 집안에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이름들을 보면 초대교회에는 부자, 가난한 사람, 귀족, 노예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교회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지만 가끔 교회 안에서도 보면 자기들끼리만 특별하다고 자기들끼리만 모여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모임입니다. 그렇게 따로 모여 사는 대표적인 이단이 ‘신앙촌’이 아닙니까? 신천지도 자신들만이 진리를 안다고 자신들을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위일체의 신앙이 우리에게 증거하듯이 분리되어 고립되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가 된 사실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 14절부터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이 설교를 하고 난 후 변화 받은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다고 4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즉 한 번의 설교를 듣고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초대교회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증거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증거 되니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하나 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교회라는 곳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데 이런 공동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면 하나가 됩니다.

지금 로마에 있는 교회가 왕족에서부터 노예까지, 부자에서 가난한 자까지, 남녀노소 다 모여 있는데 이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복음 아래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디든지 분열이 있는 곳은 복음이 약해진 곳이라는 뜻입니다. 복음 이외에 다른 요소가 강조되면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26명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복음을 위해 함께 모인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26명을 로마 교회에 추천하면서 그들 하나하나를 칭찬하면서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도울 수 있는 대로 잘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 중 오늘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루포의 어머니는 곧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루포는 마가복음 15:21절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에게는 두 아들, 즉 알렉산더와 루포가 있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시골로부터 와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사형을 받으러 가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괴로워 너무 힘겨워하였습니다. 그 때 로마 병사들이 시골사람인 듯한 구레네 시몬을 억지로 붙잡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우고 골고다 산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예수의 그 험한 십자가를 억지로 매고 간 시몬의 일과 그의 자녀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 그 집안이 후에 큰 축복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의 행진이 있던 날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그가 북아프리카의 구레네 출신 유대인이어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월절을 지키려고 자신의 고향에서 돈을 착실히 벌어 준비해 두었다가 그날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는 노자를 준비해서 그의 조상들이 살았고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와서 고국의 그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 곳곳을 누비며 감탄하는 동안 예수라는 한 젊은이는 재판을 받고 그 험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아 돌로로사 거리를 로마 병정들의 잔인한 채찍을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는 구경꾼들이 많았고, 그 역시 구경꾼들 틈에 끼어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정말 재수 없게 로마 병정이 그의 창끝으로 그의 어깨를 툭 쳤습니다.

그는 로마 군인에 의해서 징발당했고, 곧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는 기쁨도 잠시 예루살렘에 왔다가 죄인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크나큰 모욕에 화가 나고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아, 내가 구레네로부터 이 먼 길을 겨우 이것을 지기 위해 왔단 말인가?”하고 한탄했을 지도 모릅니다.

유월절 그 영광스러운 제사에 참여하려고 그 먼 길을 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당했을까 생각하니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에 올라온 즉시 십자가를 내려놓고 유월절 제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예루살렘을 떠나 아프리카 구레네로 가려고 굳게 결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많은 매를 맏으면서 사형장으로 가는 그 처절한 모습의 젊은이에게서 보이는 경건한 눈초리에 그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께 그만 영원히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갈보리로 가는 길에서 그분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것이 그만 시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유월절을 지키러 왔다가 그만 생각지도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그의 아내와 아들들에게 자기의 경험을 실감나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가족들이 예수를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를 강제적으로라도, 억지로라도 짊어진 것이 결국 그와 그 가족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시몬은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졌지만 그것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성도들 가운데 교회 일을 하라고 부탁하면 기쁘지 않게 대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거절하거나 사양할 수 없습니다.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만일 기쁨으로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억지로라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어 신자들이 세계 방방 곳곳으로 피난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안디옥에도 교회를 세웠는데, 안디옥 교회를 세우는데 아마 구레네 집안이 크게 공헌을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20-21절).

핍박이 커지자 안디옥에도 신자들이 왔을 텐데 그 사람들 중에 구레네 시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그의 두 아들이 동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만든 사람들 가운데 바로 구레네 시몬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에 복음을 전해서 안디옥이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 만드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아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도 갈보리 길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진 구레네 시몬으로부터 출발했을지도 모릅니다.

에베소에서 아테네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바울을 제거하려고 했을 때 그들 앞에 막고 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였습니다(행19:33).

이것을 보면 구레네 시몬이 자기 가족들을 신앙으로 잘 인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또 시몬의 아내 곧 알렉산더와 루포의 모친은 바울을 위해서 많은 도움과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어머니는 곧 자신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레네 시몬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하나님 나라의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신앙 생활하는 가정,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 놀라운 일의 시작은 바로 구레네 시몬이 우연하게라도 갈보리길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진 사건입니다.

우리도 어떤 길에서든지 예수를 만나야 하고 그분에게 감동하여 인생의 초점을 예수에게 두고 영원한 구원이신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또 구레네 시몬의 가정처럼 부부와 자녀들이 모두 주님의 종들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가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주님의 종이 되어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은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우리의 가정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 온 가정이 함께 합심하여 예배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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