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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7.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영적인 사람

관리자 2013-03-17 (일) 11:00 11년전 1311  

영적인 사람

 

고린도전서 2:10-16

  

최근 극장가에 획기적으로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인데, 빅토르 위고가 쓴 것으로서 1862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장발장은 굶주리는 조카들에게 주려고 빵 한 개를 훔쳤습니다. 그래서 19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가 감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차가운 눈길을 보냈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도 죄인이라고 하면서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부인이 성당의 주교님 집에 가 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뜻밖에 미리엘 주교는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은촛대를 훔쳐 가지고 나오다가 곧 헌병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는 자기가 주었노라고 하며 사랑을 베풀어서 장발장을 다시 한번 감동시켜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미리엘 주교는 자신의 연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집 안에서 유일한 사치품인 은촛대를 장 발장에게 내민 것입니다. 원래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면서......

장발장이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미리엘 주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나 출세, 돈이나 명예를 쫓지 않고 오직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미리엘 주교의 겸손하고 밝고 온화하고 너그러운 품성이 장발장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미리엘 주교의 사랑이 장발장의 마음에 있었던 증오와 미움, 멸시와 불신을 사랑과 나눔, 평화와 이해, 배려와 희생으로 바꾼 것입니다.

장발장이 자신을 감옥에 넣으려고 끝까지 쫓아다녔던 자베르 경감을 살려준 것도,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던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바리케이드 안으로 숨어 들어 마리우스를 살려낸 것도, 시장으로 복무하면서 도시 사람들을 세심하게 보살핀 것도 그의 영혼 안에 미리엘 주교가 들어왔기 때문일 거라 생각됩니다.

장발장은 죽을 때 ‘아 빛이 보인다’하고 말하며 평화롭게 죽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비록 냉대를 받고 쫓기는 속에서 살았지만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습니다. 장발장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든 이가 바로 미리엘 주교입니다.

장발장은 그 사제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육에 속한,’ 즉 세상에 속한 세상의 사람이었습니다.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개 훔쳤을 뿐인데, 19년을 감옥에서 살아야했으니, 그의 마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원망뿐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미리엘 주교를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증오와 원망의 마음을 버리고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영적인 성도와 육적인 성도의 모습은 다릅니다. 먼저, 영적인 성도는 기꺼이 남에게 질 줄 압니다. 그래서 다른 뺨을 기꺼이 내밉니다. 남들이 화나게 해도 평온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성도는 남에게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주장합니다. 화나게 하면 혈기를 참지 못합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때에 따라 자신의 권리나 주장을 기꺼이 양보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성도는 자신의 권리를 끝까지 주장합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손해나 불이익을 당할 때 기꺼이 감내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성도는 언제나 보복하며 복수심을 항상 갖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몫 이상의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겸손하며 공격을 받을 때 피하는 일은 있어도 즉각적으로 혈기를 품고 반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성도는 공격을 당하면 마치 뱀과 같이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즉각 반격할 자세를 갖춥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언제나 항상 평온하며 안정되어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일을 할 때도 속사람은 항상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항상 분주하며 가만히 기다릴 줄 모르고 쉴 줄도 모릅니다. 몸은 쉬어도 머리는 항상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자신이 남에게 잘못을 범하면 즉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사과하는 것을 힘들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온갖 술수로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합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시간과 세월이 자신의 잘못을 덮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죄책감을 떨쳐 버립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잘못을 즉시 바로 잡기보다는 시간을 끌면서 세월이 지나면 잊어주기를 바라고 상처가 아물어지기를 바라면서 어물쩍 넘기려고 합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만족하며 불의한 욕심을 내지 않지만 육적인 성도는 자신이 소유한 물질에 만족이 없이 항상 더 많이 가지기를 소원합니다.

또 영적인 성도는 물질을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지위나 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며 존경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성도는 물질의 풍부함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려하며 자기보다 더 높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더 친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성도는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중심적이 되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먼저 도모합니다. 따라서 언제나 타인을 최고의 자리에 앉히려 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도모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자기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이나 TV 등의 대중매체는 이런 육적인 삶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에 올라온 것들을 보면 거의 성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순결성은 전혀 의미가 없게 되었으며, 가장 인격적이어야 할 사랑마저 경제적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인간을 경제적인 동물로 규정하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돈이 최고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가 형제들이 유산을 두고 재판하는 모습을 보면 돈이 무엇이건데 친형과 아우 관계가 저렇게까지 되어야 하는가 생각되면서 비애를 느낍니다.

또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게 권력을 추구합니까? 거기에 정의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동물적 수준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런 육적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 것만 보이고 그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만 추구합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을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를 만나 사랑과 배려를 받았을 때 그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그는 미리엘 주교의 사랑으로 육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미리엘 주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전달되면서 장발장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그 뒤 그는 죽은 여공이 남기고 간 딸 코제트가 아직 어려 창녀굴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건져 그의 딸로 키웠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무릅쓰면서 어린 코제트를 키우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청년을 살려 결혼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불살랐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것은 그가 미리엘 주교의 사랑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그의 마음문을 열자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에게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종교입니다. 즉,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한 자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음문을 여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열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최초의 신자인 자주장사 루디아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녀가 마음문을 열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행16:14).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가 한번은 부흥회를 인도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어떤 젊은이가 찾아와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떤 회사에서 경리일을 하는데 그만 큰 시험에 들어 회사돈 1천 5백 달러를 훔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큰 죄를 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1천 5백 달러를 훔쳐서 그 중 얼마를 쓰고 남은 것은 950달러 밖에 없습니다. 쓰지 않았더라면 전부 가져다 회사에 반환할 텐데 950달러 밖에 없으니 회사에 갚을 수도 없고 해서 제 생각에는 장사를 해 1천 5백 달러가 다 된 다음에 갚으며 어떨까요?“

그 때 무디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 도둑질한 돈으로 장사를 해야 그 장사가 잘 될 것 같지 않으니, 남은 것이라도 갚고 사장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워 갈 수 없으니 무디 선생님이 같이 가 주세요.”

그래서 그 이튿날 무디는 그 사람과 함께 회사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먼저 무디 선생이 들어가서 사정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더니 그 사장은 “아, 저는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한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회개하는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 950달러만 가져와도 다 용서해주겠습니다.“

그 후 그 청년은 950달러를 들고 들어와서 사장에게 드리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사장은 흔쾌하게 용서했고, 그 후 그 청년은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디의 설교에는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문을 열고 주님께로 돌와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데 사람의 마음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성령으로만 사람을 참으로 감동시킬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말씀하셔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 것,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성령도 어떻게 하실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아서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주님의 성령이 그의 마음문을 얼마나 두드렸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성령의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승을 돈을 받고 팔아넘겼습니다.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린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모시고 3년 동안이나 살면서 주님의 인정을 받아 예수 공동체의 재무까지 보았으면서도 물질에서 예수께로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파멸의 길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육적인 사람으로 있겠습니까? 아니면 마음문을 열고 성령 하나님을 받아들여 영적인 사람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모셔 드려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게 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로 인해 영적인 사람인 된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영접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면서 주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만이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 앞에서 자신을 내려 놓고, 즉 육적인 사람을 죽이고,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 주님의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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