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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낮은 곳에 내려오신 그리스도

관리자 2013-12-22 (일) 11:00 10년전 1285  

낮은 곳에 내려오신 그리스도

 

빌립보서 2장 5-11절

 

제가 관여하고 있는 생명의 전화에서 지난 11월 5일(화) 11시에 동작대교 중간에 SOS 생명의 전화를 설치했습니다. 현재 25개의 한강다리가 있는데, 그 중 8개의 다리에 SOS 생명의 전화를 설치하였습니다.

1년에 자살하려고 한강에 온 사람 가운데 약 1,000명의 사람이 전화를 걸어 생명의 전화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실적은 놀라운 것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한 것인데, 생명의 전화가 천여명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1위인데, 천만다행하게도 지난 해에는 11% 정도가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해에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의 자살이 없어서 그만큼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연예인의 자살은 도미노 현상을 불러와 많은 사람들이 그 연예인을 따라 자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생명의 전화 상담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 상담을 해 주었기 때문에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생명의 전화 상담원들은 상담전화를 붙잡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가까운 친구가 되어 그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성탄절 이브에 자살 위기에서 구출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인생을 비관하고 높은 철교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중간까지 올라 갔으나 더 올라가면 뛰어내린다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냥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이 때 한 여자 경찰이 모자를 벗고 자기가 여경이라는 것을 밝히고 잠시만 이야기를 하자고 하며 철교를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 순경은 밑을 내려다 보자마자 공포에 질려 온 몸을 떨며 꼼짝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살하려던 여자가 여순경이 있는데까지 내려와 붙들어 주고 그 여순경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두 젊은 여자들은 친구처럼 애기를 나누었습니다. “너 이렇게 무서워 하면서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올라왔니?” “죽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려주려고 왔단다.”

‘낸시’라고 자기를 소개한 여순경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행방불명이 된 고아로서 경찰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자살하려던 여자는 밑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빨리 올라와서 저희들을 도와줘요.” 이 여자는 그 여순경의 이야기보다 생명을 걸고 철교를 기어 올라온 그 마음씨에 감탄하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살리려고 그 무서운 위험을 각오하고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그 여순경이 자살하려는 여인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이번 주일은 성탄절을 앞둔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나라를 버리고 이 낮고 천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마지막 잎새>를 대부분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그 작품에 가난한 미술가들이 세들어 사는 그리니치 뒷골목에 잡지에 삽화를 그림으로써 생계를 꾸려 가는 두 처녀 슈와 조안나가 등장합니다.

11월이 되자 이 동네에 폐렴이 돌아 조안나가 병석에 눕게 됩니다. 그녀를 치료해 온 의사는, 환자가 자기 장례식 행렬의 마차 수나 헤아린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그 대신 올 겨울 외투 소매의 유행에 관심을 기울일라치면 소생의 가망이 있다고 슈에게 넌지시 알려줍니다.

조안나는 창 밖 건너 벽돌집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 덩굴을 바라보며 남은 잎새를 헤아리는 데 넋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는“담쟁이 넝쿨에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 나는 가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건물의 아래층에는 평생 동안 화가를 꿈꾸며 살아왔으나 변변한 작품 하나 그리지 못하고 60세를 넘긴 초라한 노인 베르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슈는 억지로 조안나를 잠들게 한 다음 그런 사정을 베르만 노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 날 밤은 늦겨울 비바람이 몹시 몰아쳤는데, 이날 창 밖을 내다본 환자는 그런 가운데서도 마지막 잎새 하나가 굳세게 매달려 있는 걸 보고는 삶의 의지를 되찾게 됩니다.

억센 비바람이 몰아친 그 다음 밤을 지내고도 잎새는 끄덕도 없이 버팀을 보고는 조안나가 침상에서 일어나 먹을 것을 청합니다만 그 시간에, 전날 아침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실려간 베르만 노인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베르만 노인은 그 날 밤으로 벽돌집 담벼락에다 사다리를 걸고는 등불을 켜들고 필생의 단 한 편인 걸작, 즉 마지막 잎새를 그려놓고는 비바람에 젖어 언 몸을 침대에 내동댕이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조안나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리고 죽은 베르만 노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소외되고 삶의 의미를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시기와 질투, 다툼과 분쟁이 있는 이 세상에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이러한 감동 없이 어떻게 성탄절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올해의 성탄절을 맞이해야 될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6-7)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하나님과 같으신 본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만물을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셨던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이 세상의 불완전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역사 속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성육신 자체가 바로 인간의 고난에 참여하신 것이고 인간의 아픔을 위로하고자 낮아지신 것이었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모습으로 이 어두운 세상에 오신 것 그 자체가 바로 낮아지심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조그마한 자리에 앉아도 교만하여 자기를 나타내고 높이고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웨이트먼 윌리’라는 미국 상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우 가난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도 너무 가난해서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유행도 지나고 왠지 어수룩해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도통 그와 함께 다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는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그는 링컨 대통령을 도와 미국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 상원의원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의 고향은 그를 맞을 준비에 바빴습니다. 그의 고향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 정계를 주름답던 상원이 그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전 교회는 자부심으로 알았습니다.

그를 맞이한 고향 교회는 웨이트먼 윌리에게 어떤 직분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교회학교 유년부 부장이 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그는 유년부 부장으로 주일학교 교사가 된 것이 평생에 그 어떤 자리보다 귀한 자리라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면서도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낮아지셔서 이 땅의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예수의 모습, 즉 사랑 때문에 낮아지신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늘 보좌를 버리고 짐승이 사는 냄새나는 마굿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게 오셨고,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주님의 고향인 나사렛에 가서 주님이 목수생활을 하셨던 집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고향집은 바윗돌을 파서 만든 집이었습니다.

주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목수였던 부친 요셉이 세상을 떠났으니,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어린 아우들 7명을 건사하는 소년 가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가난을 다 아시고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다 아시고 우리와 함께 괴로워 하십니다.

성경은 주님이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8:9).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우리 또한 가난한 마음, 염려하는 마음으로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성탄절에 성탄헌금을 하여 가장 어려운 일을 당한 주변 사람들을 돕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가 드린 정성어린 헌금을 전액 이웃을 돕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주님은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시기까지 했는데, 우리도 우리 자신이 쓸 것을 이웃의 아픔을 위하여 내놓아야 합니다.

또 우리 주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빌2:8). 그 고귀하신 주님이 죄와 사망으로 영원한 형벌 속에 놓여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없었다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오는 부자처럼 우리는 음부의 불구덩이 속에 빠져 영원히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그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 받고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영광 속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 받아 저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저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만이 그 영광스러운 천국을 향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성탄절에 낮은 자리에 내려오신 주님처럼 저 낮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며 미국의 하버드 대학 교수인 헨리 누엔 박사는 존경을 받으며, 높은 보수와 사회적 명예를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교수직을 사임하고 찾아간 곳은 지체 부자유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한 복지원이었습니다.

누엔 박사는 그곳에서 지체 부자유자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하는 것을 돕는 등 모든 허드렛일을 맡아했습니다. 그리고 보수도 상당히 적은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돌보는 누엔 박사의 얼굴에는 항상 아름다운 미소가 끊임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책 『예수 이름으로』에서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을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신동이라고 추앙되고 하버드 교수에까지 올랐습니다. 저의 저서 20여권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날 정신박약아 아담 군을 만났을 때,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하여 예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엔 박사는 부와 명예를 가진 성공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낮은 자리에서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첫째,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낮아져 고난 받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고난입니다.

연한 순 같은 모습으로, 마른 땅에 나온 줄기와 같은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주님은 오셨습니다. 지위나 명예로 보아 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멸시를 당하신 고난이었습니다. 나병환자 같이 취급당하였습니다. 자기 백성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우리가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주님께 담당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꼭 이런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 이웃 또한 진정한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성육신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면서 영적으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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