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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관리자 2013-07-21 (일) 11:00 10년전 1269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에게는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14세때 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스승 지오바니가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때 미켈란젤로는 “저의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지오바니는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그 기술이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두 곳을 찾아 갔습니다.

처음에 그가 간 곳은 술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술집 입구에 있는 아름다운 조각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단지 술집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번에 거창한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는 그 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을 봐라 네가 술집 입구에서 본 것과 어떻게 다르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졌고, 또 하나는 술 마시고 죄를 짓는 집을 위해 세워졌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그때 어린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스승님,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가졌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그것을 쓰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몸을 중요시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몸은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에 몸을 훼손시키는 것은 불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체 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는 “효경”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몸의 모든 것, 심지어 머리카락과 피부까지도 다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훼손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절, 온 나라에 '단발령'이 내렸을 때, 차라리 죽을 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고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도 몸은 중요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듯이 그 몸을 부모에게 물려 받아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몸을 바로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몸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몸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 줄 알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는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육과 죽음에서의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무한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결코 방종이 아닙니다. 즉, 자유란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마음껏 무슨 행동이나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믿어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화의 삶, 즉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방인들도 하지 않을 심각한 음행을 저지른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데서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누리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신의 거룩한 지체를 쾌락이라는 죄악의 도구에 내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 중에 이솝 우화가 있습니다. 이 이솝 우화 가운데에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 맛이 있는 꿀을 발견했습니다. 꿀단지의 주변을 돌면서 조심조심 그 꿀맛을 맛보다가 결국은 조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깊이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그 날개가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 꿀 속에 더 깊이 파묻혀 갑니다. 그때 불나비가 한 마리 날아와서

“야 이 녀석아. 음식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으면 안되는 거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결국 죽지 않니!”

그렇게 비난을 하는 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 몸이 점점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빙빙 돕니다. 그 색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까이 나갑니다. 더 잘 보려고 가까이 가다가 결국은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야. 아직도 죽지 않은 채 있던 파리가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먼. 한번에 타 죽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탐욕을 쫓아 사는 인생, 쾌락을 쫓아 사는 인생이 어떻게 스스로 멸망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우화입니다.

성경도 자신의 정욕과 쾌락을 위해 사는 인생에게 이러한 무서운 결과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모든 헬라 문화의 우상숭배가 그러했지만 특별히 고린도에는 우상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가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것이 너무나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몇 사람이 옛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음행하는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는 성전된 성도의 육체를 더럽히는 심각한 죄악으로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합한 자이므로 그가 음행의 더러운 죄를 짓는 것은 그리스를 욕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독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음행에서 벗어나도록 권면하고자 성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임을 강조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5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의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19절).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다시 사셨으므로 성도는 더 이상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의 소유권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절)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우리 몸으로 성결한 삶을 살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되었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몸도 주님 재림하시는 날 일어나 영원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영원히 살 몸으로 우리가 어찌 헛된 더러운 행동을 해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한 몸 된 우리가 음란한 생활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힌 것이 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주 만물 중에서 하나님의 피로 속죄 받은 것은 오직 우리 인간 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천사들도 이 사랑을 받지 못했고,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도 이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죄 용서 받고 구원받아 주의 것이 되었으니, 우리 몸은 바로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함부로 놀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 몸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해야 합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면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만약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아마 드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달라고 하는데 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드리라고 하면 드려야 합니다.

1950년 미국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유망한 청년 짐 엘리엇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선교하는 일에 자기의 생애를 바치기로 헌신했습니다.

그리고는 남미의 에쿠아도르에 있는 정글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친구 네 명과 함께 남미의 정글을 향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날을 정글을 헤치며 나아갔습니다. 이 때 갑자기 한 떼의 인디언들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와오다니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창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에콰도르의 강가에서 피를 흘리며 모두 창에 찔려 죽었다고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 때의 짐 엘리엇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시 이어집니다. 이 다섯 명의 순교한 선교사들의 부인들이 남편의 자리를 메우려 순교자의 아들인 8살의 스티브 세인트와 함께 와오다니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은 순교한 5명의 젊은이들을 애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내 남편이 죽은 것이 비극이 아닙니다. 내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었더라면 그것이 더 큰 비극이었을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어린 스티브 세인트는 정글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신을 밝히는 인디언 민카예를 만나지만 오히려 그의 양자가 됩니다.

순교자 네잇의 여동생인 레이첼과 짐 엘리엇의 미망인 엘리자벳은 정글에서 30년 동안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1994년 레이첼이 죽자 민카예는 스티브에게 부족들을 도울 것을 제의하여 인디언들을 위한 기술과 교육센터를 설립합니다.

와오다니 인디언들은 종족분쟁으로 60%가 살해되는, 지구에서 가장 잔인한 부족이었지만 지금은 부족의 20-40%의 기독교로 개종되었고 잔인한 분쟁과 살상이 사라졌습니다.

“평화”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그들이 폭력대신 평화를 경험하게 된 것은 이러한 거룩한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짐 엘리엇을 포함한 5명의 순교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삶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와 아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몸만이 아니라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마저 주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주님에게만 영광 돌릴 때 거기에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인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뜻을 꺾고 순종하셨을 때 인류 구원을 완성하셨듯이, 우리도 내 뜻과 내 취미와 내 욕심을 죽이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때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은 우리의 개인적인 욕망을 풀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데 우리 몸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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