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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어찌하여 우느냐?"

관리자 2013-03-31 (일) 11:00 11년전 1213  

"어찌하여 우느냐?"

 

요한복음 20:11-18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기 있는 정치인도 아니었고 많은 군인을 지휘하는 지휘관도 아니었고 큰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감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고 시대의 상황에 맞게 전해야할 메시지를 확실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적 이상주의와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결합시켜 미국인과 세계의 양심을 일깨워 그들에게 흑인들의 눈물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2백년 이상 노예생활을 했던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한 법적인 권리를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누구나 필요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선뜻 그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던 그 역사적인 책임을 감당하다가 1968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한 자객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평화를 위한 헌신과 희생으로 그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순교자의 한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는 저격당하기 전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들 앞에는 어려운 시련의 날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산꼭대기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느보 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러 하나님이 보여준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모세를 회상했습니다(신34:1). 그리고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인 관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산에 오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바라보았고, 그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같이 거기에 이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 약속의 땅에 반드시 도달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멸시천대를 받고 있던 흑인들이 그 멸시천대를 벗어버리고 인간답게 살아갈 아름다운 미래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연설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순교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들과 함께 새 시대를 여는 동반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틴 루터처럼 하나님이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새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 쌓여 있더라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를 만나 참된 인생의 길을 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지 3일 되는 이른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열린 것을 보고 누가 예수의 시체를 훔쳐가 어디다 버린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성 안에 숨어 있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제자들과 함께 그녀는 다시 무덤으로 올라 왔으나 그들 모두 확인한 것이라고는 예수의 빈무덤이었습니다.

예수의 시체가 없는 것을 확인한 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그 곳에 남아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습니다.

그 빈무덤 밖에 서서 한참 울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여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를 뉘었던 곳에 한 천사는 머리 편에 또 한 천사는 발 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13절)고 말했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13절)고 말하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거기에 서 계셨으나 마리아는 그가 예수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15절). 그러자 그녀는 주님이 동산지기인줄 알고 그 동산지기에게 예수의 시체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찾지 못하여 서럽게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도 주님도 “어찌하여 우느냐”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도 마리아처럼 서럽게 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중 가장 서럽게 울고 있는 일이 바로 경제위기입니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어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나 괜찮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경제 위기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과거에는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정말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경제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서럽게 울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가 북핵문제로 큰 위기에 빠져 있어 우리의 서러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북핵 문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의 잠깐 실수로 핵단추를 누르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서러운 일이 많은데, 각자 가정에도 우리의 눈물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의 사업이 망한다든가, 가족 중 한 사람이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면 온 집안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제가 어려서 6.25전쟁이 났을 때 미군 기지를 만들면서 우리 전답이 모두 징발되었을 때 우리 집은 아무 보상도 못 받고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 때 저희 아버지가 불치의 병을 얻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 집은 웃음이 사라지고 그만 초상집이 되어 살 희망을 잃었습니다.

전란 중에 이런 가정이 어찌 우리 집 뿐이었겠습니까?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통곡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었던 예수님을 잃었으니 그 슬픔이야 말로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녀가 장사지낸지 3일 만에 무덤을 찾아온 것은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라도 보고 그 시체를 향품으로 발라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인데도 돌아가신 뒤 그 부모의 시체를 보기가 무서워 접근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이렇게 사모하는 여인에게 부활하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나 사도들, 또는 지체 높으면서도 주님의 편이 되어 주었던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에게 나타나지 않고 과거에 행실이 좋지 못해서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 만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주님을 진실로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사랑하고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아무 기대없이 예배에 나온다든지 아무 생각 없이 부활절 예배에 나온다든지 해서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예배라면 그것은 제자들이 빈무덤만 확인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도 예수의 빈무덤만 바라보고 돌아갔는데,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들도 매주일 이들 사도들처럼 그냥 왔다가는 것으로 끝나는 경웅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6-7).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는 자가 되면 주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사모하고 만나려고 했더니 부활하신 주님이 최초로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간절함을 보시고 다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부르심입니까?

우리 주님이 매주일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여기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쁠 때가 없었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주님은 사탄과 마귀의 죽음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온 누리에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 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 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안하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날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계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아직도 사단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브이데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디데이’와 ‘브이데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중간시기를 우리는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만일 부활의 믿음이 없었다면 주님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이미 잠자는 자들도 망하였을 것이라 말했습니다(고전15:12-19).

우리는 예수의 부활이 우리 믿는 자들의 부활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막달라 마리아처럼 전하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다만 알고 그친다면 우리는 악한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세상에 전해서 전 세계가 주님의 부활을 믿고 주님을 찬양하도록 해야 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죽고 다시 산다는 도리를 알기까지 너는 아무래도 처량한 나그네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근거는 무너지고 인간이 순수하고 덕스런 삶을 살게 하는 동기들이 없어져서 결국 세상은 향락과 퇴폐의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야말로 사람을 자제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며, 고상한 자기 부정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어지면 그 다음 생각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활의 믿음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신앙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요, 나의 부활이 곧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듯 우리 또한 죽음과도 같은 절망에서 깨어나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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