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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7.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그리스도의 사신

관리자 2014-07-27 (일) 11:00 9년전 1199  

그리스도의 사신

고후 5:20-21

저는 28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군종장교 훈련을 받고 중위 계급장을 달고 최전방 철책선 부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아직 목사로서도 부족하기 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장교로서도 초급 장교로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나님의 대사로서 군대에 파견된 성직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비록 군대 내에 배치된 하나의 군종장교였지만, 저는 천지의 대주제가 되시는 하나님이 ‘군부대의 복음화를 위해서 파견한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계급이 높은 지휘관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인 저는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고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 주님 앞에서만 굴복할 일이지, 세상의 어떤 관원들 앞에서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높은 분들에게 할 말을 했고, 군부대의 가장 낮은 사병들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의견을 부대 지휘관들은 곧잘 부대 운영에 반영했고, 그로 인해 부대의 형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것을 본 주변의 고급 장교들은 저에게 “목사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담당했던 부대 내의 교회에는 장병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다”라는 자의식 때문에 그때 저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어디서나 자신만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20절)이라고 했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고후 5:20). “그리스도의 사신”(Christ's ambassadors)이라는 말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권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신’(使臣)은 나라의 명을 받고 다른 나라로 파견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을 대신해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사신을 맞이할 때는 마치 왕을 맞이할 때처럼 극진한 예우를 다합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황제의 사신이 황제의 명을 받아 어느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그 도시의 책임자는 수많은 신하들을 이끌고 성문 앞까지 나와 맞이하곤 했습니다. 이것을 ‘영접’이라고 하는데, 사신은 황제의 권위를 대신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기 때문에, 그를 영접하는 일은 곧바로 자신을 보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가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교회에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면과 같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대단히 자부심이 있었고 어디서나 당당하였습니다.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당한 사신의 역할은 로마 황제의 사신과는 달랐습니다. 로마 황제의 사신은 황제의 권위를 가진 영광스러운 직분이었으나, ‘하나님의 사신’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해 선택된 자로서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한 고난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감수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영광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영광을 취하시지 않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집도 아닌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낳으신지 8일 만에 헤롯 왕을 피해서 저 멀리 이집트로 피난길에 나서야 했고, 소년이셨을 때는 부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소년 가장으로서 어머니와 일곱 동생을 건사하느라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목수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셔서 고생만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하나님의 사신으로 택하실 때도 그것은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고난을 받는 자리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행 9:15-16)

그런데 21절에 보면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오로지 지극히 영광스럽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로 하여금 의로워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주님이 우리를 ‘의인’이 되게 하셨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의인’이 되었다는 말보다도 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 여겨 주셨다는 것은 더 이상 영광스러울 수 없는 영원한 영광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 선택된 사신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 거듭나는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알고, 그 고난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 주님의 그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하나님의 사신’으로 택하셔서 그것을 전하도록 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 또한 ‘사신’으로 부르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덧입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는 ‘하나님이 나를 언제 사신으로 불렀단 말인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주의 사도가 된 바울처럼, 극적인 체험을 한 사람들이나 그런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도들 중에는 바울처럼 극적인 신앙의 체험을 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깨닫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 가운데 바울처럼 극적인 체험을 한 이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저 예수님과 오랫동안 접촉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도 극적인 믿음의 체험을 한 사람도 있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믿음이 형성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신’으로 부른 사람들입니다.

가령 누에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가 점점 변하여 나중에 나비가 됩니다. 누에고치 속에서 점점 날개도 자라고 수염도 나다가, 때가 되면 나비가 되어 누에고치에 구멍을 뚫고 나옵니다. 그리고 날개를 펼치며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 가운데는 별다른 체험은 없지만, 번데기가 천천히 변해서 나비가 되어 고치구멍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덧 새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소유한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도록 복음을 전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신’인 바울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신으로 보내면서 전하는 중심 메시지입니다. 본래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죄악된 모습은 하나님과의 어긋난 관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설 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이것을 전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해’(reconciliation to God)는 ‘이웃과의 화해’(reconciliation to others)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불화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화해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화해의 사도’로서 화평케 하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14:18-19)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지금 90세인데 세계 어느 분쟁지역이든지 찾아가서 평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제일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임에도 실패했지만, 대통령을 퇴임하고는 전인류의 평화를 만들어 내는데 전력을 다하여,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인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해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도 그 자신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화해의 사도’가 되어 그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리고 우리를 향해 ‘화해의 사도’ 즉, 하나님과 화목하고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희생과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하나님과 화목하고 세상에서 화평케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주셨는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으로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지금 필리핀에 ‘나눔선교센터’를 건축하고 있습니다. 지금 50% 정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센터가 건축되면, 그곳에서 우리 교회의 청소년, 청년들이 선교 훈련을 받고, 국내외의 복음선교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서로 화목하게 하는 ‘화해의 사도’로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신’으로서 예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고, 또 온 세상을 평화스럽게 살도록 화해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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