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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참된 예배자

관리자 2014-01-12 (일) 11:00 10년전 1075  

주현절 첫째주일

참된 예배자

고전 12:20-26

 

개화기때 우리 나라에 들어 온 캐나다 선교사인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은 선교사로서 우리나라의 백성들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민족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였던 에비슨은, 1885년 알렌이 세운 광혜원을, 1893년에 인계받아 4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가난한 백성들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에 현대식 병원을 하나 세워서 이들을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에게는 병원을 세울 만한 재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를 지원하는 캐나다 선교부도 그럴만한 여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이 쇠약해져서 선교를 시작한지 이 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본국에 돌아가서 차차 몸이 회복되자, 미루어두었던 병원 설립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유명한 건축가인 고든으로부터 현대식 병원의 설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건축비였습니다. 그는 병원 건축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비슨은 카네기홀에서 열린 미국 기독교 실업인들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들 앞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에 병원을 세우려고 하는데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의 연설을 들은 젊은 실업가인 세브란스(L. H. Severance)로부터 병원건축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에비슨은 세브란스를 만난 자리에서 “저희 부부는 기도하는 중에 한국에 최초의 병원을 세우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서 응답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세브란스도 말하기를 “저는 일년 전부터 어느 곳이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병원을 세우려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연설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한국에 병원을 세우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결단을 했습니다. 당신이나 저나 하나님의 인도를 함께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1900년 가을, 에비슨 부부는 기도응답에 감사하면서 한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902년 9월에 오늘날 서울역 앞 연세재단 빌딩 자리에, 한국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이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에비슨 선교사와 세브란스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외국 사람이었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복음을 증거했던 위대한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 뜻을 이어받아 “나눔 선교재단”을 설립했는데, 앞으로 “나눔 선교재단”을 통하여 북한 선교와 세계 선교에 이바지함으로써, 120 여 년 전, 이들이 보여주었던 믿음과 사랑의 열정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본받기 위해 우리는 먼저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한다는 것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가 얼마나 큰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의 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한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졌는가?” “나는 아무 죄도 없다”고 합니다.

시체는 자기를 관에 넣고 못질을 하고 무덤 속에 묻어도, 전혀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도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죄의 짐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그 무게를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으니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그것을 행복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인간의 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친구 가운데 난봉꾼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아씨비아테스’였는데 그는 소크라테스만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 내가 너를 만날 때마다 너는 나 자신의 정체를 보게하기 때문이다.”

그는 소크라테스만 보면 자신의 더러운 생활을 보게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싫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훌륭하게 산다고 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더 많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사도들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들을 싫어해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죄된 모습을 들추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베드로가 이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였던 베드로는 어느 날 밤새도록 고생만 하고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쯤에 낙심하며 그물을 정리하던 중에 예수님이 오시더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어서 그 누구보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데는 자신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눅 5:8).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못난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의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앞에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께 굴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배는 바로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끝나는 날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가 불러일으키는 충동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쾌락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히브리스 9장 27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가운데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날에는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어두운 세상 속에 눈도 어두워져서 자기 내면의 헛된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밝은 태양 아래에 서면 자신의 그림자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예배 자리에 나와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서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과거의 못된 마음과 행실을 보게 됩니다. 자기의 더러운 것을 알게 됩니다. 환한 햇빛이 방안에 비추면 그동안 안보이던 방안의 먼지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 하나님 앞에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죄사함을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예배의 은혜를 사모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바로 이러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그 대상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대가라도 지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들어, 부모나 가족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며,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지불하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를 사모한다는 것은 예배를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 케이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을 때 아주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교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주일 아침이면 3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갑니다. 교회에 가서 2시간 30분 동안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면 공원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다시 2시간30분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다시 갑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이렇게 한 번 예배드리기 위해 많은 시간과 힘을 쏟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소중했기 때문에 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않고 대가를 지불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 122:1)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예배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예배하러 가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분명히 서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자리는 너무나 엄청난 자리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선 것은 이집트의 궁궐에서 미래의 지도자로 잘 나가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애굽 현장 감독을 죽이던 혈기 왕성한 때도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팔순 노인일 때였습니다. 40년 간이나 양을 치면서 존재감 없이 그저 목숨이나 연명하고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를 떨기나무 불꽃 안에서 만났습니다. 평소에는 광야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으면 쉽게 불이 붙어 타 없어졌는데, 신기하게 타 없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던 그 자리에서 모세는 민족 구원의 사명을 받았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할수록 더욱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재다짐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서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그 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했듯이 우리도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납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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